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이별을 택한 한화 이글스. 반전의 시작은 지금부터다(사진=엠스플뉴스)
과거와 이별을 택한 한화 이글스. 반전의 시작은 지금부터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 한화 이글스가 '옛것'을 청산하고, '변화'를 선택했다. 이제 새로운 지도자를 중심으로 팀을 재건할 시간이다. 새 시대를 맞이한 이글스에 진짜 필요한 리더쉽은 무엇일까.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 ‘타임머신(The Time Machine)’에선 인류의 마지막을 예고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떠난 주인공은 30만 년 후 황폐해진 세상을 발견하곤 경악을 금치 못한다. 보다 나은 세상을 꿈꿨던 주인공 앞에 펼쳐진 미래는 모든 생명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다 타버린 태양만이 죽어가는 빛을 내뿜는 절망의 시대였다.

조금 과장된 해석일 수 있지만, 한화의 지난 3년은 분명 되돌리고 싶은 기억이었다. 김성근 감독 선임 이후 한화엔 ‘미래’란 꿈이 사라졌다. 마치 소설 속 인류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화는 과도한 자유계약선수(FA) 영입으로 공들여 키운 유망주들을 속속 보상 선수로 내보내야 했다. 팀에 쓸만한 유망주가 남아나지 않은 이유다. 5월 24일 KIA 타이거즈전 상대 선발 투수 임기영은 공교롭게도 한화가 ‘2012시즌 신인 드래프트’ 전체 2라운드 18순위로 뽑은 선수였다.

이밖에도 한승택(KIA), 조영우(SK), 김민수(삼성) 등 많은 유망주가 보상 선수와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다. 팀의 미래보단 당장의 성적에 급급했기에 가능했던 '인재 유출'이었다. 여기다 비정상적인 1, 2군 운용으로 한화의 팜 시스템도 엉망이 됐다. 이쯤 되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봄 직하다.

상황이 이렇자 한화도 칼을 뽑았다. 한화는 23일 김성근 감독과 이별을 선언했다. 박종훈 단장은 김 감독 퇴진을 '자신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작품도 모그룹의 최종 재가 없인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김 전 감독이 조용히 팀을 떠나도록 마지막 수습을 한 건 모그룹이었다. '박 단장의 작품' 보단 '박 단장이 엎어놓은 상을 모그룹이 잘 수습한 결과'라고 보는 게 나을지 모른다.

감독 교체는 언젠간 겪어야 할 일이었다.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문제는 박 단장의 어설픈 일 처리로 김 감독에게 평생 반격의 기회를 줬다는 것이다.

한화 코칭스태프 이동, '변화보단 안정 택한 이유'

박종훈 한화 단장은 코칭스태프 교체보단 현 체제 유지를 택했다(사진=엠스플뉴스)
박종훈 한화 단장은 코칭스태프 교체보단 현 체제 유지를 택했다(사진=엠스플뉴스)

한화는 신임 감독 선임 이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먼저 코칭스태프 인선이다. 한화 1군 코칭스태프 가운데 상당수는 김 전 감독이 부임 당시 데려온 인사다.

김 전 감독 경질과 함께 사의를 표명한 계형철, 김광수 코치 외 팀에 남은 정민태(투수), 김정준(수비보조), 윤재국(주루), 이철성(수비), 나카시마 테루시(타격) 코치 등이 모두 김 전 감독이 영입한 이들이다.

24일 경기 전 만난 이상군 감독대행은 “일단 퓨처스팀 김해님 투수코치를 1군 불펜코치로 올렸다. 수석코치는 최태원 코치가 3루 코치직과 병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존 코칭스태프 보직에도 변화가 생겼다. 한화 관계자는 “정민태 불펜코치를 투수코치로, 임수민 전 수비코치를 타격보조코치로 이동시켰다”고 전했다.

특히 김정준 수비보조코치의 거취에 관심이 집중됐다. 야구계 일부에선 '김 전 감독의 아들인 김 코치가 팀을 떠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김 코치는 수비보조코치로 1군에 남게 됐다. 한화 관계자는 "김 코치 잔류는 김 전 감독의 퇴임과는 별개"라고 밝혔다.

예상했던 것보단 코칭스태프 변화의 폭이 크지 않았다. 여러 정황상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예상됐던 터다.

야구계 일부에선 ‘한화가 리스크를 최소화하려고 현 체제 유지를 선택했다’고 본다. 실제로 한화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큰 변화는 선수단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일단은 변화보단 안정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한화 출신 한 관계자도 “시즌 초에 감독이 경질됐다. 불안함을 느끼는 선수들도 여럿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 인사가 영입된다면 팀 분위기엔 오히려 마이너스다. 현 상황에선 내부적으로 인사 문제를 해결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조언했다.

한화 신임 감독에게 필요한 덕목 '소통과 투수운영 그리고 젊은 리더십'

1999년 기적의 한화 이글스(사진=한화)
1999년 기적의 한화 이글스(사진=한화)

일단 출발은 좋지 않다. 한화는 이 감독대행 체제로 시작한 KIA와의 3연전에서 모두 패했다.

이 감독대행 체제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3연전이었다. 5월 26일 기준 한화는 리그 9위에 처져있다(18승 28패). 최하위 삼성 라이온즈와 4경기 차다. 더군다나 팀은 7연패, 최근 10경기에서 1승 9패로 부진했다. 신임 감독 선임을 앞당겨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는 이유다.

한화 사정을 잘 아는 한 야구인은 "여전히 한화는 전력상으론 나쁘지 않다. 이용규만 돌아온다면 타선의 짜임새만큼은 리그 최상위권"이라며 "마운드 운용과 투구 관리에 장점을 가진 지도자가 팀의 수장을 맡는다면 충분히 반등 가능하다"고 목소릴 높였다.

이 야구인은 덧붙여 "지금 한화에 필요한 건 '육성'이다. 팀의 미래를 다지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한화 퓨처스팀만 봐도 그렇다. 당장 경기에 나갈 선수조차 부족하다"며 "최근 몇 년간 한화가 키운 선수는 하주석 정도다. 다른 팀은 신인 선수들이 주전급으로 성장했다. 한화도 세대교체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선수를 키우고, 소통할 줄 아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종범 MBC SPORTS+ 해설위원도 “지금 한화에 필요한 것은 ‘응집력’이다. 팀이 위기일수록 선수단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리더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벌써 한화 신임 감독 후보와 관련해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화' 자부심이 누구보다 강한 이상군 감독대행과 강한 리더쉽을 바탕으로 선수 육성에 강점을 가진 이정훈 한화 스카우트 팀장, '원활한 소통 능력과 풍부한 야구이론 그리고 젊은 리더십'을 자랑하는 정민철 전 한화 투수코치 등이 강력한 감독 후보로 부상한 상태다.

야구계 인사들은 "지금껏 한화는 '나를 따르라'는 식의 강력한 카리스마에만 의존하는 올드한 리더들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이젠 시대가 바뀐 만큼 소통 능력이 뛰어나고, 야구학습에 열중하는 젊은 리더십이 오히려 지금 한화에 더 적합할지 모른다"며 "한화 사정을 잘 아는 야구인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박종훈 한화 단장은 신임 감독 선임에 대해 "이른 시일 내 우리 팀에 맞는 감독을 찾을 계획"이라며 "필요하다면 감독 인터뷰도 생각하고 있다. 우선 후보군을 추스르는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감둑대행 체재가 아니라 새로운 감독을 물색해 시즌을 치르겠다는 생각은 나쁘지 않다.

'3김'도 바꿔놓지 못한 한화다. 구단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한화의 병폐가 무엇이었는지 연구하고, 대안과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혁신'이 필요할 때다. 이글스의 야구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o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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