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비상을 꿈꾸는 롯데 자이언츠 송승준(사진=롯데)
또 한 번의 비상을 꿈꾸는 롯데 자이언츠 송승준(사진=롯데)

[엠스플뉴스=대전]

두 베테랑 투수들의 생존법이 눈길을 끈다. 지난 시즌 팔꿈치 부상에서 나란히 회복한 송승준·배영수는 올 시즌 부활을 알리며 연일 호투를 펼쳤다. 성적뿐만 아니다. 팀에도 좋은 효과를 안겼고, 후배들에겐 든든한 선배로 우뚝 섰다. 감독·선수들이 본 두 선수의 긍정 효과는 무엇이었을까.

5월 10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낯익은 두 투수가 교대로 마운드에 올랐다. 롯데 자이언츠 송승준과 한화 이글스 배영수였다. 두 이의 등장에 올드 야구팬들은 잠시나마 향수에 젖었다.

두 투수는 이날 공 하나, 하나에 온 힘을 다했다. 송승준은 5.2이닝 1실점, 배영수는 4이닝 3실점(2자책)으로 버텼다. 사실 많은 이닝을 기록한 것은 아니었다. 과거 150km/h를 넘나들던 패스트볼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베테랑 투수들의 관록(貫祿)투에 야구팬들은 박수를 보냈다.

다시 일어선 두 베테랑 투수 송승준·배영수

(좌로부터) 롯데 자이언츠 투수 송승준, 한화 이글스 투수 배영수(사진=엠스플뉴스)
(좌로부터) 롯데 자이언츠 투수 송승준, 한화 이글스 투수 배영수(사진=엠스플뉴스)

송승준과 배영수는 한때 KBO리그를 대표했던 투수들이다.

송승준은 경남고 졸업 후 메이저리그(MLB) 진출을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했던 송승준은 당시 최고 투수 유망주 조쉬 베켓과 비견될 정도로 고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시간은 내 맘 같지 않았다. 극성맞은 보스턴 지역 언론과 180도 다른 문화에 힘든 시간이 계속됐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곳이 바로 롯데 자이언츠였다.

“아직도 생생합니다. KBO리그 데뷔전이 4월 21일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였죠. 당시 불펜 투수로 등판해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습니다. 그때 부산 팬들의 보내주신 박수 소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송승준의 말이다.

올해로 KBO리그 10년 차를 맞은 송승준. 그간 쌓아놓은 기록도 엄청나다. 송승준은 ‘고무팔’이란 별명답게 9년 연속 100이닝 이상을 기록한 이닝이터였다. 여기다 2009년엔 3경기 연속 완봉승이란 대기록을 작성했다(6월 27일 한화 이글스/ 7월 4일 SK 와이번스/ 7월 10일 히어로즈).

배영수도 이에 못지않다. 경북고를 졸업한 배영수는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푸른 피의 에이스’로 맹활약했다. 전성기 시절 배영수의 150km/h짜리 광속구와 고속 슬라이더는 승리 공식으로 통했다. 2004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기록한 10이닝 노히트 노런(비공인) 기록도 빼놓을 수 없다.

2015시즌 자유계약선수(FA)로 한화 유니폼을 입은 배영수는 한동안 부진을 거듭했다. 급기야 시즌 종료 후엔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지난 시즌엔 1군에 오르지 못했다. 현역 최다승(131승) 투수 배영수에겐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참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대신 공 하나의 소중함을 알게 됐어요. 이젠 경기에 자주 나가고 싶습니다. 그게 저에겐 가장 큰 목표예요.” 배영수의 말이다.

배영수는 겨우내 팀 마무리 캠프를 시작으로 일본 미야자키 교육리그, 돗토리 등을 돌며 신인선수들과 함께 땀방울을 흘렸다. 올 시즌 반드시 성적으로 보여주겠단 의지였다.

하늘도 두 이의 노력을 흩뿌리지 않았다. 올 시즌 나란히 1군에 복귀한 송승준과 배영수는 전성기 못지않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배영수는 올 시즌 3승 1패 평균자책 3.99로 2012년 이후 가장 안정된 활약을 선보였다. 송승준도 선발 등판한 3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따냈다(3승). 5월 11일 기준 3승 무패 1홀드에 평균자책 3.16을 기록 중이다.

부활이란 말이 아깝지 않은 대목이다.

‘베테랑 효과’에 웃는 한화와 롯데

'주홍 피의 에이스'로 거듭난 한화 배영수(사진=엠스플뉴스)
'주홍 피의 에이스'로 거듭난 한화 배영수(사진=엠스플뉴스)

시즌 개막 전, 두 투수에겐 의심의 눈초리가 끊이지 않았다. 고액 연봉에 들쑥날쑥한 투구가 불안 요소로 지목됐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베테랑 투수들의 활약에 신이 난건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김성근 한화 감독은 “배영수는 공을 던질 줄 아는 투수다. 기본적인 제구력을 갖췄다. 올 시즌엔 교묘한 두뇌 피칭과 노련한 마운드 운영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조원우 롯데 감독도 “(송)승준이가 정말 잘 해주고 있다. 올 시즌 사실상 롯데 에이스는 승준이다. 팀이 어려울 때 항상 제 역할을 잘해줬다. 팀이 위기 때마다 승도 챙겨줬고, 긴 이닝을 소화해줘 불펜진도 아낄 수 있었다. 감독이나 코치로선 참 고맙다”고 칭찬했다.

‘베테랑 효과’는 양 팀 젊은 투수들에게 큰 힘이 됐다. 살아있는 전설들이 남긴 메시지는 또 다른 전설의 출발점이 된다.

한화 투수 장민재는 “(배)영수 형에겐 배울 점이 정말 많다. 그간 수많은 노력과 연구가 뒷받침돼 왔기에 가능한 일 아닐까 싶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전성기 시절 최고의 투수였고, 팔꿈치 수술로 가장 낮은 곳을 경험했을 텐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의지력이 참 대단하다. 영수형을 보면서 나도 ‘절대 포기하면 안 되겠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올 시즌 가능성을 보인 롯데 투수 김원중은 “승준 선배는 꾸준함의 대명사다.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묵묵히 헤쳐나가는 자세가 정말 멋있다. 그리고 늘 좋은 말을 많이 해주신다. 자신이 겪었던 일, 위기 때 그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 등을 자세히 들려준다. 그런 말 한마디가 나 같은 신인에겐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감회가 새롭긴 두 베테랑도 마찬가지. 두 이에겐 젊고 강한 투수들과의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배영수는 "요즘 후배들을 보면 아,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하는 아쉬움이 든다. 최근엔 후배들에게 '너희가 정말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프로야구 선수에게 경쟁은 숙명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경쟁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속내를 밝혔다.

송승준은 오히려 호탕하게 웃었다. "사실 후배들과의 경쟁에선 내가 밀렸다(웃음). 사실이다. 확실히 젊은 투수들의 구위가 더 좋다. 그러나 아쉽진 않다. 빨리 받아들이고, 내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불펜 투수로 시즌을 출발한 송승준의 말이다.

불혹을 앞두고 다시 만난 두 투수. 경기 결과를 떠나 두 이의 승부엔 큰 감동이 함께 했다. 야구란 스포츠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 코드가 숨겨져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야구는 성적과 결과가 아니라 열정과 감동이 아닐까.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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