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2017년을 꿈꾸는 오주원(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건강한 2017년을 꿈꾸는 오주원(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오키나와]

넥센 히어로즈 오주원을 만나기 전, 크게 두 가지 이미지가 떠올랐다. 첫 번째는 노회한 베테랑 투수의 이미지다. 올해로 서른셋이 된 ‘젊은’ 투수지만, 오주원 하면 왠지 오랫동안 프로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이란 이미지가 있다.

19살 나이에 프로에 화려하게 데뷔해, 현대 왕조의 마지막 영광과 몰락, 새로 창단한 팀의 우여곡절을 모두 겪은 오주원이다. 달관에 이른 베테랑 선수란 이미지가 생긴 이유다.

다른 하나는 희귀병을 이겨낸 ‘인간승리’의 이미지다. 오주원은 2015년 1월 희귀병인 ‘강직성 척추염’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했다. 길고 힘든 싸움이었지만, 병마를 이겨내고 그해 여름 다시 마운드에 돌아왔다. 지난해는 3승 2세이브 7홀드를 기록하며, 제2의 전성기 문을 활짝 열었다.

‘엠스플뉴스’가 직접 만난 오주원은 만나기 전 생각한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 모든 일에 달관한 베테랑 투수와도, 인간승리 드라마 주인공과도 거리가 멀었다. 말과 행동에 프로 14년 차 베테랑다운 지혜와 품위가 가득했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과 도전 의식은 스무 살 신인 선수와 다르지 않았다.

또 오주원은 자신이 겪은 아픔이 일회성의 짠한 감동 스토리로 포장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보다는 건강하고 당당하게 마운드에서 힘찬 공을 뿌리는, 밝고 활력있는 야구 선수로 기억되길 원했다.

2017시즌 넥센 마운드에서 오주원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오주원은 넥센 불펜에서 가장 믿음직하고, 계산이 서는 좌완 투수다. 언제 어떤 상황에 내보내도 항상 자신의 몫을 해낸다. 아직 젊고 경험 없는 투수가 많은 넥센 선수단에서, 경험에서 나온 진심 어린 조언과 행동으로 후배들에 끼치는 영향도 크다.

건강한 몸과 새로운 마음으로 프로 데뷔 14번째 시즌을 준비하는 오주원을 ‘엠스플뉴스’가 인터뷰했다. 이 인터뷰는 넥센의 1차 스프링캠프 기간 미국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에서 진행됐다.

“2년 연속 스프링캠프 참가, 정말 오랜만이다”

오주원은 최근 들어 가장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오주원은 최근 들어 가장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혹시 이번 스프링캠프가 데뷔 이후 몇 번째인지 알고 있나.

총횟수는 잘 모르겠고, 최근 들어서는 그다지 자주 오질 못했다. 수술해서 못 오기도 하고, 계약을 못 해서 못 온 적도 있고, 아파서 못 오기도 하고… 2년 연속 캠프에 온 건 최근 들어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다면 스프링캠프가 좀 더 간절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근데 캠프에 못 갈 때도 나는 큰 의미를 두진 않았다. 한국에서 하든, 2군 캠프에 가든 어디서나 내가 해야 할 훈련을 했다. 캠프 오고 못 오고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올해는 2월 1일부터 스프링캠프가 시작됐다. 겨우내 어떻게 준비했나.

무리하지 않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전에는 비시즌 기간에 평소보다 연습도 더 많이 하고, 무리해서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리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했다. 대신 전지훈련 기간이 짧아졌기 때문에, 웨이트 트레이닝부터 캐치볼과 피칭까지 어느 정도 소화를 한 상태에서 캠프에 합류했다.

캠프 기간이 예년보다 짧아졌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우리 팀의 운동 스케쥴을 살펴본 사람은 알겠지만, 다른 팀과는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2월 1일부터 좀 늦게 시작해도 큰 문제는 없었던 것 같다. 우리 팀 훈련시간도 원체 짧지 않나. 물론 그걸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 선수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짧은 시간에 그만큼 더 집중해서 한다는 데 장점이 있다. 꼭 필요한 훈련만 체계적으로 하고, 부족한 부분은 선수들이 스스로 찾아서 하는 게 우리 팀 방식이다.

이런 얘기 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주원 하면 이상하게 베테랑 선수, 노장 선수 이미지가 있다.

왜 이러시나. 이제 겨우 서른셋이다. (웃음)

워낙 어릴 때 데뷔해서 오랫동안 활약하다 보니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신인 시절인 2004년 당시 스프링캠프를 지금 와서 떠올려 본다면,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

나뿐만 아니라 고참 선수라면 다들 공감할 거다. 지금 캠프와 그 시절 캠프는 많은 면에서 다른 것 같다. 내가 처음 캠프 가서 느낀 감정과, 요즘 신인 선수들이 느끼는 감정도 많이 다를 거다. 나 때는 선후배 위계질서도 강했고, 훈련도 너무 많았다. 워낙 정신없고 피곤해서 캠프에서 어떻게 보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지금은 어떤가.

이제는 선수들이 대부분 여유가 있다. 옛날식으로 하면 부상 위험도 크고, 다쳐서 고생하는 선수도 많을 텐데 이젠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시간 여유도 많고, 선배들도 후배들을 잘 챙겨주는 편이다.

오주원이 세부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

오주원은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이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오주원은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이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큰 병으로 고생한 뒤 마운드에 돌아와서 다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코치들의 얘길 들어보니, 오히려 아프기 전보다 몸 상태가 더 좋은 것 같다고 하더라. 본인이 느끼기엔 어떤가.

그런데 나는 항상 몸 관리는 잘 해왔다. (웃음) 누가 뭐라든 간에, 나 스스로는 관리를 잘했다고 자부한다. 야구 외의 다른 일로 다치거나 한 적도 없었고. 대신 이런저런 잔병치레를 많이 한 편인데, 이번에는 늘 겪던 잔병보다 좀 더 심각하게 느껴졌고, 실제로 훨씬 더 많은 고생을 했다. 그래도 치료를 잘 받고 돌아온 덕인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느껴지긴 한다.

지난 시즌 개인 기록을 보면 3승 2패 2세이브 7홀드 평균자책 4.41로 엄청나게 좋은 성적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표면적 기록 이상으로 팀 공헌도가 높았다는 게 코칭스태프와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난 시즌 투구 내용, 만족하나.

물론 겉으로 보이는 기록이 그렇게 좋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세부 기록을 살펴보면, 최근 몇 년을 통틀어 가장 좋은 수치를 올렸다. 시즌을 치르면서도 그런 부분을 염두에 뒀고, 승패 같은 기록보다는 세부 기록이 좋아졌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실제 작년 기록을 보면 9이닝당 탈삼진 7.06개로 데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9이닝당 볼넷도 3.00개로 2010년 이후 가장 적었다. 피안타율도 0.259로 좋았고 수비무관 평균자책(FIP)는 4.22로 통산 기록(4.77)보다 훨씬 좋은 수치를 기록했다. 승패보다 이런 수치가 중요하다는 건 마운드에서 경험을 통해 알게 되는 건가.

뭐가 더 중요한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눈에 보이는 기록도 중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표면적인 기록은 좋은데 세부 기록이 나빠졌다면, 한편으로는 그 선수의 페이스가 하락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반대로 표면적 기록은 그저 그래도 세부 기록이 좋다면 페이스가 좋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더 나은 성적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세부적인 기록이 좋아진 것을 의미 있게 여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록은 어떤 것인가.

일단 내가 던지는 구종별 피안타율이나 탈삼진율, 주자를 출루시킨 비율, 볼넷 허용 등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상세 기록이 있다.

이런 기록이 실제 투구하는데도 영향을 주나.

그렇다. 많이 참고하는 편이고, 공 던지는 데도 분명 영향을 준다.

넥센 선수들이 특히 세이버메트릭스나 야구 기록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게 우리 팀과 다른 팀의 차이점이다. 우리는 볼카운트에 따른 볼 배합보다는, 선수가 어떤 공을 던지면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오는지, 어떤 공이 피안타율이 높은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박승민 투수코치님과 전력분석팀이 항상 선수들과 이런 점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눈다. 이런 노력이 점차 자리를 잡아서인지, 지난 시즌 투수들 성적도 많이 좋아졌던 것 같다.

사실 프로 경기장 더그아웃에서 BABIP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것도 넥센 홈구장에서다.

내가 피칭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난 패스트볼을 연속 두 개 던졌으니 이번엔 변화구를 하나 던진다는 식으로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오히려 핀치 상황에 몰렸을 때는 내가 가장 자신 있게 생각하는 공을 던진다. 그래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괜히 머리 쓴다고 자신 있는 공이 아닌 다른 공으로 가면, 꼭 그 공이 얻어맞더라. 물론 한 경기만 떼어놓고 보면 실패하는 날도 있겠지만, 한 시즌을 길게 보면 그게 정답이더라.

“지금은 우리 팀이 우승으로 가는 과정이다”

넥센 스프링캠프 불펜 뒤편에 붙은 플래카드(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넥센 스프링캠프 불펜 뒤편에 붙은 플래카드(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올 시즌을 앞두고 감독을 비롯해 투수코치 등 코칭스태프가 대대적으로 바뀌었다. 투수들이 느끼는 변화는 어떤 게 있나.

글쎄, 변화라. 내 생각엔 우리 팀은 컨셉 자체가 다른 팀과 전혀 다른 것 같다. 그래선지 이전 코칭스태프나 감독님 계실 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훈련 스케쥴도, 선수들을 대하고 관리하는 방식도, 다 우리 팀이 가진 매뉴얼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외부에서는 코칭스태프가 큰 폭으로 바뀌었다고 우려도 하는데, 실제 선수들이 느끼는 건 다른가 보다.

우리 팀만의 매뉴얼이 우수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물론 아직 우승은 못 했지만, 어쨌든 계속 좋은 성적이 나고 있지 않나. 우리가 가는 방향이 결코 틀렸다고 생각지 않는다. 외부에서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우리 선수들이나 코치진이나 직원들은 모두 만족하고 있다.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생각한다.

우승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마지막 기쁨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매년 탈락할 때마다 아쉬움이 점점 더 커질 것 같다.

야구는 결국 확률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4강에 올라가고 상위권 싸움을 하는 팀이 우승할 확률이 더 높다고 본다. 계속 7등, 8등 하던 팀이 갑자기 올라가서 우승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고, 우리 팀은 지금 우승으로 가는 과정 중이라고 본다. 몇 년 전 한국시리즈에 올라가서 준우승을 하긴 했지만, 그런 것도 다 우리들에게는 경험이다. 같은 찬스가 또 생기면 그 전 같은 실수는 안 할 것 아닌가.

올 시즌도 찬스 아닌가. 부상자 복귀와 외국인 투수 등 전체적인 전력이 아주 좋아 보인다.

특정 선수가 있든 없든 우리는 항상 잘 해왔고, 외부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넘어섰던 팀이다. 그래서 반대로 생각하면, 어떤 선수들이 돌아온다고 해서 갑자기 전력이 확 상승한다고 볼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복귀할 선수들이 플러스 요인인 건 사실이고, 좋은 선수들이기 때문에 투수 쪽에서 작년보다는 나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크다. 공격이야 우리 타자들이 워낙 좋으니… 운때만 좀 맞으면 작년보다 더 좋은 성적이 나지 않을까. 기대는 하고 있다.

젊은 투수들이 많은 팀인데, 베테랑으로서 해야 할 역할도 있을 것 같다.

역할이라… 특별한 역할보다는, 1군에서 내게 어떤 임무가 주어지든 나가서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 할 일을 잘하면 분명 어떻게든 팀에 도움이 되더라. 작년에도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 나가서 열심히 던지다 보니, 점점 점수 차가 좁혀진 경험이 있다. 또 점수 차가 타이트한 상황에 나가서 잘 막으면 그것도 당연히 팀에 도움이 되고. 결론은 내가 어떤 역할이든 마운드에서 잘하면 팀에 기여할 수 있다는 거다.

아무래도 사람이다 보니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승패가 갈린 경기는 의욕이 나지 않을 수 있는데. 오주원은 좀 다른가.

어린 투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게 다 자기 기록이라고. 물론 점수 차가 크면 팬들도 그렇고, 더그아웃 선수들도 집중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던지는 사람만큼은 집중해야 한다는 거다. 그게 다 내 성적이고, 남들이 보기에 내 실력이 된다. 점수 차 클 때 나가서 대량실점했다고 남들이 그런 상황까지 다 이해하는 건 아니지 않나. 결과는 다 자기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항상 최선을 다하라고 얘기하는 편이다.

결국 모든 팀이 1년에 1000이닝을 채워야 정규시즌이 끝난다. 투수마다 등판하는 상황이 다를 뿐이지, 그 이닝을 채우는 역할을 한다는 점은 똑같다.

역할의 차이는 있지만, 팀에서 중요하지 않은 선수는 없다고 본다. 다들 잘해줘야 팀도 잘 될 수 있다. 조연들이 잘해줘야 주연들이 사는 것이기도 하고.

“결코 질 것 같지 않던 현대 시절, 넥센도 그런 강팀 됐으면”

2016시즌 팀 공헌도가 컸던 오주원(사진=넥센).
2016시즌 팀 공헌도가 컸던 오주원(사진=넥센).

현대 유니콘스 왕조의 마지막을 함께 한 생존자다. 현대가 마지막 우승을 차지한 2004년에 프로에 데뷔해 최우수신인상을 수상했다. 그 시절부터 함께 한 멤버들과 모이면, 이런저런 할 얘기가 많을 것 같다.

그 시절 멤버가 몇 명 있는데, 솔직히 옛날얘기는 잘 안 하는 것 같다. (웃음) 가끔 재미 삼아 추억을 나누긴 하지만, 그보단 요즘 얘기, 현재 상황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는 편이다.

그래도 현대 시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을 텐데.

그때는 내가 엄청 어렸다. 그래도 경기를 하다 보면, 지고 있어도 절대 우리 팀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항상 역전해서 이기고, 쫓아가고, 결국엔 이기곤 했다. 그런 게 진짜 강팀이라 생각했다. 지금 우리 팀도 그런 강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구도 쉽게 여기지 않는, 그런 진짜 강팀.

넥센이란 팀의 영광과 긴 암흑의 터널, 그리고 다시 부흥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했다. 팀이 어려운 상황일 때는, 마음고생도 많았을 것 같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서 웃으며 얘기하지만, 그때는 모두가 힘들었다. 성적도 최하위였고 구단도 어렵고, 그러다 보니 선수들이 더 분발해서 열심히 운동했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구단도, 구단 직원들도 다 함께 분발했다. 여기 있는 직원들 다 오랫동안 봐 온 분들이고, 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이다.

넥센은 선수들과 구단 직원들 사이에서 끈끈한 정이 느껴진다.

사실 예전에는 팀에 속해 있어도 직원들이 누군지는 잘 몰랐다. 그런데 지금 우리 팀은 구성원들이 다 가깝다 보니, 선수와 직원들 간에도 친분이 있다. 그 힘으로 어려움을 헤치고 함께 가고 있는 게 아닐까.

넥센이라는 팀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것 같다.

좋은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 것 같다. 강팀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자꾸 의심하는 것보다 좋지 않나.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믿는다. 선수 누가 빠지면 어때, 우리가 더 잘하면 되지. 이런 식이다. 그런 경험을 워낙 많이 해봐서 그런가. 선수 하나가 빠지면, 꼭 누군가 나타나서 그 선수만큼 해주더라. 그래서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다.

새로운 영웅이 등장해 위기의 팀을 구하는 시나리오는, 지난 시즌이 절정이었다.

팀 후배들 가운데 좋은 선수가 워낙 많다.

다른 팀에선 넥센은 어떻게 저런 좋은 선수가 자꾸 나오냐는 말도 한다.

선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거다. 이를테면 강정호가 야구 잘해서 미국에 가긴 했지만, 계속 한국에 남아 있었다면 김하성이라는 선수는 지금 자리에 없었을 수도 있다. 좋은 선수지만 기회를 못 받아서 도태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나. 아무래도 우리 팀이 다른 팀보다 캐치를 잘해 내는 것 같다. 선수가 빠져도 대체할 선수를 찾아내고, 기회를 주는 점에서 말이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팀이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

그렇게 새로운 선수가 한 명씩 늘다 보면, 결국엔 팀에 잘하는 선수가 많아지는 것 아닌가. 주전이나 백업이나 좋은 선수가 많아지고. 그게 강팀 아닐까 생각한다.

“야구가 좋아진 지 채 5년도 되지 않았다”

베테랑 투수는 어깨가 무겁다(사진=넥센).
베테랑 투수는 어깨가 무겁다(사진=넥센).

다시 또 옛날얘기다. 2004년 신인왕을 수상한 뒤 굴곡이 참 많았다.

그러게, 참 많았다.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내며, 야구가 싫어지거나 지겨운 적은 없었나.

오히려 예전 어릴 때, 성적이 좋았을 때는 야구가 좋은지 잘 몰랐다. 그때는 잘 몰랐다. 힘든 일을 겪다 보니, 오히려 그때부터 야구가 좋아지더라.

그런가.

사람들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직업으로 하다 보니까 그 일이 좋아지는 예도 있다. 전자의 경우를 축복받았다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엔 후자 쪽에 가까웠다. 하다 보니까 야구가 좋아졌다. 내가 하는 이 일을 정말로 좋아하게 됐다. 이제 더 잘하는 일만 남았다.

참 의외다. 대부분은 좋아서 시작했다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 반대라니.

야구를 정말로 좋아하기 시작한 게 불과 5년밖에 안 됐다. (웃음) 난 어릴 때부터 운동 실력이 특별하지도 않았고, 재능이 있다고 생각지도 않았다. 고교 2, 3학년 때 갑자기 성적이 나면서 ‘어, 어’ 하다 보니 프로에 들어왔다. 그때는 야구가 왜 좋은지 잘 몰랐다.

그럼 최근에 와서 야구가 좋아진 이유는 뭔가.

이전엔 내가 야구를 잘하든 못하든 항상 그라운드에 있었다. 1군이든 2군이든. 그런데 몸이 아프고, 아예 바깥에서 야구를 보게 되니까,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열이 받더라. 나도 선수인데. 야구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솟아올랐다. 그때부터 내가 야구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큰 생각 없이 하는 야구였지만, 마음 한쪽에는 운동선수 특유의 승부욕이 항상 있었던 모양이다. 그걸 깨닫기까지 좀 오래 걸렸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야구를 20년 넘게 했는데 이제 알았으니.

처음에 좋은 성적을 낸 선수가 부진에 빠지면, 온갖 비판과 비난이 쏟아진다. 오해를 받기도 한다. 신인왕 이후 굴곡을 겪는 동안에 마음고생이 컸을 것 같다.

사람들의 온갖 소문과 말이 사방에서 쏟아지다 보면, 선수가 스스로 좌절을 하게 되는 게 문제다. 나는 예전엔 이랬는데, 지금은 왜 이 모양일까. 그러다 보면 야구를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선지 잘하던 선수가 한번 추락하고 나면 다시 못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정말 그렇다.

물론 그런 선수들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내 경우엔, 그들보다는 좀 더 긍정적인 성격을 갖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내가 야구를 잘해봐야 고작 1년 잘한 거 아닌가. 첫해 반짝 잘하고 이후에는 ‘평타’ 유지하는 정도였으니까.

선수마다 다 자신만의 야구가 있다. 나중에 꽃이 피는 선수도 있고, 일찍 피웠다 빨리 지는 선수도 있고, 오랫동안 꾸준하게 하는 선수도 있고. 하지만 사람들은 잠깐의 성적만을 보고 비판을 쏟아내는 경우가 많다. 아쉬운 일이다.

물론 아쉽다. 아쉽긴 하지만, 어차피 선수를 말해주는 게 성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내가 성적이 나쁠 때 팬들이 내게 욕을 해도, 그냥 받아들이는 편이다. 뭐 내가 야구 못하는데 돈 주고 야구 보러 와서 욕할 수도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고 만다.

도가 지나친 사람도 많을 텐데.

지나친 사람도 있긴 한데… 한번은 그런 적도 있다. 경기 끝난 뒤 야구장 밖에서 싫은 소리를 하는 분들이 있다. 내가 어린 선수였으면 그 때문에 상처를 입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그냥 ‘죄송합니다, 잘하겠습니다’ 하고 돌아선다.

그간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야구를 놓지 않은 원동력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나 자신을 믿었던 것 같다. 물론 특출한 성적을 낸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몸만 안 아프고 내 공만 던질 수 있으면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나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힘으로 계속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제는 오주원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달라졌다. 뭐랄까, 인간승리의 아이콘이 된 듯한 느낌이다.

(손사래를 치며) 아이고,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다. 내가 그런 걸 되게 싫어하는 타입이다. 짠한 스토리, 인간극장, 그런 거 있지 않나. 그런 건 그냥 일시적인 이슈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선수가 불쌍한 이미지가 되니까. 누군 짠해지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닌데. 나보다 더 굴곡 심한 사람도 많고, 다들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는 거다. 내가 겪은 어려움도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다. 오늘 아프면 내일 괜찮겠지 하고 마는 편이다.

공교롭게도 넥센 팀 내에는 당신 외에도 이름을 바꾼 선수가 꽤 많다. 심지어 투수코치조차도 이름을 바꾼 케이스다. 실제로 이게 선수에게 도움이 되는지 궁금하다.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나는 거짓말 안 보태고 어머니가 바꿔서 오주원이 된 케이스다. 물론 말씀은 하셨다. 이런 이름들이 있는데, 이걸로 바꾸려고 한다. 법원에 가서 신청할 거다. 그래서 맘대로 하시라고 했더니, 정말로 가서 바꾸셨더라. (웃음) 그러니까 난 야구를 잘하고 싶어서 개명한 사례에 속하진 않는다.

물론 다른 선수들은 좀 더 절박한 이유에서 그랬을 테지만.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잘하고 싶을 거다. 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 서장훈이 이야기하는 걸 봤는데, 자기는 그날 경기에 지면 그날 입은 유니폼을 버린다고 하더라. 실제 프로에 그런 선수가 많다. 나도 새 스파이크 신고 등판했는데 경기가 맘대로 안 풀리고 성적이 안 좋으면, 그 신발 다시 못 신는다. 버리고 만다. 그렇게라도 잘하고 싶은 게 선수 마음이다. 후배들도 그런 마음으로 이름을 바꿨을 거다. 물론 나야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좀 무딘 편이라 그런지, ‘내가 잘하면 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현대 시절부터 응원해준 팬들, 그분들 때문에라도 더 잘하고 싶다”

프로에서 10년 넘게 뛰었는데 아직도 30대 초반이다. 아직도 뛸 날이 한참 남았다.

우리 팀은 내 위에 형들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다들 나이보다 많게 보더라. (웃음)

앞으로 남은 날들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

음, 운동선수니까 다 마찬가지 아닐까.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내가 그동안 성적 면에서 큰 임팩트 없이 커리어를 쌓아 왔는데, 이제는 좀 잘하고 싶다. 몇 살까지 야구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안에 꼭 한 번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

스스로 만족하는 차원을 넘어, 남이 보기에도 괜찮은 성적 말인가.

나 스스로 만족할 정도면, 남들도 다 인정해 주지 않을까. (웃음)

현대 유니콘스 시절부터 오주원을 응원하는 팬들이 꽤 많다.

나도 아는 분이 몇 분 있다. 나 어릴 때부터 응원해준 분들이.

그 팬들은 다른 선수보다 오주원에 대한 마음이 특히 각별한 것 같다. SNS에 사진을 올려도 ‘우리 오주원 선수, 아프지 않길’ 같은 글귀로 마치 어머니나 누나처럼 글을 올리곤 한다.

내가 정말로 짠한가 보다. (웃음)

그런 팬들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드나.

고맙지. 내가 특별히 잘하는 선수도 아닌데,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응원을 해 주고 찾아 준다는 게. 항상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분들 때문에라도 내가 더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적도 많다.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게, 오글거리는 거 정말 싫어하는 성격인가보다.

난 좀 그런 거는… (웃음) 원래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편이다.

시즌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시즌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부상 방지다. 우리 팀이 캠프 기간 내내 강조하는 것도 부상 방지, 부상 방지, 부상 방지다. 다치면 모든 게 소용없다. 안 다치고 1년을 잘 보내는 게 제일 큰 목표다. 작년보다 나은 성적은 두 번째다.

야구선수 오주원이 경기장에서 항상 지키려고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어릴 때는 경기에 나가면 상황에 따라 안일하게 생각한 때도 있었다. 내가 성적이 안 좋을 때, 나가서 점수를 많이 줬을 때, 집중력이 확 떨어질 때도 많았다. 어느 순간부턴가 그런 경향이 사라졌다. 정말로 공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해 던졌다. 나는 아프다고 티 내는 걸 싫어한다. 어차피 야구선수가 전혀 안 아프고 야구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일단 경기장에 나가서만큼은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후배들에게도 강조하는 가치일 것 같다.

맞다. 후배들도 안일한 모습을 보이면, 바로 뭐라고 지적한다. 하다못해 외국인 선수들도 수비할 때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나서서 뭐라고 하는 편이다. 내가 그렇게 성격이 좋은 타입이 아니라서. (웃음)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큼은 용납이 안 된다. 경기장에서 언제 어떤 상황이든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내가 가장 지키고 싶은 가치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스프링캠프 기간을 맞아 MBC SPORTS+와 엠스플뉴스는 [엠스플 in 캠프]란 이름으로 미국 애리조나, 투산, 플로리다와 호주 그리고 일본 오키나와, 미야자키 등 캠프 전역을 현장 취재합니다. [엠스플 in 캠프]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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