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유쾌한 힐만 감독(사진=엠스플뉴스).
언제나 유쾌한 힐만 감독(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 미국과 일본, 한국야구를 모두 경험한 SK 힐만 감독의 눈에 KBO리그의 월요 휴식일 제도와 무승부, 연장 12회 제도는 어떻게 비칠까. 힐만 감독의 생각을 들어 봤다.

한-미-일 프로리그를 섭렵한 SK 와이번스 트레이 힐만 감독은 한국야구에 새로운 경험이다. 홈런을 친 선수가 감독의 가슴을 탁 때리고, 더그아웃에서 격의 없이 감독에게 농담을 건네는 장면은 낯설다. 연습구를 직접 주우러 다니고, 구장 관리인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는 감독의 모습을 본 적은 언제였던가. 팬서비스도 철저하다. ’힐만 버거’를 비롯한 감독 굿즈가 등장하고, ‘만원 관중이 되면 파격 복장을 입고 응원가를 부르겠다’는 공약도 서슴지 않는다. 한국야구에 연일 신선한 파격을 선보이는 힐만 감독이다.

힐만에게도 한국야구는 새로운 경험이다. 한국에 와서 개막 6연패와 파죽의 7연승을 모두 경험했다. 매일 거대 공연장처럼 요란한 응원과 앰프 속에서 경기를 치른다. 일본 시절에도 경험한 적 없는 2명의 잠수함 선발투수(박종훈, 김주한)을 기용하는 색다른 체험도 했다. 무엇보다, 미국야구와 다른 한국야구만의 문화적-제도적 특수성이 있다.

“월요 휴식일, 감독과 선수에게 좋은 제도다”

SK 더그아웃엔 웃음이 가득하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SK 더그아웃엔 웃음이 가득하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야구가 없는 월요 휴식일이 대표적이다. KBO리그와 일본프로야구는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만 페넌트레이스 경기를 치른다. 월요일에는 경기가 없다. 고정 휴식일 없이 6연전, 10연전, 13연전을 치르곤 하는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와 다른 점이다.

힐만 감독은 월요 휴식일 제도에 일찌감치 적응을 끝낸 상태다. 21일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전을 앞두고 힐만은 “다음날이 휴식일인 만큼, 불펜투수들을 충분히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실제 이날 경기에서 80구를 던진 선발 문승원을 내리고 7회부터 바로 불펜을 가동했다.

월요 휴식일에 대해 힐만 감독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힐만은 “고정적으로 쉴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라며 “감독 입장에서는 머리를 식히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좋다. 또 코치와 선수들도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마운드 운영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제도”라고 밝혔다.

30개 구단이 팀당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는 고정 휴식일을 가질 수 없는 환경이다. 힐만 감독은 “미국 선수들도 힘들고 쉬고 싶은 건 마찬가지”라면서도 “미국엔 먼데이 나이트 베이스볼 등 비즈니스, 아주 거대한 비즈니스 문제가 있기 때문에 휴식일 스케쥴을 갖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힐만 감독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체력과 정신력이 ‘대단하다’고 찬사를 보냈다. “메이저 레벨에서 7년을 보내며 지켜본 선수들이 참 대단하다. 많은 경기 수와 장거리 이동, 비행기를 타는 힘든 스케쥴 속에서도 한 시즌을 치르지 않나. 팀에서도 선수들을 배려해서 경기 전 배팅훈련을 간단하게 끝내거나, 실내 훈련만 진행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힐만 감독의 말이다.

“무승부 제도 좋은 면도 있다, 승률에서 제외는 이해 안 돼”

힐만 감독은 팬서비스 정신이 투철하다(사진=엠스플뉴스).
힐만 감독은 팬서비스 정신이 투철하다(사진=엠스플뉴스).

연장 12회와 무승부 제도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SK는 5월 7일 고척스카이돔 넥센 히어로즈 전에서 한 차례 무승부 경기를 치렀다. 이날 SK와 넥센은 5시간 17분에 걸친 혈투 끝에 6-6 무승부를 기록했다. 힐만 감독은 “일본프로야구에서 무승부 제도를 접하고 처음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야구는 승자를 가리기 위해 경기를 하는 것 아닌가. 무승부가 있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계속 지내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미국 같은 경우 연장 17회, 18회까지 장시간 경기를 치르기도 한다. 굉장히 힘든 일이다. 선수들의 몸을 생각하면 무승부 제도가 좋은 면도 있다.” 힐만 감독의 말이다.

다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건, 승률을 계산할 때 무승부를 빼고 계산한다는 점이다. 힐만 감독은 취재진에 “만일 어느 팀이 1승 143무승부를 기록하면, 그 팀은 승률 100%에 리그 1위가 되는 것이냐”고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이어 “무승부 경기에서 홈런을 치고 안타를 치면 다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나. 다 들어가는 데 왜 무승부만 승률 계산에서 제외하는 것인가"라며 “정말 공정하게 하려면 0.5승을 주거나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국야구에 잠시 도입했다 폐지된 무제한 연장전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우선 힐만 감독은 현재 KBO리그 제도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언제나 한국야구에 대한 'Respect'를 강조하는 힐만 감독이다. 힐만 감독은 “현재 시스템에 대한 불만은 없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주어진 제도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기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무제한 연장전을 반대하는 이유로 흔히 거론되는 ‘힘들어서 못 한다’ ‘한국야구 여건에는 맞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드러냈다. “사실 장시간 연장전은 미국 선수들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해보지도 않고 미리 안 될 거라고 하는 것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아서 해보려고 시도하는 게 맞다고 본다.” 힐만 감독의 말이다.

힐만 감독은 일본 시절 경험을 언급했다. “일본 선수들과 컨디셔닝 코치들이 종종 논쟁한 주제가 있다. 선수들에게 ‘왜 엑스트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선수들은 ‘우리는 동양인 체형이라, 아무리 해봐야 미국인들처럼 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왜 안 되나. 해보지 않고 미리부터 안된다고 하는 것 아닌가. 안 해보고서 안 된다고 미리 답을 정해버리는 것 아닌가.”

이어 힐만 감독은 제도가 바뀌면 선수들과 구성원들이 결국엔 제도에 적응하게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야구는 굉장히 경쟁적인 스포츠다. 이기기 좋아하는, 경쟁심 강한 선수들이 치르는 경기가 야구다. 15, 16회 연장전을 하더라도 어떻게든 적응해서 이기는 방법을 만들어낼 것이다. 선수들은 얼마든지 적응할 수 있다고 본다.” 힐만 감독의 말이다.

실제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즌 로스터에 두고 기용하는 선수 숫자와 KBO리그의 팀당 기용 선수 수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메이저리그는 연 162경기를 치르고, 휴식일 없이 10연전 이상을 소화하며, 무승부 없이 무제한 연장전을 치른다. 단지 '한국야구는 ~해서 안 된다'거나 '미국은 선수층이 두텁고 신체 능력이 월등하다'는 말로 넘어갈 일은 아니다. 메이저리그는 162경기와 무제한 연장에 맞게 운영을 하고, KBO리그는 144경기와 12회 연장에 맞게 운영하기 때문은 아닐까.

힐만 감독은 끝으로 한 심리학계의 연구 결과를 언급했다. "심리학 이론에는 이런 얘기도 있더라. 부모가 자녀에게 어릴 적부터 '너는 나쁜 아이다, 나쁜 아이다' 반복해서 얘기하면, 그 아이는 부모의 말을 아무 의심 없이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결국엔 나쁜 아이가 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자꾸 '안 된다' '못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특히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주장을 펼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된다.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이날(21일) 경기는 7회말 SK가 4-0으로 앞선 상황에서 박승욱의 실책과 채병용의 실점으로 4-4 동점이 되어, 연장전에 돌입했다. SK는 11회초 대거 5득점, 9-4로 NC에 승리를 거뒀다. SK는 마무리 박희수가 2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연장전을 11회에서 더 이상 길게 끌고 가지 않았다.

하지만 연장전이 그보다 더 길게 이어졌더라도, 힐만 감독은 결코 불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긴 연장전에 맞는 선수 기용으로 다른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다. 그게 힐만 감독이 생각하는 '프로'이고, 힐만의 스타일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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