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 타자로 변신한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사진=엠스플뉴스)
3번 타자로 변신한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대전]

최근 주춤했던 이대호가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다. 3,650일 만에 3번 타자로 변신한 이대호는 5월 7일 KIA 타이거즈전 4안타로 타격감을 끌어올렸다. '4번 타자'란 부담감을 덜어낸 '3번 타자' 이대호의 변신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현대 야구는 변화에 민감하다. 언제나 변하고, 빠르게 움직인다. 한순간의 안주는 곧 퇴보를 의미한다. 이는 메이저리그(MLB)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통해 야구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MLB는 최근 ‘가장 효율적인 타순’ 찾기에 나섰다. 근래엔 2번 타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MLB를 대표하는 강타자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과 브라이스 하퍼(워싱턴 내셔널스) 등이 2번 타순에 들어선 것도 한 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3, 4번 타자는 팀 타선의 중심이었다. 과거 연구 결과에선 3, 4번 타순에 강타자가 있을 때 승리할 확률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현대 야구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클린업 타순에 얽매이지 않고 출루와 효율성을 극대화했을 때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단 것이다.
KBO리그 또한 이러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LG 트윈스는 지난 시즌 개인 통산 최고 출루율(0.387)을 기록한 오지환을 2번 타순에 기용했다. NC 다이노스도 리그 타점 1위(27점) 모창민을 2번 타자로 내세웠다. SK 와이번스 역시 타자 OPS 1위(1.234) 한동민을 2번 타순에 투입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롯데 자이언츠도 그 가운데 한 팀이다. 롯데는 최근 타순 변화로 큰 화제를 모았다.
3번 타자 이대호가 팀에 가져다줄 '파급 효과'

이대호의 3번 타자 변신은 성공할 수 있을까?(사진=엠스플뉴스)
이대호의 3번 타자 변신은 성공할 수 있을까?(사진=엠스플뉴스)

롯데 이대호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많다. 연고지 ‘부산’을 시작으로 타격 7관왕, 만능 타자, 일본 프로야구(NPB), 메이저리그(MLB) 등 두 손으로 다 셀 수 없을 정도다. 그 가운데 ‘4번 타자’란 단어를 빼면 이대호를 설명할 수 없다.
이대호는 현대 야구가 정의하는 ‘4번’에 가장 잘 어울리는 타자다. 정확한 타격과 무시무시한 파워, 한 치의 오차 없는 선구안으로 상대 투수를 압박한다. 여기다 타석에서 이대호의 갖는 카리스마란 여느 타자들이 넘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이쯤 되면 이대호가 4번 타자로 나서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정도.
그런 이대호가 5월 7일 KIA 타이거즈전에 3번 타자로 출전해 큰 관심을 모았다. 조원우 롯데 감독은 “(이)대호가 그간 심적으로 편치 않았을 것이다. 최근엔 특타를 자청할 정도였다”며 “5월 들어 페이스도 조금 떨어졌다. 4번 타순이 부담스러울 수 있어 타순에 변화를 줬다”고 말했다.
이대호가 3번 타자로 출전한 것은 2007년 5월 10일 SK전이었다. 일수로 따지면 무려 3,650일 전의 일이다. 이날 3번 타자 이대호는 5타수 4안타(1홈런) 2타점을 몰아쳤다.
이 4안타엔 의미가 깊다. 올 시즌 첫 4안타 경기이자 안타 모두 평균자책 1.99를 기록 중인 KIA 에이스 헥터 노에시를 상대로 뽑아낸 것이었다. 9일 한화 이글스전을 앞둔 조 감독은 “대호가 3번으로 출전해 타격감이 좋았다. 특별히 부담감도 없는 것 같다. 3번 타자로 좀 더 나서게 될 것”이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사실 3번 타자는 4번 타자보다 장점이 많다. 찬스 혹은 위기 상황에서 한 타석 더 들어설 수 있단 점이 그렇다. 만약 이날 헥터가 9회까지 한 타자도 내보내지 않았다면 이대호의 타석 수는 3타석이 전부였다. 비교적 출루 확률이 높은 테이블 세터 가운데 한 타자만 출루해도 이대호에게 돌아갈 기회가 늘어난다. 또 하위 타선이 약한 롯데엔 이대호를 전진 배치하는 것이 찬스 상황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삼성 라이온즈는 전성기 시절 이승엽을 3번 타자로 기용했다. 절정의 타격감을 자랑했던 이승엽을 한 타석이라도 더 들어서게 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이승엽은 3번 타순에서 KBO리그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갈아치웠다(56홈런). 올 시즌도 이러한 추세는 더욱 뚜렷하다. 구자욱(삼성), 닉 에반스(두산 베어스), 최정(SK), 박경수(kt), 나성범(NC) 등이 꾸준히 3번 타자로 나서고 있다. 모두 해당 팀 내 수위 타자들이다.
이대호는 타순 변화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모든 건 감독님이 결정하실 일이다. 팀이 이길 수 있다면 어딜 못 가겠나”라며 의지를 보였다. “솔직히 3번이나 4번 모두 비슷하다. 마지막에 1번 더 타석에 들어서는 정도 차이라고 생각한다.” 이대호의 말이다.
프랑코 타격코치가 말한 ‘3번 타자 이대호’

프랑코 코치는 이대호의 '3번 타자' 변신을 어떻게 바라봤을까(사진=롯데)
프랑코 코치는 이대호의 '3번 타자' 변신을 어떻게 바라봤을까(사진=롯데)

이대호의 3번 타자 변신은 의미가 크다. ‘조선의 4번 타자’라고 불렸던 이대호에게 4번 타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자리다. 그간 대부분의 감독이 이대호를 4번에 고정한 것도 그런 상징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 감독은 달랐다. 기존 관념을 깨고, 팀이 살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

훌리오 프랑코 롯데 타격코치도 이와 같은 생각이다. 프랑코 코치는 “3번 타자는 1회부터 타석에 들어선다. 여기다 1, 2번 타자가 출루하면 곧바로 득점권에 찬스를 맞는다. 이대호는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상관없이 강했다. 이대호가 3번 타자로 나서는 게 우리 팀엔 더 효율적”이라고 밝혔다. 이대호는 올 시즌 주자가 루상에 있는 상황에서 0.357의 고타율을 기록했고, 주자가 없을 땐 0.433로 더 강했다. 해결사 이대호에겐 상황보단 기회가 더 필요한 셈이다.

그러면서 “3번을 치든, 4번을 치든 우리 팀 공격 색깔에 맞추는 게 중요하다. 난 이대호가 3번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세계 야구의 흐름인 2번 타순에 대해서 프랑코 코치는 “틀린 말이 아니다. 2번 타순은 현대 야구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굉장히 다이나믹한 타순이다. 그렇다고 이대호를 2번에 쓸 순 없다(웃음). 이대호에겐 3, 4번에서 해줘야 할 역할이 있다. 2번 타자는 도루도 가능하고, 더욱 다이나믹한 선수가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모든 사람이 이대호를 4번 타자의 상징이라 여겼다. 조 감독은 그런 케케묵은 생각을 털어내고, 팀 공격의 살려낼 방법을 고민했다. 이대호도 명예와 상징성에 연연하지 않았다. 팀을 위한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대호의 3번 타자 변신은 두 이의 결단과 의지가 만들어낸 진짜 ‘이대호 효과’라 볼 수 있다.
3번 타자 이대호는 또 어떤 활약으로 부산팬들을 즐겁게 할지 지켜볼 일이다.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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