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선택한 새 외국인 거포 다린 러프(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삼성이 선택한 새 외국인 거포 다린 러프(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오키나와]

2월 21일 일본 오키나와 온나손 아카마 구장. 삼성 라이온즈 2차 스프링캠프가 진행되는 이곳에, 1차 캠프 때는 보이지 않던 거구의 미국인 타자가 나타났다. 193cm의 큰 체구에 새하얀 얼굴, 얼굴 가득한 갈색 수염과 회색 눈이 인상적인 선수, 바로 새 외국인 타자로 합류한 다린 러프다.

러프는 삼성 캠프에 합류한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마치 캠프 시작부터 함께 한 선수처럼 부지런히,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다.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몸을 풀고, 캐치볼을 하고, 1루 펑고를 받고, 타격 훈련까지 전부 소화한다. 코칭스태프가 ‘좀 천천히 해도 된다’고 했지만, 초반부터 강한 의욕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서 러프의 야구 인생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20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이너리그 최고의 거포로 우뚝 섰다. 2012년 8월에는 한 달 동안에만 무려 20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팀 내 주목받는 유망주로 올라섰다.

하지만 러프의 앞에는 언제나 라이언 하워드라는 큰 벽이 버티고 있었다. 시즌 중반 이후 메이저리그에 올라가 홈런을 펑펑 쳐내도, 다음 시즌이면 다시 마이너리그에서 시즌 개막을 맞이해야 했다. 2016년 하워드의 쇠퇴로 기회가 열리는 듯했지만, 그 자리는 러프 대신 외부에서 영입한 선수가 차지했다. 트레이드로 옮긴 팀 LA 다저스에도 1루수 애드리안 곤잘레스를 비롯해 막강한 경쟁자로 가득했다. 러프가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행을 선택한 결정적인 계기다.

미국 무대에서 러프는 불운했고, 충분한 기회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다린 러프는 지난 과거보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바라보는 선수였다. 러프는 지나간 일을 생각하며 가정하는 건 전혀 무의미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보다 새로 파란 유니폼을 입고 매일 경기에 나갈 기회를 받는 것에 감사한다고 했다. 팀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선수로서 계속 발전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새 소속팀 삼성에서 펼쳐질 밝은 미래를 꿈꾸는 ‘거포’ 다린 러프를 ‘엠스플뉴스’가 단독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일본 오키나와 현지 삼성 스프링캠프에서 진행됐다.

“오자마자 맹훈련 이유? 좋은 첫인상 주고 싶었다”

라이언 킹과 다린 러프(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라이언 킹과 다린 러프(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오키나와 캠프부터 삼성 라이온즈와 함께하고 있다. 팀에 합류한 뒤 어떤 첫인상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삼성에 와서 팀원이 체계적으로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인상을 받았다. 각자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잘 알고서, 즐거운 분위기 속에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오늘 보니 1루 수비 훈련을 엄청 열심히 하던데, 오자마자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 (웃음)

내가 그렇게 열심히 했나? (웃음) 다른 선수들도 다 자신의 100%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나도 열심히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은 그런데, 아직 준비가 부족한 것 같다. 좀 더 열심히 해서 따라잡아야 할 것 같다.

당신과 함께 1루에서 훈련한 선수(이승엽)가 한국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다. 알고 있었나.

아, 라이언 킹? 여기 오기 전에 들어본 적은 없지만 합류한 뒤에는 매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어디에서든지 자신이 속한 곳에서 최고인 이들은 누구나 마땅히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한수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수비와 배팅 훈련을 조금은 천천히 해도 된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자청해서 일찌감치 시작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선은 좋은 첫인상을 주고 싶었다. (웃음) 삼성에 처음 왔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이 하는 데 맞춰 열심히 하고 싶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서 선수로서도 성장하고, 팀도 도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라도 빨리 팀원들과 보조를 맞추고 싶었다.

메이저리거 다린 러프가 KBO에 온다는 얘길 들었을 때 ‘설마?’ 했다. 그런데 정말로 파란 유니폼을 입고 여기 앉아 있다. KBO리그 행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

먼저 내가 꾸준하게 경기에 나갈 수 있는 팀을 찾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그간 삼성이 계속해서 나를 영입하고 싶다는 연락을 취했다고 알고 있다. 에이전트와 소속팀이 계속 ‘No’라고 거절하긴 했지만, 삼성이 내게 공을 많이 들였다는 건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다저스로 팀을 옮긴 뒤, 이런저런 상황을 살펴본 결과 팀에서 내 입지가 불투명하다는 판단이 들었고 삼성의 제안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삼성이 여전히 나를 원하고 있었고, 나도 삼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내가 매일 경기에 뛰며 도움을 줄 수 있는 팀, 삼성을 선택하게 됐다.

비록 새 둥지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진 못했지만(주: 러프는 2016년 11월 트레이드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다저스로 이적했다), 계속 같은 파란색 유니폼을 입게 됐다. (웃음)

(활짝 웃으며) 정말 그렇다. 내 뉴밸런스 운동화, 장갑 등이 모두 삼성 유니폼 색과 ‘깔맞춤’이다. 하하하.

KBO리그에서 이전에 뛰었거나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로부터 어떤 조언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2014년 삼성에서 활약한 타일러 클로이드와 잘 아는 사이다. 같은 네브래스카 주 소속으로 고교 때부터 경기도 많이 해봤고, 필라델피아 있을 때도 함께 운동했던 선수다. 그 친구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는데, ‘예의’를 중요시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사람들에게 예의를 잘 지키라는 조언을 해줬다. 그리고 나 이외에도 올해만 필라델피아 40인 로스터에서 5명 정도가 일본프로야구와 한국야구에 진출했다. NC 제프 맨쉽도 아는 선수고 넥센 히어로즈에도 아는 선수가 있다. KBO리그에 아는 선수가 많아서 굉장히 좋다.

“학창 시절 만능 스포츠맨, 푸홀스가 롤모델이었다”

워밍업을 진행하고 있는 다린 러프(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워밍업을 진행하고 있는 다린 러프(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방금 얘기한 대로 미국 네브래스카 주 소재 오마하의 홈타운 보이로 자랐다. 거기서 태어나 고교와 대학까지 모두 나온 것으로 아는데, 고향 오마하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미소 지으며) 미국 중부에 있는 도시이고, 네브래스카 주에 속해 있다. 뭐랄까, 그곳은 작은 마을 같은 분위기다. 서로가 가족처럼 지내는 따뜻한 분위기다. 겨울이 굉장히 길고, 여름에는 또 아주 덥다는 게 특징이다. 참 좋은 곳이다.

당신은 그간 한 곳에 정착해 오랫동안 머무는 생활을 해 왔다. 오마하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나왔고, 필라델피아에 입단해서 8년 동안 쭉 빨간 유니폼만 입고 지냈다. 그래서 낯선 환경,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렇지 않을까.

일단, 고교 때는 나를 스카우트해준 대학이 크레이턴 대학 한 곳밖에 없어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웃음) 내 생활에 전혀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니다. 겨울에 베네수엘라에서도 야구를 해봤고, 도미니카 공화국에 가서도 야구를 해봤다. 또 나는 새로운 곳을 찾아 여행하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어쩌다 보니 한 곳과 한 팀에서 오래 머무는 생활이 되긴 했는데, 그래도 나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한국서도 잘할 자신이 있다.

삼성에도 기왕 왔으니 한 10년 머물면 되지 않을까. (웃음)

10년을 더 뛰면 라이언 킹(이승엽)처럼 되는 것 아닌가. (웃음)

이제 학창 시절 얘기를 잠깐 해 보자. 야구를 언제부터 사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좋은 질문이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6살부터 여러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다. 축구도 하고 미식축구, 농구, 야구를 모두 즐겼다. 그 가운데서도 미식축구, 농구, 야구는 고교 때까지 계속 선수로 뛰었다. 하지만 그 모든 운동 가운데서도 야구가 가장 좋았고,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하고 있다. (웃음)

만능 스포츠맨이었네. 그렇다면 종목별로 누굴 롤모델로 삼았는지도 궁금해지는데.

음, 미식축구에선 댈러스 카우보이스 쿼터백인 트로이 에이크만을 보며 자랐다. 농구에선 마이클 조던이고, 야구에서는 앨버트 푸홀스가 내 모델이었다.

푸홀스의 어떤 면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푸홀스는 정말로 굉장한 선수다. 푸홀스는 타격에서 파워도 뛰어나고, 정확성도 좋고, 아주 뛰어난 수비력까지 갖췄다. 그렇게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는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라는 점에서 배울 점이 많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라이언 하워드, 친한 친구이자 존경하는 선수”

다린 러프는 미국 무대에서 손꼽히는 거포 유망주였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다린 러프는 미국 무대에서 손꼽히는 거포 유망주였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2009 신인 드래프트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지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 해(2008년) 필리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팀에 입단하면서 굉장히 뿌듯하고 감격스러웠을 것 같은데, 어떤 기분이었나.

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그런 좋은 팀에 간다는 것 자체로 너무나 행복했다. 마이너리그에 합류해 선수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니, 경기하든 훈련을 하든 언제나 이길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비록 내가 메이저리그에 올라간 뒤에는 팀 성적이 좋지 않아서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경기장에 나갈 때는 언제나 자신감과 자부심이 있었다.

필리스 입단 뒤 3년 만인 2011년부터 미친 듯이 홈런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특히 2012년 8월에는 한 달 동안에만 무려 20개의 홈런을 때려낸 것으로 알고 있다. 와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나도 잘 모르겠다. (웃음)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타자 친화적인 구장에서 야구를 한 것도 있고, 그 당시 컨디션이 워낙 좋았던 것도 이유일 거다. 그때는 타격을 하면 파울도 거의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배트로 치면 치는 족족 정타로 맞았고, 좋은 타구가 나왔다. 그렇게 좋은 컨디션을 잘 유지할 수 있었던 게 비결이 아니었을까.

홈런을 잘 때리는 당신만의 비결 한 가지만 알려달라.

특별한 비결 같은 것은 없다. 만약 나한테 비결이 있었다면, 좀 더 꾸준하게 많은 홈런을 때려냈을 거다.( 웃음) 팀메이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치면 된다’ ‘저렇게 치면 된다’며 자기 비결을 얘기하곤 하던데, 나는 그런 게 없다. 그저 때려서 잘 맞히는 게 전부다.

필리스에 입단한 건 좋았지만, 막상 가서 보니 라이언 하워드라는 큰 산이 버티고 있었다. 물론 하워드에게 배운 점도 많겠지만, 한편으로는 앞길이 막혀 있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 같다. 답답하지 않았나.

라이언 하워드에겐 여러모로 배운 것도 많고 도움받은 것도 많다. 나와 굉장히 친한 친구 가운데 하나다. 물론 내가 실력으로 내 자리를 차지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대신에 라이언과 함께하면서 정말 야구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다. 라이언의 커리어와 실력과 그만의 루틴을 존중하고, 그에게서 배운 것에 대해 감사한다.

빅리그에서 꾸준한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없다. 2013년 좋은 활약을 하고도 다음 시즌을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하는 등 여러모로 운이 따르지 않았는데.

소속팀에 대해 불만을 가져본 적은 없다. 나는 지난 일을 돌아보면서, ‘이랬다면 어땠을까?’ 하고 후회하는 건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필리스에서 그런 과정을 다 거쳤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의 내 커리어에 충분히 만족하고, 내가 지나온 과정을 더 좋은 선수로 발전하기 위한 계기로 삼았다. 이제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건 보다 좋은 선수로 성장하고 계속 발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큰 기대를 받는 것, 난생처음이다”

러프는 1루 수비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러프는 1루 수비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미국에선 외야를 겸하기도 했지만, 삼성에선 주로 1루수로 나서게 될 전망이다. 1루 수비에 자신감은 있나.

그렇다. 내 수비력에 자신감이 있다. 내가 나온 크레이턴 대학교 야구부는 수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었다. 하루 두 시간을 훈련하면 그 가운데 한 시간을 수비에 투자할 정도였다. 수비에 느끼는 부담감은 전혀 없다. 삼성에 온 뒤에도 훈련을 열심히 따라가다 보니, 대학 때 만큼의 연습량을 소화하고 있더라. (웃음) 그때처럼 열심히 연습해서, 앞으로 더 좋은 수비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삼성은 지난 시즌 외국인 타자의 부진으로 팀 성적에 큰 타격을 입었다. 새로 영입한 당신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큰 기대를 받고 부담을 느끼는 상황은 난생처음이다. 대학에서나 메이저에서나 내가 지금처럼 주목받고 기대를 받는 선수였던 적이 없다. 아무튼, 어느 리그에서든 외국인 선수라면 야구를 잘해야 하는 게 당연하고, 좋은 타율과 성적을 기록하기를 원할 거다. 그런 결과를 낼 수 있게 야구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 내가 기대받는 선수가 됐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지금이 매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KBO리그에서 대성공을 거두고 메이저리그로 금의환향한 에릭 테임즈(밀워키)의 이야기도 들었을 것 같다. 당신도 테임즈처럼 되고 싶은 야망이 있나.

테임즈는 대학 시절 하계리그에서 함께 뛴 적이 있어, 잘 알고 지내는 선수다. 3년 전 한국에 와서 큰 성공을 거두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사례가 된 게 굉장히 보기 좋았다. 물론 나도 여기서 잘해서 성공하길 바라고, 나를 원하는 미국 구단이 나온다면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여기 삼성에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끝으로 올 시즌 삼성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들려달라.

야구는 개인 스포츠이자 팀 스포츠다. 개인 성적도 중요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 해야 하는 면도 분명 있다. 하지만 삼성에 와선 팀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팀이 이겨야 나도 잘 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경기할 것이다. 팀이 항상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힘을 보태고 싶다.

배지헌, 김원익 기자 jhpae117@mbcplus.com

스프링캠프 기간을 맞아 MBC SPORTS+와 엠스플뉴스는 [엠스플 in 캠프]란 이름으로 미국 애리조나, 투산, 플로리다와 호주 그리고 일본 오키나와, 미야자키 등 캠프 전역을 현장 취재합니다. [엠스플 in 캠프]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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