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g_obj_146555778747799363.png
이제는 '슈퍼베이비'도 '아기공룡'도 아니다. 손민한의 뒤를 잇는 부산고 출신 에이스 투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이민호의 피칭 장면. (사진=NC)

손민한과 박명환, 이혜천이 한꺼번에 은퇴하면서, 2016 시즌 NC 다이노스는 리그에서 가장 젊고 연차가 적은 투수들로 마운드를 구성했다. 이번 시즌 NC 투수진의 평균 나이는 27세로 10구단 kt 위즈(26.2세)에 이은 2위. 팀내 투수 중 ‘최고령’은 33세의 외국인 투수 해커이며, 그 뒤로는 이제 풀타임 4년차가 된 마무리투수 임창민(31세)이 ‘노장’ 행세를 하고 있다. 임창민의 나이는 올 시즌 한화 이글스 투수진의 평균연령(30.9세)과 동일하다.

여기다 해커가 컨디션 문제로 잠시 자리를 비우면서, 안 그래도 젊은 NC 투수진은 더욱 혈기왕성하고 싱싱한 영건들로 채워지게 됐다. 한번 5월 13일부터 6월 9일 사이에 NC가 내세운 선발 투수들의 면면을 살펴보시길. 이 기간 NC에서 가장 ‘연로’한 투수는 올해 미국 나이로 29세 8개월이 지난 잭 스튜어트(1986년생)이며, 그 뒤로는 26세 이하의 어린 투수들이 선발 마운드를 지키고 있다.

NC는 올해 26세 이하 젊은 투수가 가장 많이 선발등판(33회)한 팀이며, 가장 많은 선발승(14승)과 가장 좋은 평균자책(4.35), 3.1승으로 가장 많은 WAR(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를 만들어 내고 있는 팀이다. 젊은 투수들의 활약 속에 NC는 해커 없이 치른 22경기에서 14승 1무 7패(0.667)로 시즌 성적(0.635)보다 좋은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4월 부진을 씻고 믿음직한 선발투수로 자리잡은 이민호와 해커의 빈 자리를 훌륭하게 메워주고 있는 정수민의 활약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손민한의 후계자들

mug_obj_146555778976644362.png
예년까지 이민호는 종종 선발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한 고비를 넘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가 잦았다. 올 시즌에는 훨씬 단단해진 피칭으로 고비를 자신의 힘으로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NC)

“부산고 출신 손민한이 은퇴하니까, 부산고 출신 젊은 투수 둘이 한꺼번에 나타났네요.” NC 구단 관계자의 말처럼, 이민호와 정수민은 부산고등학교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민호는 부산고 3학년 때인 2012 신인 드래프트에서 우선지명으로 NC 유니폼을 입었고, 정수민은 부산고 졸업 뒤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해 20대 초반을 보내다 2016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고 NC에 입단했다.

여기에 이민호와 정수민은 불 같은 강속구를 뿌리는 우완 오버핸드 투수라는 점도 닮았다. 이민호는 최고 150km/h의 묵직한 빠른 볼을 던지고, 정수민도 올 시즌 스피드건에 최고 149km/h를 찍은 강속구 투수다. 패스트볼 외에는 슬라이더와 커브, 그리고 포크볼을 주무기로 던진다는 점도 비슷하다. 둘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이민호는 NC마스코트를 렌더딩한 듯한 귀여운 얼굴이고 정수민은 곱상한 귀공자풍에 가깝다는 것 정도다.

“불펜으로 던질 때보다 포크볼 구사를 늘렸습니다.” 이민호의 말이다. 이민호의 포크볼 구사율은 지난해 4.9%에서 올 시즌 14.3%로 거의 세 배 가량 올랐다. 6월 2일 두산전에서는 던지는 공 10개 중 3개꼴로 포크볼을 던졌다. “선발로 긴 이닝을 던지려면, 불펜 때보다는 좀 더 레퍼토리가 다양해야 하니까요.”

패스트볼-포크볼 조합으로 치면 정수민도 만만치 않다. 정수민은 9일까지 포크볼 구사율 23.4%를 기록했다. 선발로 나선 최근 4경기에서는 구사율을 약 33%까지 끌어올렸고, 7일 넥센전에서는 패스트볼(44구)보다 오히려 포크볼(46구)이 많을 정도로 포크볼 의존이 높은 편이다. 25이닝 이상 던진 리그 투수 중 정수민보다 포크볼 구사가 많은 투수는 심수창(35.9%)과 김진성(32.5%)이 있지만, 둘 다 불펜 투수로 경기당 100개 가까운 공을 던지는 선발과는 처지가 다르다.

“포크볼 외에도 슬라이더, 커브, 투심 등을 던질 수 있습니다.” ‘투 피치 투수’가 아니냐는 질문에 정수민이 들려준 답이다. “일단 그날의 상황에 맞게 구종을 선택해서 던졌어요. 가진 구종을 다 안 보여주겠다는 의도는 아닙니다.” 정수민의 부산고 1년 선배 김태군은 “아직 상대 타자들에게 수민이라는 투수가 생소할 것”이라 했다. 아직은 패스트볼과 포크볼만으로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지만, 상대가 익숙해진 뒤에는 레퍼토리를 다양화 할 가능성이 보이는 대목이다.

패스트볼-포크볼 위주의 피칭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장점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9일까지 정수민의 패스트볼 비율은 57.9%로 리그 선발투수 중 6위, 이민호는 57%로 7위다. 다른 구단 투수코치는 “패스트볼은 투수가 가장 자신있게 던질 수 있는 공”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스프링캠프 때 투수들이 던지는 공을 보면 10구 중 7구는 변화구가 아닌 패스트볼을 던진다. 그런데 왜 막상 시즌이 개막하면 가장 많이 던지고 연습한 공을 두고 변화구를 더 많이 던지는지 모르겠다.”

이는 NC 포수 김태군의 성향과도 통한다. 김태군은 젊고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에게는 가급적 변화구보다는 패스트볼 위주의 볼배합을 선호한다. “패스트볼과 포크볼, 두 가지 구종이 다에요. 정수민이 던질 수 있는 공은 다 던지게 했습니다.” 김태군이 말한 ‘던질 수 있는 공’이란, 어쩌면 가장 ‘자신있게’ 던질 수 있는 공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영건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mug_obj_146555779223324045.png
정수민은 위력적인 패스트볼과 포크볼을 무기로 아마추어 시절 받은 기대에 부응하는 호투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NC)

이민호는 올 시즌 손민한의 공백을 채워야 한다는 중책을 안고 시즌 개막을 맞이했다. 4월 한달 동안은 힘든 경기가 이어졌다. 특히 4월 12일 삼성전에서는 초반 난조와 동료들의 실책 속에 2이닝 9실점(6자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바로 다음 경기인 17일 롯데전에서 5이닝 1실점으로 잘 던지며 바로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4월 23일 SK전에서 다시 3이닝 6실점(4자책)으로 또 무너졌지만, 5월 1일 롯데전에서 6.2이닝 2실점(1자책)하며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이후 경기에서는 꾸준히 5이닝 이상을 버티며 선발로 제몫을 해내는 중이다. 5월 이후 7경기 중 3경기에서 6.2이닝 이상을 던졌고, 5이닝 이상-2실점 이하 투구도 5번이나 된다.

“삼성한테는 꼭 이겨서 갚아주고 싶었습니다.” 이민호가 5월 21일 삼성전을 승리한 뒤 한 말이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또 이겨서 확실하게 갚아줄 거에요.” 마냥 착한 ‘순둥이’였던 이민호의 달라진 면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면모는 6월 2일 두산전에서도 잘 드러났다. 6회까지 1실점으로 호투를 이어간 이민호는 7회 1사 1, 2루에서 폭투로 주자를 3루에 보낸 뒤 김재호에 2루타를 맞고 동점을 허용했다. 예년 같으면 와르르 무너졌을 상황. 하지만 이민호는 이전과 달랐다. 후속 박건우를 3-2 풀카운트 승부 끝에 2루수 플라이 아웃으로 잡아냈고, 2번 오재원은 공 3개로 헛스윙 삼진 처리했다. 마운드를 내려올 때 투구수는 119개.

“이전에는 민호가 주자를 남겨둔 채 불펜 투수들에게 맡기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김경문 감독의 말이다. “이번에는 어떻게 되든 네 스스로 한번 해결해 보라고 계속해서 맡겨 뒀어요. 결과적으로 스스로 잘 막아냈고, 팀도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간 이민호의 경기를 보면 좀처럼 마지막 한 고비를 넘지 못한다는 인상을 줄 때가 많았다. 두산전 7이닝 119구의 경험이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을까. 8일 넥센전에서 이민호는 첫 5이닝을 4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6회 선두 김하성의 타구에 어깨를 맞고 다소 일찍 마운드에서 내려오긴 했지만, 내용만 놓고 보면 이번 시즌 들어 가장 뛰어났다.

마운드를 내려온 이민호에게 이날 경기장을 찾은 부산고 선배 손민한이 활짝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마, 그 정도는 그냥 탁탁 털고 다시 던져야 되는거 아닌가.” 아마 이민호도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지금 이민호의 승부욕은 절정에 달해 있다.

투지와 근성이라면 정수민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정수민은 최근 인터뷰 때마다 “해커의 빈 자리를 대신하는 만큼, 해커만큼 던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오른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겠다’나 ‘보탬이 되겠다’는 말이 아닌, ‘해커만큼 던지겠다’는 말에서 스트라이크존만큼이나 큰 야망이 엿보인다.

프로에서 5년 세월을 통해 단단해진 이민호처럼, 정수민도 오랜 기간 미 프로야구 마이너리그 생활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했다. 부산고 시절 정수민에 대해 김태군은 “그때는 에이스는 아니고 팀내 2~3번째 투수였다”고 했다. 다른 구단 스카우트도 “장래성이 있는 선수였지만 특급 유망주로 분류하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좋은 체격조건과 안정적인 투구밸런스가 장점이었습니다. 패스트볼 구속은 143km/h 정도였어요. 나중에는 패스트볼 스피드가 좀 더 발전할 거라는 예상은 했습니다. 변화구 구사 능력은 다소 부족한 편이었구요. 어쨌든 잠재력이 있는 선수였다는 건 확실합니다.”

정수민은 미국에서 보낸 시간을 후회하거나 아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소중한 경험으로 생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그저 열심히 하자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뚜렷한 목표보다는 많이 배우자는 생각으로 뛰었어요. 한국에 돌아온 지금은 뚜렷한 목표를 갖고 야구를 하는 게 다른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집중력을 갖고 경기에 임할 수 있어요.” 정수민의 말이다.

일단 정수민의 올해 목표는 “한 시즌 1군에서 자리를 잡는 것”이다. 그보다 더 큰 목표는, “마음 속에만 갖고 있다가 때가 되면 이야기할 생각”이라고 했다. 하지만 “특별한 롤모델은 없다. 매년 꾸준히 10승씩 하는 투수들의 피칭을 보면서, 좋은 건 모두 흡수하려고 한다”는 말에서, 가슴 속 숨겨둔 목표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팀으로서는 젊은 선발투수를 키워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NC 김경문 감독이 시즌 초 이야기한 ‘과제’는 이민호와 정수민, 부산고 출신 영건 듀오의 호투 속에 조금씩 결실을 맺어 가고 있다. 7일과 8일 넥센전에서 NC는 150km/h 가까운 광속구를 던지는 우완 정통파 투수를 잇달아 선발로 내세웠다. 이어 9일에는 강력한 변형 패스트볼을 구사하는 외국인 투수가 승리를 따냈으며, 그 뒤로는 지난 시즌 10승을 거둔 사이드암 투수 듀오가 마운드에 오를 예정이다. 모두 아직 만으로 30세가 되지 않은 젊은 투수들이며, 프로에서 던진 시간보다는 앞으로 던질 날이 더 많은 투수들이기도 하다.

이는 NC 다이노스가 올 시즌 거둘 승리보다, 앞으로 거둘 승리가 더 많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 엠스플뉴스 & MBC스포츠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No.1 스포츠 채널 MBC스포츠플러스가 선보이는 스포츠 전문 온라인/모바일 뉴스 <엠스플뉴스>

더 많은 뉴스 보기 www.mbcsports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