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스프링 캠프엔 특별한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바로 췌장암으로 별세한 호시노 센이치 전 부회장의 헌화대다. 라쿠텐에게 77번 호시노는 어떤 의미일까.

라쿠텐 스프링 캠프에 마련된 호시노 전 부회장의 헌화대(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라쿠텐 스프링 캠프에 마련된 호시노 전 부회장의 헌화대(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오키나와]

일본프로야구 스프링 캠프는 축제의 장이다. 마치 마을 잔치가 열리듯 경기나 훈련이 열리는 날엔 평소 조용했던 시골이 시끌벅적해진다.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오키나와 캠프도 마찬가지다. 라쿠텐이 스프링 캠프를 차린 킨 구장은 오키나와 나하 시내에서 한 시간 거리로 떨어진 조용한 해안가 마을에 있다. KIA 타이거즈는 라쿠텐이 오키나와 캠프로 들어오기 직전인 2월 11일까지 킨 구장을 캠프 훈련장으로 사용했다. KIA 캠프 훈련을 취재할 땐 선수단을 제외하곤 인적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저 선수단과 코치진의 기합 소리만이 킨 구장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라쿠텐이 KIA 타이거즈와 캠프 첫 연습 경기를 치른 14일 킨 구장은 평소와 180도 달라져 있었다. 킨 구장은 라쿠텐 경기를 보러온 현지 팬들과 일본 미디어 관계자로 북적북적했다. 푸드 트럭 3대도 킨 구장의 한편을 차지했다. 오키나와 캠프를 처음 온 몇몇 KIA 선수는 “이전까지 매일 훈련했던 킨 구장이 아닌 것 같다”라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라쿠텐의 영웅’ 호시노 전 부회장과의 작별 인사

라쿠텐 팬들이 호시노 전 부회장의 헌화대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라쿠텐 팬들이 호시노 전 부회장의 헌화대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라쿠텐 팬이라면 이번 스프링 캠프에서 눈길을 뗄 수 없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이곳은 바깥의 축제 분위기와 다르게 엄숙하면서 슬픔이 느껴졌다. 바로 라쿠텐 호시노 센이치 전(前) 부회장의 추모 헌화대였다. 호시노 전 부회장은 향년 70세로 2018년 1월 4일 세상을 떠났다.
호시노 전 부회장은 일본 야구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호시노 전 부회장은 1969년 주니치 드래건즈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1982년까지 주니치에서 뛴 호시노 전 부회장은 현역 통산 146승·34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최고의 투수에게 주는 ‘사와무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역 은퇴 뒤에도 지도자로서 빛난 호시노 전 부회장이었다. 1987년 주니치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호시노 전 부회장은 한신 타이거스, 라쿠텐의 사령탑을 거쳐 4차례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특히 호시노 전 부회장은 2013년 라쿠텐의 창단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라쿠텐의 영웅’이 됐다. 자신의 감독 생활 첫 일본시리즈 우승이기도 했다.
한국 야구팬들도 호시노 전 부회장의 이름은 익숙하다. 1990년대 말 주니치 감독 재임 시절 호시노 전 부회장은 선동열·이종범·이상훈 등 한국 선수들을 지도했다. KIA 나카무라 다케시 2군 배터리 코치와 삼성 라이온즈 오치아이 에이지 투수코치도 호시노 전 부회장의 주니치 재임 시절 제자다.
오치아이 코치는 호시노 전 부회장을 엄격하고 무섭지만, 따뜻한 이면을 지닌 ‘리더 중의 리더’로 기억하고 있었다. 오치아이 코치는 “현역 시절 호시노 전 부회장에게 지도받은 기억 속엔 엄격하고 무서운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야 그 엄격함과 무서움의 뒤에 숨겨진 따뜻함을 깨달았다. 그땐 그걸 모르고 지나쳤던 부분이 있었다”라며 회상에 잠겼다.
일본 야구계의 큰 별이 졌단 아쉬움은 오치아이 코치에게서도 느껴졌다. 오치아이 코치는 “언젠간 NPB(일본야구기구) 커미셔너도 하실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일본 야구계에서 한 획을 그은 큰 별이었다. 그런 분이 돌아가셨으니 다들 슬픔에 빠졌다. 개인적으로도 호시노 전 부회장 밑에서 야구를 배운 게 큰 행운이었다”라며 슬퍼했다.
주니치에서 호시노 전 감독의 지도를 받았던 이종범 MBC SPORTS+ 해설위원도 “야구를 정말 사랑하신 분이었다. 예전에 부인 상(婦人 喪)을 당하셨을 때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야구장을 지켰던 걸로 기억한다. 이번에도 자신의 췌장암 투병 사실을 숨기셨다. 일본 야구계의 큰 별이 졌다”라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77번’ 호시노를 라쿠텐이 기억하는 방법

라쿠텐은 호시노 전 부회장의 감독 재임 시절 등 번호인 77번을 영구결번으로 만드는 걸 추진 중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라쿠텐은 호시노 전 부회장의 감독 재임 시절 등 번호인 77번을 영구결번으로 만드는 걸 추진 중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라쿠텐 캠프에 마련된 헌화대엔 호시노 전 부회장을 추모하는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어린이 팬부터 노인 팬까지 연령대와 상관없이 누구나 다 국화를 한 송이씩 호시노 전 부회장에게 건넸다. 헌화대 옆에 설치된 TV에서 나오는 호시노 전 부회장의 영상을 하염없이 지켜본 팬도 있었다. 끝내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린 노인 팬은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듯 영정 사진을 끊임없이 뒤돌아봤다.
라쿠텐 캠프에서 만난 현지 일본프로야구 관계자는 “호시노 전 부회장은 라쿠텐의 창단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기에 라쿠텐에서 엄청난 의미를 지닌 인물이다. 특히 후쿠시마 대지진의 아픔을 딛고 우승을 이끌었단 의미가 컸다.(라쿠텐의 연고지인 미야기현 센다이는 후쿠시마현 바로 북쪽으로 붙어 있다) 호시노 전 부회장의 장례식은 가족들만 함께 해서 치러졌다. 팬들과는 작별 인사를 제대로 못 했단 아쉬움에 이런 추모 행사가 지속해서 열리고 있다”고 추모 행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라쿠텐은 호시노 전 부회장을 기리는 의미로 4월 3일 올 시즌 리그 홈 개막전에서 등 번호 ‘77번’을 모두가 다는 추모 행사를 진행한다. ‘77번’은 호시노 전 부회장이 라쿠텐 감독 재임 시절 단 등 번호다. 또 라쿠텐은 이 ‘77번’을 영구 결번으로 만드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여전히 라쿠텐은 ‘77번’ 호시노를 떠나보내지 못했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엠스플뉴스는 1월 31일부터 미국 애리조나·플로리다, 일본 오키나와·미야자키, 타이완 가오슝 등으로 취재진을 보내 10개 구단의 생생한 캠프 현장 소식을 '엠스플 in 캠프'란 이름으로 전달할 예정입니다. 많은 야구팬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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