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프로 데뷔 12년 차 박경태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프로 데뷔 12년 차 박경태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

‘만년 유망주’라는 꼬리표가 붙는 선수에겐 대개 달갑지 않은 별명이 따라다닌다.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KIA 타이거즈 투수 박경태도 그렇다. 자주 불을 지른다는 안 좋은 의미로 테러리스트와 이름이 합쳐진 ‘박경태러리스트’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다.
어느덧 프로 데뷔 12년 차가 된 박경태에게 물러설 곳은 없다. “이제 테러리스트에서 은퇴하겠다”는 다짐은 곧 절실함의 표현이다.
박경태는 KIA 팬들의 ‘애증’이 가득한 선수다. 해마다 “이번엔 터진다”고 믿었지만, 제구 난조와 결정구 부재는 항상 박경태의 발목을 잡았다. 박경태의 KBO리그 통산 성적은 226경기 등판 4승 20패 15홀드 평균자책 6.40이다. 2006년 입단 뒤, 좀처럼 성적이 오르지 않은 박경태였다.
끝없는 부진으로 박경태에겐 ‘쉼표’가 필요했다. 2014시즌 전반기를 마친 뒤, 박경태가 내린 결정은 입대였다. 이후 2년간 박경태는 인천지방법원에서 사회복무 요원으로 군 복무를 이행했다. 재정비의 시간이 마냥 편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팬들의 거친 비난으로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던 박경태는 1년 정도 야구를 아예 내려놨다.
하지만, 박경태는 지난해 시범 경기부터 야구에 대한 열정을 되살렸다. 2000년대 후반 같이 뛰었던 곽정철과 한기주의 복귀에 뭉클한 무언가가 느껴진 박경태였다. 한국 나이로 31세. 이제 더 떨어진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박경태의 운명이다.
2월 KIA 일본 오키나와 캠프의 하루.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캠프를 준비한 박경태의 얼굴은 꽤 밝아 보였다. 2년 6개월여의 공백이 있었지만, 몸 상태는 예상보다 만족스럽다는 박경태였다. 올 시즌 어떤 공을 던질지 자신도 궁금하다는 박경태를 ‘엠스플뉴스’가 직접 만났다.
박경태의 고백 “야구가 지겹다고 느껴졌다.”

다른 선수들의 공은 다 좋아 보이는 박경태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다른 선수들의 공은 다 좋아 보이는 박경태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3년 만의 스프링 캠프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지 않나.
김기태 감독님이 오시고 첫 캠프다. 처음엔 분위기가 정말 많이 바뀐 것 같아서 놀랐다. 예전보다 확실히 분위기가 밝아졌다. 선후배끼리 눈치 보는 것도 사라진 것 같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한 2년은 어땠나. 야구와 잠시 떨어져 있던 시간이었는데.
입대하고 1년 동안은 야구에 신경도 안 썼다. 그 전까지 받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했다. 야구가 지겹다고 느껴졌다. 웨이트트레이닝만 하면서 몸 상태만 유지했다. 심지어 야구도 안 보고 그냥 쉬었다. (잠시 침묵 뒤) 그러다 지난해 3월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지난해 잠실구장에서 열린 시범경기에 감독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사복을 입고 혼자 야구를 보다가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야구가 그리워졌다. 그때부터 야구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또 2000년대 후반에 같이 뛰었던 (곽)정철이 형과 (한)기주가 1군에 복귀했더라. 나도 빨리 복귀해서 저렇게 공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귀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겠다.
그 뒤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데 8월께 팀에서 연락이 왔다. 마무리 캠프를 가자는 얘기였다. 그때부터 공도 본격적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팀에서 괜히 무리하게 가서 다치는 것보단 몸을 확실히 만들어서 스프링 캠프에서 합류하자고 다시 제안했다. 돌이켜보면 선택을 잘한 것 같다.
캠프에서 공을 던져보니 어떤가. 기대했던 거와 달랐을 수도 있는데.
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불펜 투구를 하다 보니 다른 투수들 공은 다 좋아 보인다. 나만 이상하게 던지는 것 같다(웃음). 다행히 공을 받아 준 (이)홍구나 (한)승택이가 ‘공이 생각보다 괜찮다’고 말했다. 감독님도 칭찬해주셔서 처음 했던 걱정은 많이 사라졌다.
스스로 만족도 중요할 것 같다.
군 복무로 2년 6개월 정도 쉬었는데 공을 제대로 던진 지 3개월밖에 안 지난 상황이다. 아직 부족하다. 그래도 지금 시기에 이 구위면 만족스럽다. 원래 세운 계획대로 가고 있기에 남은 기간 더 끌어올리면 될 것 같다.
‘31세’ 박경태 “이제 못하면 도태되는 나이다.”

평균자책 2점대. 도태되지 않기 위해 박경태가 세운 올 시즌 목표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평균자책 2점대. 도태되지 않기 위해 박경태가 세운 올 시즌 목표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만년 유망주’는 선수에게 썩 달갑지 않은 단어다. 그간 스트레스가 많았겠다.
(짧은 한숨 뒤) 한 때 기대를 많이 받으면서 선발 투수 같이 중요한 역할을 맡겨주시기도 했다. 그런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추락을 반복했다. 나 자신에게 화를 내면서 불만도 가졌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어린 나이에 ‘안 되면 잘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에 그쳤다. 프로 의식이 조금 떨어졌던 것 같다. 기분에 따라 기복이 매우 심했다. 이제 그러면 안 된다. 마음을 달리 먹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가짐인가.
캠프 때 대부분 선수는 ‘열심히 노력해서 잘하겠다’고 얘기한다. 나는 이제 나이가 31세다. 이제 못하면 도태되는 나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처지지 않기 위해서도 더욱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올 시즌 꼭 과거와 달라진 박경태를 보여줘야 한다.
(고갤 끄덕이며) 맞다. 감독님께서 “평균자책 3점부터 4점대 사이만 해 달라”하셨는데 나는 “2점대를 하겠다”고 답했다. 정말 내 말대로 되면 좋겠다. 우선 주위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 안 하려고 한다. 올 시즌 나의 활약이 나도 궁금하다. 2년간 무엇이 바뀌었는지 말이다. 빨리 시즌을 맞이하고 싶다.
감독이 많은 기대를 하는 것 같다.
캠프에서 감독님이 나를 볼 때마다 ‘강하게 마음만 먹으면 된다’며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신다. 감독님이 기대해주시는 만큼 결과가 바로 안 나올 순 있다. 그래도 하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올 시즌 평균자책 2점대의 박경태를 볼 수 있는 건가.
우선 감독님께 말씀드린 목표는 평균자책 2점대긴 한데(웃음). 덧붙여 불펜 보직을 맡는다면 50경기 이상 등판도 또 다른 목표다. 그 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 아닐까.
정말 오랜만에 광주 홈 경기 등판이 다가온다. 많이 떨리겠다.(박경태의 마지막 홈 경기 등판은 2014년 6월 24일 광주 SK 와이번스전이다. 당시 박경태는 구원 등판해 0.1이닝 4피안타 1탈삼진 3실점을 기록했다)
팀 홍백전도 정말 떨렸는데(웃음). 기대가 많이 된다. 빨리 광주 마운드에 올라가고 싶다. 가을 야구에도 꼭 참여하고 싶다.
팬들에게 박경태가 돌아왔다는 걸 알려 달라.
내 별명들 가운데 유명한 게 ‘박경태러리스트’다(웃음). 올 시즌엔 반드시 테러리스트에서 은퇴하겠다. (그럼 박경태와 클레이튼 커쇼를 합친 별명인 ‘곁쇼’는 괜찮은가) ‘곁쇼’도 좀 그렇고(웃음). 무엇보다 팬분들이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투수가 되겠다.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스프링캠프 기간을 맞아 MBC SPORTS+와 엠스플뉴스는 [엠스플 in 캠프]란 이름으로 미국 애리조나, 투산, 플로리다와 호주 그리고 일본 오키나와, 미야자키 등 캠프 전역을 현장 취재합니다. [엠스플 in 캠프]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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