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마운드의 팔색조(사진=엠스플뉴스).
진정한 마운드의 팔색조(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고척]
NC 다이노스 외국인 투수 에릭 해커는 ‘팔색조’다. 포심 패스트볼, 투심, 커브, 슬라이더, 커터, 체인지업, 포크볼 등 7가지 구종을 자유자재로 던진다. 경기마다 가장 좋은 공을 중심으로, 타자와 상황에 따라 구종을 취사 선택한다. 여기에 타이밍 잡기 까다로운 투구폼까지 더해져 타자들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투수다.
넥센 히어로즈 신재영은 해커와 정반대다. 신재영은 ‘투피치’ 투수에 가깝다.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딱 두 가지 구종으로 타자를 제압한다. 체인지업도 있지만 거의 던지지 않는 편이다. 슬라이더 비율이 갈수록 높아져 최근엔 전체 투구수의 70% 이상을 슬라이더로 던진다. 그야말로 ‘직구 아니면 변화구’지만, 슬라이더의 위력이 워낙 뛰어나 쉽게 공략당하지 않는다.
해커와 신재영, 정반대 성향의 두 투수는 11일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한 차례 맞대결했다. 당시엔 신재영이 친정 NC를 상대로 완승을 거뒀다. 주무기 슬라이더를 앞세워 NC 강타선을 7이닝 6피안타 1실점으로 봉쇄했다. 해커도 7이닝 2실점으로 잘 던졌지만, 김웅빈에게 맞은 결승 홈런 한 방에 패전투수가 됐다.
23일 고척스카이돔 NC-넥센 전에서 해커와 신재영이 2주 만에 다시 만났다. 리턴 매치에선 첫 대결 때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해커는 지난 등판과 마찬가지로, 팔색조 투구로 넥센 타선을 틀어막았다. 4회까지 허용한 주자는 3회 안타로 출루한 이정후 뿐. 5회 3루수 실책이 빌미가 되어 1점을 내주긴 했지만, 1사 만루에서 고종욱을 투수 앞 병살타로 잡고 빠르게 위기에서 벗어났다.
반면 신재영의 피칭은 지난 등판 때와는 영 딴판이었다. 마산에서 위력을 떨친 슬라이더가 이날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미 지난 17일 한화 상대로도 슬라이더가 말을 듣지 않아 10안타 5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던 신재영이다. 이날도 1회부터 안타와 몸에 맞는 볼로 주자를 모은 뒤, 재비어 스크럭스에 3점 홈런을 얻어맞고 불안하게 출발했다. 초구에 던진 슬라이더가 125미터짜리 초대형 홈런으로 연결됐다.

데뷔 이후 최소인 2이닝만에 물러난 신재영(사진=엠스플뉴스).
데뷔 이후 최소인 2이닝만에 물러난 신재영(사진=엠스플뉴스).

3회엔 불운에 불운이 겹쳤다. 선두 박민우의 강한 땅볼이 종아리 뒤쪽에 맞고 3루 쪽으로 굴러가 내야안타가 됐다. 나성범 타석에선 갑작스레 손가락에 이상이 생겼다. 오른손 중지에 물집이 잡히는 고질적인 증상이 다시 발생한 것. 트레이너가 마운드에 올라와 손 상태를 점검한 뒤 내려갔고, 넥센 불펜엔 우완 하영민이 부랴부랴 나가 몸을 풀기 시작했다.
무사 1, 2루에 첫 타석 홈런을 허용한 스크럭스 타석. 신재영은 이번에도 2-0에서 슬라이더를 던지다 좌중간을 가르는 2타점 2루타를 얻어 맞았다. 그새 손가락은 물집이 완전히 벗겨져 더는 공을 던질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결국 신재영은 하영민에 마운드를 넘기고 내려갔다. 하영민이 권희동에 좌전 적시타를 맞아, 신재영의 자책점은 6점이 됐다.
이후 경기는 NC의 원사이드 게임으로 진행됐다. NC는 하영민, 마정길, 금민철 등 넥센의 후속 투수들을 마음껏 두들겨 5회까지 12득점, 5월 들어 두 번째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부상에서 돌아온 박민우가 2안타 2득점 1타점으로 선봉에 섰고, 나성범도 2루타 포함 3안타 4타점으로 힘을 보탰다.
4번타자 스크럭스는 결승 3점 홈런 포함 2안타 5타점을 쓸어 담았다. 최근 지독한 타격 슬럼프에 시달리던 박석민까지 8회 마지막 타석에서 안타를 기록, 최근 8경기 28타석 연속 무안타 늪에서 벗어났다. 총 17안타를 퍼부은 NC는 팀 3번째 선발 전원 안타와 함께 올 시즌 팀 한 경기 최다인 15득점을 뽑아냈다. 15실점은 넥센의 올 시즌 한 경기 최다 실점. 또 넥센은 21일 kt전(13실점)에 이어 두 경기 연속 두 자릿수 실점으로 마운드가 무너졌다.
넥센은 이날 해커를 겨냥해 좌타자 6명을 라인업에 배치했지만, 해커의 변화무쌍한 피칭에 이렇다할 효과를 보지 못했다. 여기다 신재영이 초반에 무너지면서, 넥센의 공격으로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점수차가 됐고 일찌감치 승부가 갈렸다. 5회 권희동의 희생플라이로 1점, 7회 바뀐 투수 민태호를 공략해 3점을 냈지만 이미 해킹 피해는 복구할 수 없는 상태였다. 15-4, NC가 넥센을 대파하고 주중 첫 경기에서 승리를 거뒀다.
6이닝을 3피안타 2볼넷 비자책 1실점으로 틀어막은 NC 선발 해커는 지난 넥센전 패배를 설욕하며 시즌 5승 째를 기록했다. 반면 데뷔 후 최소이닝 만에 강판된 신재영은 2이닝 6실점으로 최근 2연패, 시즌 4승 4패를 기록하게 됐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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