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의 MLB+] 이기심이 불러 일으킨 나비효과

토니 클락 메이저리그 선수노조 위원장(왼쪽)(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토니 클락 메이저리그 선수노조 위원장(왼쪽)(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엠스플뉴스]

 

메이저리그는 다른 북미 프로스포츠 리그들과는 달리, 샐러리 캡(Salary Cap, 한 팀 선수들의 연봉 총액이 일정액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이는 1973년 FA 제도 도입 이래로 줄곧 세계 최강의 노동조합이라 불렸던 메이저리그 선수노조가 이룩한 최대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지난 1994년 8월 메이저리그 선수 노동조합은 샐러리 캡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구단주 회의 결과에 반발해 메이저리그 역대 8번째이자, 최장기간으로 기록된 파업에 들어갔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빌 클링턴 등 정치권 인사가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232일이 지난 1995년 4월 2일에서야 끝이 났다.

 

파업이 끝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체 선수를 동원해서라도 리그를 개막하겠다고 강하게 나오던 구단주 회의 측이 흥행 위기를 우려해 한발 물러섰기 때문이다. 그 대신 선수노조 측은 구단주 회의 측에서 샐러리 캡의 대안으로 제시한 경쟁 균형세(사치세) 도입을 받아들였다.

 

이는 구단주 회의 측이 제시한 경쟁 균형세의 기준선(연봉 총액 상위 5위 팀과 6위 팀의 중간값)과 패널티(초과 금액의 34%)가 받아들일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수노조의 예상대로 시범 도입된 1997년부터 1999년까지 3년간 경쟁 균형세의 도입은 선수 연봉 증가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파업 이후 몇 년간 그로 인한 관중 감소는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왕 경쟁, 인터리그 도입 등으로 메이저리그의 인기는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메이저리거들의 연봉도 치솟았다. 이는 시범 적용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사치세 제도가 운용되기 시작한 2003년부터 2012년까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현행 메이저리그 선수노조 집행부가 처음으로 CBA 협상(노사협약)을 한 2013시즌부터 이상 기류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2012년 겨울 선수노조는 경쟁 균형세의 패널티를 첫 번째 초과 시 17.5%, 2년 연속 초과 시 30%, 3년 연속 초과 시 40%, 4년 연속 초과 시 50%로 높이자는 구단주 회의 측의 요구 조건을 수용했다. 수용의 대가는 한 해 동안 국제 아마추어 선수를 계약하는 데 쓸 수 있는 돈을 제한하는 규정을 도입하는 것이었다(5% 초과 시 초과분의 75%, 10% 초과 시 초과분의 100%+이듬해 일정 금액 이상으로 계약 불가).

 

이런 경향은 2016년 두 번째 CBA 협상 이후 더 강해졌다. 2016년 CBA 협상에서 선수노조는 경쟁 균형세의 패널티를 첫 번째 초과 시 20.0%, 2년 연속 초과 시 30%, 3년 연속 초 과시 50%로 상향 조정하자는 요구 조건을 수용했고, 덧붙여서 경쟁 균형세 규정선을 2000만 달러 이상 초과할 시 12%, 4000만 달러 이상 초과할 시 42.5%의 '부가세'를 내는 것에도 동의했다.

 

한편, 국제 유망주 계약금 총액을 넘을 경우 패널티를 부과하는 것을 넘어 아예 시장 규모에 따라 지정된 한도액을 초과해서 계약을 맺는 일 자체가 금지됐다. 

 

2015년 보스턴은 쿠바 유망주 요안 몬카다를 영입하기 위해 범칙금 포함 6300만 달러를 지출했다. 당시 일부 메이저리거는 인터뷰를 통해 빅리그에서 한 경기도 뛰지 않은 선수에게 거액의 계약을 안긴 것에 불만을 표시했다(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2015년 보스턴은 쿠바 유망주 요안 몬카다를 영입하기 위해 범칙금 포함 6300만 달러를 지출했다. 당시 일부 메이저리거는 인터뷰를 통해 빅리그에서 한 경기도 뛰지 않은 선수에게 거액의 계약을 안긴 것에 불만을 표시했다(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선수노조가 구단주 회의 측이 제시한 조건을 수용한 이유를 추정하기란 어렵지 않다. 경쟁 균형세의 패널티 증가로 인해 다소 손해를 보겠지만, 그보단 아직 빅리그 무대를 한번도 밟지도 않은 젊은 해외 유망주와 계약을 맺는 데 쓰는 돈을 제한함으로써 자신들에게 돌아올 돈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6년 CBA 협상 직전 일부 빅마켓 구단들은 국제 유망주를 영입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었다. LA 다저스는 2012년부터 4년간 쿠바 출신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사치세 포함 약 4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2015년 보스턴 레드삭스는 쿠바 유망주 요안 몬카다를 영입하기 위해 계약금 3150만 달러, 범칙금 3150만 달러, 합계 6300만 달러를 지출하기도 했다. 

 

선수노조 측이 이런 구단들의 새로운 자금 흐름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해보인다. 2016년 CBA 협상 이후 <야후 스포츠>의 제프 파산은 CBA 협상 당시 입수한 메모를 근거로 "선수노조는 당시 협상 결과를 승리라고 인식했다"고 전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선수노조의 계산이 맞아 떨어지기 위해선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었다. 바로 규정 변경 이후에도 구단들이 선수 영입을 위해 쓰는 전체 금액이 줄어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수노조의 예상과는 달리,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국제 유망주와 계약을 맺는 데 썼던 돈으로 FA 선수를 영입하기 보단 지갑을 굳게 닫는 길을 선택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가볍게 생각했던 경쟁 균형세의 패널티 증가는 '경쟁 균형세 기준선'을 사실상 샐러래 캡이나 다름없게 만들었다.

 

[그래프] 1999년 케빈 브라운이 첫 1억 달러 계약을 맺은 이후 연도별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평균 연봉총액 변화(자료=팬그래프닷컴 by 크레이그 에드워즈) [그래프] 1999년 케빈 브라운이 첫 1억 달러 계약을 맺은 이후 연도별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평균 연봉총액 변화(자료=팬그래프닷컴 by 크레이그 에드워즈)

 

2016년 CBA 협상 이후 국제 유망주를 영입하는 데 쓰는 돈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구단들이 FA 선수 영입에 돈을 쓰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국제 유망주와 계약을 맺는데 많은 돈을 지출한 것은 애초에 그것이 'FA 선수를 영입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팀별 국제 유망주 계약금 총액에 제한을 걸면서 국제 유망주를 더 싸게 영입하게 됐다고 해서 그 돈을 다시 FA 선수 영입에 쓸 확률은 낮았다. 둘째, 경쟁 균형세를 넘었을 경우 패널티가 커짐으로써 빅마켓 구단들은 사치세를 넘기면서까지 우승을 위해 투자를 하기를 꺼리고 있으며, 더 중요한 점은 구단의 이런 선택을 팬들이 납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쟁 균형세 강화를 선수노조 측이 위험 요소로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패널티가 점진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개구리를 끓는 물에 넣으면 바로 뛰쳐나오지만, 찬물을 담은 냄비에 넣고 서서히 가열하면 물이 뜨거워지는 줄도 모르고 삶아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해외 유망주가 많은 계약금을 받는 것에 대한 선수노조 측의 불만도 영향을 미쳤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한편, 2012년 CBA 협상을 통해 도입된 새로운 보상 제도인 퀄리파잉 오퍼의 패널티(신인 드래프트 지명권 상실)로 인해 구단들이 중견급 FA를 영입하길 꺼리는 것도 MLB 평균 연봉 증가세를 둔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즉, 2005년 이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었던 MLB 평균 연봉이 2018년 들어 처음으로 감소하게 된 것은 사실 선수노조 측이 자초한 측면이 크단 얘기다.

 

휴스턴은 제프 러나우 단장 부임 이후 적극적인 탱킹을 통해 유망주를 수집하고, 부족한 부분을 외부 영입을 통해 채우는 방식으로 2017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리빌딩=탱킹이라는 공식을 유행시켰다(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휴스턴은 제프 러나우 단장 부임 이후 적극적인 탱킹을 통해 유망주를 수집하고, 부족한 부분을 외부 영입을 통해 채우는 방식으로 2017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리빌딩=탱킹이라는 공식을 유행시켰다(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물론 현재 메이저리그 스토브리그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파 현상을 경쟁 균형세 패널티의 증가와 국제 유망주 계약금 총액 제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2002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머니볼 혁명 이후 구단들은 운영에 있어 점차 세이버메트릭스에 입각한 합리성을 중시하는 풍조로 바뀌어 왔으며, 2016년 시카고 컵스와 2017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우승은 탱킹(Tanking, 드래프트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일부러 지는 전략) 열풍을 부추겼다.

 

따라서 선수노조 측이 CBA 협상을 잘하고 못하고 와는 관계없이 MLB 평균 연봉의 하락은 언젠가 찾아오게 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두 번의 CBA 협상 실패가 MLB 평균 연봉 하락을 부추겼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진실에 가깝다.

 

그리고 한때 세계 최강의 노조라 불렸던 MLB 선수 노조의 몰락은 KBO리그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KPBPA)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KBO 이사회는 2019년부터 FA 계약 상한선을 4년 최대 80억으로 하는 'FA 계약 상한제'를 도입하려고 했지만, 일단은 선수협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러나 2019년부터 신규 외국인 선수의 몸값 총액을 100만 달러 이하로 제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제도는 현시점에선 외국인 선수의 질적인 수준이나, 내국인 선수들의 몸값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MLB의 국제 유망주 계약 총액 제한이 그랬듯이 장기적으론 내국인 선수들의 몸값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강한 발언권을 갖는 MLB 선수노조와 KBO 선수협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순 없겠지만, KBO 선수협은 이러한 MLB의 사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현우 기자 hwl05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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