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마운드의 숨은 조력자 이용훈 투수(불펜) 코치(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롯데 마운드의 숨은 조력자 이용훈 투수(불펜) 코치(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엠스플뉴스]

| ‘마운드의 수사’ 이용훈이 사직구장에 다시 섰다. 이번엔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 마운드를 지킨다. 선수들에게 더 많은 걸 전해주고 싶은 그는 겨우내 ‘바이오 메카니즘’을 토대로 새로운 투구 이론을 정립했다. 신세계를 경험한 이용훈 롯데 자이언츠 투수(불펜)코치를 엠스플뉴스가 만났다.

선수 시절, ‘마운드의 수사’로 불렸던 이가 있다. 꽉 마른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150km/h짜리 속구가 인상적이었다. 덥수룩하게 자란 콧수염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마운드에선 순결을 서약한 수사와 같았다. 참고, 인내하는 데서 비롯된 별명이다. 부상이란 녀석은 진절머리 날 정도로 그를 따라다녔다. 선수 유니폼을 벗는 순간까지 함께 했을 정도다.

이용훈 롯데 자이언츠 불펜 코치에게 야구란 그랬다. 늘 혼자 견디고, 버텨야만 했다. 그 까닭에 이 코치 머릿속엔 ‘훈련, 또 훈련’이란 생각이 가득 찼다. “선수 시절엔 아파도 참고, 죽도록 공만 던졌다. 그게 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코치의 깨달음이다.

이 코치도 이젠 안다. 몸을 아끼고, 관리하지 않으면 마운드에 오래 설 수 없단 사실을 말이다. 지도자로 변신한 이 코치는 두꺼운 야구 이론 책을 꺼내 들었다.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 야구 서적들을 독파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배우고, 가슴속에 새겼다. 더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없길 바랐다.

"후배들아, 스스로를 혹사하지 마라"

이 코치는 선수들에게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사진=롯데)
이 코치는 선수들에게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사진=롯데)

롯데의 올 시즌 출발이 나쁘지 않다. 지난 시즌에 비해 훨씬 안정된 전력을 갖췄다. 특히 투수진엔 봄날이 찾아왔다. 외국인 투수 브룩스 레일리(평균자책 3.64)와 닉 애디튼(2.70)이 안정된 투구를 선보였고, ‘거인 군단의 희망’ 박세웅이 에이스급 활약을 펼치고 있다. 여기다 김원중, 박진형, 박시영 등 젊은 투수들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이 코치 역시 만족스러운 눈치다. 한편으론 걱정스럽기도 하다. ‘혹시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아픈 것을 숨긴 채, 공을 던지고 있는 건 아닌지’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단 이 코치다.

자기 관리 비결 좀 가르쳐 달라. 외모상으론 선수 시절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숨겨진 흰 머리가 한가득이다(웃음).

이 코치보다 한 살 위인 투수 박정진(한화 이글스)은 아직도 현역이다. 그걸 보면 피가 끓을 듯싶다.

투수라면 죽기 전까지 마운드를 향한 갈망은 품지 않을까(웃음). 내 경우엔 아파서 야구를 그만뒀다. 당시 몸 상태론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었다. 당연히 아쉬움이 남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선수 시절, ‘무시무시한 공’을 던졌다. 그 까닭인지 부상이 끊이지 않았다.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솔직히 아쉽다. 내 실력을 모두 보여주지 못해 더욱 그렇다. 기회 다 싶으면, 어김없이 부상이 찾아왔다. 참 많이도 아팠다. 은퇴 직전엔 포수에게 공을 던지는 것조차 힘들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했다. 왜 그렇게 부상이 많았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몸에 비해 빠른 공을 던지다 보니 팔과 어깨에 무리가 왔다. 당시 투구 메카니즘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면 ‘좀 더 부상 없이 강하고, 정확한 볼을 던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흔히 말하는 ‘혹사’인가.

야구에 대한 '욕심'이었다. 현역 땐 단순히 ‘노력해 흘린 땀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란 생각을 가졌다. 그걸 너무 맹신한 까닭이 크다. 난 보통 선수들보다 더 심했다. 잠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공을 던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독이었다. 너무 많은 공을 던지자 온몸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스스로 내 몸을 혹사한 셈이다.

'부상 전문 투수'답게 지도자 생활도 재활 군에서 처음 시작했다.

내겐 딱 맞는 곳이었다(웃음). 재활 군은 1군부터 3군까지 아픈 선수라면 누구나 다녀가는 곳이다. 특히 아픈데도 참고 던지는 투수들을 보면 딱 안다. 가끔 내가 선수 때 겪었던 고통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더 신경 쓰게 되고, 그걸 막기 위해 사전에 캐어해주고 싶다. 그것이 내 역할이었다.

이용훈 코치 "야구는 과학이다."

성공적인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 코치(사진=롯데)
성공적인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 코치(사진=롯데)

이 코치의 ‘롯데 사랑’은 더는 비밀이 아니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다(웃음). ‘스머프 유니폼’ 시절을 잊지 못하는 팬들에겐 다 마찬가지다. 1999년 우승 당시 야단났던 부산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난 그걸 보면서 자랐다. 소속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KBO리그 데뷔 팀은 삼성 라이온즈였다. 그런데 롯데로 팀을 옮긴단 소식에 너무 좋아 눈물까지 흘렸단 후문이다(웃음).

정말 울 정도로 기뻤다. 팀을 옮긴단 소릴 듣자마자 그날 새벽에 바로 부산을 향했다. 정리고 뭐고, 그런 것도 없었다. ‘내가 동경했던 팀에서 야구를 할 수 있구나’하는 기대감이 컸다. 당시 백인천 감독님께 이렇게 말했다. ‘쓰러져도 마운드에서 쓰러지겠다’고(웃음).

1군 경기는 아니었지만, 퓨처스리그 시절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였다.

(진지하게) 사실 부끄러웠다. 그 나이에 퓨처스리그에 있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내 또래 다른 팀 선수들은 보면 대부분 아파서 오거나 재활 때문에 퓨처스리그에 왔다. 하지만, 난 건강했다. 그런 상황에서 퍼펙트게임이라 달갑진 않았다.

성공적인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호평이 자자하다.

이제 조금 적응을 마쳤다(웃음). 난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조원우 감독님을 비롯한 김원형 수석코치, 주형광 코치, 3군 시절 다른 코치들에게 정말 많이 배웠다. 너무 감사하고, 더 좋은 지도자가 되려 노력 중이다.

김원형 수석과 투수 파트를 함께 맡고 있다. 주로 어떤 이야길 나눴는지 궁금하다.

김 수석님에겐 배울 점이 정말 많다. 특히 세세한 부분까지 내 의견을 들어준다. 늘 배려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특히 ‘공부하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선수를 관두고, 혼자 2년 정도 야구 공부를 했다. 그때 처음으로 ‘야구는 과학’이란 걸 알게 됐다. 예를 들면 팔을 높이 들어 던지는 투수가 갑자기 팔각도가 낮아졌다고 치자. 그러면 ‘팔을 올려’라고 말한다. 사실 이건 초등학생도 해줄 수 있는 얘기다. 사실 이럴 경우 단순히 팔을 높이란 말보단 팔각도가 왜 낮아졌고, 외적인 요인에 대해 분석해야 한다. 그런 디테일한 부분을 공부했다.

그랬더니?

그간 궁금증이 풀려갈수록 재미있고, 속이 뻥 뚫리더라(웃음).

한국에선 메카니즘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미국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안가면 후회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도착해 방대한 자료들과 야구는 과학이란 걸 깨닫게 됐을 때 신세계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왜 야구를 감으로만 접근했을까. 왜 학문으로 다가가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학구파 이용훈’, 바이오 메카니즘의 창시자 톰 하우스를 만나다.

바이오 메카니즘을 장착한 이용훈 코치(사진=롯데)
바이오 메카니즘을 장착한 이용훈 코치(사진=롯데)

비시즌 미국 연수 길에 올랐다. 국내에도 유명한 톰 하우스를 만났다고 들었다.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은퇴 후 처음 바이오 메카니즘을 알게 됐을 때, 큰 충격이었다. 한 예로 야구란 투수와 포수의 거리가 짧을수록 투수에게 유리한 게임이다. 우린 아직 팔 높이나 각도를 중시한다. 나도 선수 땐 커브, 포크 볼을 잘 던지기 위해 팔각도를 많이 올렸다. 그게 어깨에 큰 무리를 줬다. 한국에선 그런 정보가 부족했고, 가르쳐 줄 사람도 없었다.

구단도 이 코치 미국 연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내 개인적인 일정이었다. 하지만, 구단에서 통역사를 지원해줘 깜짝 놀랐다. 개인적으로 구하고 있었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이 자릴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한다.

미국행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듯싶다.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처음엔 톰 하우스 측에서 오지 말라고 했다. 내가 현재 롯데에 몸담고 있으므로 자신들의 노하우 공개를 꺼렸다. 사방팔방으로 부탁했고, 간신히 답신을 받을 수 있었다.

막상 가보니 ‘잘 왔다’는 생각이 들던가?

정말 잘 왔다고 생각했다. 느낀 게 참 많았다. ‘선수 시절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는 느낌이었다. ‘이거만 보완하면 좋아질 것 같은데’하는 아쉬움 등 모든 게 충격이었다.

예를 든다면?

우선 잘 정리된 투구 이론이 정말 많다. 특히 ‘야구는 위가 아닌 앞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릴리스 포인트’가 바로 그것이다.

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선수들 마음을 잘 이해하는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란 말이었다. 아무리 메카니즘이 중요하다고 해도 결국, 멘탈이 바로 서야 가능한 일이다. 그것에선 영양학, 컨디셔닝, 전략 등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메카니즘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그런 얘길 들으니 정말 새로웠다.

롯데도 지난해부터 ‘심리 치료’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기울이고 있다.

선수들에게 흔히 ‘미친 확신’이란 걸 강조한다. 선수들이 자기 볼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안 좋을 볼을 던지더라도, 확신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공을 가지고 있어도 확신이 없으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없다.

사실 선수들에게 가장 종은 표본은 이 코치 그 자체다(웃음).

선수들에게 그런 말을 많이 한다. '야구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를 봐라. 가장 좋은 표본이 너희 앞에 있다'고 말이다(웃음). 에너지를 많이 써버리면 마운드에서 정작 필요할 때 쓸 힘이 없다. 그러니 우린 야구장에서 쓰자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그게 지도자 생활에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정말 다행인 건 김 수석님하고 생각하는 방향이 정말 비슷하다. 수석님도 선수들에게 좋은 이야기 많이 해주라 하신다.

올 시즌 롯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벌써 '가을 야구'에 대한 기대로 온 부산이 뜨겁다. 이 코치 역할이 중요할 듯싶다.

앞으로 더 공부하고,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는 코치가 되고 싶다. 하루하루 시간 보내는 코치가 아닌 메시지를 주는 코치. 그게 내 꿈이다. 한 시즌을 치르려면 우선 선수들 부상이 없어야 한다. 좋은 팀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감독님과 코치들을 잘 보필할 계획이다.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