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의 MLB+] 세계 최강의 노조 MLBPA의 몰락, 그리고 KBO리그

토니 클락 메이저리그 선수노조 위원장(왼쪽)(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토니 클락 메이저리그 선수노조 위원장(왼쪽)(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엠스플뉴스]

 

메이저리그 선수노조(MLBPA)는 오랫동안 '세계 최강의 노동조합'이라고 불려왔다.

 

그럴 만도 하다. 미국 철강노조의 수석 고문 겸 협상 대표였던 마빈 밀러가 MLBPA의 노조 위원장으로 추대된 1966년 이래 약 50년간 메이저리거들의 연봉 상승폭은 전 세계 모든 산업을 통틀어 유례없을 정도로 높았고, 같은 기간 메이저리그에는 현역 선수 및 은퇴 선수를 위한 복지 제도가 완벽하게 구비됐기 때문이다.

 

밀러의 재임 기간인 1966년부터 1982년까지 메이저리그에는 연봉조정과 FA, 부상자 명단(DL), 선수 노후연금 같은 제도가 도입됐다. 부상방지를 위한 워닝트랙의 설치와 쾌적한 라커룸의 확보, 선수 네이밍 라이센스 역시 밀러의 제안으로 도입된 것들이다. 같은 기간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연봉은 평균 19,000달러에서 326,000달러로 17배나 뛰어올랐다.

 

그 탓에 밀러 개인은 구단주들의 미움을 받아 죽을 때(2012년 11월 28일)까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지 못했다. 하지만 MLBPA는 메이저리거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한 그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선수들이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상에 마빈 밀러 상(Marvin Miller Man of the Year)라는 호칭을 붙였다.

 

이런 마빈 밀러의 위대한 업적은, 오로지 한 가지 제도 때문에 가능했다. 바로 취임 2년 차에 체결했던 MLB 역사상 최초의 CBA(노사협정, Collective Bargaining Agreement)다. 1968년 체결한 최초의 CBA는 밀러의 재임기간 동안 선수협이 몇 차례나 파업을 일으켰지만, 법리적으로 구단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보호막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최근 두 차례 갱신된 CBA 제도는 선수의 몸값을 옥죄는 독소조항으로 작용하고 있다. CBA 협정을 잘못 맺는 바람에 올겨울 메이저리그는 유례없는 'FA 한파 현상'을 겪고 있다. FA 가운데 절반이 넘는 약 120명이 새 팀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는 거의 전적으로 현재의 선수노조가 무능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를 알려주는 사례가 5일(이하 한국시간)에도 있었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現 메이저리그 선수노조 집행부

 

故 마빈 밀러 前 메이저리그 선수노조 위원장(사진=MLB.com 캡처) 故 마빈 밀러 前 메이저리그 선수노조 위원장(사진=MLB.com 캡처)

 

메이저리그 선수노조는 5일 공식 성명을 통해 "스프링캠프 보이콧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전날 토니 클락 위원장이 "FA 제도는 선수 권익을 담당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것이 공격받을 때마다 선수와 대리인들은 권리를 지키기 위해 뭉쳐왔다. 이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인지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유를 짐작해보기란 어렵지 않다. 파업하기엔 명분과 실리, 두 가지 모두가 결여되어있기 때문이다. FA 계약이 지지부진하다는 이유로 파업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파업을 한다고 구단이 FA 선수들과 계약을 맺을지를 생각해보면 간단한 문제다. 당연히 구단은 그래야 할 의무도, 이유도 없다. 오히려 이는 CBA 협정을 선수노조 측에서 어기는 것이 된다.

 

파업을 하려면 CBA 협정을 맺기 전에 했어야 했다. 현재의 'FA 시장 한파 현상'은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된 결과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치세 제한선을 초과했을 때 받는 불이익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치세 제한선이 일종의 샐러리캡(salary cap, 한 팀 선수들의 연봉 총액이 일정액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도)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샐러리캡은 1994년에 있었던 파업의 원인이기도 했다. 당시 선수노조 집행부는 CBA 협상에서 구단주 측이 제시한 샐러리캡 제도가 선수들의 몸값을 옥죌 수 있는 목줄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고, 파업을 통한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해당 제도의 도입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결국 선수노조의 파업 승부수는 적중했고, 이는 1997년부터 시작된 메이저리그의 5년 연속 전년 대비 10% 이상 연봉 총액 상승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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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행 집행부는 사치세 제도의 도입이 FA 계약에 미칠 영향을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해하지 못했고, 사치세 제도가 강화되는 것을 두 눈을 뜨고 지켜봤다. 마치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물이 뜨거워지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거둔 작은 승리(국제 FA 자격 연령의 상승과 국제 유망주 계약 금액의 제한)에는 만족했다.

 

국제 FA와 유망주에게 쓸 돈을 자신들(현역 메이저리거)에게 쓸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한심한 생각인가? 구단들이 국제 유망주에게 이전보다 많은 돈을 지출한 이유는 단지 '투자 대비 이익'을 고려했을 때, 어린 선수들에게 투자하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단들이 국제 유망주에게 쓰는 돈은 FA에게 쓰는 돈에 비하면 푼돈에 불과했다. 

 

만약 선수노조가 현역 메이저리거에게 오는 혜택을 늘리고 싶었던 것이라면, 그들은 CBA 협정 이전에 사치세 불이익의 증대에 대해 파업이라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협정서에 순순히 싸인을 했고, 그 후 한참 지나서야 속은 것을 눈치챘다.

 

젊은 '非 FA 선수'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확대해야

 

금지약물검사 이전(~2005년)과 이후(2006년~) MLB 나이대별 ISO(순장타율) 변화폭(자료=팬그래프닷컴) 금지약물검사 이전(~2005년)과 이후(2006년~) MLB 나이대별 ISO(순장타율) 변화폭(자료=팬그래프닷컴)

 

그렇다면 MLBPA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그전에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지금으로서는 어떤 방법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임 선수노조 집행부가 비장의 무기로 쓰던 CBA 협정 기간은, 이미 지났다. 이제 CBA 협정의 효력이 끝나는 2021시즌까지 선수노조는 FA 미아 방지를 위한 어떤 제도적인 개선도 하기 힘들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그때까지 선수노조 집행부는 지금의 FA 한파 현상이 어떻게 오게 됐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CBA 협정을 맺기 전까지 파업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요소를 사용해서 사치세 제도를 철폐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도입된 제도를 철폐한다는 것은 도입을 막는 것보다 배는 어렵다. 게다가 이는 어디까지나 선수노조의 입장만을 고려했을 때의 얘기다. 

 

구단 입장에서도 할 말이 많다. 지금까지 MLB 선수의 몸값이 상승한 것은 철저히 시장 논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에이징 커브(aging curve, 나잇대별 성적변화)를 고려했을 때 만 30세 이상의 FA에게 투자하는 게 '투자 대비 이익'이 지극히 떨어지는 행위란 사실이다. 기업 입장에선 투자 대비 이익이 높은 상품에 투자하려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의 경우, 투자 대비 이익이 높은 상품은 단연 '젊은 선수'다. MLB 전체 WAR(대체선수 대비 기여승수) 가운데 만 30세 이하 선수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77.4%에 달한다.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최저 연봉'이나, '연봉 조정' 대상자에 속해있어 제대로 된 금전적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젊은 선수들이 불만을 품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FA 계약을 통해 '보상'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전체 WAR 합계 = 1,000승

 

만 30세 이하 선수들의 WAR = 774.4승

만 31세 이상 선수들의 WAR = 225.6승

 

문제는, 그 보상이 전혀 엉뚱한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선수가 FA 직전까지 뛴 팀과 계약을 맺는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다른 팀이 FA 선수를 영입할 경우에는 재주는 곰(FA 영입팀)이 넘고 돈은 여우(FA 직전팀)이 받는 형태가 된다. 당연히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구단들은 외부 FA 계약을 점점 꺼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또 선수들이 반발한다. 이제 막 낮은 연봉을 감수하면서 뛴 보상을 받으려고 했더니, 실직자가 되는 셈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수단은 하나다. 바로 젊고 더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는 선수들에 대한 보상을 확대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베테랑 선수의 고용 안정성 문제에 대한 충분한 배려, 그리고 수요와 공급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1981년 마빈 밀러의 고민과 KBO리그의 FA 제도

 

FA 도입 초창기 마빈 밀러의 고민도 이 지점에 있었다. 밀러는 임기 말이었던 1981년 FA 제도 개선을 위한 파업을 이끌었다. 이 파업으로 인해 구단 측과 선수 측은 합계 1억 4600만 달러의 금전적인 피해를 입었다. 훗날 밀러는 이 파업에 대해 "선수들은 무엇 때문에 파업을 하는지 몰랐지만, 그 파업은 선배들이 훗날의 후배들을 위해 희생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파업 이후 선수 측이 얻은 것은 'FA 취득을 위한 서비스 타임 6년'이다. 선수들은 왜 FA 취득 기간을 6년보다 짧게 설정하지 않았는지 의아해했다. 단순히 생각했을 때, FA가 자주 될수록 이득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 논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공급이 수요에 비해 많으면, 가격은 떨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성기'도 고려해야 했다.

 

전성기를 맞이해서 좋은 성적을 기록한 다음 계약을 맺어야 비싼 몸값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뿐만 아니라, 계약 이후에 은퇴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계산한 끝에 얻어진 결론이 'FA 취득을 위한 서비스 타임 6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당시로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음은 지난 FA 계약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36년이 지난 지금의 환경은 그때와 다르다. MLB 구단의 선수수급은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이루어지고 있고(공급의 증대), 약물의 금지 등 여러 요소로 인해 선수들의 전성기는 나날이 앞당겨지고 있다. 구단들도 그간 양산됐던 수많은 '먹튀 계약'을 통해 경험적 지식을 쌓았다. 이제는 FA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FA 취득을 위한 서비스타임'의 축소나, 심사 기준의 변화를 통해 연봉조정자들이 받을 수 있는 금액을 늘려야 할 시점이 찾아온 것이다.

 

아직 새 팀을 찾지 못한 FA 내야수 최준석(사진=엠스플뉴스) 아직 새 팀을 찾지 못한 FA 내야수 최준석(사진=엠스플뉴스)

 

한편, MLB 선수노조의 CBA 협상 실패와 그로 인한 FA 시장의 이상 한파 현상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KBO리그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우여곡절 끝에 올겨울 FA 미계약자는 이제 2명(최준석, 이우민)밖에 남지 않았지만, 최근 KBO리그 FA 시장 역시 대어급 외에 나머지 FA들은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KPBPA)는 FA 등급제 등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 역시 충분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MLB 역시 퀄리파잉 오퍼(Qualifying Offer)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 앨리아스 랭킹(FA를 A, B등급으로 구분)이란 차별적 보상 제도를 운영했지만 이 역시 폐단이 적지 않았다. 또한, FA 등급제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구단 측이 요구하고 있는 '계약금 상한제' 등 반대급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중요한 것은 구단과 선수 모두 win-win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지 못할 경우에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는, 지금의 메이저리그 FA 시장이 보여주고 있다.

 

이현우 기자 hwl05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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