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의 MLB+] 영리해진 톰, 영리해진 MLB 빅마켓 구단

톰과 제리(사진=플리커, 무료이미지) 톰과 제리(사진=플리커, 무료이미지)

 

[엠스플뉴스]

 

<톰과 제리>는 1940년 처음 공개된 이후 지금까지 전세계 어린이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미국 애니메이션이다. 

 

바다 건너 한국에서도 덩치는 크지만 멍청한 고양이 톰과 덩치는 작아도 영리한 쥐인 제리가 벌이는 활극(?)을 보며 자란 이들이 많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요소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톰과 제리가 커다란 성공을 거둔 이유는, 약자인 제리가 강자인 톰을 머리를 써서 골려먹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얻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물론 알고보면 착한 톰을 더 좋아하는 어린이도 많았다. 필자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아주 가끔 당하기만 하던 톰이 이길 때도 있고, 때때로 둘이 힘을 합치기도 하지만, 두 애증 섞인 앙숙 간의 대결은 대부분 제리의 승리로 돌아간다. 당연히 판타지다. 현실에서 제리가 상징하는 서민(유색인종)이, 톰이 상징하는 부자(백인)를 이기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에서는 <톰과 제리> 같은 일이 때때로 벌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2002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 중 하나인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시즌 시작 전 주축 선수들이 대거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20연승(당시 기준 역대 4위)을 포함해 103승을 거둔 것이다. 

 

<머니볼>의 성공과 그 보편화

 

오클랜드 부사장 빌리 빈(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오클랜드 부사장 빌리 빈(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2002년 오클랜드의 연봉 총액은 3978만 달러였다. 반면, 같은 승수를 거둔 뉴욕 양키스의 연봉 총액은 1억 2550만 달러였다. 즉, 오클랜드는 양키스의 1/3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비슷한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비결은 당시로선 생소한 개념인 '세이버메트릭스(야구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를 이용해, 시장에서 저평가 받고 있는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 마이클 루이스는 2003년 <머니볼>을 발간했다. (약간은 과장과 왜곡이 가해지긴 했지만) '머리를 써서' 부자 구단을 이긴 가난한 구단의 단장 빌리 빈의 스토리는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다. <머니볼>은 경영학 부문 베스트셀러가 됐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머니볼>의 핵심 개념인 세이버메트릭스는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2004년 젊은 단장 테오 엡스타인(대표적인 세이버메트릭스 친화적 단장이다)이 '밤비노의 저주'를 깨부순 것도 각 구단이 세이버메트릭스를 차용하는데 일조했다. 한편, 2000년대 후반에는 수비와 주루라는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한 탬파베이 레이스가 강팀으로 부상하면서 <그들은 어떻게 뉴욕 양키스를 이겼을까>란 책이 발간되기도 했다.

 

이렇게 스몰마켓 구단의 반란(물론 보스턴은 제외다)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는 언젠간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머니볼>의 성공은 2000년대 초반 오클랜드와 단장 빌리 빈에게 불후의 명성을 안겨줬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장사 밑천'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책이 출판된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머니볼>에서 저평가 받는 지표로 소개되었던 출루율은 이미 적절한 수준을 넘어 시장에서 과대평가 받는 대표적인 지표가 되어 있었다. 앤드류 프리드먼(現 LA 다저스 단장) 이하 탬파베이 수뇌부들이 찾아낸 수비와 주루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쳤다. 지금 리그에서 유행하는 '뜬공 혁명 이론' 역시, <제2의 머니볼>라 불렸던 2012시즌 오클랜드가 의도적으로 뜬공을 많이 치는 타자를 수집하던 형태와 유사하다.

 

 

스탯캐스트로 본 벅스턴의 슈퍼캐치. 지금은 중계 화면을 통해 수비시 반응속도, 뛰어간 거리, 공을 잡을 수 있는 확률 등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대다.

 

 

이제 2000년대 초반까진 소수에게만 알려져있던 지표인 OPS(출루율+장타율)을 모르는 야구팬들은 거의 없다. BABIP(인플레이 타구가 안타가 되는 비율), FIP(수비무관 평균자책), UZR(수비 지표의 일종)과 같은 지표는 생소할지 몰라도 이를 기반으로 구해지는 종합 선수평가지표 WAR(대체선수 대비 기여승수)는 적어도 한번쯤은 들어본 팬이 대부분이다.

 

하물며 MLB 구단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최근에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투수들의 구속과 무브먼트, 타자들의 타구 속도와 발사 각도가 대중에게 공개되고 이를 기반으로 한 2차 지표들을 사무국 산하 기관인 <메이저리그 어드밴스드 미디어>가 제작해서 배포하는 수준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구단들은 이미 몇해 전부터 이보다 더 높은 수준의 정보를 받고 있었다.

 

이제 남들보다 먼저 블루오션을 찾은 어느 스몰마켓 구단 단장이 '저비용 고효율' 투자로 강팀들을 쳐부수는 이변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왜 메이저리그 FA 시장은 얼어붙은 것일까?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은 탱킹 팀이 늘어난 이유로 지목받고 있다. 이는 인과관계를 잘못 짚고 있는 것이다(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은 탱킹 팀이 늘어난 이유로 지목받고 있다. 이는 인과관계를 잘못 짚고 있는 것이다(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현재 스토브리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1일까지 메이저리그 FA 시장에는 126명의 FA가 남아있다. 그런데 지난 시즌을 끝으로 FA 시장에 나온 선수는 모두 250명(은퇴 선수, 한국-일본 복귀 선수 제외)이다. 즉, 스프링캠프까지 약 2주만을 앞둔 시점에서 여전히 반수가 넘는 인원이 새로운 팀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다르빗슈 유, 제이크 아리에타, 에릭 호스머, JD 마르티네스를 비롯한 FA 최대어로 분류되는 선수들도 있다. 이렇게 FA 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것은 메이저리그에 반 독과점금지법이 적용된 1998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는, 휴스턴의 월드시리즈 우승의 여파로 '탱킹(Tanking)'을 시도하는 팀들이 늘어나서라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확실히 최근 들어 '탱킹(Tanking, 드래프트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일부러 지는 전략)'을 시도하는 팀들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맞다. 일부 구단주 그룹이 스몰마켓 구단에게 주어지는 수익분배금을 착복하거나, 자신(기업)의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탱킹에 집중하는 팀들이 늘어난 이유는,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휴스턴을 포함해 탱킹 팀이 늘어난 이유는, 예전과 달리 '블루오션'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보가 평준화되면서 적은 비용으로 경쟁력 있는 팀을 만드는 방법이 유망주 수급밖에 없어졌기 때문에, 드래프트에서 높은 순위를 받거나 주전급 선수를 트레이드해서 최대한 유망주를 모으려고 하는 것이다(이에 따라 유망주와 드래프트 지명권의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몰마켓 구단들은 과거에도 돈을 그렇게 많이 쓰지 않았다. 선수들의 평균적인 몸값이 떨어지고, FA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는 진짜 원인은 빅마켓 구단에 있다. 이제 빅마켓 구단들은 만 30세가 넘는 FA 선수들에게 많은 계약기간과 연봉을 보장해주면서까지 영입을 하지 않는다. 한편, 팬들도 구단이 무리하게 슈퍼스타를 영입하길 원하지 않는다. 나이에 따른 성적 변화를 무시하고 영입한 FA가 '먹튀'로 전락하는 경험을 이미 수 차례나 겪었기 때문이다. 

 

 

2008년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맺은 10년 2억 7500만 달러 계약은, 로드리게스가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되고 극심한 부진에 빠지면서 양키스에겐 재앙으로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치세 규정선(1억 9800만 달러)은 빅마켓 구단들의 좋은 핑계 거리다. 사실, 대부분의 빅마켓 구단은 사치세 규정선을 넘겨도 흑자 운영을 할만한 충분한 수익이 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ROI(투자 대비 수익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CBA 협상을 통해 사치세 납세 구단의 불이익을 늘린 것은 그야말로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다.

 

요약하자면 작금의 시장 상황은 구단 사이에 '정보 균형'이 이뤄지면서 빅마켓 구단들이 더이상 ROI가 떨어지는 영입을 하지 않게 됐고, 결국 빅마켓 구단들을 이길 방법은 유망주 수급을 통한 리빌딩밖에 없어진 스몰마켓 구단들이 탱킹을 시도하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톰과 제리>에 비유하자면, 제리가 멍청해진 것이 아니라 톰이 너무 똑똑해져서 생긴 현상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대로 흘러갈 경우 MLB는 소수의 초강팀과 다수의 초약팀이 존재하는 리그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보는 재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하면 FA 선수들의 몸값이 낮아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이현우 기자 hwl05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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