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홍성흔(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아듀' 홍성흔(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엠스플뉴스=잠실]

‘영원한 캡틴’ 홍성흔(41)이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홍성흔은 4월 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 앞서 공식 은퇴식을 가졌다. 18시즌간 홍성흔이 몸담았던 두 팀 선수단과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잠실구장 2만 5000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 역시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홍성흔은 “이곳 야구장(잠실구장)은 18년 동안 팬 여러분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곳인데 오늘은 오로지 저만 축하를 받는 것 같아 미안하고, 또 감사하며 영광스럽습니다”라는 은퇴 인사를 전했다.

마지막까지 팬들과 함께한 동료들을 잊지 않았다.

“저는 오늘 이 많은 팬 여러분의 축복 속에 감사히 떠나겠습니다. 지금까지도 감사했었고 앞으로도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사랑 잊지 않고 또 다시 훌륭한 선배, 훌륭한 지도자로 선수 때보다 더 멋있는 모습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이역만리 낯선 미국에서 지도자 인생을 시작한 홍성흔이다. 그런 그가 전하는 인사는 지금 함께하는 루키 선수들만큼 싱그러웠다. 특유의 밝은 미소와 위트로 은퇴식마저 웃음바다로 만든 재기발랄함도 여전했다.

홍성흔은 우타자 최초 2000안타 달성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다. 또 1991년 신인왕 수상,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선수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꼽았다. 또 그간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을 선수 생활의 가장 큰 동력으로 꼽으며 감사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홍성흔 “지도자로 새 인생, 미국야구 쉽지 않다”

은퇴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홍성흔(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은퇴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홍성흔(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근황을 알려 달라.

미국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루키팀의 인턴코치를 하고 있다. 난 그 가운데 배터리와 타격쪽 코치를 맡고 있다. 샌디에이고 코치 연수가 가능했던 건 두산에서 먼저 노력해줬다. 또 박찬호 선배도 많이 알아봐줬다.

미국 루키리그 일정은 굉장히 고된걸로 안다. 일과를 소개해준다면.

샌디에이고 루키팀 코치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일과를 시작한다. 얼리워크(Early Work)가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배팅볼 치는 것이나 여러 훈련을 도와주고 있다. 생각보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차이를 엄격하게 둔다. 선수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코치들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영어 실력은 많이 늘었나.

내 생각엔 아직 제자리인 것 같은데, 박찬호 선배는 ‘적응력 하나는 끝내준다’며 많이 늘었다고 하더라. 그 정도까진 아니고 이제 조금씩 말이 들리는 것 같다.

해외 코치 연수는 준비를 해서 갔는지.

어학은 3개월 정도 따로 준비를 했다. 또 외국인 선수제도가 그런 점에선 내게 많은 이득이 됐던 것 같다.

체중이 많이 빠진 것 같다.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가기전엔 솔직히 만만히 보고 갔다(웃음). 야간 훈련도 없을 줄 알았고 훈련량도 적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대신에 새벽훈련이 있더라.

(일동 폭소)

정말 많이 뛰어다녔고, 걸어다니는 것도 없이 정말 늘 뛰어다녔다. 다른 루키팀은 분위기가 어떨지 모르겠는데 샌디에이고는 약간 군대 같은 느낌이 있다.

훈련 종료 이후 일과는 어떻게 보내는지.

영어수업을 받고 있다. 사실 미국에서 코치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많은 지도자들이 연수는 받았지만 여태껏 정식 코치로 인정을 받은 분이 없는 것으로 안다.

이만수 전 SK 감독은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한국의 배터리 코치 역할을 했으나 정식직함은 불펜 포수(Bullpen Catcher)였다. 다만, 미국의 불펜 포수는 작전 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한국의 코치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로스터에도 이름을 올린다.

쉽지 않은 도전일텐데.

주위에서도 많은 메이저리그 선수 출신의 코치 연수생들이 있고 도전하는 이들이 워낙 많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정식 한국인 코치 1호’라는 목표를 가지고 끝까지 도전하고 싶다.

선수들과는 당신의 '배트플립 영상'을 보고 친해졌다고 들었다.

(함박미소) 맞다. 그게 아니었으면 선수들과 그렇게 친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거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있어서 다가가기 쉽지 않다. 미국에선 ‘빠던(배트프립)’을 충격적으로 생각하더라. 그것과 함께 홈런을 치는 영상을 보여주니까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하면서 물어보기도 하고 신기하게 받아들였다.

홍성흔, “두산과 롯데 모두 내겐 소중해”

두산의 22번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지만 홍성흔에게 두산과 롯데는 모두 소중한 팀이었다(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두산의 22번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지만 홍성흔에게 두산과 롯데는 모두 소중한 팀이었다(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두산에서 선뜻 성대한 은퇴식을 마련해줬다.

사실 정말 생각도 못했다. 두산에서 ‘많은 배려를 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솔직히 껄끄러울 수도 있는 상황인데 이렇게 롯데와 같이 경기를 하는 시기에 은퇴식을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솔직히 은퇴식은 하지 못할 걸로 생각했다.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은 적도 있기에 그런 부분이 인정받지 못 할 거란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두산 소속으로 뛰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뤘던 부분 등에 대해 내 기여를 더 인정해 주셨던 것 같다. 감사한 마음뿐이다.

두산과 롯데 모두 애정이 많다. 은퇴식 감회가 더 남다르겠다.

이젠 어떤 한 팀의 소속인이 아닌 야구인의 입장에서 둘 다 고마운 팀이다. 내게 기회를 준 롯데도 고마운 팀이고, 신인과 끝을 함께한 두산도 내겐 감사한 팀이다. 내겐 롯데도 소중하고 두산도 소중하다.

많은 후배들이 있는데, 특히 누가 반겨줬나.

사실 너무 많아서 특별히 생각하는 선수는 없다. 아까 경기 전에 이대호를 만났는데 ‘형님, 왜 이렇게 살이 빠졌습니까. 아쉽습니다. 50살까지 야구 할 줄 알았다’고 하더라. 이따 만나면 어제(29일) 왜 퇴장 당했는지 한 번 물어보겠다(웃음). 또 두산에선 오재원, 김재호, 민병헌, 양의지 같은 선수들을 아까 만났는데 굉장히 반가워하고 또 좋아하더라.

은퇴식을 대하는 지금 감정은 ‘기쁨’인가 아니면 ‘슬픔’에 가깝나.

야구장에 오기 전에 ‘절대 울지 말자. 울면 지는 거다’ 라고 스스로에게 약속을 하고 왔다. 하지만 어떻게 될 진 모르겠다.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다. 떠난다는 마음보단 새 출발을 한다고 생각하며 기쁘게 준비하겠다.

은퇴 결정 당시(2016년 11월) 아주 조용히 떠났다. 이유가 있었나.

지금으로선 기자회견이나 입장발표를 ‘안 한 게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마음은 다르다. 그땐 편하게. 조용하게 떠나고 싶었다. 지금은 많은 기자분들 앞에서 편하게 내 얘기를 할 수 있는데 당시엔 아니었다. 원래 그렇지 않나. 갑자기 직업을 잃으면 사람이 당황하게 된다. 무언가 이뤄놓고 내 것을 만든 이후에 얘기를 해야만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항간에 소문도 있던데 절대 ‘기자들과 싸운 것’이 아니다.

(일동 폭소)

평소 입담 덕분에 방송 쪽의 러브콜도 많았을 것 같다.

정말 많은 콜이 왔다. 심지어 MC자리를 보장해 준다는 연락도 많았다. 스포츠스타 중에서 방송에서 뛰고 있는 서장훈, 안정환 씨 같은 사례도 있지 않나. 제의 자체는 정말 많았다. 그런데 연예계 생활과 코치나 지도자 생활을 양쪽에 놓고 떠올렸을 때 연예계쪽을 떠올리니 마음이 불편하더라. 여태껏 야구를 하면서 큰 사랑을 받았고, 쭉 야구를 해왔는데 연예계를 택하는게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비록 보수가 없더라도, 지금 이렇게 젊은 선수들과 땀을 흘리는 게 더 행복하다.

코치 연수는 언제까지 받을 계획인가.

아까도 말했듯이 시간은 기약이 없다.

방송해설 제의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연예계 쪽을 포함해서 스포츠도 각 방송사에서 전부 제의가 왔었다. 하지만 ‘지도자 생활을 하겠다’고 정중하게 고사를 했다.

“팬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홍성흔의 은퇴식에 눈물을 흘리는 팬들(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홍성흔의 은퇴식에 눈물을 흘리는 팬들(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18시즌 동안 뛰면서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데뷔 시즌 신인왕을 받았을 때가 가장 첫 번째로 기억이 난다. 2001년에 주전 포수로 마해영 선배를 삼진 잡고, 진필중 선배와 부둥켜 안고 기뻐했던 첫 우승이 두 번째로 떠오른다. 또 2015년 비록 나는 기여하지 못했지만 우리 선수들이 열심히 해줘서 함께 우승을 했던 것 까지 기억난다.

가장 기억나고 자랑스러운 기록은 뭔가.

내겐 2000안타가 계속 따라다닌다. 물론 거기다 200병살(병살타 230개 1위)도 따라오지만 말이다(웃음). 우타자 최초로 달성했기에 내겐 2000안타가 제일 뿌듯하고 좋은 기록이다.

아쉬운 것 하나만 꼽는다면.

마지막 시즌, 팬들께 기량적인 면에서 실망을 안겨드린 게 가장 아쉽다. 개인적으론 말 실수도 했는데, 그 점을 후회하고 아쉽게 생각하고 또 반성하고 있다.

팬들의 큰 사랑을 받은 선수였다.

팬들의 사랑을 먹고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내 실력만으로 선수 생활을 한 게 절대 아니었다. 팬들 덕분이다.

또 은퇴를 결심한 것도 2016년 개인적인 실수를 하게 되면서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하면 이 사랑마저 잃겠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팬들이 밀어주고 응원해주셨던 걸 항상 감사드린다. 이젠 더 홀가분하게 온전히 감사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다.

김원익 기자 one2@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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