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은 박종훈에게 의미가 크다. 프로 첫 풀타임 시즌을 보냈다. 마운드에 오를 수 있어 매일 즐겁다는 그. 2016시즌 개막과 함께 연일 호투를 선보이고 있다. 박종훈의 꿈은 여전히 'ing'다(사진=엠스플 뉴스 전수은 기자)
2015년은 박종훈에게 의미가 크다. 프로 첫 풀타임 시즌을 보냈다. 마운드에 오를 수 있어 매일 즐겁다는 그. 2016시즌 개막과 함께 연일 호투를 선보이고 있다. 박종훈의 꿈은 여전히 'ing'다(사진=엠스플 뉴스 전수은 기자)

[엠스플뉴스] ‘언더핸드(Underhand)’.

투구 메커니즘에서 정의하는 투구 자세는 다양하다. 팔을 어깨 위에서 내려찍는 오버핸드(overhand), 팔꿈치와 손목을 수직으로 펴서 던지는 사이드암(side arm), 오버핸드보다 팔을 좀 더 비틀어 던지는 쓰리쿼터(threequarter), 특히 땅에서부터 팔을 끌어올려 솟아오르듯 던지는 언더핸드. 흔히 잠수함이라고 부르는 이 자세는 아시아 선수들이 많이 던지는 독특한 투구 자세다.

국내에선 해태 타이거즈 이강철과 삼성 라이온즈 박충식을 시작으로 롯데 자이언츠 정대현, LG 트윈스 우규민이 대표적인 언더핸드 투수다. 최근엔 NC 다이노스 이태양과 SK 와이번스 박종훈이 그 계보를 잇고 있다.

일본프로야구에선 통산 284승에 빛나는 한큐 브레이브스 야마다 히사시(1948~)와 2006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한국 대표팀을 침몰시킨 와타나베 순스케가 손꼽힌다.

메이저리거 김병현은 대표적인 높은 언더핸드 투수다. 2001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소속으로 아시아인 최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2002년에는 한 시즌 최다인 36세이브를 올렸다. 김병현의 역동적인 투구 자세에 놀란 미국인들은 그를 ‘BK(Born to K)'라 불렀다.

언더핸드 투수의 릴리스 포인트(공을 놓는 지점)는 낮게 형성된다. 밑에서 공을 끌어올려 던지다 보니 구속 향상에 어려움이 많다. 김병현은 언더핸드 투수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어깨 근처까지 팔각도를 끌어올려 공을 던졌다.

그와 반대로 SK 와이번스 박종훈은 KBO리그에서 공을 가장 '낮게' 던지는 언더핸드 투수다. 땅과 손등의 거리가 5cm 남짓. 손이 거의 땅에 닿을 정도다. 군산상고 선배인 롯데 정대현은 지면과 40cm 이상 떨어진 곳에서 공을 던진다.

같은 언더핸드지만 차이가 크다. 박종훈은 김병현과 달리 낮은 언더핸드 투수로 분류된다. 구속은 느리지만, 볼이 낮게 형성된다는 장점이 있다.

‘5cm의 투구 미학'

KBO리그에서 가장 낮게 공을 던지는 언더핸드 투수 SK 박종훈(사진=알렉스 김)
KBO리그에서 가장 낮게 공을 던지는 언더핸드 투수 SK 박종훈(사진=알렉스 김)

박종훈의 2016시즌 평균 구속은 시속 131.1km/h. 팀 내에서 가장 느리다. 볼이 느린 만큼 낮게 들어갈수록 효과가 크다. “땅에 안 닿으려고 더 높게 던지는 편이에요. 밸런스가 좋은 날엔 닿지 않는데, 컨디션이 별로인 날엔 땅엔 꼭 닿더라고요(웃음)”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던질 때 공이 훨씬 좋다. 손이 땅에 닿는다는 것은 곧 컨디션 난조를 의미한다.

낮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공은 힘 있는 타자들에겐 치명적이다. 특히 외국인 타자가 그렇다. 언더핸드 투수가 마냥 낯설기만 하다. LG 트윈스 루이스 히메네스와 박종훈은 2016시즌 총 5번을 만났다. 그 중 히메네스가 기록한 2안타 모두 홈런이었다. 상대 전적에선 나쁘지 않았지만, 여전히 박종훈을 경계 대상 1호로 꼽는다.

“이제 히메네스에겐 절대 홈런 맞지 않을 거예요(웃음). 진짜 자신 있어요.” 박종훈은 이어 자신감의 원인을 밝혔다. “타이밍을 앞에 놓고 치는 타자들에겐 보통 투심 패스트볼과 커브를 던져요. 이 공은 스윙이 느린 선수보다 배트 스윙이 빠르거나 힘이 좋은 선수들에게 잘 먹혀요. 타이밍이 빨라서 제 공은 잘 못 치거든요. 빠른 공을 줄이고 투심-커브 조합으로 승부하니 결과가 좋았습니다.”

2016시즌 개막 후, SK의 힘은 선발 마운드였다. 특히 4월 한 달 가장 뜨거웠던 투수가 바로 박종훈이다. 에이스 김광현과 켈리 못지않은 활약이었다. 정작 본인은 달라진 게 별로 없다고 말한다. “확 바뀐 건 없어요. 조금씩 바꿔가고 있거든요. 아직 부족한 만큼 더 많이 배우려고 노력 중입니다.”

박종훈의 변화는 수치상으로 더욱 뚜렷하다. 2015년 패스트볼 구사율이 61.1%에 달했다. 그 밖에 커브가 21%, 싱커가 5.1%였다. 패스트볼 위주의 투구라고 볼 수 있다.

2016년은 패스트볼을 37.9%까지 줄이는 대신 커브(35%)와 싱커(25.8%)비율을 늘렸다. 본격적인 땅볼 생산에 나선 것이다.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언더핸드 투수 채드 브래포드는 싱커를 주 무기로 통산 63.7%의 그라운드볼 비율을 기록했다. 평균 구속은 128km에 불과했지만, 12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맞아요. 미국과 일본에서 주로 연습했던 게 땅볼 유도였어요. 작년엔 패스트볼과 커브 위주로 많이 던졌는데, 거기에 구종을 하나 더 추가했죠” 새로운 구종 싱커는 4월 대폭발에 원동력이 됐다(박종훈은 4월 한 달 동안 3승 무패, 평균 자책 3.10을 기록했다).

'5월 부진' 시련은 있지만, 포기란 없다.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긍정남' 박종훈에게 슬럼프란 야구를 즐기는 또 하나의 재미다. (사진=SK)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긍정남' 박종훈에게 슬럼프란 야구를 즐기는 또 하나의 재미다. (사진=SK)

기쁨도 잠시. 잘나가던 박종훈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5월 들어 제구력이 말썽을 부렸다. SK 김용희 감독은 심리적인 부분에서 원인을 찾았다. “제구력이 4월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존에 형성되는 볼과 그렇지 않은 볼의 차이가 컸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가운데로 공이 몰렸고, 변화구의 움직임도 좋지 않았다. 상황대처능력을 좀 더 키워야 한다” 이어 “(박)종훈이가 심리적으로 많이 쫓기고 있다. 경험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다. 내구성도 좋고, 강한 친구다. 곧 이겨낼 거라 본다.”

성적이 이렇다 보니 마운드 위에서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졌다. “자신감보다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안타든 홈런이든 두들겨 맞는 것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이 상황에서 이렇게, 주자가 있는 상황에선 또 저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죠.” 뜨거웠던 4월은 2년 차 투수에게 큰 부담이 됐다.

그러나 탈출 방법 역시 잘 알고 있다. “투수는 단순해져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제 성격이 하나에 꽂히면 주야장천 파는 스타일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안 좋다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요.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다잡고, 원래의 ‘쿨가이’ 박종훈으로 돌아왔다.

‘원조 잠수함’ 조웅천 불펜 코치는 박종훈에겐 큰 버팀목이다. “코치님은 밸런스를 늘 강조하십니다” 이어 “타자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각 상황에선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같은 것들이죠.”

조 코치는 2000년대 초반 잠수함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2003년엔 SK 소속으로 구원왕에 올랐다. 그 탓인지 박종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15년의 경우. 점수 차가 많이 날 때. 상황상 홈런을 맞아도 상관이 없었거든요. 그런데도 타자와 제대로 붙지 못했어요. 안타를 피하려다 경기를 망친 꼴이죠. 그게 볼넷으로 이어졌고 안타로 연결됐습니다. 늘 대량 실점하는 원인이 됐어요. 코치님이 그럴 땐 어떻게 대처하는지, 투구 수가 100개를 넘었을 때 타자와 어떻게 승부하는지 가르쳐주셨습니다.” 김 감독이 말한 상황대처능력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잠시도 쉬지 않는 노력파 박종훈. 본인 역시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제 제구력이요? 약간이 아니라 엄청 많이 심각해요(웃음). 근데 참 힘든 부분이 컨트롤인 것 같아요. 그래도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은 팀에 미안한 마음 가득이다. 차라리 아프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참 이럴 때 몸이라도 아프면 핑계라도 될 텐데(웃음), 너무 건강해서 탈이에요.”

언더핸드 투수로 살아간다는 것

2016시즌 박종훈의 평균 자책은 4.02다. 13경기에 나서 5승 4패를 기록했다. (사진=SK)
2016시즌 박종훈의 평균 자책은 4.02다. 13경기에 나서 5승 4패를 기록했다. (사진=SK)

최근 KBO리그엔 언더핸드나, 사이드암 선발 투수가 많이 늘어났다. 넥센 히어로즈 신재영을 비롯해 NC 다이노스 이재학, 삼성 라이온즈 김대우, 메이저리그를 노리는 LG 우규민 등이 그 주인공이다.

“리그 전체의 균형 때문인 것 같아요. 다양한 유형의 투수는 선발 로테이션에 큰 힘이 됩니다. 좌투수만 연달아 나온다고 생각해보세요. 끔찍하죠(웃음). ‘좌·우, 언더, 오버, 사이드‘의 존재는 모든 면에서 환영할 일이죠.” 박종훈의 말이다. 그 역시 SK 마운드에 한 축으로 성장했다.

박종훈은 고2까지 야수로 뛰었다. 고3 때 처음 투수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엔 언더, 오버 구분 없이 던졌습니다. 고3 때 정식으로 투수 훈련을 받았는데 언더핸드가 제일 편했어요.” 당시 군산상고 이동석 감독의 눈은 빗나가지 않았다.

언더핸드 투수가 좌타자에게 약하다는 것은 야구계에 흔한 통념이다. 박종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현대 야구는 옛날과 완전히 달라요. 분석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죠. 사실 전 ‘언더핸드’나 ‘사이드암’ 투수가 좌타자에게도 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종훈의 좌타자 통산 피안타율은 0.261이다. 반대로 우타자에겐 0.286을 기록했다. “좌타자에게 언더핸드가 약한 이유를 옛날엔 공의 궤적이 보여서라고 했어요. 그럼 우타자에겐 강해야 하는데 그게 또 그렇지 않더라고요.” 이런 자신감은 마운드 위에서도 잘 나타난다.

당당함은 박종훈의 강점이다. 어린 나이에 비해 보기 드문 ‘강철 멘탈’을 자랑한다. 홈런이나 안타를 맞아도 흔들리는 법이 없다. “홈런이나 안타 맞는 것엔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경기하다 보면 얼마든지 맞을 수 있어요. 제가 잘 던져도 타자가 잘 쳐서 넘어갈 수도 있죠.”

박종훈에게 가장 힘든 건 따로 있다. “볼넷은 정말 싫어요. 홈런이나 안타를 내준 것보다 더 말이죠.”

박종훈 "작년보다 더 나은 투수가 되고 싶다."

NC 다이노스 투수 이재학(사진=NC)
NC 다이노스 투수 이재학(사진=NC)

5월 25일. NC 선발투수 이재학은 SK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할 뻔했다. 현장에서 지켜본 박종훈의 감회는 남달랐다.

“스타일은 조금 다르지만, 항상 부러운 형이에요. 보고 배울 점이 정말 많아요. 나도 저런 체인지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위기 상황에서 재학이 형처럼 정말 편하게 던지고 싶어요.” 이재학은 언더핸드보단 사이드암에 가까운 투수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따냈다.

박종훈이 닮고 싶은 선수는 또 있다. “우규민 선배는 포볼을 최대한 아끼세요. 수비가 좋든 안 좋든 끝까지 믿고 던지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아직 수비에서 에러가 나오고 하면 흔들리는 경우가 많아요. 형들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잠시 흔들렸던 5월을 뒤로하고, 제 모습을 되찾은 박종훈. 언제 그랬냐는 듯 6월 선발 등판한 3경기에서 18.1이닝동안 2.45의 평균 자책을 기록했다. 시즌 5승째다. 14일 삼성 라이온스전에서 6.2이닝 무실점 경기를 펼치며 부진을 말끔히 씻어냈다.

박종훈에게 올해 목표를 물었다. “작년이 어떻게 보면 제 인생 최고의 한 해였잖아요. 올핸 크게 욕심내기보다 목표한 것 중에서 몇 개라도 꼭 이뤘으면 좋겠어요.”

SK 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탄탄했던 투수력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최근 외국인 투수와 김광현의 페이스가 좋지 않다. 그래서 박종훈의 존재가 더욱 중요하다. 팀의 핵심 투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느리게 움직이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상대 타자를 노리는 박종훈의 업숏을 기대해 본다.

전수은 기자 gurajeny@mbcsports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