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길현이 살아야 롯데 불펜진도 산다(사진=롯데)
윤길현이 살아야 롯데 불펜진도 산다(사진=롯데)

[엠스플뉴스=잠실]

l 롯데 자이언츠 투수 윤길현이 KBO리그 역사 이름을 올렸다. 개인 통산 9번째 '100' 홀드 달성이다. 기록뿐만이 아니다. 최근 윤길현의 회복세는 롯데 불펜진에 천군만마와 같다.

‘홀드(Hold)’.

'잡다' 혹은 '쥐다'는 뜻이다. 홀드는 야구에서도 사용된다. 흔히 야구인들은 홀드를 ‘중간 계투의 세이브’라고 부른다. 불펜진에서 궂은일을 마다치 않는 중간 계투 투수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록이기 때문이다.

홀드는 1986년 미국에서 처음 적용됐다. 메이저리그(MLB) 통산 최다 홀드는 ‘저니맨’ 아서 로즈(231홀드). 일본프로야구(NPB)에선 1996년 퍼시픽리그만 홀드를 사용하다 2005년 들어 센트럴리그도 동참했다. NPB 통산 홀드 1위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투수 야마구치 데쓰야(273홀드)다. 이는 세계 기록이기도 하다.

KBO리그는 2000년부터 홀드를 공식 기록으로 인정했다. 홀드 부문 1위는 177개를 기록한 안지만(전 삼성 라이온즈)이다.

5월 19일 서울 잠실구장. 홀드의 또 다른 역사가 수립된 순간이었다. 롯데 자이언츠 투수 윤길현이 KBO리그 통산 9번째로 100홀드에 성공한 것. 100홀드는 굉장히 희귀한 기록이다. 특히 2000년 이후엔 9명 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같은 팀 소속으론 정대현(121홀드), 강영식(116홀드)에 이어 3번째다.

'100홀드' 윤길현, '냉탕과 온탕을 오가다'

올 시즌 냉탕과 온탕을 오간 롯데 자이언츠 윤길현(사진=롯데)
올 시즌 냉탕과 온탕을 오간 롯데 자이언츠 윤길현(사진=롯데)

윤길현에게 100홀드는 조금 특별하다. 유난히 힘들고, 험난한 길이었다.

“시즌 초반 컨디션이 좋지 않았어요. 가끔 포기란 단어가 떠오를 때마다 어금니를 꽉 깨물었습니다. 그리고 팀 승리만 생각했죠. 끝까지 믿고 기다려준 코칭스태프와 팬들에게 너무 감사합니다.” 윤길현의 말이다.

우완 정통파 투수 윤길현은 SK 와이번스 시절 날카로운 슬라이더와 150km/h를 넘나드는 속구로 이름을 알렸다. 2007년엔 개인 통산 최다인 18홀드를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당시 윤길현은 71경기에 등판해 75이닝/ 평균자책 2.88로 SK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이듬해인 2008년에도 평균자책 2.90을 기록해 리그 최고의 셋업맨으로 평가받았다.

윤길현은 SK 마지막 해였던 2015년 13세이브 17홀드(평균자책 3.16)를 기록한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취득했다. 최고의 셋업맨으로 거듭난 윤길현은 롯데와 4년 총액 38억 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롯데로선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베테랑 투수 정대현이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핵심 불펜 이명우, 강영식이 부진한 상황이었다. 그러한 연유로 먼저 영입된 마무리 손승락과 함께 뒷문을 확실하게 막아줄 것으로 기대했다.

롯데 이적 후 4월 한 달간은 예전 기량 그대로였다. 13.2이닝을 던져 평균자책 1.98/ 5홀드를 기록했다. 전반기 종료 시점에도 평균자책 3.18로 몸값이 아깝지 않은 활약이었다.

문제는 올스타 휴식기 이후였다. 윤길현은 2016년 7월 7일 NC 다이노스전에서 0.1이닝 3실점을 시작으로 크게 흔들렸다. 8월 안정을 되찾는 듯했지만(8월 2.08), 9월 들어 다시 평균자책 14.63으로 무너졌다. 윤길현의 2016시즌 최종 성적은 7승 7패 15홀드 평균자책 6.07이었다.

김원형 롯데 수석코치는 SK 시절부터 윤길현과 호흡을 맞춘 사이다. 오랜 시간 윤길현을 지켜본 만큼 장·단점도 누구보다 잘 안다. 김 수석은 “구위만큼은 여전히 리그 최강이다. 자신의 속구와 슬라이더를 믿는다면 예전 같은 투구를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수석의 예상은 적중했다. 올 시즌 초반 주춤했던 윤길현이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윤길현은 최근 5경기에서 연속 무실점 행진을 달렸다. 5월 5일 KIA 타이거즈전 2실점을 제외하면 5월 전 경기 무실점이다. 여기다 5월 한 달 평균자책 2.45에 4경기 연속 홀드를 기록했다.

조원우 롯데 감독 “시즌 초반엔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최근 (윤)길현이가 불펜진에서 잘 해주고 있다. 투구에 자신감이 생겼고, 구위도 올라왔다. 특히 승부처에서 매번 잘 막아줬다”고 말한 뒤, “100홀드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덧붙였다.

“아직 부족한 게 너무 많습니다. 보완할 점도 있고. 최근엔 운이 좋았어요. 팀 선수들이 잘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윤길현의 말이다.

윤길현 "나보단 팀이 잘되는 게 우선"

돌아온 셋업맨 윤길현(사진=엠스플뉴스)
돌아온 셋업맨 윤길현(사진=엠스플뉴스)

불펜 투수는 언제나 그늘 속에 가려져 있다. 선발 투수나 마무리에 비해 주목받기 힘든 보직이다. 윤길현은 그늘진 곳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때론 거칠게, 때론 조금 시끄럽게 말이다.

‘100홀드’는 윤길현에게 추억이고, 야구 인생의 흔적이다. 매 순간 귀중했던 홀드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물었다. “수많은 경기에 등판해 많은 홀드를 기록했지만, 올 시즌 첫 홀드를 잊을 수 없습니다. 여기 잠실에서 기록한 홀드였어요. 당시 컨디션이 정말 안 좋았습니다. 그 홀드가 제겐 반전의 기회가 됐어요.” 윤길현이 말했다.

올 시즌 윤길현의 첫 홀드는 4월 30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나왔다. 7회 선발 투수 김원중을 대신해 마운드에 오른 윤길현은 3타자를 삼진 2개로 틀어막고 홀드를 챙겼다.

‘100홀드’는 진귀한 기록이다. 1869년 최초의 프로구단이 창단된 미국도 73명, 1936년 출범한 NPB에서도 24명밖에 없다. 대기록 달성에도 윤길현은 되레 담담했다.

“개인 기록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팀이 잘돼야 내가 잘 되는 것으로 생각해요. 팀 순위가 좋아야 개인 성적도 인정받는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부족한 힘이지만,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언제나 묵묵히 걸어온 ‘불펜 투수의 길’. 화려하지 않지만, 위기를 견뎌내고, 언제나 긴장감을 벗 삼았다. 100홀드란 기록은 윤길현에겐 훈장인 셈이다.

끝으로 윤길현은 이렇게 말했다.

“팀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물론 힘들고, 지칠 때도 잦았죠. 그럴 때마다 가족들을 떠올렸습니다. 사랑하는 와이프와 딸을 위해 공을 던졌어요. 그게 제 야구 인생이었습니다.”

전수은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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