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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 뉴스 : Sports & Entertainment

 

KBO

[엠스플 탐사보도] 한국 유일 '야구역사가'가 매일 전국을 돈 이유

  • 기사입력 2017.03.20 17:40:58   |   최종수정 2017.03.20 17:4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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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서 전 빙그레 이글스 감독과 홍순일 전 야구박물관 자료수집위원장이 옛 사진을 보며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배성서 전 빙그레 이글스 감독과 홍순일 전 야구박물관 자료수집위원장이 옛 사진을 보며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 한국야구박물관에 전시할 수집품만 2017년 3월 기준 5만 여점, 4년 동안 매일 전국을 발로 뛰어다닌 원로 야구기자 홍순일 전 야구박물관 수집위원장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월 31일로 수집위원회 활동 끝낸 홍 전 위원장은 못 다한 야구사 연표 완성에 전력을 쏟을 예정이다. 홍 전 위원장과 많은 이의 노력이 담긴 야구박물관은 2019년 초 완공 예정이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야구테마파크를 찾아가면, 주차장 옆으로 넓게 펼쳐진 야구박물관 건립 예정 지를 보게 된다. 야구박물관 용지는 아직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다. 바로 옆 '기장·현대차 드림볼파크'가 사회인 야구 경기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야구박물관은 부지만 마련했을 뿐 첫 삽을 뜨지 않은 상태다. 부산시의 입장 변화로 몇 차례나 건립 일정이 뒤로 미뤄졌고, 사업 규모도 애초 예정보다 줄어들었다.

 

하지만, 박물관에 전시할 각종 전시품과 기록물은 차곡차곡 수집을 거듭해 세상에 선보일 날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는 KBO(한국야구위원회) 사무실이 있는 서울 양재동 야구회관 건물 지하 수장고에 ‘KBO Archive Center’를 마련해 분류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2017년 3월 현재까지 수집한 물품만 5만여 점에 이른다. 

 

박물관 건립은 방대하고 까다로운 작업이다. 수많은 전시품을 일정한 기준 아래 분류해야 하고, 가치와 경중을 따져야 한다. 어떤 물품을 전시하고, 어떤 물품은 보관만 할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또 단순히 물품을 진열하는 차원을 넘어, 그 물품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정확한 정보를 함께 전달해야 비로소 ‘전시’란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다.

 

한국 야구사의 대부, 박물관 건립에 뛰어들다

 

KBO 건물 지하에 마련된 아카이브 센터 입구(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KBO 건물 지하에 마련된 아카이브 센터 입구(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랫동안 이 작업을 진행해온 이가 있다. 바로 홍순일 전 야구박물관 자료수집위원장이다. 

 

홍 전 위원장은 야구기자 출신의 원로 야구인이다. 1971년 ‘낚시춘추’ 편집장을 시작으로 일간스포츠-주간스포츠-주간야구 등을 거치며 스포츠 전문기자로 현장을 누볐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엔 야구기자로 활약하며 한국 야구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함께 했다.

 

1997년 문화일보를 끝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뒤엔, 빈약한 한국야구 기록을 보존하고 정리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직접 한국야구 기록물을 수집하고 자료를 정리해 ‘한국야구인 인명사전’과 ‘한국 야구사’, ‘한국 야구사 연표’를 편찬했다. 

 

2001년 출간한 한국야구인 인명사전은 1천 327페이지에 6만700명에 달하는 야구인의 소개가 실린 역작이다. 또한 ‘한국 야구사 연표’는 야구가 처음 전래한 1896년부터 1979년까지, 한국 야구사를 연대순으로 정리한 독보적 저술물이다. 

 

홍 전 위원장은 천생 기자다. 직접 발로 뛰어 현장을 찾아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 듣고, 사람을 만나면서 얻은 정보의 가치를 아는 이다. 인터넷 서핑한 정보를 취합해 '전문가' 행세를 하는 세태를 볼 때 홍 위원장은 '천생 기자'란 표현이 아깝지 않은 이다.

 

지금도 그렇다. 그는 전국을 쉼 없이 누비며 야구인들을 만나고, 그들과 직접 대면해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확인한 정보만 기록으로 남긴다. 사재를 터는 건 물론이다. 

 

“야구인 인명사전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돈이 나올 곳이 없었어요. 퇴직금은 고스란히 아내 통장으로 들어간 터였고. 그러다 몇 년 뒤에 나올 국민연금이 생각나더군요. 냉큼 공단에 찾아가서 중도 환급을 신청했어요. 그 돈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책을 만들었죠.” 홍 전 위원장의 말이다. 

 

“나중에 아내가 알고 나서부턴 연금의 '연자'도 꺼내지 못하게 하더라고(웃음).” 뭐든 제대로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홍 전 위원장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여러 굵직한 목표를 완수한 홍 전 위원장에게 2012년부터는 '야구 박물관'이란 새로운 사명이 주어졌다. KBO는 2011년  구본능 총재 취임 이후 야구 박물관과 명예의 전당 건립 사업에 본격적인 박차를 가했다. 이 임무를 수행하기에 한국 야구사와 기록물의 산증인인 홍 전 위원장만 한 적임자도 없었다. 

 

2012년 3월 KBO와 대한야구협회(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전신)는 홍 전 위원장을 축으로 이상일 총재 특별보좌역, 원로야구인 하일, 윤정현 대한야구협회 전무이사가 위원으로 참여하는 야구박물관 자료수집위원회를 발족했다. 

 

야구회관 4층에 작은 사무실이 생겼고, 지하에는 수장고가 마련됐다. 수집위원들의 활동비와 차량 지원도 어렵게 확보했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야구 사료와 진귀한 수집품, 기념물이 하나둘씩 KBO 지하 수장고로 모여들었다.

 

홍 전 위원장은 야구 박물관 준비 과정에서도 직접 발로 뛰는 자세를 견지했다. 전국의 야구인들과 작고한 야구인의 유족들, 개인 수집가를 찾아다니며 기증을 호소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두 번 세 번도 찾아갔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단번에 흔쾌히 수집품을 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본인은 동의하는데 가족이 반대해 기증을 받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작은 기념품부터 소소한 기록지 하나까지 전부 보관해둔 이도 있지만, 사진 한 두 장을 제외하곤 아무 자료도 남겨두지 않은 야구인도 있었다.

 

“전화로만 부탁해서는 소장품을 기증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먼 길이라도 직접 찾아가 만나서 이야기해야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홍순일 전 위원장의 말이다. “또 찾아가면 빈손으로 찾아갈 수 있나. 과일이라도 하나 사 들고 가서,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해야지. 같이 이런저런 옛이야기도 하고, 추억을 더듬다 보면 거기서 또 새로운 정보를 얻고 이야깃거리가 생긴단 말이에요.” 홍 전 위원장이 직접 차를 몰고 전국을 누빌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금 KBO 수장고에 모인 5만여 점의 소중한 소장품과 기록물에는 5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국을 뛰어다닌 홍 전 위원장과 자료수집위원들의 땀과 노력이 배어 있다.

 

“한국야구 역사 정리는 내게 주어진 사명”

 

홍순일 전 위원장이 옛 사진과 야구연표를 대조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홍순일 전 위원장이 옛 사진과 야구연표를 대조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기자와 만난 1월 18일에도 홍 전 위원장은 충청남도 당진까지 왕복 4시간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초대 감독을 지낸 배성서 씨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 확인할 게 있어요.” 

 

홍 전 위원장은 목표지인 당진에 도착할 때까지 쉼 없이 달렸다. 잠시 휴게소에 들르는 시간조차 아까운 듯 보였다. 젊은 사람도 1시간 이상 쉬지 않고 장거리 운전을 하기는 힘이 부친다. 하지만, 칠순을 훌쩍 넘긴 홍 전 위원장은 자세조차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부산까지 갈 때도 이렇게 한 번에 다녀옵니다.” 홍 전 위원장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두 시간 조금 넘게 달려서 도착한 당진시 외곽의 한 마을. 인적 드문 마을회관 앞에는 이제 머리가 허옇게 센 노 감독이 나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원로 야구인이 손을 맞잡았다. “오랜만이오, 배형.” “먼 길 오셨네.”

 

1980년대 초 젊은 야구기자와 대학야구의 ‘호랑이’ 감독으로 처음 만난 이래 벌써 30년 넘게 세월이 흘렀다. 이제 칠순 노인이 돼 서로를 마주했다. 마을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홍 전 위원장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큰 인쇄지에 출력한 여러 장의 흑백 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1960~70년대 실업야구를 주름잡은 스타들의 젊은 시절 모습이 가득했다.

 

젊은 기자와 호랑이 감독에서, 30년이 지나 이제는 원로 야구인이 되어 다시 만난 홍순일 전 위원장과 배성서 전 빙그레 감독(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젊은 기자와 호랑이 감독에서, 30년이 지나 이제는 원로 야구인이 되어 다시 만난 홍순일 전 위원장과 배성서 전 빙그레 감독(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감독님, 오늘 제가 찾아온 건 여기 단체 사진에 있는 분들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몇몇 분은 확인했는데, 도무지 모르겠는 분들이 있어서. 감독님이 그때 선수로 함께 뛰었으니까 아실 거 같아서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같이 사진 보면서 기억 좀 더듬어 봅시다.” 홍 전 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야구 박물관에 전시할 물품 가운덴 야구인들이 기증한 옛 사진이 많다. 많은 야구인이 국가대표 시절, 실업야구 시절, 프로야구 선수 시절 찍은 사진을 낡은 앨범에서 꺼내어 제공했다. 또 왕년의 사진기자와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기증받아 보관해둔 것도 많다. 

 

개중엔 사진 주인공이 누군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사진도 있다. 하지만, 대개는 언제 어디서 누가 찍었는지, 사진에 나온 사람들이 누군지 정확히 분간하기 어렵다. 박물관에 전시하려면 정확한 촬영날짜와 장소, 사진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래야 전시품으로서 역사성과 의미가 생긴다. 홍 전 위원장은 이 방대한 작업을 거의 혼자서, 전국 야구인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해왔다.

 

배성서 : “어디 봅시다. 여기 이게 나 같은데. 그 앞에는 단장을 맡은 김종락 씨고… 그리고 여기는, 매니저였던가? 아닌가? 기억이 가물가물해.”

홍순일 : “주무 아닌가? 매니저 본.”

배성서 : “아, 맞네! 주무 이윤영이네. 맞아, 그 사람이야.”

홍순일 : “기억력 여전하시네. 그럼 여기 이 사람은? 혹시 기억나오?”

배성서 : “조정일이네. 나랑 같이 포수를 본.”

홍순일 : “여기 이 분은 돌아가셨고, 이쪽에 이 분은 누구신가?”

배성서 : “아, 이 사람은 잘 모르겠는데. 기억이 안 나. 경기에 거의 나오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얼굴은 기억이 나는데 이름을 잘 모르겠어. 아마 아무개한테 물어보면 알 것도 같은데.”

홍순일 : “그럼 내가 그 형한테 가서 물어봐야겠네. 그 형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모르겠네.”

 

사진 속 인물 찾기 작업은 대개 이런 식으로 진행됐다. 야구인을 찾아가 사진을 함께 보고, 야구 연표 및 각종 기록과 일일이 대조해 가며 당시의 기억을 되살린다. 사진 속 인물이 누군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야구 실력은 어느 정도였는지, 그 당시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뭐가 있는지. 

 

흐릿했던 기억을 창고에서 꺼내어 먼지를 털고, 닦고 문질러 본래의 형체를 되찾게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오랜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기록물에 담긴 야구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중간중간 빈 공간은 홍 전 위원장이 다시 발로 뛰면서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채운다. 

 

배 전 감독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홍 전 위원장에게 “옛날 야구의 재미있는 뒷얘기가 담긴 대중적인 책을 낼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홍 전 위원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내가 할 일은 한국야구 역사를 보다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야구계에 남기는 거다.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홍 전 위원장의 신념은 확고했다.

 

박물관, 필멸을 불멸로 만드는 곳

 

2012년 처음 생길 당시의 야구박물관 수장고(사진=KBO). 2012년 처음 생길 당시의 야구박물관 수장고(사진=KBO).

 

2017년 1월 야구박물관 수장고의 달라진 모습(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2017년 1월 야구박물관 수장고의 달라진 모습(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쉼 없이 전국을 누빈 홍 전 위원장의 수집 작업은 1월 31일 자로 마침표를 찍었다. “KBO에서 수집위원회 활동을 종료하라는 연락이 왔다. 수집위원으로서 활동은 1월까지가 마지막이다.” 홍 전 위원장이 담담하게 말했다. “오히려 홀가분하다. 이제는 그간 박물관 작업을 하느라 마무리를 못 한 1970년대 이후 야구사 연표 작업을 마저 끝낼 계획이다. 앞으로는 야구박물관 업무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홍 전 위원장의 말이다. 

 

야구박물관 업무를 담당하는 KBO 기획팀 강민호 팀장은 “올해부터 야구박물관 건설 작업이 본격화되는 만큼 박물관 준비위원회 조직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수집위의 노력으로 그간 많은 수집품이 KBO 수장고에 모였다. 이제는 이 수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조직도 필요하고, 박물관의 실질적 운영을 맡을 조직도 구성해야 한다. 또 박물관 자문위원회, 8월 23일 '야구의 날'을 맞아 발족할 명예의 전당 헌액 준비위원회도 출범할 예정이다." 강 팀장의 말이다.

 

KBO의 야구박물관 건립은 현재 부산시에서 기술 심사 단계를 거치는 중이다. 이 절차가 끝나면 KBO는 부산시와 협의 과정을 거친 뒤 야구박물관 조직을 확장하는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후 실시설계 공모와 예산 심사, 준비 기간을 거쳐 2018년 착공, 늦어도 2019년 초까지는 야구팬들 앞에 선을 보인다는 계획이다. 

 

"기획팀이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업무도 맡고 있어 한동안 야구박물관 관련 작업이 멈춘 상태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야구박물관 건립 준비에 돌입할 예정이다. 2019년에 선을 보인다는 원래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 강 팀장의 말이다. 물론 야구박물관 사업이 여러 차례 지연된 점을 감안하면, 이 계획대로 진행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야구계에선 부산시와 KBO가 야구박물관을 처음 추진할 때처럼 강한 의지를 보여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박물관은 필멸의 존재인 인간에 불멸의 생명을 부여하는 공간이다. 한국야구 120년사를 수놓은 수많은 스타의 땀과 눈물, 그리고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야구 박물관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고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그곳에서는 홍 전 위원장을 비롯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국을 누비며 자료를 모으고 기록을 정리한 이들의 땀과 열정도 오래도록 살아 숨 쉬게 될 것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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