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선발 오설리반, 1선발 밴헤켄(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1선발 오설리반, 1선발 밴헤켄(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오키나와]

2월 24일 일본 오니카와 요미탄 구장. 잔뜩 흐린 하늘에 바람까지 부는 쌀쌀한 날씨 속에 넥센 히어로즈와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스 2군의 연습 경기가 열렸다.

이날 경기는 넥센의 외국인 투수 듀오, 앤디 밴헤켄과 션 오설리반의 첫 실전 등판이라는 점이 관심을 모았다. 밴헤켄은 올해도 KBO리그 5번째 시즌을 맞는 장수 외국인 투수다. 넥센 에이스로 지난 네 시즌 동안 마운드 선봉에 섰다. 션 오설리반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넥센이 새로 영입한 투수다. 넥센은 오설리반에 총액 110만 달러를 투자하며, 팀의 1선발 역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구 에이스와 새 에이스감이 나란히 등판한 경기, 하지만 두 투수의 등판 결과는 전혀 달랐다. 1이닝 동안 세 타자만 상대하며 삼자범퇴. 공도 11개밖에 던지지 않았다(스트라이크 8, 볼 3). 공격적인 투구로 카운트를 유리하게 이끌어 나갔다. 3번 타자 이시오카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고 가볍게 이닝을 마무리했다.

넥센 더그아웃(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넥센 더그아웃(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경기 후 밴헤켄은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투구였다”며 “패스트볼의 컨트롤이 잘 됐고 커브도 좋았다. 포크볼도 아직 2월인 점을 고려하면 잘 구사된 편이다. 패스트볼 구속만 좀 더 끌어올리면 될 것 같다”고 이날 투구를 자평했다.

박승민 투수코치도 “밴헤켄은 워낙 성실한 선수다.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칭찬했다. “1차 캠프 때만 해도 컨디션을 끌어올리는데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봤는데, 오늘 피칭만 봐선 그 시간이 단축될 것 같다. 실전 피칭을 할 시기가 되자 알아서 그에 맞게 컨디션을 끌어 올리고 있다”는 평가다.

반면 션 오설리반은 경기 결과만 보면 그다지 좋지 못했다. 1이닝 동안 4피안타 1몸맞는 볼로 무려 4점(4자책점)을 허용했다. 첫 타자 이시카와 타구가 좌익수의 아쉬운 수비로 2루타가 되면서 꼬이기 시작해, 내야안타와 빗맞은 안타가 줄줄이 이어지며 대량실점했다. 8타자를 상대하면서 투구수 33개를 던진 오설리반은 2번 아라키를 투수 땅볼로 잡고 힘겹게 2회를 끝냈다.

‘1이닝 4실점’ 하지만 과정은 나쁘지 않다

떡메를 엎어치듯 공을 던지는 오설리반(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떡메를 엎어치듯 공을 던지는 오설리반(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하지만 오설리반 본인과 넥센은 이날 경기 결과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넥센 관계자는 “연습경기는 승리를 목적으로 치르는 경기가 아니라 정규시즌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오설리반도 “연습경기는 결과보다는 컨디션을 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연습경기는 어디까지나 다양한 테스트를 하면서 정규시즌 때 100%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게 목적이다. 승패와 결과가 아닌 내용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 점에서 오설리반은 이날 등판 내용이 나쁘지 않다고 자평했다. 오설리반은 등판 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지만 오랜만에 타자들과 상대해 볼 수 있었고, 컨디션도 좋았다는 점이 만족스럽다. 많은 공을 던질 수 있었던 부분도 좋았다”고 자평했다. “패스트볼을 많이 구사하고, 스트라이크 존 양쪽 구석으로 던지는 데 집중했는데, 이런 목표대로 잘 된 것 같아서 만족한다”는 반응이다.

문제는 마운드 상태. 오설리반은 “마운드 흙이 너무 부드러워 투구하기 힘들었다. 이런 부드러운 마운드에서 던져본 건 처음”이라 밝혔다. 실제 오설리반은 투구와 투구 사이 끊임없이 마운드 흙을 고르고 털어내며 마운드 상태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발이 푹 꺼지는 마운드 탓인지, 슬라이드 스텝의 속도도 스카우팅 리포트에 나온 것보다 다소 느렸다.

장정석 감독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장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딱딱한 마운드에 익숙한 선수다. 마운드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승민 투수코치도 “경기 전부터 부드러운 흙에 신경을 많이 쓰는 모습이었다. ‘혹시 한국 야구장도 이런 흙을 쓰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았다. 이 때문에 패스트볼 커맨드를 잡기도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고 설명했다.

2회가 끝나고 난 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2회가 끝나고 난 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넥센 코치진은 오설리반의 피칭에서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찾았다. 장 감독은 “생각보다 패스트볼 스피드가 많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날 오설리반의 패스트볼은 최고 149km/h를 기록했다. 넥센이 영입 당시 기대한 강속구 투수의 면모를 첫 경기부터 보여준 오설리반이다.

박 코치는 오설리반의 ‘성향’을 장점으로 주목했다. 이날 오설리반의 등판은 여러 악조건 속에 진행됐다. 추운 날씨와 부드러운 마운드 흙, 첫 타자 타구에 나온 아쉬운 수비, 빗맞은 안타가 겹쳐 투수로선 충분히 짜증이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설리반은 이런 악조건에도 꿋꿋하게 자기 피칭에 집중했다는 평가다. 신경질적인 태도로 팀 분위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줬던 지난해 외국인 투수 로버트 코엘로와 대조적인 부분이다.

박 코치는 “외국인 투수는 결국 적응이 중요하다. 능력이야 어차피 팀에서 기대한 부분이 있고 때가 되면 그 능력을 보여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오설리반은 팀에 잘 적응할 것으로 본다. 오늘 경기에서 드러난 성향이 나쁘지 않았다. 대량으로 점수를 내주는 상황이 되면 투수로선 예민할 수도 있는데, 오설리반은 마운드를 내려와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이날 패스트볼과 커터를 집중 점검한 오설리반은 다음 등판에서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패스트볼과 커브 등의 구종 조합을 시험할 예정이다. 오설리반은 “스프링 캠프는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게 내가 커리어 내내 배운 사실”이라며 “체인지업, 커브 등을 경기마다 던지면서, 시즌이 시작할 때는 모든 게 하나로 더해져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게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밴헤켄 vs 오설리반, 1선발은 누구?

1이닝 삼자범퇴 호투를 펼친 밴헤켄(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1이닝 삼자범퇴 호투를 펼친 밴헤켄(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한편 이날 밴헤켄과 오설리반의 엇갈린 등판 결과는 ‘과연 올 시즌 넥센 1선발은 누가 차지할 것인가’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남겼다.

밴헤켄은 지난 4년 내내 넥센의 확고부동한 에이스 투수였다. 밴헤켄이란 배트맨만 그대로인 채, 매년 외국인 투수 조연이 교체됐다. 브랜든 나이트, 헨리 소사, 라이언 피어밴드가 거쳐 갔지만 밴헤켄보다 나은 투수는 없었다.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했다 뒤늦게 넥센에 합류한 지난 시즌조차도, 팀 내 최고 외국인 투수는 여전히 밴헤켄이었다.

하지만 넥센은 오설리반을 영입하며 ‘1선발’을 언급한 상황. 기존 1선발 밴헤켄에게도, ‘1선발’로 지목받은 오설리반에게도 난처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밴헤켄과 오설리반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먼저 밴헤켄은 “누가 1선발인지는 신경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신재영도 잘하는 선수라 충분히 1선발 역할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1선발은 꼭 자신이 아니라도 팀에서 가장 잘 던지는 투수에게 돌아갈 수 있는 자리라는 얘기다. 밴헤켄은 “구단이 어떤 결정을 하든, 나는 팀에 도움을 주기 위해 있는 선수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팀을 위해 할 생각”이라 밝혔다.

실제 밴헤켄은 ‘경쟁자’일 수도 있는 오설리반에 여러 도움을 주고 지원을 베푸는 중이다. 오설리반은 “밴헤켄이 타자들의 성향이나 구종 선택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감사를 표했다.

넥센 한 코치는 “밴헤켄은 팀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선수”라며 “다른 투수는 몰라도 밴헤켄은 자신이 1선발이 아니라고 불만을 느끼거나 아쉬움을 표할 성격이 절대 아니다. 5선발 역할을 맡겨도 묵묵히 수행하는 선수”라고 전했다. 또 “1선발, 2선발에 연연하는 대신에 성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가 밴헤켄”이라 말했다.

오설리반 역시 밴헤켄을 경쟁자가 아닌 한국야구 ‘선배’로서 존중한다. 오설리반은 “밴헤켄처럼 한국에서 오랫동안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동료가 있다는 건, 나에게는 정말 운이 좋은 일”이라 밝혔다. 또 “밴헤켄이 타자를 어떻게 상대할지 알려준다. 많이 배워나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넥센 내국인 투수 에이스 신재영도 등판해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넥센 내국인 투수 에이스 신재영도 등판해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넥센의 지난 4년간 외국인 투수 농사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밴헤켄이 잘했기 때문에 1선발 자리를 차지한 게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파트너 ‘로빈’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미진했던 면도 있다.

넥센으로서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밴헤켄은 밴헤켄대로 1선발의 모습을 유지하고, 오설리반 역시 1선발이란 기대치에 걸맞은 투구를 보여주는 것이다. 1선발 다운 1선발과, 마치 1선발처럼 던지는 2선발 투수가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원투펀치를 이룬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결과도 없다. 장 감독도 “(누굴 1선발로 할지) 지금도 계속 고민 중이고, 한국에 들어간 뒤 결정할 것”이라며 두 외국인 투수들의 동반 활약을 기대했다.

한편 이날 연습경기는 2회 오설리반의 4실점, 8회 김재웅이 7실점 하며 넥센이 0-11로 패했다. 넥센은 25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 연습경기를 치른다. 이 경기엔 23일 주니치전 출전 멤버가 거의 그대로 출전할 예정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스프링캠프 기간을 맞아 MBC SPORTS+와 엠스플뉴스는 [엠스플 in 캠프]란 이름으로 미국 애리조나, 투산, 플로리다와 호주 그리고 일본 오키나와, 미야자키 등 캠프 전역을 현장 취재합니다. [엠스플 in 캠프]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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