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박승민 투수코치(사진=넥센).
넥센 박승민 투수코치(사진=넥센).

[엠스플뉴스]

| ‘불꽃 포심’과 ‘4피치’를 무기로 프로 무대에 등장한 넥센 우완 최원태. 올 시즌엔 포심과 다양한 구종 대신 투심과 투 피치를 앞세워 이닝 이터로 변신했다. 이런 변신은 과연 어떻게 가능했을까. 넥센 박승민 투수코치와 함께 그 비결을 알아봤다.

넥센 히어로즈 영건 최원태. 2015 신인 1차 지명으로 입단한 특급 유망주다. 입단과 동시에 팀의 차세대 에이스감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184cm에 93kg의 탄탄한 신체조건에 선 굵은 외모는 갓 고교를 졸업한 신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최고구속 140km/h 후반에 달하는 불꽃 포심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까지 4가지 구종을 고루 구사해 이상적인 선발투숫감이란 찬사를 받았다.

빠른 패스트볼과 다양한 구종은 어린 투수들에겐 흔치 않은 재능이다. 모두가 그걸 최원태의 장점이라 말했고, 최원태도 그렇게 믿었다. 그 믿음으로 포심을 자신 있게 스트라이크존에 던졌다. 의식적으로 여러 가지 구종을 골고루 배분해가며 던졌다. 하지만 1군 무대에서 결과는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 2016시즌 17경기에서 2승 3패 7.23의 평균자책. 퀄리티스타트는 한 차례도 없었고, 5이닝을 채운 경기도 4번에 불과했다.

그랬던 최원태가 올 시즌 들어 확 달라졌다. 네 차례 등판에서 모두 6이닝 이상을 채웠고, 3경기 연속 7이닝 이상을 던졌다. 21일 고척 롯데전에선 7이닝 무실점으로 데뷔 이후 최고의 호투를 펼쳤다. 특유의 불꽃 포심과 4피치가 드디어 빛을 발한 것일까.

최원태는 어떻게 투심 투수가 되었나

넥센의 기대주 최원태(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넥센의 기대주 최원태(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사실 이 날 최원태의 투구 내용은 그동안 우리가 알던 최원태와는 전혀 달랐다. 이날 최원태는 ‘주무기’ 포심은 물론 슬라이더도 전혀 던지지 않았다. 대신 투심패스트볼을 집중적으로 던지고, 삼진 카운트에선 체인지업을 구사했다. 커브는 약간 곁들이는 정도로 던졌다. 포심과 다양한 구종 대신, 투심과 체인지업 투 피치로 승부한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경기 후 만난 최원태는 “올해 들어 박승민 투수코치님이 ‘투심을 던져보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해주셨는데, 처음엔 믿지 못하고 의심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공을 투심으로 던지고 있다”고 밝혔다.

포심은 사람들이 말하는 최원태의 최고 장점이자 자존심이었다. 박승민 코치는 “본인도 가장 자신 있는 공이 포심이고, 포수들이나 모든 사람도 ‘너의 가장 큰 장점은 포심’이라 이야기했다. 하지만 정작 원태의 포심 피안타율을 살펴보면 4할 6리로 던지는 구종 가운데 가장 피안타율이 높았다”고 전했다. 박 코치는 투수의 구종별 피안타율과 회전수 등 다양한 통계자료를 활용하는 지도자다.

“피안타율 4할인데 그게 제일 좋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원태에게 포심보다는 투심을 던져보는 게 어떠냐고 계속 권유를 했다. 물론 포심 피안타율 같은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또 포심의 구속에 비해 회전수가 그리 좋지 않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네 공이 별로다’란 식으로 말할 순 없는 거니까.”

물론 사람의 생각을 하루아침에 바꾸긴 어려운 일이다. 최원태도 처음엔 박 코치의 권유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박 코치의 설득은 계속됐다. “올해부터 메인 투수코치가 되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피안타율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박 코치의 말이다.

“원태에게 ‘네 구종 가운데 포심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피안타율은 4할이다, 어떻게 개선할 참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높게 던져서 그렇다, 낮게 던지려 노력하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 전에도 낮게 던지려는 노력을 안 해서 피안타율이 높게 나온 건 아니잖은가. 설득해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더라. 그래서 마지막엔 ‘언젠가는 너 스스로 포심을 포기할 때가 올 거다’라고 얘기하고, 원하는 대로 하는 걸 지켜보기로 했다.”

4월 4일 시즌 첫 선발등판 롯데전. 최원태는 1회가 시작하자마자 롯데 타선에 난타당했다. 전준우의 2루타, 앤디 번즈의 안타를 시작으로 이대호와 최준석의 백투백 홈런이 이어졌다. 2회에도 3연속 안타를 맞고 추가 실점해 2이닝 5실점. 조기 강판이 일상이던 지난 시즌의 모습을 재현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장정석 감독과 박 코치는 최원태를 계속 마운드에서 던지게 했다. 그리고 3회를 기점으로 최원태의 투구 내용이 완전히 달라졌다. 3회 선두 이대호에 안타를 허용했지만 최준석을 병살타로 잡았고, 이후 6회까지 단 한 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았다. 2이닝 5실점이 될 뻔한 경기가 6이닝 5실점으로 끝났다. 비결이 무엇일까.

박 코치는 “포수 박동원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동원이에게 ‘원태에게 포심 사인을 줄여라’고 했다. 그런데 첫 이닝을 마치고 들어와서 동원이가 ‘왜 그래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하더라. 포수 입장에선 포심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비율을 낮추라고 하니 혼란스러웠던 모양이다.” 박 코치의 말이다.

“그래서 ‘사실 원태의 포심이 이러저러하다. 변화를 줬으면 싶은데 주지 않으니, 비율을 낮추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동원이가 적극적으로 원태를 이끌었고, 그러면서 3회부터 결과가 크게 달라졌다. 나보단 박동원의 힘이 컸다.”

최원태의 기억도 비슷하다. 최원태는 21일 롯데전을 마친 뒤 “투심은 4일 경기 3회부터 던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사실 그땐 그냥 ‘던지라고 하니 던지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젠 완전히 믿음이 생긴 것 같다. 오늘 경기를 하면서도, 제대로 제구가 안 된 공도 땅볼이 되고 타자를 막아낼 수 있었다. 내 포심이 피안타율 4할이 넘었었는데, 낮게 던질 방법을 고민하다 그립만 바꾼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최원태의 얘기다.

“결과가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박승민 코치가 투수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사진=넥센).
박승민 코치가 투수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사진=넥센).

박 코치는 선수가 스스로 필요성을 느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스스로 벼랑에 몰려야 변화할 마음이 생긴다. 최원태는 그래도 2년 만에 바뀐 경우지만, 김세현 같은 경우엔 시간이 3년 이상 걸렸다. 김세현이 투심을 던지기 시작한 게 지난해부터다. 그 이전엔 절대 던지지 않았다.” 박 코치의 말이다.

김세현도 최원태처럼 불꽃 포심을 강점으로 앞세웠던 선수다. 최고 155km/h에 달하는 강력한 패스트볼을 무기로 삼았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고, 만년 유망주란 평가를 받아야 했다. 박 코치는 “세현이도 패스트볼 피안타율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개선점을 강조했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전했다.

“결국 본인이 필요성을 느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본인은 포심이 자신있고 할 수 있다 믿는데, 주위에서 ‘그걸로는 안 된다’고 하고 강요하면 오기가 생기게 마련이다. ‘내가 꼭 이걸로 성공하고야 만다’고 고집하게 된다.” 박 코치의 말이다. 한때 넥센의 기대주였던 문성현과 강윤구가 이런 케이스다. 둘 다 강력한 패스트볼 구위를 앞세워 유망주로 꼽혔지만, 매년 시즌이 끝나면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한 넥센 전직 지도자는 이를 ‘실패의 역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박 코치는 최원태에게 “변화를 주면 결과가 더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과 똑같은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설득했다. “네가 그립을 조금 바꾸면 더 나빠지든 좋아지든,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거다. 지금 결과가 좋지 않은데, 다른 결과를 보고 싶지 않냐고 이야기했다. 시즌 첫 경기에서 본인 스스로 깨달은 것 같아 정말 다행이다. 원태 자신도 지금의 결과에 많이 놀라고 있을 거다.”

젊은 투수가 포심을 아예 던지지 않는 데 따르는 문제는 없을까. 박 코치는 “무조건 투심만 던지라는 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 포심도 던지고 투심도 던지라 하고 싶지만, 그러다 보면 막 생기기 시작한 투심에 대한 확신이 사라질까 봐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사실 21일 롯데전에서도 포심을 권하고 싶은 상황은 많았다. 타자에 따라선 투심보다 높은 포심을 던지는 게 더 나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단지 한 경기에 한 타자를 잡기 위해서, 투수가 공에 대한 확신을 얻는 과정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일부러 이야기를 안 하고 있다. 얼마든지 투심을 던지라고 하고 지켜보는 과정이다.”

슬라이더 비율이 줄어든 것도 비슷한 이유다. “흔히 선발투수라면 네 가지 구종은 갖춰야 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가치가 떨어지는 공이라면 차라리 안 던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스탯이 나쁘고 피안타율이 높은 공이라면 그 구종을 던질 이유가 없다고 본다.” 박 코치의 설명이다. “그래서 가진 구종을 다 연습은 하되, 경기 때는 되도록 좋은 공만 던지게끔 한다. 그러다 그 구종만 갖고는 벽에 부딪혔을 때, 그때 던지지 않던 공을 활용할 수 있게 준비하면 된다.”

박 코치는 최원태뿐만 아니라 다른 넥센 투수들에 대해서도 믿음을 갖고 있다. 시즌 초반 팀 마운드 성적이 썩 좋지는 않지만, 시즌이 진행될수록 점차 좋아질 거라는 생각이다. “세부적인 내용에선 우리가 계획했던 대로, 가고자 하는 방향대로 잘 가고 있다.” 박 코치의 말이다.

“경기당 투구 수, 이닝당 투구 수도 적고 볼넷도 적다. 우리 조직과 코칭스태프가 하고자 하는 방향대로 선수들이 잘 따라주고 있는데, 일시적으로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방향을 바꿀 순 없다. 초반 평균자책은 높지만 FIP(수비무관평균자책)는 상대적으로 괜찮은 편이다. 개선될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일정한 시기만 지나면 원래 모습을 되찾을 거다.”

박 코치를 포함한 넥센의 코칭스태프는 지금까지 팀의 방향이 틀리지 않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갖고 있다. 비록 시즌 초반 힘든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조금씩 팀 전력이 안정을 찾으면서 서서히 계획했던 궤도에 올라서고 있는 넥센이다. 넥센은 유망주에서 이닝이터로 진화한 최원태처럼, 다른 선수들도 시간이 지나면 기대했던 원래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믿고 기다리고 있다. 이게 바로 넥센 히어로즈만의 색깔이자, 넥센을 강팀으로 끌어 올린 힘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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