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호빵맨' 롯데 자이언츠 투수 송승준(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돌아온 호빵맨' 롯데 자이언츠 투수 송승준(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엠스플뉴스]

l 송승준의 야구 인생은 거친 파도처럼 굴곡졌다. 미국 마이너리그와 KBO리그를 거치며 온갖 역경을 홀로 견뎠다. 지난 시즌엔 이유모를 부진과 부상이 그를 찾아왔다. 모두가 '송승준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할 무렵.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선발 등판 기회가 찾아왔다.

4월 25일 부산 사직구장. 낯익은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롯데 자이언츠 송승준이었다. 382일 만의 선발 등판. 마운드에 선 송승준의 표정엔 비장함이 감돌았다.

송승준이 상대할 한화 이글스 선발 투수는 카를로스 비야누에바였다. 메이저리그(MLB) 11년 차 베테랑 투수 비야누에바는 올 시즌 KBO리그 5경기에 선발 등판해 1승 3패 평균자책 2.30을 기록했다. 뛰어난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를 앞세워 연일 위력투를 펼치고 있었다.

비야누에바와 송승준이 선발투수로 예고되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전성기 지난 송승준이 과연 MLB 베테랑 투수 비야누에바를 넘어 설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송승준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 까닭인지 승부욕이 더욱 불타올랐다. 아직 죽지 않았단 사실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송승준의 말이다.

그런 송승준의 다짐은 현실이 됐다. 주변의 우려와 예상을 깨고 눈부신 호투를 선보인 것이다(5.2이닝 1실점). 부산 팬들은 6회 초, 마운드를 내려오는 송승준에게 열화와 같은 박수로 호투에 화답했다.

돌아온 송승준, '특별할 게 없어 더 특별했던 선발 등판'

'382일'만에 첫 선발승 따낸  송승준(사진=롯데)
'382일'만에 첫 선발승 따낸 송승준(사진=롯데)

도대체 얼마 만에 첫 승입니까.

(머쓱하게 웃으며) 기억 안 날 만큼, 오래전 일입니다.

이 분이 ‘보약이라도 먹었나’ 싶었습니다(웃음).

너무 열심히 던져서 지금도 팔이 올라가지 않습니다(웃음). 예전엔 공을 몇백 개 던져도 거뜬했는데 말입니다. 나이를 먹긴 먹었나봅니다. 요즘 하루하루 몸 상태가 달라요.

한화전만 보면 전성기 못지 않았습니다. ‘속구로 윽박지르고, 포크볼로 마무리’하는 투구 레퍼토리도 그대로고요.

한화전에선 투구 수가 80개로 한정돼 있었습니다. 원래 제 스타일이 5이닝, 투구 수 100개 정도거든요. 올 시즌 불펜 투수로 시작하다 보니 그날도 불펜 투수처럼 초구부터 전력을 다했습니다. 못하면 바로 교체된단 생각에 공 하나, 하나 놓칠 수가 없었죠.

'382일 만에 선발 등판'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선발 등판 할 거라곤 예상치 못했습니다. 막상 선발 등판한단 소릴 듣자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설령 강판당하더라도 ‘크게 무너지지만 말자’는 각오로 버텼습니다. 운이 많이 따랐던 경기였어요. 동료 수비수들이 잘 막아줬고, 상대편 실수도 뒤따랐습니다.

포수 강민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특별히 이야기 나눴던 부분이 있었나요.

특별한 게 없어서 더 특별했습니다. 한참 잘 던질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포수 리드도 예전 그대로였고요. 그게 오히려 제겐 할 수 있단 믿음을 심어줬습니다. 마운드에서 (강)민호랑 마주 앉아 있으니 10년 전 추억이 떠올랐어요(웃음). 특별히 이야기 한 건 없었고, 경기를 진행하면서 사인을 맞춰갔습니다.

이날 패스트볼 최고 구속이 148km/h였습니다. 한창 젊은 시절에도 이 정돈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구속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평소보다 힘이 넘치고, 컨디션도 좋았습니다. 공 하나, 하나 전력으로 던졌는데, 결과가 좋았네요(웃음).

구속뿐만 아니라 몸도 지난 시즌에 비해 훨씬 좋아졌습니다. 특별한 비결이 있다면 좀 들려주시죠.

비시즌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했습니다. 비결 보단 몸이 아프지 않습니다. 전력으로 공을 던져도 팔에 불편함이 없어 머릿속에 쓸데없는 생각이 사라졌어요. 지난 시즌엔 공을 던질 때 ‘혹시 아프면 어떡하지’하며 스스로 위축됐습니다.

표정에선 비장함이 느껴지더군요.

요즘 매 경기 마지막일지도 모른단 생각으로 나섭니다. 지금 제가 가릴 처지가 아니잖아요(웃음). 한화전에선 '5이닝 던지는 마무리 투수'란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습니다(웃음).

송승준 "난 왜 이렇게 기복이 심할까 고민 많이 했었죠."

불펜에서 등판을 기다리는 송승준(사진=롯데)
불펜에서 등판을 기다리는 송승준(사진=롯데)

송승준은 지난 시즌 KBO리그 최악의 부진을 경험했다. 10경기에 등판해 1승 2패 평균자책 8.71의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다. 더군다나 대부분 시간을 퓨처스팀 소속으로 보냈다. 9년 연속 100이닝, 7승 이상을 기록한 투수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 여기다 지난해 11월,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한마디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25일 한화전 호투는 여러모로 의미가 큽니다. 야구계 일부에선 당신을 ‘이제 한물간 투수’로 평가했습니다.

누구나 오르막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입니다. 첫 승 후에 팬들에게 말씀드렸어요. 저도 이제 ‘선수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죠.

지금 은퇴를 선언한 건가요. 그렇다면 특종이네요.

은퇴는 아닙니다(웃음). 보여드릴 게 아직 남아있어요. 승부욕만큼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습니다. 한화전도 마찬가지였어요. 모두 비야누에바가 더 잘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승리는 제 것이었죠. 반드시 이기겠단 의지가 절 움직였습니다.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 경기였고요.

지난 시즌 부진에 관해선 다양한 설이 떠돕니다. 부상도 이에 한몫 했고요.

전 부상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가 못 한 겁니다. 결과로 말하는 게 프로선수잖아요. 이 부분에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 수술을 결정했습니다. 복귀 시기를 놓고, 말이 많았어요.

지난시즌엔 심리적으로 불안한 게 많았어요. 특히 팔꿈치가 불편했습니다. 여러 가지 안을 놓고, 고민하다 수술을 결정하게 됐어요. 전 충분히 개막전에 던질 수 있단 생각으로 수술했고, 이후에도 재활 훈련을 서둘렀습니다. 한가지 중요한 건 제가 지금 1군에서 공을 던지고 있단 것이죠.

‘37살’ 베테랑 투수 송승준에게 팔꿈치 수술은 위험할 수도 있었습니다.

주위에선 ‘왜 수술을 빨리 결정 안 했냐’, ‘5, 6월까지 공백은 어떡하려고 그러냐’는 등 걱정이 많았어요. 하지만, 제겐 확신이 있었습니다. 전지훈련 이전에 복귀해 캠프 때 공을 던지고, 개막전에 나서겠단 확신이요.

2007년 이후 KBO리그에서 가장 꾸준한 투수 가운데 1명이었습니다. 이닝 부문에선 1위 삼성 라이온즈 윤성환(1424.2이닝)에 이어 2위(1415이닝)를 차지 했고요.

그랬나요?(웃음).

송승준하면 들쑥 날쑥한 투구 기복 문제가 늘 논란거리였죠. 도대체 왜 그렇게 기복이 심했던 겁니까.

신은 공평한 것 같아요. 제게 건강한 신체를 준 대신 기복을 준 셈이죠. 이것도 제 실력입니다. 예전엔 ‘롤러코스터’ 투구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난 왜 이렇게 기복이 심하지’하며 자책하기도 했고요. 기복을 줄이려고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해결책을 찾았나요?

아직도 그 점에 관해선 답답할 따름입니다.

송승준 "욕 먹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힘들 때마다 미국 생활을 떠올린다는 송승준. 당시 혼자 모든 걸 이겨내야 했던 송승준에겐 차리리 요즘이 더 행복하다고 한다(사진=엠스플뉴스)
힘들 때마다 미국 생활을 떠올린다는 송승준. 당시 혼자 모든 걸 이겨내야 했던 송승준에겐 차리리 요즘이 더 행복하다고 한다(사진=엠스플뉴스)

송승준은 2015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취득해 원소속팀 롯데와 4년 총 40억 원에 계약했다. 영원한 롯데맨’으로 남게 된 셈이다. 그러나 팬들의 원성도 몸값만큼이나 높았다. 부진한 성적이 계속되자 팬들은 송승준에게 온갖 비난을 쏟아냈다.

부산 팬들의 ‘롯데 사랑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만큼 팀과 선수들에 대한 애정이 크단 뜻이죠. 애정은 가끔 비난이 되기도 합니다. 한때 그 타겟이 된 적도 있으셨고요.

2014년부터 2016년까진 솔직히 욕먹어도 할 말이 없었어요. 처음엔 더 힘들었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욕을 먹으면 먹을수록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비난의 강도도 점점 올라갔습니다.

전 제 기사에 악성 댓글이 없으면 오히려 불안하더라고요(웃음).

(말없이 크게 웃으며) .

악성 댓글엔 적응 되셨습니까.

이젠 팬들의 관심이고,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결국 팬들의 사랑 때문이잖아요. 문득 이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욕먹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이죠. 가끔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리울 것 같아요.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팬들의 소리가 너무 소중하고 감사히 들렸습니다.

미국 마이너리그 시절도 KBO리그 못지않게 힘들었을 듯싶습니다. 더욱이 극성맞기로 소문난 MLB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소속이었잖아요. 힘들 땐 어떻게 견디셨나요.

미국에선 지금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속내를 털어놓을 친구조차 없었어요.

타국에서 혼자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KBO리그는 미국에 비하면 힘든 것도 아닙니다. 전 당시 늘 혼자 이겨내야 했어요. 고민도 많았고요. 모든 걸 혼자서 이겨내야 했던 시간이었죠. 어찌 보면 그 경험들이 저를 더욱 단단케 만든 게 아닌가 싶어요. 요즘도 힘들 때 가끔 미국 생활을 떠올립니다.


롯데에 입단한 게 2007년이었죠. 당신은 KBO리그 첫 시즌부터 강렬했습니다. 그 해 5승 5패 평균자책 3.85를 기록했습니다. 첫 등판 당시 기분은 어땠습니까.

4월 21일이었습니다.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에 등판해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어요. 그때 부산 팬들의 박수 소리가 정말 엄청났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거든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롯데 팬'이었나 봅니다.

당연하죠. 1992년 한국시리즈 당시에도 사직구장에서 경기를 봤고, 롯데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이 꿈이었어요. 입당 당시엔 '나도 드디어 KBO리그에서 뛰는 날이 오는구나'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벌써 10년째 여기서 뛰고 있습니다(웃음).

송승준을 일깨운 코칭스태프의 조언, '모든 건, 결과로 말하라'

몬트리올 엑스포스 산하 마이너리그 시절 송승준(사진=gettyimages / 이매진스)
몬트리올 엑스포스 산하 마이너리그 시절 송승준(사진=gettyimages / 이매진스)


불펜 투수로 올 시즌을 맞았습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동료 불펜 투수들에게 물어봤어요. 저보다 다른 투수들이 더 당황하더라고요(웃음). 제가 지금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닙니다.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공 1개를 던져도 마운드에 오르는 게 제 역할이에요.

이런 경험은 처음일 텐데요.

후배들과 선의의 경쟁에서 밀린 거죠(웃음). 사실입니다. 확실히 젊은 투수들의 구위가 더 좋았습니다. 아쉽진 않습니다. 빨리 받아들이고, 제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베테랑 선수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 MLB 유명한 스타들의 사례를 자주 접했습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선수들이 마이너리그에 내려왔을 때 어떻게 하는지 가까이서 지켜봤거든요. 대부분 원래 위치에 대한 미련 때문에 현재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여전히 자신이 스타인줄 알고 있는 것이죠. 물론 받아들이는 선수도 있었고요.

음.

프로는 결국 실력입니다. 이름 값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이름 값에 연연한다면 은퇴하는 게 맞다고 봐요. 불펜 투수로서 공을 던질 수 있단 것도 제겐 행운이죠.

조원우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조언이 큰 힘이 됐다고 들었습니다.

감독님은 항상 ‘괜찮다’,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신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아무래도 내 포지션이 투수 다보니 투수 코치님과 나눌 기회가 많았어요.

어떤 이야길 들었습니까.

김원형 코치님에겐 본인 선수 시절 경험담을 많이 들었습니다. 코치님도 정말 대단한 스타셨잖아요. 어떤 점에선 저와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이용훈 코치님은 선수 생활을 함께했던 분이세요. 누구보다 제 마음을 잘 아시고, 불펜에서 앉아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제 마음을 다 잡는데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제야 진짜 송승준을 보는 듯싶습니다.

프로는 결과로 말해야 합니다. 실력, 경험, 연봉과 상관없이 결과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못하면 없어지는 거고, 잘하면 살아남는 거예요. 요즘 편하게 마음 먹고 있습니다. 방향을 잡으니 마음도 한결 편해졌고요.

다음 등판은 '선발'인가, '불펜'인가.

이제 선발로 1경기 던졌습니다. 올 시즌 불펜 투수로선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했어요(평균자책 6.75). 앞으로 어떻게 될진 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선발이든 불펜이든 팀을 위한 일이라면 언제든 최선을 다할거예요. 제 야구 인생의 마지막 숙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수은 기자 gurajne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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