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를 거쳐간 3金 감독들(사진=한화)

한화 이글스를 거쳐간 3金 감독들(사진=한화)

[엠스플뉴스]

김인식·김응용·김성근. 한 시대를 풍미했던 ‘3金’의 마지막 발걸음이 찍힐 곳은 한화 이글스가 될 분위기다. 메시아를 찾으려 했던 한화의 지난 10년은 어떤 과정을 거쳤고, 또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김인식·김응용·김성근. 과거 KBO리그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장들이다. 영광의 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다. 제국의 발달이 있다면 쇠퇴 역시 있다. 오랫동안 이어진 ‘3金 시대’도 이제 저무는 분위기다. 그리고 이들의 마지막 발자취엔 한화 이글스가 옆에 있었다.
평온해 보였던 5월 23일 오후.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한화 김성근 전 감독이 물러난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불과 반나절 사이 경질과 사의의 경계를 오가는 진실 게임이 펼쳐졌다. 물론 과정의 차이였을 뿐 김 전 감독이 감독직에서 내려온다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한화는 이날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이던 늦은 밤 김 전 감독의 사의 표명을 수용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3년이라는 계약 기간을 못다 채운 채 김 전 감독의 한화는 막을 내렸다. 이미 이상군 투수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승격해 이날 경기를 지휘했다.
이렇게 최근 5년간 한화의 노(老) 감독 모시기는 슬픈 결말로 끝났다. 김응용 전 감독(2013년~2014년)과 김성근 전 감독(2015년~2017년 5월 24일)은 끝내 한화가 간절히 염원하던 가을 야구 진출을 이끌지 못했다.
조금 더 멀리 바라본다면 김인식 전 감독(2005년~2009년)도 마찬가지다. 부임 초반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2005년~2007년)과 2006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이라는 성과가 있었지만, 장기적인 리빌딩 실패와 주축 선수의 노쇠화로 팀 전력 약화를 막을 순 없었다.
김인식 전 감독은 2009년 이후 프로팀 감독 경력이 없다. 주로 대표팀 감독으로서 국제 대회에서 큰 성과를 거둔 김인식 전 감독은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끝으로 감독직 은퇴 의사를 내비쳤다.
김응용 전 감독은 한화 감독직 퇴임 뒤 2015년 KBO 올스타전에서 감독 은퇴식을 했다. 지난해 12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김응용 전 감독은 행정가로서 새로운 삶을 보내고 있다.
김성근 전 감독도 만 74세라는 고령과 최근 성적 부진을 고려한다면 한화가 프로팀 감독으로서 최종 커리어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KBO리그의 한 시대를 호령하던 ‘3金’ 감독들의 프로 마지막 순간은 한화였다. 그리고 성적 부진으로 불명예스러운 퇴진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점이다. 한화가 ‘명장들의 무덤’이 된 셈이다.
잠깐의 행복, 그리고 암흑기의 시작

21세기 한화의 마지막 가을 야구 진출을 이끌었던 김인식 전 감독(사진=한화)
21세기 한화의 마지막 가을 야구 진출을 이끌었던 김인식 전 감독(사진=한화)

김인식 전 감독의 부임 초반기는 한화 팬들에게 그나마 희미하게 남은 행복한 기억이다. 김인식 전 감독의 부임 첫해인 2005년 한화는 4위로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를 3승 2패로 꺾은 한화는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3패로 탈락했다. 당시 송진우와 문동환, 그리고 최영필로 이뤄진 주축 마운드가 탄탄했다. 외국인 타자 제이 데이비스와 당시 젊은 피였던 김태균과 이범호의 활약상도 돋보였다.
2006년부턴 ‘괴물 신인’ 류현진의 등장이 한화에 큰 도움으로 작용했다. 류현진은 2006시즌 18승과 2007시즌 17승으로 데뷔하자마자 KBO리그를 지배했다. 한화는 2006년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KIA 타이거즈와 현대 유니콘스를 각각 2승 1패와 3승 1패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당시 구대성·류현진·문동환·정민철·송진우로 이어지는 빈틈없는 마운드가 단기전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보다 한 수 위의 단단한 마운드를 자랑했던 삼성 라이온즈를 넘지 못한 한화였다. 1승 1무 4패를 기록한 한화는 1999년 이후 7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아쉽게 놓쳤다.
2007년에도 4위로 가을 야구를 맛본 한화였다. 한화는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을 2승 1패로 꺾고 1년 전 한국시리즈 패배를 설욕했다. 하지만, 한화는 플레이오프에서 당시 김경문 감독이 이끈 두산 베어스에 3패로 탈락했다. 그리고 10년 전 이 순간은 지금까지 21세기 한화의 마지막 가을 야구로 기억되고 있다.

김인식 감독 재임 시절 한화의 성적표(표=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김인식 감독 재임 시절 한화의 성적표(표=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이후 한화에 암흑기가 찾아왔다. 2008년 한화는 베이징 올림픽 휴식기 이전까지 56승 46패로 3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휴식기가 끝난 뒤 3주간 3승 12패를 기록하면서 한화의 추락이 시작됐다. 결국, 한화는 2008년 5위로 정규시즌을 마치면서 가을 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암흑기의 시작을 알리는 징조였다.
2009년 3월 김인식 전 감독은 2009 WBC 대표팀 감독을 맡아 대표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정작 소속팀인 한화의 정규시즌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2009시즌 중 10연패와 12연패가 한 차례씩 나오는 극악의 부진 속에 압도적인 최하위에 그친 한화였다.
결국, 김인식 전 감독은 2009시즌을 끝으로 한화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3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초기 성과가 있었지만,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와 신인 선수 육성 실패로 급격한 추락을 맛봤다. 당시 한화는 2군 구장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데다 신인 드래프트 지명도 소극적이었다.
2005년 신인 드래프트(4명)·2006년 신인 드래프트(7명)·2007년 신인 드래프트(8명)·2008년 신인 드래프트(5명)·2009년 신인 드래프트(6명)를 거치는 동안 한화는 신인 선수 지명 권리를 모두 행사하지 않았다. 육성 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서산 퓨처스 구장은 2012년 겨울에야 완공됐다. 체계화된 구단 육성 시스템 없이 김인식 전 감독의 개인기로만은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
돌아온 코끼리와 통 큰 FA, 그리고 2년 연속 9위

2년 연속 9위로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긴 채 한화를 떠난 김응용 전 감독(사진=한화)
2년 연속 9위로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긴 채 한화를 떠난 김응용 전 감독(사진=한화)

2012시즌 종료 뒤, 한화 구단은 파격적인 인사를 발표했다.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에서 성공 신화를 쓴 김응용 전 감독이 한화의 구원자로 나타났다. 10년 만의 현역 감독 복귀로 김응용 전 감독은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특히 김성한·이대진·이종범 등 해태 감독 재임 시절 제자들을 코치진으로 데려오면서 팀 체질 개선에 나서겠단 김응용 전 감독의 각오였다.
하지만, 포스팅 입찰로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 입단한 류현진의 빈자리는 컸다. 출발부터 위태로웠다. 한화는 2013년 KBO리그 출범 뒤 최다 기록인 개막 13연패로 시즌을 시작했다. 초반부터 뚝 떨어진 시즌 페이스를 끌어올리긴 끝내 역부족이었다. 결국, 한화는 KBO리그 최초 9위라는 불명예로 2013시즌을 마무리했다.

김응용 감독의 한화 재임 시절 성적표(표=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김응용 감독의 한화 재임 시절 성적표(표=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2013시즌 종료 뒤, 한화는 육성보단 거액의 투자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한화는 2014시즌을 앞두고 정근우(4년 70억 원)와 이용규(4년 67억 원)라는 FA(자유계약선수) 대어를 한 번에 영입했다. 김응용 전 감독의 적극적인 FA 영입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무언가 달라질 거란 기대가 컸지만, 2014시즌에도 한화의 반등은 없었다. 정근우는 FA로서 나름 제 역할을 했지만, 무리하게 복귀했던 이용규는 어깨 부상으로 공백기가 길었다. 마운드에선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는 혹사 논란이 여전했고, 내야수 강경학을 제외하곤 타선에서도 좀처럼 젊은 피의 성장을 볼 수 없었다. 2014시즌의 결과도 1년 전과 다를 것 없이 리그 최하위인 9위였다.
‘코끼리’도 실패한 팀 체질 개선을 위해 한화는 또다시 ‘메시아’를 찾아 나섰다. 한화의 선택은 ‘3金’ 가운데 남은 선택지인 ‘야신’ 김성근 전 감독이었다.
야신의 실패, ‘3金 시대’의 종료를 알리다

김성근 전 감독은 갑작스럽게 팀을 떠나게 됐다(사진=한화)
김성근 전 감독은 갑작스럽게 팀을 떠나게 됐다(사진=한화)

2014년 10월 김성근 전 감독은 계약 기간 3년에 총액 20억 원의 조건으로 한화와 도장을 찍었다. 김성근 전 감독에겐 구단 운영의 전권이 주어졌다. 구단의 투자도 여전히 아낌없었다. 한화는 김성근 전 감독 부임 첫해를 앞두고 FA 투수 삼총사인 송은범(4년 34억 원)·권혁(4년 32억 원)·배영수(3년 21억 5,000만 원)를 한 번에 영입했다.
2015시즌 초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한화는 경기마다 치열한 접전을 펼치면서 승률 5할 이상을 유지했다. ‘마리 한화’라는 신조어와 함께 연일 홈구장은 팬들로 가득 찼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시즌 초반 상승세를 이끈 불펜진의 잦은 투입은 후반기부터 결국 독으로 돌아왔다. 7월 이후 한화는 30승 41패 승률 0.423로 해당 기간 리그 10개 팀 가운데 가장 나쁜 성적을 기록했다. 정규시즌 6위에 그친 한화는 끝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16시즌을 앞두고도 한화의 공격적인 투자는 이어졌다. 수준급 외국인 타자인 윌린 로사리오를 영입했고, 투수 FA인 정우람(4년 84억 원)과 심수창(4년 13억 원)을 영입해 전력 보강에 소홀히 하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스타’인 김태균과도 4년 84억 원에 FA 재계약을 맺었다.
전력만 보면 ‘우승 후보’라는 평가를 받은 한화였다. 하지만, 2016시즌 초반부터 한화의 추락이 시작됐다. 투타 모두 침체에 빠진 한화는 4월 동안 6승 17패 승률 0.261를 기록하면서 최하위까지 떨어졌다.
게다가 5월 초엔 김성근 전 감독이 허리 디스크 수술을 이유로 장기간 자리를 비우는 사태가 발생했다. 약 2주의 감독 공백 동안 한화는 2승 10패로 부진하면서 추락을 거듭했다. 구단의 투자는 줄지 않았지만, 한화의 성적은 오히려 하락해 리그 7위에 그쳤다. 5위까지 가을야구 티켓이 확대된 상황에서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는 김성근 전 감독에게 기대한 결과가 전혀 아니었다.

김성근 감독의 한화 재임 시절 성적표. 2017년은 퇴진 전까지의 기록(표=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김성근 감독의 한화 재임 시절 성적표. 2017년은 퇴진 전까지의 기록(표=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올 시즌에도 반등의 여지가 안 보였다. 4월 성적의 중요성을 입이 닳도록 강조했던 김성근 전 감독이었다. 하지만, 한화는 올 시즌 4월 동안 10승 16패 승률 0.385로 리그 9위에 그쳤다. 5월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한화는 지난 주말 시리즈에서 최하위 삼성에 싹쓸이 패를 당하는 동시에 역대 최악의 벤치 클리어링 사태까지 겪었다.
김성근 전 감독은 비시즌부터 스프링 캠프를 거쳐 시즌이 진행 중인 지금까지 박종훈 단장과 끊임없이 모든 사안에서 부딪혔다. 김성근 전 감독과 구단은 끝내 루비콘 강을 건넜다. 한화 구단은 23일 경기 중 김성근 전 감독과의 완전한 이별을 발표했다. ‘3金 시대’의 마지막 선택지마저 오답 판정을 받은 한화였다.
최근 10년간 한화는 ‘3金’이라는 메시아를 통해 속성 과외를 받고자 했다. 하지만, 많은 부작용만 남긴 채 성과마저 얻지 못한 선택이 됐다. 한 사람의 카리스마로 모든 걸 바꾸는 제왕적 리더십은 구시대의 유물이 된지 오래다. 폐허가 된 잔재 속에서 한화는 새로운 해답을 찾아야 한다. 위기일수록 많은 걸 변화할 수 있는 기회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