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를 몰랐던 ‘국민감독’ 김인식(사진=KBO)
포기를 몰랐던 ‘국민감독’ 김인식(사진=KBO)

[엠스플뉴스=고척]

3월 9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3차전 타이완과의 경기를 앞두고 묘하고 쓸쓸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대한민국야구 대표팀의 훈련이 거의 끝나가던 시간까지 더그아웃에 홀로 앉아 있던 김인식 2017 WBC 감독은 시계가 오후 5시 43분이 되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후 김 감독은 더그아웃에 붙은 선발 라인업을 천천히 뜯어보면서 진지한 자세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일흔이 넘은 고령의 김 감독은 불편한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엄숙하게 한참동안 몸을 풀었다. 노 감독이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한 채로 손수 짰을 라인업을 보고 있는 장면은 어딘가 비감(悲感)이 들게 하기까지 했다.

이날은 김 감독의 국가대표 사령탑으로서의 마지막 경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김 감독은 여느 때처럼 몇 시간이고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감독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 감독의 머릿속엔 짧은 시간 수많은 전투가 펼쳐지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이제 단 1경기가 남았을 뿐이었다.

대회 마지막 경기의 준비시간조차 끝나가는 한국 선수단처럼 2006 WBC 4강, 2009 WBC 준우승, 2015 WBSC 프리미어 12 우승을 이끈 명장의 시간도 끝나가고 있었다.

김 감독은 선수단 가운데 거의 마지막으로 더그아웃에서 모습을 감췄다.

‘국민 감독’ 김인식의 마지막 당부 “젊은 대표팀 만들어라”

김인식 WBC 대표팀 감독이 세대교체의 당부를 전했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김인식 WBC 대표팀 감독이 세대교체의 당부를 전했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한국은 9일 열린 타이완과의 2017 WBC 3차전서 난타전 끝에 11-8로 승리했다. 이로써 한국은 2017 WBC 1라운드를 1승 2패의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대한민국 야구에 깊은 족적을 남겼던 ‘국민 감독’ 김인식 감독도 이제 무대의 뒤편으로 물러난다. 그간 한국 야구에 남긴 업적과 비교하면 너무 쓸쓸한 마지막 인사다.

전날 네덜란드가 타이완을 꺾어 기대했던 기적의 조건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날 경기는 마지막 자존심을 지킬 기회였다. 또 차기 WBC 대회 본선 직행 진출권이 보장된 3위 결정전이었기에 나름 중요한 경기였다. 만약 한국이 이날 패했다면 A조 4위로 대회를 마치면서 차기 WBC 대회는 지역 예선부터 치러야 할 상황이었다.

승리에도 상흔은 깊게 남았다. 앞선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와의 2경기에서 단 1득점에 그친 끝에 2패를 당했다. 최종 타이완전도 경기 초반엔 시원스레 앞서갔으나 중반 이후 추격을 당하며 난타전을 펼쳤고 아슬아슬한 진땀승을 거뒀다. 연장 10회 양의지의 희생플라이에 이어, 김태균이 자신의 유일한 안타를 투런 홈런으로 장식했다.

대회 끝까지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엔 화끈한 축포로 대회를 마무리 한 '2017 WBC 김인식 호'였다.

대표팀의 부진의 책임을 김 감독 개인에게 모두 전가하는 건 매우 타당하지 않은 ‘화풀이’ 정도 일 것이다. 대회 내내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마다 가장 괴로워하는 듯 보였던 이도 김 감독이었다.

하지만 선수단의 수장인 김 감독이 예선탈락의 책임을 피해가기란 어렵다. 대회 선수단 구성부터 전략까지 여러 악수를 두면서 김 감독 스스로 자멸한 측면도 많았다.

김 감독 또한 경기 전 사령탑에서 내려오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어두운 표정으로 더그아웃을 지키던 김 감독은 취재진에게 다가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김 감독은 “승부의 세계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패배에 연연하면 안 된다. 이제 젊은 지도자가 대표팀을 이끌어야 한다. 젊은 선수가 국제 대회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 대표팀을 걱정하는 김 감독의 진심인 동시에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단 뜻을 내포한 말이기도 했다.

애초에 임시직이었던 대표팀 사령탑이다. 김 감독의 연임 여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김 감독이 직접 ‘젊은 지도자’를 언급하면서 사령탑 세대교체는 필연적인 다음 과제가 됐다.

포기를 모르는 오뚝이 지도자 김인식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어쩌면 국가대표팀 마지막 감독이 될 지 모르는 타이완전을 앞두고 오뚝이처럼 앉았다 일어서며 선발 라인업을 뜯어봤다(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어쩌면 국가대표팀 마지막 감독이 될 지 모르는 타이완전을 앞두고 오뚝이처럼 앉았다 일어서며 선발 라인업을 뜯어봤다(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김인식 감독은 스물일곱에 어깨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한 이후 아마추어 지도자를 거쳐 1986년 해태 타이거즈(현 KIA) 수석코치로 프로야구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호화 군단’ 해태를 잘 이끈 김 감독은 1995년 OB 베어스(현 두산) 사령탑에 올라 2003년까지 9년간 곰 군단의 지휘봉을 잡았다. 뚝심 있고 강력한 두산의 지금 색깔을 입히며 2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야구 감독으로서 한창이었던 2004년 갑작스럽게 뇌경색으로 쓰러져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병마를 극복하고 한화 이글스 사령탑으로 프로 무대에 복귀했다.

‘야구 월드컵’을 목표로 2006 제1회 WBC가 열리자 사령탑을 맡은 것도 김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중임을 잘 맡아 초대 대회 4강을 이끌며 이후 한국야구 국제대회 승승장구의 시작을 알렸다. 김 감독은 1회 대회에 이어 2009 제2회 WBC에서도 지휘봉을 잡아 준우승을 이끌며 많은 야구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이런 공으로 김 감독은 많은 야구팬들에게 ‘국민감독’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포기를 모르는 김 감독의 야구인생이 녹아있는 이 별명을 자신도 적잖이 맘에 들어 했다. 완벽한 업적을 이뤘기에 ‘국민감독’이 아니었다. 때론 부족한 전력으로, 때론 힘든 상황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감동적인 순간을 일궈낸 그의 야구사를 지켜본 야구팬들이 전한 헌사였다.

2009 WBC를 끝으로 현장 일선에서 물러난 김 감독은 KBO 기술위원회 위원장으로 한국야구에 다시 기여했다. 이후에도 김 감독은 2010 광저우 아시아 경기대회 우승, 2014 인천 아시아 경기대회 우승에 직·간접적으로 힘을 보탰다.

이후에 전국의 초·중·고를 돌며 야구보급에 애썼던 김 감독은 2015 WBSC 프리미어12를 통해

현장 사령탑에 복귀했다. 모든 이의 예상을 깬 결정인 동시에 많은 이들이 만류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국민 감독’은 또 한번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대회 초대우승을 이끌었다.

이어 2017 WBC에도 다시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이후 각종 사건사고와 대표팀 발탁 논란 등이 불거지며 출발부터 암초를 만났다. 결국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에 연패를 당한 끝에 쓸쓸히 대회를 마무리했다.

김 감독은 이스라엘전과 네덜란드전 패배 직후 비난 여론이 대표팀에 온통 쏠리자 이를 매우 힘겨워 했다. 온 국민의 화살이 집중된 8일 오전 김 감독은 수화기 너머로 “마음이 아프고 괴롭다”며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 했다.

하지만 정작 훈련 시간이 되자, 공식 석상에선 전혀 달랐다. 김 감독은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모든 건 감독이 잘 못했다”며 1라운드 탈락의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대회가 아쉬운 경기로 끝나고 난 이후에도 김 감독은 겸허히 머리를 숙였다.

2017 WBC 대표팀은 실패했다. 2013 WBC 1라운드 탈락과는 또 다른 아픔으로 야구팬들에게 남겨질 대회다. 동시에 우리는 또 1명의 명장과 이별하게 된 것 같다. 이번 대회 탈락과는 별개로 ‘국민감독’이 그간 야구계에 남긴 업적과 노고, 그리고 추억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김원익 기자 one2@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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