호세 라미레즈(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호세 라미레즈(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엠스플뉴스]

'인디언 부족'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질주가 계속되고 있다. 접전 끝에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깨고 18연승을 거두더니,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마저 박살내고 19연승을 달성했다. 현지 팬들은 연승 가도를 달리는 이들에게 '윈(Win)디언스'라는 센스 만점의 별명까지 붙여줬다. 메이저리그 최다 연승 기록 21연승, 아메리칸리그 최다 연승 기록 20연승까지는 각각 2승과 1승이 남았을 뿐이다.

모든 선수들이 고른 활약을 펼치면서 결과는 따라왔다. 연승 기간 동안 타선은 타율 .309, 38홈런 132득점을 기록했다. 팀 평균자책은 1.68에 불과했고, 선발진은 17승 평균자책 1.84로 상대 타선을 꽁꽁 묶었다. 실점은 32점에 불과했고, 득실 마진은 100점에 달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선수가 있다. 주인공은 살림꾼 역할을 도맡은 내야수 호세 라미레즈(25)다.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라미레즈는 2013년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사실 2015년까지는 그리 두각을 드러낸 편이 아니었다. 데뷔 시즌에는 15경기에 출전, 타율 .333(12타수 4안타)를 기록했고 이듬해에는 68경기에서 타율 .262, 2홈런 17타점의 성적을 남겼다. 2015년에는 97경기에 출전했으나 타율 .219, 6홈런 20타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2016년부터 라미레즈의 반전이 시작됐다. 주전 자리를 본격적으로 꿰찬 라미레즈는 152경기에 출전해 타율 .312, 11홈런 76타점 22도루로 팀의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우승 및 월드시리즈 진출에 큰 힘을 보탰다. 상위권과의 격차는 멀었지만, 활약을 인정받은 그는 아메리칸리그 MVP 투표 17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발전은 계속됐다. 라미레즈는 올해 136경기에 나서 타율 .306, 25홈런 70타점 15도루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활약을 선보였다. 처음으로 아메리칸리그 올스타전에도 출전한 그는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는 중이다. 19연승 기간 동안의 활약은 더욱 뜨거웠다. 라미레즈는 이 기간 동안 4경기에 결장했지만, 출전했던 15경기에서 타율 .369(63타수 23안타), 8홈런 14타점 14득점 3도루를 기록했다. 장타는 홈런 8개를 비롯해 2루타 8개, 3루타 1개 등 도합 17개로, 때려낸 안타의 74%에 달했다.

그렇다면 라미레즈의 아메리칸리그 MVP 수상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라미레즈가 분명 뛰어난 시즌을 보내고 있지만, 기본 성적만 놓고 본다면 크리스 세일, 호세 알투베, 코리 클루버(후반기 들어 엄청난 부진을 겪고 있는 애런 저지는 제외)에게 다소 밀리는 느낌이다.

먼저 세일은 16승 7패 평균자책 2.76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의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선두를 이끌고 있다. 다승과 탈삼진(278개) 부문에서도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알투베는 타율 .351, 23홈런 76타점으로 휴스턴 레드삭스의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1위에 앞장서는 중이다. 타율은 독보적인 메이저리그 1위다. 라미레즈의 팀 동료 클루버는 후반기 대약진을 발판 삼아 15승 4패 평균자책 2.56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 아메리칸리그 평균자책 부문 1위에 올라 있다.

라미레즈 역시 인상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지만, 이들에 비해 내세울 수 있을 만한 타이틀이 없다. 그나마 한 가지를 꼽자면 최다 2루타 1위(47개) 정도다. 팬그래프닷컴 기준 대체 승리 기여도(이하 fwar)는 5.0으로, 세일(7.8), 알투베(6.7), 클루버(6.1)에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 라미레즈의 아메리칸리그 MVP 수상이 불가능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라미레즈는 공격에서 만개한 재능을 뽐내고 있지만, 수비에서도 그 가치를 자랑하고 있다.

올 시즌 라미레즈는 2루수와 3루수 포지션에서 각각 55경기, 88경기(경기 중 포지션 변경 포함)를 소화했다. 필딩률도 각 포지션에서 97.7%, 97.2%로 준수했다.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활용도가 높았던 만큼, 클리블랜드는 제이슨 킵니스의 부상 공백을 최소화하며 얀디 디아즈, 지오반니 어셸라 등 유망주들을 활용할 기회까지 얻었다. 말 그대로 라미레즈는 올 시즌 클리블랜드의 '살림꾼'이었던 셈이었다.

투수인 세일과 클루버가 매 경기에 나설 수 없다는 점, 알투베가 오롯이 2루수로만 활약했던 점들을 고려하면 라미레즈의 가치는 결코 이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우승을 눈앞에 둔 팀의 성적, 연승 질주의 주역이라는 임팩트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2002년 아메리칸리그 MVP 수상자 미겔 테하다(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2002년 아메리칸리그 MVP 수상자 미겔 테하다(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지금의 라미레즈를 보면, 떠오르는 선수가 있다. 2002년 아메리칸리그 최다 연승 기록(20연승)을 수립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주전 유격수 미겔 테하다다. 테하다는 당시 162경기에 모두 출전해 타율 .308, 34홈런 131타점의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단순 성적으로만 따지면 라미레즈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다만 테하다가 활약하던 시절은 괴물들이 넘쳐나던 때였다. 알렉스 로드리게스(fwar 10.0)는 타율 .300, 57홈런 142타점을 기록했고, 페드로 마르티네스(fwar 7.4)는 20승 4패 평균자책 2.26의 성적을 거뒀다. 짐 토미(fwar 7.3)는 타율 .304, 52홈런 118타점을 기록했다. 테하다의 성적은 이들에 미치지 못했고, fwar도 4.5로 아메리칸리그 전체 27위에 불과했다. 그러나 테하다는 개인 성적과 팀 공헌도, 20연승의 임팩트, 팀 성적 등을 바탕으로 아메리칸리그 MVP를 수상하는데 성공했다.

라미레즈 역시 테하다의 선례를 따를 수 있을까. 올 시즌 클리블랜드의 살림꾼이자, 연승 및 지구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 중인 라미레즈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윈(Win)디언스'의 질주를 이끄는 라미레즈의 아메리칸리그 MVP 수상 가능성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국재환 기자 shoulda88@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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