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의 새 4번타자 윤석민(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넥센의 새 4번타자 윤석민(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오키나와]

넥센 히어로즈 윤석민은 2004년 프로 데뷔 이후 줄곧 ‘미래의 4번타자감’이란 평가를 받은 선수다. 하지만 2016시즌 전까지, 그 가능성은 금방 실현될듯하면서도 좀처럼 현실이 되지 않았다. 두산에선 1군과 2군, 그라운드와 벤치를 오가며 확실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언제나 쟁쟁한 선수들의 벽에 가로막혔다. 넥센에 온 뒤에도 4번 타자 자리는 줄곧 박병호의 차지였다.

박병호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난 2016시즌, 드디어 윤석민에게 기회가 왔다. 박병호의 빈자리를 차지한 윤석민은 폭발적인 타격감을 발휘하며, 프로 데뷔 13년 만에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타율 0.334에 19홈런 80타점, OPS 0.966으로 모든 면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리그 대표 4번 타자들과 비교해도 수준급 성적이다.

박병호가 활약한 4년 동안, 한 번도 배팅 오더에 4번 이름을 써넣을 때 머뭇거린 적이 없던 넥센이다. 모두가 넥센이 박병호의 빈자리를 결코 채울 수 없을 거라 예상했지만, 윤석민의 활약으로 고민이 사라졌다. 4번 자리에 윤석민의 이름을 자신 있게 써넣을 수 있게 됐다.

“4번 타자까지 생각한 건 아니에요. 병호가 미국 가면서 1루에 빈자리가 생겼으니까, 그 자리를 차지하겠단 생각으로 캠프 때부터 열심히 준비한 게 좋은 결과로 돌아왔어요.” 윤석민은 스프링캠프에서 ‘엠스플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회를 받는 건 그 사람의 행운이지만, 그렇게 받은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소용이 없잖아요. 제게 주어진 기회를 잘 지켜냈다는 점이 지난 시즌에 만족스러운 부분이죠.”

윤석민의 아쉬움, “144경기 모두 뛰고 싶다”

넥센에서 웃는 날이 많아진 윤석민(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넥센에서 웃는 날이 많아진 윤석민(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마침내 ‘차세대 4번타자감’에서 ‘차세대’ 꼬리표를 뗀 2016시즌.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움은 남는다. 144경기 풀타임 4번 타자로 활약하지 못한 아쉬움이다. “부상 때문에 전 경기를 뛰지 못한 게 아쉽죠. 아직 프로 데뷔 후 전 경기를 뛰어보질 못했어요. 올해는 가능한 많은 경기에, 전 경기에 출전하고 싶어요. 물론 제가 잘해야 가능하겠지만요.” 윤석민의 말이다.

지난해 윤석민의 부상은 ‘불운’ 그 자체였다. “제가 잘못해서 다친 거라면 모르겠는데, 몸에 맞는 볼 때문에 부상을 당했죠.” 윤석민의 얘기다. 당시 윤석민은 시즌 개막 3연전에서 12타수 5안타로 한창 타격감이 절정이었다. 하지만 시즌 4차전인 한화전에서 마에스트리의 패스트볼에 왼손을 맞았다. 왼쪽 손목 골절, 최소 두 달 동안 경기에 나설 수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 몸에 맞는 볼만 아니었으면 전 경기도 노릴 수 있었을 텐데, 아주 아쉬웠어요.”

힘든 재활 기간 윤석민을 무너지지 않게 잡아준 건, 팀에서 보여준 신뢰다. “재활 시작할 때 코치진에서 ‘잘 준비해서 돌아와라, 돌아오면 4번 타자를 할 수도 있다’고 용기를 주시더군요. 덕분에 재활 기간 더욱 열심히 운동하는 계기가 됐어요.” 윤석민의 말이다. “또 심재학 타격 코치(현 수석)님이 이론적인 부분을 많이 알려주시고, 타격폼을 잘 봐주셔서 도움이 됐어요.”

마침내 부상에서 돌아온 윤석민은 엄청난 활약으로 팀의 기대에 보답했다. 복귀전인 5월 27일 1타수 무안타, 4번 타자로 기용된 다음 날 경기에서도 5타수 무안타로 부진했지만, 5월 29일 kt 전 4타수 2안타 1홈런 3타점을 시작으로 ‘대폭발’했다. 5월 29일부터 7월 6일 두산전까지 31경기 연속 출루 행진을 이어갔고, 이 기간 6홈런 27타점 0.357/0.455/0.571의 타율/출루율/장타율을 기록했다. 또 7월에는 한 달간 8홈런을 몰아치며(월간 3위) 거포의 잠재력도 발휘했다.

윤석민은 자신이 홈런을 노리고 타격하는 유형의 타자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전 홈런을 노리진 않아요. 라인드라이브를 때리려고 하는 스타일이죠. 타격할 때도 팔을 들어 올리기보다는, 앞쪽으로 똑바로 나오는 유형이구요. 배트에 정확하게 맞히고, 라인드라이브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연습해요.” 윤석민이 20개 가까운 홈런과 함께 3할대의 높은 타율을 올린 비결이다.

윤석민의 좋은 활약은 4번 타자라는 중압감에 짓눌리지 않은 것도 비결이다. “물론 4번은 책임감이 있죠. 하지만 전 타석 나갈 때 4번 타자라는 생각보단, 4번째 타자라는 생각으로 타석에 임하려고 했어요. 4번 타자니까 잘 쳐야 한다는 부담을 잔뜩 갖고 나가면 실패할 때가 많았거든요. 마음가짐이 비결인 것 같습니다.” 투수들의 집중 견제도 해법을 찾았다. “승부 카운트에서 떨어지는 변화구를 던질 걸 예상하고, 변화구를 노려 친 게 주효했어요.” 윤석민의 진단이다.

‘차세대’는 없다, 윤석민이 넥센의 현재다

144경기와 100타점을 꿈꾸는 윤석민(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144경기와 100타점을 꿈꾸는 윤석민(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항상 ‘차세대’였던 윤석민은 어느덧 32살이 되어 프로 14번째 시즌을 맞는다. 이제는 팀에서도 중고참급 선수가 됐다. 자기 야구만이 아니라 후배들과 팀까지 생각하는 믿음직한 선수로 성장하고 있다. 시즌 중 인터뷰 때는 “NC 손시헌 선배처럼 후배들을 잘 챙기는 선배가 되고 싶다”는 말도 했었다.

팀원들과 함께 밝게 웃으며 즐겁게 야구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스프링캠프 기간 내내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두산 시절에 비해 한결 표정과 행동에 여유가 생겼다. “매일매일 즐겁게 야구하고 있죠.” 윤석민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팀에서 항상 제게 신뢰를 주고 있으니까요. 팀이 저를 믿어주니까, 그 믿음 덕분에 그라운드에서 항상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시즌 윤석민은 144경기 전 경기 출전 외에도 또 다른 세 자릿수 목표를 세웠다. “100타점 이상을 기록해 보고 싶어요. 홈런 욕심은 없는데, 타점에 대한 욕심은 있거든요.” 윤석민의 말이다. 물론 타점은 혼자 힘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우리 팀 테이블 세터진이 워낙 막강하니까요. 타점 올릴 때마다, 그 선수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리고 넥센의 중심타선을 리그 최고로 만드는 것도 윤석민의 이번 시즌 목표다. “아직 제가 4번 타자를 하게 될지는 확실치 않지만, 만약 중심타선에 배치된다면 ‘넥센 중심타선은 강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요.” 윤석민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10개 구단 어느 팀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 강한 중심타선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죠. 꼭 그렇게 만들기 위해, 더욱 열심히 훈련하고 있습니다.”

그라운드에서 넥센의 새 4번 타자로, 클럽하우스에서는 서른 두살의 베테랑으로, 윤석민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가 기대한 바로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더는 차세대 꼬리표는 없다. 2017시즌, 바로 지금 넥센의 중심이 윤석민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스프링캠프 기간을 맞아 MBC SPORTS+와 엠스플뉴스는 [엠스플 in 캠프]란 이름으로 미국 애리조나, 투산, 플로리다와 호주 그리고 일본 오키나와, 미야자키 등 캠프 전역을 현장 취재합니다. [엠스플 in 캠프]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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