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동엽'이라고 불리는 김동엽(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킹동엽'이라고 불리는 김동엽(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엠스플뉴스]

SK 와이번스 김동엽, 홈런 공동 4위-타점 1위로 맹활약. 2년 만에 정상타자로 성장한 모습에 팬들 '킹동엽' 찬사. 공황장애 이겨내고 이젠 최고 타자 꿈 꾼다.

스포츠계엔 많은 별명이 있다. 하지만 ‘왕’이라는 별명은 아무에게나 붙이지 않는다. 역사적인 업적을 이뤘을 때만 가능하다. 혹은 버금가는 기대치가 있을 때만 생기는 타이틀이다. SK 와이번스의 2년 차 외야수 김동엽이 그런 경우다.

지난해까지 그냥 선수였던 김동엽은 올 시즌 ‘킹동엽’이 됐다. 이런 별명이 부끄럽지 않다. 홈런 부문은 10홈런으로 공동 4위, 타점은 34타점으로 선두에 올라 있다.

‘2016 신인드래프트’ SK 2차 9라운드 86순위로 간신히 프로에 입단한 선수가 불과 2년 만에 쟁쟁한 리그 거포를 제치고 최고의 타자로 성장한 셈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아마추어 시절 김동엽은 천안북일고를 졸업한 이후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았을 정도로 뛰어난 유망주였다. 하지만 풍운의 꿈을 안고 미국에 진출했던 김동엽은 적응에 실패하고 부상까지 당했다.

결국, 마음의 병을 얻어 한동안 고생하며 야구를 떠나 있기도 했다. 김동엽은 그때 자신에 대해 ‘실패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야구가 하고 싶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고 병역의무까지 잘 마친 김동엽은 SK가 내려준 마지막 동아줄을 잡았다. 그리고 김동엽은 신데렐라가 아닌 왕이 됐다.

김동엽 “성적 만족스럽지만, 편차 줄이고 싶다.”

김동엽(사진=SK)
김동엽(사진=SK)

“타격 사이클이 시즌 초반에 매우 좋았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좀 빨리 떨어져서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제 다시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 나의 것을 하나라도 더 만드는 시즌을 보내고 싶다.”

김동엽은 최근 10경기 타율 0.343/4홈런/12타점을 기록하며 뜨거운 5월을 만들고 있다. 특히 속구와 변화구를 가리지 않고 장타로 연결하고 있다.

‘노림수가 늘었다’는 말에 김동엽은 “좋을 때와 안 좋을 때 차이가 아직 크다”며 고개를 저었다.

2016년 김동엽은 초구엔 52% 확률로 배트를 휘둘렀을 정도로 적극적인 타자였다. 올 시즌엔 그 비율이 45.2%로 줄었지만, 여전히 타석에선 적극적인 편에 속한다. 가장 긍정적인 부분은 김동엽의 헛스윙이 확 줄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66.6%였던 김동엽의 컨택트 비율은 올 시즌 81.3%로 확 올라갔다.

특히 김동엽은 2스트라이크 이후 커트 확률을 지난해 59.4%에서 78.8%로 확 올려, 볼카운트가 불리해도 맥없이 물러나지 않는 타자가 됐다. 김동엽 같은 타자가 볼카운트에 몰려도 볼을 커트해낸다는 게 투수들에겐 두려운 일이다.

김동엽은 “‘변화구를 노려서 친다’는 이야기가 타 팀 전력분석팀에 돌았던 것 같다. 그래선지 최근엔 속구를 스트라이크존에 꽉 채워서 던지는 경우가 늘었다”며 “난 비슷한 코스면 치는 편이다 보니 거기서 어려움을 겪었는데, 아닌 건 커트하고 최대한 참는 쪽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다”고 했다.

지금 성적에 대해 김동엽은 아직 불만족스럽다. 더 배가 고프다.

“지난해 성적을 뛰어넘었다는 건 기분이 좋다(2016년-6홈런 23타점). 하지만 꾸준했던 게 아니라 몰아쳐서 낸 타점들이 많아서 편차를 최대한 줄이고 싶다. 또 침묵할 땐 하루에 삼진이 몇 개씩 나와서 답답한 마음이 많다.” 솔직한 김동엽의 말이다.

김동엽은 이런 편차를 줄이는 방법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한다.

“연습밖에 없다. 아직 완성된 모든 상황이 익숙한 타자가 아니다. 여러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선, 다 준비해놓는 수밖에 없다. 밸런스가 좋지 않아 못 치는 상황만큼은 만들고 싶지 않다. 정말 더 많이 노력할 것이다.” 김동엽은 인터뷰 내내 ‘더 많은 노력’을 강조했다.

힐만 감독 “김동엽, 정말 좋은 타자가 돼 가고 있다.”

트레이 힐만 감독(사진=엠스플뉴스)
트레이 힐만 감독(사진=엠스플뉴스)

트레이 힐만 감독은 김동엽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말수가 더 늘었다.

“김동엽은 조금 부끄럼을 타긴 하지만(웃음), 플로리다 베로비치 캠프 때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처음엔 힘이 좋다는 인상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힐만 감독이 김동엽에게 받은 첫인상이다.

하지만 이젠 김동엽의 성공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다.

힐만 감독은 “경험만 쌓으면 더 좋은 타자가 될 거다. 물론 아직 5월이고 뒤에 더 많은 경기가 남아 있으니까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홈런만 많이 치는 게 아니라 정말 좋은 타자가 되어 가고 있다”고 했다.

SK의 4번 타자로 성장한 한동민과 비교해서 김동엽의 장점도 설명했다.

“한동민과 김동엽을 비교하면 일단 둘 다 힘은 뛰어나다. 한동민은 하체를 잘 사용하고 팔이 길어서 많은 투구를 잘 커버하고 타구를 맞히는 발사 각도가 좋다. 하지만, 가장 잘 맞은 타구의 속도는 김동엽이 좀 더 빠르고 더 멀리 가는 것 같다.” 힐만 감독은 한동민의 많은 코스를 공략할 수 있는 능력과 좋은 발사 각도를, 김동엽의 빠른 타구 속도를 장점으로 꼽았다.

물론 장점을 설명하기 위해 비교를 했을 뿐 한동민과 김동엽이 좋은 성장을 했다는데 이견이 없다. 힐만 감독은 “둘 다 단순한 파워히터가 아닌 정말 좋은 타자로 성장했다”며 “김동엽은 당겨만 치는 타자에서 점점 가운데와 우익수 쪽으로도 타구를 보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동민도 필드 전체를 활용한다”고 했다.

정경배 타격코치도 김동엽의 성장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원래 기대했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A+ 학점을 줘도 모자랄 정도다. 예전보다 타격 전반적인 완성도가 많이 늘었다. 이 정도까지 해줄 것이라곤 사실 기대하지 못했다.” 겨우내 김동엽과 많은 땀을 흘렸던 정 코치의 말이다.

정 코치는 김동엽이 프로 지명을 받은 이후 2015년 가을부터 최근까지 일대일 레슨을 방불케 할 정도로 세심한 지도를 하고 있다. 늘 김동엽은 “정경배 타격코치님이 정말 많은 조언을 해주시고 여러 부분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며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왔다.

“사실 (김) 동엽이한테 정말 잔소리를 많이 한다. 경기 매 타석마다 마치고 돌아오면 곧바로 얘기를 해주는 편이다. 그게 본인한테 안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아직 동엽이는 실전 경험이 부족하고, 완성된 타자라고 하기엔 기술적으로 보완할 점이 정말 많다. 그래서 잔소리를 멈출 수가 없더라(웃음).” 정 코치가 이렇게 열성적으로 김동엽을 붙잡는 것도 그만큼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정 코치는 “좋은 체격과 최고의 파워에 어울리지 않게 동엽이의 스윙은 땅볼이 많이 나오는 편”이라며 “그 점을 고치려고 몇 년 간 정말 애썼고 본인도 노력해서 상당히 개선됐다. 동엽이가 타구를 더 띄울 수 있다면 장타는 훨씬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본다”라고 김동엽의 미래를 낙관했다.

공황장애로 고생하던 청년 김동엽, 이젠 왕의 길을 걷는다.

김동엽(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김동엽(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천안 북일고 재학 시절이었던 2009년. 김동엽은 빛나던 선수였다. 이미 프로급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상국 전 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의 전신) 주전 포수의 아들이기도 한 김동엽은 당시 ‘제2의 김태균’이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프로 1차 지명도 유력했다. 그러나 김동엽은 험난한 미국을 선택했고, 시카고 컵스와 계약해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던졌다. 사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본 니치난 학원으로 야구 유학을 떠났을 정도로 도전정신이 강했던 그였다.

안정보다 도전을 택한 김동엽이었지만 ‘코리안 드림’은 없었다. 약관의 청년은 고교시절 혹사 여파 탓에 미국에서 얼마 안 가 어깨 슬랩 수술을 받았다. 김동엽은 그 이후 재활에만 몇 년을 허비했다. 우투우타의 선수가 공을 던지기 위해 좌투우타로 변신하기도 했지만 2013년 갑작스럽게 방출통보를 받았다.

한국에서도 ‘국외파 2년 복귀 유예 조항’ 탓에 뛸 수 없었다. KBO(한국야구위원회) 규약 제107조는 ‘신인 선수 중 한국에서 고등학교 이상을 재학하고 한국 프로구단 소속선수로 등록한 사실이 없이 외국 프로구단과 선수계약을 체결한 선수는 외국 프로구단과의 당해 선수계약이 종료한 날로부터 2년간 KBO 소속구단과 선수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공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라운드에서 뛰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외로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 시간들에 지쳤던 청년은 한국에서조차 자신을 받아주지 않자, 결국엔 마음의 병을 얻었다.

“한국에 오자마자 공황장애 증상이 왔다. 왜 갑자기 그런 증상이 왔는지는 나도 몰랐고, 병원에서도 이유를 찾지 못했다. 처음에는 숨이 쉬어지질 않아서 약을 먹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완벽하게 나으려면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하더라. 그때부터 조금씩 밖에 나와서 걷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야구에 의지하다보니 1년 지나서부터 조금씩 마음의 병을 잊게 됐다. 지금은 다 괜찮다.”

지난해 프로로 데뷔해 경기에 출전하던 당시 김동엽은 기자에게 밝은 얼굴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김동엽은 “괜찮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 지금 다 좋다”며 활짝 웃었다.

많은 이야기 속에서 왕이 되기 위한 길은 험난하다. 김동엽의 야구인생도 순탄하지 않았다. 시련을 내린 게 하늘이라면 그걸 극복하는 것 역시 사람이다. 수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새로운 거포의 탄생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김동엽이 점점 왕좌에 가까워지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김원익 기자 one2@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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