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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적인 불만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 고착화된 갑과 을의 문제는 14년째 한 구단에 몸을 담고 있는 선수를 ‘꼴통’이나 ‘도망자’로 왜곡했다(사진=두산)

10경기 호투에도 마지막 3경기 실점으로 마무리 보직 박탈.
대대적 투구폼 변경 지시 이후 38일간 2군 방치.
2016시즌 3번째 폼 변경 지시 후 통상 경우와 달리 강등.
은퇴 배경 왜곡, 무단이탈 여론 조장.
타 구단 트레이드 관심 은폐, 은퇴 방관?

‘기회’는 여러 성격을 지닌 말이다. 결과에 따라 가치판단이 극과 극으로 갈리기 때문이다. 결과가 좋을 땐 '적절한 타이밍'이란 소릴 듣지만, 결과가 나쁠 땐 온갖 원망과 반성의 대상이 된다.
‘노경은 사태’도 마찬가지다. 노경은은 최근 2년간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일각에선 "두산이 노경은에게 기회를 충분히 줬음에도 선수가 좋은 결과로 보답 못하지 않았느냐"며 노경은이 은퇴를 선택한 과정이나 이후 코칭스태프에 아쉬움을 표현한 걸 두고 "구단이 충분히 보호해주고 배려해줬음에도 을의 위치에서 ‘부당하게’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토해냈다.
그렇다면 해당 주장들에 앞서 확인해야 할 의문이 있다.
투수 생명을 건 투구폼 변경을 시즌 중, 그것도 선수가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할 만큼 노경은이 부진으로 일관했느냐는 것이다. 여기다 지난해 13번의 마무리 등판이 '충분한 기회'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두산 전체 투수진 상황과 비교했을 때 노경은 기용이 정말 과분했었냐는 것이다. 두산 코칭스태프가 실제로 노경은에게 신뢰를 줬을까도 따져볼 문제다.

덧붙여 ‘노경은이 야구에 대한 의욕을 잃어 은퇴를 결심했다’거나 ‘훈련을 무단으로 이탈했다’는 두산과 일부의 주장도 타당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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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노경은은 마무리로서 겨우 13번의 기회를 얻었다. 그것도 앞선 10경기서는 매우 준수한 투구를 펼쳤다. 그런데도 노경은 마무리 평가는 마지막 3경기가 평가 대상이 됐다. 그 시기 노경은은 매우 힘든 개인사를 겪고 있었다(사진=엠스플뉴스)
2015시즌 13경기만에 마무리 보직 박탈, 이후 38일간 2군 방치
지난해 노경은의 등판일지와 기용패턴을 꼼꼼히 따져보면 유달리 노경은에게 엄격한 평가 잣대가 적용됐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노경은 등판일지 (마무리 첫 10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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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2일 잠실 SK전(4-3 승) 1.2이닝 무실점. 첫 세이브.
5월28일 마산 NC전(0-5 패) 0.1이닝 무실점.
5월30일 수원 kt전(7-4 승) 1.1이닝 1피안타 1볼넷 무실점. 2세이브
5월31일 수원 kt전(10-6 승) 4점차 1이닝 1피안타 무실점 승리 지킴
6월6일 목동 넥센전(8-9 패) 2이닝 3피안타(2홈런) 3실점 첫 블론세이브. 9회 동점 투런, 연장 10회 끝내기 홈런 허용. 38구.
6월7일 목동 넥센전(9-4 승) 0.1이닝 1삼진 무실점
6월9일 잠실 LG전(5-2 승) 0.2이닝 무실점
6월11일 잠실 LG전(6-0 승)0.2이닝 무실점
6월13일 잠실 NC전(4-2 승) 2이닝 1피안타 3삼진 무실점. 3세이브.
6월14일 잠실 NC전(6-2 승) 1이닝 3삼진 무실점
마무리로 보직 변경 후 첫10경기 3세이브(1블론) 평균자책 2.45.
WHIP (0.82)
기록에서 보듯 지난해 시즌 초반 마무리 출발은 매우 훌륭했다. 6월 6일 목동 넥센전 블론세이브를 제외하면 특별한 위기조차 없었다. 같은 기간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은 0.82에 불과했고 볼넷 3개를 내주면서 9개의 삼진을 잡았다. 터프세이브도 한 차례 있었다.

두산도 노경은이 등판한 10경기에서 8승 2패의 호성적을 냈다. 이 시기 두산은 물론, 리그 전체 구원 투수 중에서도 손꼽히는 성적이었다.
그러나 노경은 어머니의 병중 상태가 위중해지면서 노경은 잠시 흔들렸다. 문제는 이때 등판한 3경기의 부진으로 노경은의 마무리 평가가 결정됐다는것이다.
6월16일 대구 삼성전(5-4 승) 1이닝 2실점(1자책) 4세이브.
6월17일 대구 삼성전(7-8 패) 0.2이닝 4실점 2번째 블론세이브
최형우에 끝내기 스리런 홈런 허용
6월19일 잠실 롯데전(3-4 패) 0.2이닝 2실점(1자책) 3번째 블론세이브
앞선 10경기 가운데 9경기서 무실점 투구를 했던 노경은은 6월 16일부터 3경기 연속 실점 했다. 마무리 전환 이후 평균자책도 2.45에서 6.08로 껑충 뛰었다. 노경은이 마무리로 부진했다는 평가는 마지막 3경기서 나온 것이었다.
가장 부진했던 경기는 6월 17일 대구 삼성전이었다. 당시 노경은은 최형우에게 끝내기 스리런 홈런을 맞고 시즌 2번째 블론세이브를 범했다.

이어 이틀 뒤인 6월 19일 잠실 롯데전 9회 1사 후 연속 안타 위기에서 나온 2루 도루와 포수 실책으로 동점을 허용 시즌 3번째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후속 폭투까지 나오면서 역전 실점까지 한 노경은은 패전의 멍에를 썼다. 그렇다면 매우 안정적이었던 집중력은 왜 이렇게 단기간 흐트러졌을까.

실패에 대해 심리적으로 회복하거나 반등할 여유나 전기가 없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사실상 첫 마무리 도전이었음에도 두산의 팀 사정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또한 당시 노경은은 야구에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암으로 투병중이었던 모친이 매우 위중했다. 3번째 블론세이브를 범한 6월 19일 롯데전이 끝나고 불과 나흘 후인 23일 노경은은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와 결국 영원히 헤어져야 했다.

그러면서 노경은은 1군 엔트리서 제외됐다. 당시 두산은 "노경은 배려 차원에서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3일장을 치르고 선수단에 복귀해 하늘나라로 떠난 어머니에게 멋진 투구로 보답하려던 노경은은 2군에서 10일을 보내야 했다. 그즈음 한 구단의 베테랑 선수는 "이것이 프로야구 선수들의 현실"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구단들은 선수를 2군으로 내려보내곤 한다. 표면적으론 '상을 잘 치르고 오라'는 뜻이지만, 선수들에겐 이것이 또 다른 재앙이 되곤 한다. 왜냐하면 2군에 내려가면 연봉이 반으로 깎일 뿐더러 2군에 있던 기간이 1군 등록일수에서도 빠져 FA 취득년수를 채우지 못하는 사태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2군에 내려가면 무조건 10일을 채워야 하는 현 상황에서 선수들은 부모님을 떠나 보낸 슬픔만큼 현실적인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

치열한 4강 싸움을 펼쳐야 했던 두산 입장도 이해의 여지가 있다. 노경은을 1군 엔트리에 둔 채 3, 4일 휴가를 줄 수 있으나 그 기간 동안 불펜진엔 투수 한 명이 빈다. 팀 성적을 위해선 노경은을 2군으로 내리고, 2군에 있는 투수를 1군으로 올리는 게 나을지 모른다. 두산은 그렇게 했고, 노경은은 10일을 2군에서 대기해야 했다.

한숨을 내쉬었던 베테랑 선수는 "프로야구 선수 보고 '구단에 귀속된 직장인'이라고 하는데 어느 직장인이 부모님 상을 치렀다고 이런 불이익을 감수하느냐"며 "구단이 불리할 땐 개인 사업자, 구단에 유리할 땐 직장인 소릴 듣는 게 우리 프로야구 선수들"이라고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덧붙여 "연봉 2억 원 선수의 현실이 이런데 최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은 어떻겠느냐"며 "팀 내 입지가 좁은 저연봉 선수들은 부모님이 아파도 구단 눈치 보느라 병문안도 제대로 갈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노경은의 마무리 보직은13경기만에 끝났다. 노경은에게 더 이상의 마무리 기회는 없었다.

38일간의 기다림, 같은 시기 불펜진 평균자책 5.75. 노경은은 2군에서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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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엔 일방적으로 수용해야하는 수직적 관계가 있다. 노경은 역시 아무런 설명조차 듣지 못하고 이 관계를 받아들였다. FA 취득 기간이 1년 늦춰졌고, 자존심도 주관도 다 버렸지만 돌아온 결과는 버려짐이었다(사진=엠스플뉴스)


‘꾸준한 신뢰 속에 원성을 들어가면서까지 두산이 노경은을 기용했다’는 외부의 이미지와 달리 실제 확인한 속사정의 온도는 확연히 달랐다.

노경은은 마지막 3경기를 토대로 마무리로의 능력을 의심 받았고, 지속적인 지적과 불만족으로 위축된 상황이었다. 지시를 수용하지 않으면 '당장 보직을 잃는 수준'이 아닌 2군으로 강등 될 수 있다는 부담감. 그런 압박 속에 마운드에 올랐다는 것이 실제 이면에서 느낀 위기감들이었다.

무엇보다 시즌 중 충분한 의사전달이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투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3차례의 투구폼 변경의 일방적 지시가 내려왔다. 선수 거취 문제를 코칭스태프가 온전히 결정할 수 있는 상하관계가 아니었다면 결코 보기 쉽지 않은 불통의 과정이었다.

노경은은 “모친상 이후 1군 엔트리에 복귀해 1경기에서 부진하자 감독님께서 '2군에서 내려가 팔각도를 내리라'는 주문을 하셨다. 내심 수용하기 쉽지 않았지만 1군에서 선수들과 함께 야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준비를 잘 마친 이후에도 무려 38일 동안 1군 콜업이 없었다. (1군으로) 올라오고 난 이후에도 다시 (투구폼을) 바꾸길 원하셔서 상체를 숙이는 폼으로 또 바꿨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미세한 변화에도 민감한 투수에게 팔 각도를 바꾸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도전이다. 실제 경기 중 체력 저하 등으로 팔 각도가 떨어지면 구위나 제구가 천양지차로 변한다. 더군다나 한 가지 폼으로 상당히 오랜기간 던졌던 투수에겐 투구폼 변경은 정말 쉽지 않은 도전이다. 그럼에도 노경은은 아무런 불만을 내비치지 않은 채 수용하고, 또 수용했다. 그리고 올 시즌에 다시 한 번 투구폼 변화 주문을 받아들였다. 이 과정이 노경은에겐 큰 회한으로 남아 있다.

지난해 1군 복귀 과정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의도적인 배제나 ‘길들이기’가 이뤄졌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는 정황들이다. 어머니 상을 치르고 열흘만에 복귀했던 지난해 7월 2일 경기를 끝으로 노경은 다시 1군 엔트리서 제외됐다. 당시 김태형 감독은 "2군에 내려가 투구폼을 손 보라"고 지시했다.

2군으로 내려간 노경은은 약 2주 간 당시 두산 퓨처스 코치였던 이상훈 (현LG 퓨처스 코치)과 투구폼 변경을 마쳤다. 2군에서도 준비가 끝났다는 내부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38일 동안 1군 복귀 소식은 없었다. 같은 기간 두산은 14승 12패로 상승세가 꺾여 삼성, NC와의 격차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두산 구원진도 더운 날씨에 고전했다. 이 기간 팀 구원 평균자책이 5.75로 좋지 않았고, 15번의 세이브 기회서 세이브율이 불과 4할에 그쳤을 정도로 지키는 야구를 하지 못했다.
이현승이 새로운 마무리 대안(6세이브)으로 나섰고 진야곱이 2홀드 평균자책 2.45, 함덕주가 3승1패 평균자책 3.86으로 분전했으나 필승조 전체의 힘은 떨어졌다. 특히 우완 윤명준이 10경기 6.10으로 계속 부진한 가운데 사이드암 오현택도 평균자책 9.00으로 좋지 않았다. 분명 우완 카드가 더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이즈음 두산의 선택은 양현(4경기 평균자책 8.10), 박종기(2경기 18.00), 조승수(1경기 9.00) 등의 젊은 자원이었다. 물론 이들의 성적은 인상적이지 않았다. 선발, 롱릴리프, 추격조, 필승조, 마무리 등의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는 노경은이 경력이 일천한 신예들에게도 밀린 셈이다.
성적이 이들에 비해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같은 시기 투구 내용도 매우 준수했다. 노경은은 퓨처스리그 11경기서 1승 2세이브 평균자책점 2.25를 기록했다.
8월 1군 복귀 당시 김태형 두산 감독은 “노경은의 정신적인 면이 많이 나아졌길 기대한다”고 했다.
기대대로 38일만에 1군에 돌아온 노경은은 최고 구속 148km의 빠른 볼을 뿌리며 무실점 복귀전을 치렀다. 그러나 얼마 안 가 2번째 지시를 받고 며칠만에 다시 폼을 바꿔야 했다. 상체를 숙이는 변화였다.

이후 노경은은 패전처리, 추격조, 롱릴리프, 셋업맨 등의 다양한 보직을 소화하며 시즌을 마쳤다. 그리고 노경은은 한국시리즈서 1승 1홀드평균자책 제로의 좋은 활약을 펼쳐 두산의 우승에 기여했다.

혹독한 실패로 평가 받는 노경은의 지난해 성적도 객관적으론 그리 나쁘지 않았다. 4.47의 평균자책점은 두산 구원진 중 김강률(2.45), 이현승(2.89), 함덕주(3.65), 윤명준(3.97) 다음으로 낮은 기록이었다. 리그 전체구원진 중에서도 53위로 중상위권 이상의 기록이었다.

패전처리 자청, 불펜 전환 감수, 그래도 이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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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수 전 두산 감독은 노경은에게 굴욕과 희생을 지시했다. 노경은은 이를 기꺼이, 스스로 자청하다시피 받아들였다(사진=두산)

노경은의 철학은 ‘팀 퍼스트’다. 보직에는 한 번도 개의치 않았다. “보직에 대한 불만을 프로와서 단 한 번도 이야기 해 본적이 없다”는 것이 노경은의 말이다.

팀이 원한다면 패전조도 기꺼이 등판하겠다는 것이 그의 각오였고 실제로 그래왔다. 그런데 이번 은퇴 과정에서 왜곡된 사실이 더 부각됐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노경은은 선발투수로 2년 연속 10승을 기록한다. 그런데 이듬해인 2014년 심각한 부진에 빠지며 29경기에 등판해 3승15패 평균자책 9.03이라는 커리어 최악의 성적을 냈다. 당시 가장 의문이었던 것은 노경은의 갑작스러운 부진. 그리고 송일수 전 두산 감독이 ‘왜 그를 계속 기용하느냐’였다.

이는 투수 자원이 부족했던 당시 두산 마운드 사정에 더해 노경은의 자청이라는 이유가 핵심이었다.
노경은은 2014년 6월까지 밸런스를 완전히 잃어버린 채 부진했다. 휴식과 함께 밸런스를 가다듬고 영점조절을 할 시간이 필요했던 상황. 많은 야구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지적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당시 두산 마운드 사정이 좋지 않았다. 더스틴 니퍼트, 유희관을 제외하면 선발 로테이션을 지켜 줄 투수가 없었다. 크리스 볼스테드는 10경기 평균자책 5.47로 부진했고 안정감이 떨어졌다. 교체를 검토하던 시기였다.
이들 이외엔 선발 로테이션을 지킬 투수조차 없었던 것. 4선발을 꾸리는 것도 벅찼다. 결국 송 전 감독은 노경은에게 휴식과 밸런스 조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선발로 그를 기용했다. 노경은 역시 주변의 만류를 뿌리친 채 쏟아지는 야유와 조롱을 감내하고 계속 마운드에 올랐다.
당시 노경은은 “현재 우리 팀 투수가 모두 어렵다. 지금 밸런스를 잡을 시간이 필요하지만 나만 생각 할 순 없다. 개인 통산 성적은 떨어지겠지만 두산 선수들과 1군에서 같이 호흡하면서 뛰고 싶다”며 당시 등판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노경은은 이후 패전처리나 추격조로도 등판한다. 불과 1~2년 전까지 팀 선발진의 주축 투수였던 그에겐 사뭇 굴욕적일 수 있는 처사였다. 그러나 이 때도 노경은은 전혀 불만을 내비치지 않고 개인을 위한 시간보다는 팀 사정을 먼저 헤아렸다. 부진에 대해서 책임을 통감했으며, 팀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2015년 김태형 두산 감독은 노경은을 마무리로 쓰겠다고 밝혔다. 캠프에서 노경은이 보여준 성실한 자세와 빼어난 구위가 선택의 배경이었다. 노경은 역시 불펜 전환을 군말없이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후 단 13경기의 기회를 준 김 감독은 이후 노경은을 추격조, 패전처리, 롱릴리프 등 다양한 보직으로 활용했다. 이 때도 마찰이나 항명은 전혀 없었다.
팀을 위해 모든 것을 수용한 결과 불과 2년 동안 50경기서 보직 전환이 어지러울 정도로 많이 펼쳐졌다. 그런데 노경은이 간절히 고대한 선발 기회는 온전하지 않은 3경기, 실제론 단 2번이 전부였다.
노경은은 지금도 2014년 109.2이닝 110자책 기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부진은 깊이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프로의 기록이며, 야유와 조롱을 이겨내고 마운드에 올라 팀을 위한 최소한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한솥밥을 먹었던 두산 구성원들 대부분이 인정하는 근성이다. 이런 선수를 ‘이기적’인 ‘유리멘탈 선수’로 만든 것은 외부의 편견들일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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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사건 일지에는 수많은 이면이 숨어있다. (사진=엠스플뉴스)

통상적 관례와 다른 강등, 은퇴의사 왜곡
노경은의 은퇴 배경으로 알려진 “야구에 대한 의욕을 잃어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은퇴를 번복한 것도 야구를 하고 싶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그런데 노경은이 선수생명이 중단될 위기를 불사하며 은퇴 카드를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 역시 기회와 신뢰의 문제였다.
코칭스태프의 요구에 따라 캠프 기간 내내 수천, 수만번의 공을 던지며 만든 폼을 불과 시즌 2경기를 치른 이후 노경은은 또 다시 바꿔야 했다. 시즌 중 투구폼을 바꾸는 경우 해당 지시를 내린 코칭스태프가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통상 관례다. 그리고 투구폼을 수정하고 부진할 시 대부분의 경우 해당 선수에게 추가 기회를 주게 마련이다. 이는 투수생명을 건 도박을 감수한 선수와 이를 지시한 코칭스태프간의 가장 기본적인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경은은 고심 끝에 코칭스태프를 믿고 투구폼을 수정한 투구를 했고 결과는 3이닝 4실점으로 좋지 않았다. 그러자 다음 날 2군 강등이라는 통보가 내려왔다. 이 과정조차 아무런 설명은 없었다. 노경은이 ‘내쳐졌다’고 판단한 이유, 두산 코칭스태프와 신뢰가 무너져 더 이상 현 체제서 야구를 할 수 없다고 결심한 배경이다.
2015년부터 노경은 2시즌 50경기 동안 수많은 보직 변경과 제한된 기회를 모두 수용했다. 베테랑의 자존심이나 자신의 주관도 모두 내려놨다. 투수 생명이 걸린 투구폼 변경 요구 역시 합리적 의사소통 과정이 없었지만 수용했다. 그런데 두산은 그런 그에게 정말 합당한 기회를 줬을까. 최소한의 명예마저 짓밟고 사실을 은폐하진 않았을까?
트레이드 제의 사실 은폐, 보복성 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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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스태프를 보내 수차례 은퇴를 만류했다는 두산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은퇴전까지 프런트에서도 노경은을 만나 준 이는 운영팀장이 전부였다. (사진=엠스플뉴스)

두산이 트레이드서 ‘형식적인 액션만 취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실제 모 구단에서 적극적으로 트레이드 카드를 꺼낸 당일 두산은 되려 이 사실을 숨기고 노경은에게 은퇴의사를 재확인했다. 결국 타 구단의 의사를 알지 못한 노경은은 최종 은퇴를 결정했다. 트레이드를 제의했던 해당 구단 마저 당황한 전개였다.
복수의 구단들에 트레이드를 시도했다는 두산의 공식입장도 묘한 구석이 있다. 해당 구단들에 확인한 결과 실제 성사가 이뤄질 만큼 현실적이지 않았거나, 혹은 제의 자체가 아예 없었다는 반응. 기회를 주겠다고 나선 구단이 실제론 사실을 은폐하고, 선수를 고사시키려 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사안들이다.

이어 노경은이 은퇴를 번복하면서 두산은 이 의사를 다시 수용한다. 대신 두산은 은퇴와 트레이드 추진 과정을 훈련불참과 지시불이행으로 규정, 임금 지급을 하지 않고 벌금을 매긴다.

이런 무단이탈에 대해서도 구단과 선수의 설명은 엇갈린다.

노경은은 “구단에서 분명 휴가를 주면서 조용히 트레이드 결과를 기다리라고 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두산은 “휴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은 있지만 휴가를 준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단, 두산은 훈련 불참에 대한 지적이나 이탈에 대해 징계 이전 제지를 한 적은 없다고 인정했다. 트레이드를 시도한 약 2주 간에도 과정을 선수와 공유하며 교류했다고 밝혔다. 상호 연락이 끊기거나 교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실제로 무단이탈과 훈련불참이라면 정상적으로 나오지 않을 노경은의 4월 임금은 정상적으로 지급됐다. 은퇴 번복 이후 알려진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사실관계다.
수많은 베테랑 선수들은 자신의 마지막 발언권조차 얻지 못한 채 프로 생활을 마친다. 합리적인 마지막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또 자주 왜곡된 이미지를 떠안은 채 옷을 벗는다. 이 과정에서 구단은 철저한 ‘갑’이다. 배은방덕한 ‘을’이 아닌 2년간 침묵했던 ‘을’ 노경은은 정말 합당한 기회를 얻었을까? 노경은은 선수생명을 걸고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이젠 다른 이들이 응답할 차례다.

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One2@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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