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의 MLB+] 2019 HOF 특집(3) : 로이 할러데이

로이 할러데이: '마지막 완투형 투수'

 

로이 할러데이(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로이 할러데이(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 2019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 투표결과 마리아노 리베라(425표, 100%), 로이 할러데이(363표, 85.4%), 에드가 마르티네즈(363표, 85.4%), 마이크 무시나(326표, 76.7%)가 2019년 새롭게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다. <엠스플뉴스>는 4편에 걸쳐 이들의 현역 시절 활약을 다시 조명해보고자 한다.

 

[엠스플뉴스]

 

# 2017년 11월 8일,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로이 할러데이가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만 40세였다. 그날 아침 눈 뜨자마자 SNS를 통해 비보를 접한 필자는 아직 꿈에서 깨지 않았나 싶었다. 출근하는 길 내내 SNS를 통해 추모 물결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한때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좋아하던 투수를 어디에서도 볼 수 없게 된 것을 말이다.

 

기억 속 할러데이는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완벽한 투수였다. 등판한 경기에서 그는 때로는 그렉 매덕스였고, 때로는 로저 클레멘스였다. 기본적으론 투심 패스트볼과 컷 패스트볼, 두 가지 변형 패스트볼을 정교하게 제구해 타자를 '맞혀 잡는' 것에 초점을 맞췄지만, 필요할 때면 강력한 패스트볼과 위력적인 너클커브로 윽박지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할러데이는 필요에 따라 양쪽을 오가며 상대 타자들을 농락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할러데이는 강철 같은 체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풀타임 선발 첫해였던 2002시즌부터 2011시즌까지 10년간 63완투를 기록했는데, 이는 해당기간 두 번째로 많은 완투를 달성한 CC 사바시아(33완투)보다 약 2배 가까이 많은 기록이다. 이런 완투능력을 바탕으로 할러데이는 통산 4차례나 단일시즌 투구이닝 1위에 올랐다. 투수 분업화가 자리 잡은 현대 야구에서 할러데이는 어쩌면 우리 시대의 마지막 '완투형 에이스'였을지도 모른다.

 

토론토 시절 로이 할러데이(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토론토 시절 로이 할러데이(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 할러데이는 1995년 드래프트 1라운드 17번째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지명됐다. 그는 1998시즌 후반기 만 21세란 이른 나이에 빅리그 무대를 밟았고, 1999시즌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8승 7패 평균자책 3.92로 나름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그런 할러데이에게 2000년 갑작스러운 시련이 찾아왔다. 2001시즌 4승 7패 67.2이닝 평균자책점 10.64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일시즌 60이닝 이상 던진 투수 중 가장 높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것이다.

 

마이너리그로 간 할러데이는 당시 토론토의 투수 인스트럭터인 멜 퀸 과 만났다. 그곳에서 할러데이는 팔 각도를 오버핸드에서 쓰리쿼터 형태로 낮춘 데 이어 딜리버리를 빠르게 가져감으로써 제구력을 향상 시켰고, 흐트러진 마음가짐도 다시 다잡았다. 이후 복귀한 그는 2002년 올스타에 선정됐고, 2003시즌에는 22승 7패 266.0이닝 253탈삼진 평균자책점 3.25생애 첫 사이영상을 받았다. 마침내 할러데이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할러데이는 잠시 어깨 부상으로 인해 침체기를 겪었던 것을 제외하면, 토론토에서 매 시즌 20승 가까운 승수와 240이닝에 가까운 투구이닝, 2점대 중반에서 3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009시즌을 끝으로 필라델피아로 이적한 후로도 할러데이의 활약은 멈출 줄을 몰랐다. 2012시즌 그를 은퇴까지 몰아간 허리 부상을 입기 전까지는 말이다. 할러데이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19승 9패 241이닝 평균자책점 2.53을 기록했다.

 

할러데이의 통산 성적(자료=팬그래프닷컴) 할러데이의 통산 성적(자료=팬그래프닷컴)

 

# 203승 105패 2749.1이닝 592볼넷 2117탈삼진 평균자책 3.38. 할러데이의 통산 기록이다. 할러데이는 200승을 간신히 넘겼고, 투구이닝 역시 명성에 비해선 많지 않다. 허리 부상으로 만 36세란 이른 나이에 은퇴했기 때문이다. 이는 2013년 할러데이의 은퇴 이후 한동안 '할러데이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자격이 있느냐'는 떡밥이 오랫동안 메이저리그 팬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됐던 이유다. 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지적이다.

 

통산 누적 승수를 떠나서 할러데이는 10여 년간 최고의 자리에서 리그를 지배하던 투수다. 그는 게일로드 페리,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스에 이어 양대 리그에서 사이영상을 받은 네 번째 투수이며(2016년 맥스 슈어저가 합류), 사이영상을 받지 못한 시즌 가운데 투표에서 5위 안에 든 적도 4번이나 있었다. 또한, 퍼펙트 게임과 포스트시즌 노히터라는 진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 못할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했다. 

 

할러데이의 명전행에 있어 관건은 하나였다. 과연 첫 번째 투표로 명전에 입성할 수 있는지다. 그리고 할러데이는 2019년 투표에서 425표 가운데 363표를 받아 득표율 85.4%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함으로써 논란을 잠재울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득표율에는 이른 나이에 사망한 것으로 인한 투표율 상승에 영향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필자는 불운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가 첫 턴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할러데이와 두 아들들(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할러데이와 두 아들들(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 할러데이의 별명은 닥(Doc). 서부 개척시대의 유명 총잡이 닥 할러데이에서 따온 별명이다. 국내 팬들 사이에선 교수님이라고 불렸다. Doc이라는 별명이 의사 또는 교수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러데이가 등판해 호투를 펼치는 날이면, 메이저리그 팬들은 "할교수님이 또 명강의를 하셨네"라고 말하곤 했다. 그가 전 세계 메이저리그 팬으로부터 이런 인기를 누린 것은 단순히 출중했던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할러데이는 토론토 시절부터 지역 사회 봉사에 앞장섰고, 3살 연상 아내 브랜디와 두 아들을 살뜰히 챙겼다. 때로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과 가족들을 초청했을 뿐만 아니라, 매년 10만 달러 이상 팀 내 복지재단에 기부를 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팀 동료들과의 관계도 언제나 원만했다. 부고가 전해지자 수많은 동료와 메이저리그 관계자들로부터 할러데이를 위한 추모 물결이 이어졌던 이유다.

 

할러데이의 명전 입성과 관련해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가 생전에 바랐던 대로 토론토 모자를 쓰고 입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사망하면서 결정권이 유족으로 넘겨졌고, 아내 브랜디가 남편의 동판에 새겨질 모자에 특정팀의 로고를 박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팀 소속 선수가 아닌 한 명의 메이저리거로 기억되길 바란다"는 브랜디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할러데이는 단순히 토론토의 에이스를 넘어, 빅리그를 대표하는 투수였기 때문이다.

 

 

 

# 탄탄대로만 밟았을 것 같지만, 할러데이의 야구 인생에는 여러 번의 굴곡이 있었다. 그때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누구보다 성실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MLB.com에 따르면 그의 팀 동료였던 체이스 어틀리는 2010년 스프링트레이닝 첫날 오전 5시 45분에 캠프에 출근했다. 팀 리더로서 동료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캠프에 도착한 그는 한 시간 더 일찍 캠프를 찾은 할러데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편, 같은 기사에서 절친한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크리스 카펜터는 2011년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5차전에서 맞대결을 펼친 후 할러데이가 0-1로 경기에서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축하와 함께 나머지 포스트시즌 경기에서도 행운을 빈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일화를 소개했다. 이런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할러데이는 최고의 실력을 갖췄음에도 겸손한 태도와 성실한 행동거지로 팀원들의 감화를 끌어낸 리더였으며, 경기장 밖에선 훌륭한 인격자였다.

 

우리는 더이상 2000년대를 지배했던 투수이자 좋은 사람이었던 할러데이를 볼 수 없지만, 명예의 전당에 입성함으로써 이제 그는 자신의 투구를 지켜봤던 팬들뿐만 아니라 후세의 팬들에게도 회자될 공식적인 자격을 얻었다. 그 사실에, 그의 팬으로서 기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현우 기자 hwl05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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