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창민을 포함해, WBC 대표팀엔 전현직 삼성 마무리만 3명이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심창민을 포함해, WBC 대표팀엔 전현직 삼성 마무리만 3명이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오키나와]
“우리 대표팀에 저 포함해서 마무리 투수만 6명이에요, 6명.”
삼성 라이온즈 심창민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사실이다. 이번 2017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국대표 선수단에는 역대 어느 대표팀보다 많은 마무리 투수가 이름을 올렸다.
심창민은 2016시즌 5월부터 삼성의 마무리 투수가 됐다. 마무리 첫해부터 철벽투를 선보이며 2승 25세이브 2.97의 평균자책을 기록했다. 전직 삼성 마무리 임창용도 KIA 타이거즈 마무리 신분으로 대표팀에 승선했다. 여기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오승환까지 더하면, 삼성 마무리 출신만 3명이나 된다.
좌완 마무리 투수도 있다. 두산 베어스 마무리 이현승과 SK 와이번스 마무리 박희수가 대표팀 마운드의 왼쪽을 책임진다. 여기에 LG 트윈스 마무리 임정우가 어깨 염증으로 이탈하자, 곧장 NC 다이노스 마무리 임창민이 18시간을 날아 대표팀에 합류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kt 위즈 창단 첫 마무리였던 장시환도 대표팀이고, 당장 NC 마무리를 맡아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원종현도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원종현은 지난 시즌 후반기 NC 임시 마무리로 3세이브를 거둔 바 있다.

임창민은 대표팀 발탁으로 미국 캠프에서 바로 일본 오키나와로 날아왔다. 아직 대표팀 유니폼과 용품도 받지 못한 상태다. NC 유니폼 하의와 신발을 착용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임창민은 대표팀 발탁으로 미국 캠프에서 바로 일본 오키나와로 날아왔다. 아직 대표팀 유니폼과 용품도 받지 못한 상태다. NC 유니폼 하의와 신발을 착용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일반적으로 마무리는 팀의 불펜 에이스에게 주어지는 자리다. 대표팀 마운드는 현직 마무리 6명, 전직까지 합하면 총 7명의 마무리로 구성됐다. 그만큼 대표팀 불펜에 강력한 투수들이 대거 포진했다고 볼 수 있다.
최고는 최고를 인정한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마무리들도 자신의 구위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동료 마무리 투수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2월 22일 일본 오키나와 기노완 구장, 일본 프로야구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의 연습경기를 앞두고 잠시 쉬는 동안에도 서로를 가리키며 “공이 정말 좋다” “나보다 훨씬 잘 던진다”는 칭찬의 말이 이리저리 오갔다.
심창민은 이름이 같은 NC 임창민을 발견하자 “최고의 마무리 투수”라고 오른손 엄지를 치켜세운 뒤, “작년에 창민이 형 던지는 걸 보면서 ‘신’인 줄 알았다”는 말로 엄지 두 개를 세웠다. 이에 임창민도 “사실 난 후반기에는 그리 잘 던지지 못했다”며 “심창민이 작년에 보여준 구위는 정말 대단했다”고 화답했다. 두 ‘최강창민’의 멋진 콜라보다.

대표팀에 합류한 KBO리그 마무리 투수들의 2016시즌 성적(표=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대표팀에 합류한 KBO리그 마무리 투수들의 2016시즌 성적(표=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국대 투수=소속팀 마무리’ 지킬 수 있을까

SK 마무리 투수 박희수(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SK 마무리 투수 박희수(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마무리 투수는 화려하고 주목받는 보직이다. 요란한 주제가와 함께 주목을 받으며 마운드에 올라 팀 승리를 지키는 중책을 맡는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달리, 마무리 투수의 팀 내 입지는 그리 안정적이지 않다. 투구 내용이 불안하거나, 더 강한 공을 던지는 투수가 나타나면 언제든 자리를 뺏길 수 있다.
실제 대표팀 마무리 6명 가운데 3년 이상 마무리로 활약한 투수는 오승환과 임창용 둘뿐이다. 나머지는 중간에서 궂은일을 수행하다 최근 1, 2년 사이에 마무리 자리로 옮긴 선수다.
심창민은 마무리 투수가 특별한 보직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른 투수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 상황에 계속해서 기회를 주고 내보내면, 대부분 투수가 20세이브 이상 충분히 거둘 수 있다고 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나. 내가 보기엔 마무리라는 자리가 마무리를 만드는 것 같다.”
마무리에 걸맞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투수라서 마무리 투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무리라는 보직을 주고 세이브 상황에 기용하면 바로 그 투수가 마무리 투수가 된다는 얘기다. 물론, 오승환처럼 아주 예외적이고 특별한 마무리 투수는 예외다. 그렇다면, 언제고 새로운 마무리로 대체된다 해도 그리 이상할 게 없다.
대표팀 투수들도 이를 잘 안다. 심창민은 “나도 작년 시즌 시작할 땐 마무리 투수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작년에 마무리였다고 올해도 내가 계속 마무리를 하란 법은 없다”고 했다. 김한수 삼성 감독은 이와 관련 “국가대표 투수를 마무리로 안 쓰면 누굴 쓰겠냐”고 반문했지만, 심창민의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다.
“작년 5월부터 마무리를 한 거지, 꾸준하게 몇 년 동안 마무리를 한 건 아니다. 아직 마무리가 확실한 내 자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금 여기(대표팀)에 와서 있는 게 한편으로 불안하기도 하다.” 심창민의 말이다. 심창민은 매일 아침 소속팀 삼성과 대표팀 관련 모든 기사를 꼼꼼하게 찾아 읽는다.
다른 대표팀 투수들도 마찬가지다. 소속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팀이 돌아가는 속사정을 속속들이 알기 어렵다. 기사에 나온 감독의 말, 관계자의 말에서 조금이라도 힌트를 찾으려 한다.
“국대 투수를 마무리로 안 쓰면 누굴 쓰겠냐”는 김한수 감독의 말은 일종의 삼단논법이다. 대표팀은 국내 최고의 투수들이 뛰는 곳이고, 마무리는 팀에서 최고의 불펜투수가 맡는 자리다, 그러므로 대표팀 투수가 아닌 다른 투수에게 마무리를 맡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두산 베어스 마무리 이현승(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두산 베어스 마무리 이현승(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하지만 모든 구단이 김 감독과 같은 삼단논법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KBO리그 각 구단엔 대표팀 투수 외에도 무시무시한 구위를 자랑하는 젊은 투수가 꽤 많다. KIA는 한승혁, SK는 서진용, 두산은 이용찬과 홍상삼, NC는 이민호가 대기하고 있다.
팀이나 감독으로선, 이런 젊고 싱싱한 선수들에 마무리를 맡기는 방안을 염두에 둘 수도 있다. 실제 몇몇 구단은 이번 시즌을 새 마무리 투수에게 맡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팀 투수가 정작 소속팀에 가서 마무리를 맡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단 얘기다.
WBC 대표팀 참가는 일정 부분 선수에게 희생을 요구한다. 2월과 3월은 한창 소속팀에서 스프링캠프를 치르며 단계별로 정규시즌 준비를 하는 시기다. 대표팀에서 실전 경기를 치르려면, 루틴보다 빠른 속도로 페이스를 끌어 올려야 한다.
경험 많은 선수라면 대표팀 경기가 끝난 뒤 정규시즌에도 좋은 컨디션을 이어갈 수 있지만, 나이 어린 선수들에겐 쉽지 않은 과제일 수 있다. LG 임정우도 이런 페이스 조절 실패로 대표팀에서 낙마한 사례다. 좋은 컨디션을 WBC 기간은 물론 정규시즌까지 이어가는 것, 대표팀에 참가한 6인의 마무리 투수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다. WBC 한국의 좋은 성적은 물론, 자신들의 마무리 보직 사수 여부가 달려 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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