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수 LG 트윈스 투수코치(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강상수 LG 트윈스 투수코치(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엠스플뉴스=애리조나]

새롭게 떠오른 ‘마운드 왕국’ LG 트윈스를 설명할 때 강상수 투수코치의 이름을 뺀다는 건 경주마를 논할 때 기수를 빼놓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만큼 LG 마운드에서 강 코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선수, 양상문 감독 다음으로 크다. 물론 강 코치는 이런 평가를 접할 때마다 손을 내저으며 “절대 아니다”라고 겸손해 하게 마련이다.

강 코치는 부산고, 고려대를 거쳐 ‘1994 신인 지명회의’에서 롯데 자이언츠에 1차 지명됐다. 대학 시절까지 주로 타자로 뛰었던 강 코치는 롯데 입단 후, 투수로 전향했다. 1994년 프로 데뷔해 7승 6패 평균자책 3.56의 좋은 성적을 거둔 강 코치는 한때 롯데 마무리 투수로 뛰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롯데맨’ 강 코치가 ‘LG맨’이 된 건 2005년부터였다. 그해 강 코치는 LG로 트레이드됐고, 2006년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은퇴했다. 은퇴 뒤 그는 LG 스카우트로 변신해 ‘제2의 야구인생’을 살았다.

스카우트 당시 강 코치는 남다른 열정과 예리한 분석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LG에서 활약한 외국인 투수 벤자민 주키치를 발굴한 것도 다름 아닌 강 코치였다.

본격적인 코치 생활은 2012년부터 시작했다. 강 코치는 2015년까지 차명석 코치와 함께한 'LG 마운드 재건'에 나섰고, 마침내 2015년 LG를 KBO리그 팀 평균자책 1위(4.64)로 이끌었다. 지난해는 차 코치가 LG를 떠나면서 실질적인 ‘LG 마운드의 기획자’로 전면에 나서게 됐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LG 마운드는 후반기 강한 집중력을 발휘하며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양상문 LG 감독이 2016년 후반기 선전 비결로 ‘젊은 투수들의 분전’과 ‘강상수 코치’를 꼽는 건 그래서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강 코치는 LG 투수들로부터 “멘토” 소릴 듣고 있다. LG 미래를 이끌 젊은 투수 대부분은 강 코치와 수년간 신뢰를 쌓으며 성장해온 이들이다.

LG 마운드의 부활과 역습을 이끈 강상수 코치를 ‘엠스플뉴스’가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강상수의 솔직한 생각 “매직은 없다. 신뢰가 LG 마운드를 키웠다.”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강상수 코치가 선수들의 캐치볼 훈련을 지켜보는 장면(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강상수 코치가 선수들의 캐치볼 훈련을 지켜보는 장면(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LG 팬들 가운데 강 코치를 가리켜 ‘강상수 매직’이라고 하는 이가 적지 않다. 단도직입으로 묻겠다. ‘강상수 매직’의 비결이 뭔가.

매직? 그런 거 없다. (쑥스러운 듯 웃으며) 다시 말하지만, 정말 그런 거 없다. 양상문 감독님이 지금의 투수진을 기획하시고, 투수들이 잘 던진 것일 뿐 난 한 일이 없다.

많은 LG 투수가 강 코치에게 강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캠프 초반 때 선수들에게 강조했던 게 있다.

그게 뭔가?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도 나를 절대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건 내 평생 신조다. 선수들에게도 늘 하는 얘기다. 난 자신의 능력을 믿는 우리 투수들을 믿을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 투수들 역시 자기들을 무한대 신뢰하는 날 믿는 게 아닐까 싶다.

지난해 연말 한 시상식에서 ‘코치상(賞)’을 받으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처음 LG 메인 투수코치를 맡고서 선수들에게 “나를 믿고 따라오라”고 했다. 그러자 선수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나?

?

“정말 코치님을 믿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때 내가 한 말이 “후회하지 않게 해주겠다. 너희가 날 믿도록 하겠다”였다. 시상식에서 “그 약속을 지키게 돼 기쁘다”는 수상 소감을 전했던 거 같다. (한참 생각한 뒤 혼잣말처럼) 맞다. 어쩌면 내가 말했던 ‘약속’이 신뢰를 뜻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신뢰?

양상문 감독님이 많은 선수의 컨디션이 좋아지길 기다릴 수 있었던 건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선수들과 ‘믿음’으로 관계를 끌어왔다. “내가 네가 더 좋아지도록 도와줄게. 나 한번 믿고 따라와라”라고 했을 때 선수들이 군소리 없이 날 믿고 따라와 줬다. 그렇게 수년간 나와 선수들 간에 신뢰가 쌓인 게 아닌가 싶다. ‘매직’이란 것의 실체를 굳이 따지자면 ‘믿음과 신뢰’라고 본다.

캠프에서 LG 투수들을 보니 그 어느 때보다 ‘똘똘’ 뭉쳐있는 느낌이다. 투수들 모두 자부심이 강하고, 투수 간 유대감 역시 상당히 탄탄해 보인다.

(손으로 유니폼 상의에 박힌 ‘트윈스’ 로고를 가리키며) 가슴에 이 ‘트윈스’라는 마크가 박혀 있지 않나. 이 마크를 가슴에 달고 싶어도 평생 못 다는 선수가 많다. 야구선수 가운데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는 선수는 몇 안 된다. 그래서 늘 선수들에게 “'LG 트윈스 소속'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라”라고 이야기한다. 한 가지 중요한 게 더 있다.

뭔가?

잠시 전 말했던 믿음과 신뢰다. 충실히 과정을 밟을 때 자연스럽게 결과가 따라온다는 걸 선수들이 알게 되면서 서로 간에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 믿음이 퍼지면서 선수단 전체가 믿음을 공유하게 됐다. 우리 투수들이 유독 더 강한 유대감을 나타내는 것도 서로 간의 믿음과 신뢰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연구하는 지도자', 강상수

강상수 코치는 항상 선수들의 영상이나 자세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놓는다. 철저한 분석을 위해서다(사진=LG)
강상수 코치는 항상 선수들의 영상이나 자세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놓는다. 철저한 분석을 위해서다(사진=LG)

LG 불펜 투수코치로 부임하기 전 스카우트를 맡았다. 이때 외국인 투수 벤자민 주키치 영입 등 여러 성과를 냈다. 세밀한 전력분석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 야구계에선 대표적인 ‘공부하는 코치’로 알려졌다.

과찬이다. 며칠 전에도 투수들을 모아놓고 미팅했다. 2016시즌에 대한 리뷰였다. KBO(한국야구위원회) 홈페이지에 나오는 기록부터 전문 기록업체에서 제공하는 자료와 구단 데이터까지 필요한 자료와 데이터는 죄다 캠프에 들고 왔다. 그 자료를 선수들에게 나눠주면서 설명했다.

어떤 목적이었나.

무작정 ‘우리가 몇 위를 했으니까 자, 이렇게 하자’고 이야기하면 요즘 선수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자료를 보여주고, 수치로 확인해줘야 따른다. 객관적인 자료가 없는 상황에선 설득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데이터 활용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러려면 늘 공부해야 하고, 자료와 데이터를 숙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아직도 야구계에선 객관적 자료와 데이터보단 ‘감(感)에 의존하는 야구’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데이터 야구를 실행하려면 이러한 야구계의 경향을 극복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 혼자 변화를 추구한다고 결과가 나오진 않는다. 양상문 감독님, 경헌호 불펜코치, 또 전력분석팀이 함께 뭉쳐야만 결과를 낼 수 있다. 다행히 우리 팀은 그렇게 하고 있다.

2013년 LG 메인 투수코치 승격 이후 LG 마운드를 리그 상위권 수준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2016시즌 전반기는 위기였다(전반기 평균자책 5.40->후반기 평균자책 4.57).

지난 시즌 초반 내가 우리 팀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었을 거다. 의외의 투수들을 기용하기도 했고, 기존 선수들이 부진하면서 아주 혼쭐이 났다(웃음).

지난 시즌 초반 부진을 예상했나.

그랬다. 2016시즌 초반 투수들의 부진을 예상했던 이유가 있다. 모든 전력이 짜인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수 한 자릴 포함해 선발 로테이션이 두 곳이나 빈 상태였다. 당연히 연쇄적으로 투수진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됐다.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에도 데이비드 허프와 헨리 소사가 외국인 원투펀치를 이룬다. 이들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허프의 투구 능력은 이미 검증된 상태다. 풀타임을 잘 치르는 게 관건이다. 소사는 잘 알다시피 이닝이터다. 2016시즌 소사 기록을 다 뽑아서 확인했다. 지난해 평균자책(5.16)과 피안타율(0.319), 유주자시 실점률이 무척 높았다. 그 부분을 안정화하는 게 과제다. 소사와는 이와 관련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넥센 히어로즈에서 뛸 당시 넥센은 소사에게 ‘싱킹패스트볼 금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LG 유니폼을 입고선 싱킹패스트볼의 구사율이 다시 올랐다.

캠프에서 소사에게 다짐을 받았다. 싱킹패스트볼은 안 던지는 쪽으로(웃음). 본인은 효과적인 구종이라고 생각할테지만, 난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캠프 퍼즐, 5선발과 롱릴리프만 맞추면 된다.”

5선발 찾기는 LG 코칭스태프의 마지막 숙제다(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5선발 찾기는 LG 코칭스태프의 마지막 숙제다(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지금 걱정이 많은 편인가, 적은 편인가.

올 시즌은 적어도 선발 로테이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 같다. 좋은 선수를 데려 와준 구단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덕분에 훨씬 좋아졌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훨씬 좋아졌다’는 말인가.

양 감독님과 ‘한 시즌 전체적으로 몇 명의 투수를 운용할 수 있을지’ 상의하곤 했다. 올 시즌은 가용 투수자원이 훨씬 넓어졌다. 지난해만 해도 1군 투수 가용자원이 22명에서 24명 사이였는데 올 시즌엔 28명까지 나온다.

현 LG 투수진을 두산 베어스 투수진과 견주는 야구전문가가 꽤 된다.

글쎄. 두산은 2016시즌 선발투수 4명이 15승 이상 이상을 한 팀이다. KBO리그 최고의 선발진을 자랑한다. 반면 우리는 2016시즌 기준으로 허프가 반 시즌 정도를 뛰면서 7승을 올렸다. 풀타임으로 뛰었을 때 충분히 10승 이상을 기대할 수 있다. 소사, 류제국, 차우찬 등 10승을 거둘 투수들이다. 아직 두산과 견주기엔 섣부를지 몰라도 투수코치 입장에선 참 행복한 선발진임이 틀림없다.

선발 4명이 10승 이상을 거둔다는 것. 어떤 의미라고 보나.

선발 4명이 10승 이상을 한다는 건 팀 투수진이 크게 무너질 가능성이 적다는 뜻이다. 5선발 역시 마음의 부담이 덜하게 된다. 감독님께서도 5선발에게 그런 조언을 많이 하실 것으로 본다.

차우찬 한 명이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을 뿐인데, LG 선발진이 ‘확’ 달라져 보이는 이유가 뭘까.

야구에선 모든 포지션이 중요하겠지만, 그 가운데 선발진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선발진이 확실하면 불펜진에서 가용할 자원이 ‘확’ 늘어난다. 코칭스태프 입장에선 ‘운용의 묘’를 살릴 가능성 자체가 확 커지는 셈이다. 표면적으론 차우찬 한 명 가세지만, 그만큼 선발진이 탄탄해졌기에 불펜 운용 폭은 훨씬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면 ‘LG 선발진이 확 달라진 게 아니라 LG 투수진이 확 달라졌다’고 봐야 할 거다.

올 시즌 LG 마운드는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까(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올 시즌 LG 마운드는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까(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아직 LG 마운드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면, 그게 무엇이라 생각하나.

5선발과 롱릴리프 찾기다. 임찬규, 이준형, 김대현 같은 선수들이 경쟁하고 있다. 5선발도 5선발이지만, 5선발이 일찍 무너졌을 때 남은 이닝을 끌고 갈 롱릴리프 개념의 투수도 필요하다. 5선발과 롱릴리프를 같이 준비하는 게 지금 LG 마운드의 가장 큰 과제다. 현재 시점에선 임찬규가 5선발 경쟁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남은 캠프와 시범경기를 통해 감독님이 직접 5선발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기에 아직 확답하긴 이르다. 누가 5선발을 맡든 2, 3안을 늘 준비해둘 계획이다.

올 시즌 LG 투수진 운용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자 하는 게 있다면 그게 무엇일지 궁금하다.

(담담한 목소리로) 기다림이다. 조급함을 버리는 것이다. 사실 쉽진 않다. 그런 면에서 우리 감독님은 정말 대단하시다.

대단?

투수코치 입장에선 어떤 선수를 기용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양 감독님이 만류한 경우가 많다. 가령 컨디션이 좋지 않은 어떤 선수가 있다 칠 때 난 “하루면 괜찮아질 겁니다. 만약 이틀 정도 쉬면 더 좋아질 것 같습니다”라고 한다. 그럼 다른 감독님들은 “하루면 안 되겠어?”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감독님은 다르다. 일언지하에 “이틀은 무조건 푹 쉬게 하세요”라고 하신다.

말이 쉽지, 그런 뚝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고갤 끄덕이며) 맞다. 그때마다 ‘내가 감독이었다면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답은 ‘아니오’다. 믿고 기다려주는 부분에 있어선 우리 감독님이 최고인 것 같다. 덕분에 나 역시 참는 법을 배웠다.

당신의 ‘투수코치 철학’을 듣고 싶다.

투수가 자신의 공을 믿지 못하면 아무도 그 투수를 믿지 않는다. 그라운드의 모든 동료가 불안해진다. 설사 마음속에 불안감이 있어도 투수는 마운드에선 그 불안함을 감추는 ‘연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투수들에게 ‘포커페이스’를 자주 강조한다. 우리 LG 선수들이 많이 바뀐 게 그런 거다. 마지막으로 (잠시 숨을 몰아쉰 뒤) 투수는 자신과 자신의 공뿐만 아니라 ‘동료’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원익 기자 one2@mbcplus.com

스프링캠프 기간을 맞아 MBC SPORTS+와 엠스플뉴스는 [엠스플 in 캠프]란 이름으로 미국 애리조나, 투산, 플로리다와 호주 그리고 일본 오키나와, 미야자키 등 캠프 전역을 현장 취재합니다. [엠스플 in 캠프]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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