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이승엽(사진=엠스플뉴스)
‘레전드’ 이승엽(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올해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는 이승엽. 각종 KBO 리그 개인 기록에서 통산 1위를 달리는 이승엽은 '현역 레전드'다. 하지만, 전체 야구계의 축복을 받으며 은퇴해야 하는 이승엽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영원한 소속팀' 삼성의 부진 때문이다. 과연 이승엽의 지금 심정은 어떨까.

이승엽(삼성 라이온즈). 전설이다. 이보다 더 '국민 타자'란 찬사가 어울리는 선수도 없다. '라이온 킹'이란 타이틀 역시 이승엽이 아니면 어색하기만 할뿐이다. 역대 국가대표팀에서도 이승엽만큼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준 선수는 없다.

올해가 은퇴 시즌인 이승엽은 'KBO 리그의 전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이승엽은 올 시즌 KBO리그 개인 통산 최다득점(1,309)과 최다루타(3,907) 기록을 깼다. 최다홈런(450홈런)과 최다타점(1,436) 역시 개인 통산 1위를 달리고 있다. 양준혁 MBC SPORTS+ 해설위원이 통산 1위에 올라 있는 최다 2루타(458개) 부문에서도 이승엽은 441개로,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양 위원이 보유 중인 최다안타(2,318안타)와 전준호 NC 다이노스 작전·주루 코치가 기록한 최다도루(550개)는 깨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승엽은 5월 29일 기준 통산 2,068안타와 57도루를 기록 중이다.

이처럼 이승엽이 '기록의 사나이'로 유종의 미를 거둘 준비를 하고 있지만, 그의 소속팀 삼성은 정반대의 운명을 경험하고 있다. 구단 창단 이래 역대 최악의 성적에 신음하고 있다.

슬프지만, 영웅은 세월과의 싸움을 그만두려 한다. 마흔 둘의 은퇴를 앞둔 'KBO 리그의 전설' 이승엽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엠스플뉴스’가 이승엽을 만났다.

이승엽, “야구선수라면 책임감은 당연해”

심각한 부상을 숨겼던 이승엽(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심각한 부상을 숨겼던 이승엽(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5월 4일 허벅지 통증으로 올 시즌 선발 라인업에서 처음으로 제외됐다. 지금 오른쪽 허벅지 상태는 어떤가.

지금은 거의 나았다. 이제 3주가 지나가는데 생각보다 회복이 빠르다. 부상 당시만 해도 실은 심각한 상태였다.


심각한 상태?

처음엔 많이 불편할 정도까진 아니었다. 조금 느낌이 좋지 않아 검진을 받았는데 의사분이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하더라. 1군 엔트리에서 빠져야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명타자로 나왔다. 그렇게 경기 출전하면서 컨디션을 잘 조절했더니 예상 외로 금방 회복됐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지명타자로만 출전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다. 러프가 거의 매 경기 수비도 함께 소화해야 하니까 내가 그 짐을 덜어줘야 한다. 러프가 너무 힘들 수 있다. 빨리 다리 상태가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 아직 불안한 점이 있으니까 신중히 접근하고 있다. (이승엽은 선발라인업에서 빠진 지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5월 10일 LG 트윈스전에서 다시 선발로 복귀했다. 이승엽의 투지가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타격감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 (4월 타율 0.254-> 5월 타율 0.284)

또 안 좋다. 매일 타격감이 달라진다. 나이가 드니까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는 게 더 쉽지 않은 것 같다(웃음).

삼성 선수들도 4월보다 5월 들어 더 투지있게 뛰고 있다.

우린 1등 팀이 아니다. 10등 팀이니까, 10등 팀에 맞게 뛰어야 한다. 우리는 1등 팀처럼 행동할 수도 없고, 그렇게 느슨하게 뛰어서도 안 된다. 그건 누가 말해서라기보다 각자가 느끼는 부분일 거다.

팀 분위기도 동시에 밝아진 것 같다.

팀 분위기와 관련해 신경을 많이 쓴다. 최대한 밝게, 분위기가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아직 시즌이 많이 남았고, 우리 팀은 팬들께 보여드릴 게 아직 더 많이 남아 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뛰자’는 게 나를 비롯한 베테랑들의 생각이다.

그 덕분일까. 앞서 언급했던 팀 타선이 살아나는 분위기다.

(씩 웃으며) 이만하면 좋아질 때도 된 것 아닌가. 초반에 정말 안 좋았다. 특히 중심타선이 좋지 않았다. 중심타선이 못 치면 다른 타자들도 덩달아 침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중심타선의 선수들이 책임감을 느껴야 할 부분이다. 더 분발해야 한다.

러프가 없을 때 4번으로 출전하면서 마음의 부담이 컸을 듯 싶다. 많은 이는 ‘아직도 이승엽이 4번으로 나서야 하는 게 삼성의 비애’란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부담 같은 건 없다. 야구선수라면 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오히려 부담은 당연하다. 팀 성적이 너무 좋지 않을 때도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달리 팀 분위기는 괜찮았다. 하지만, 연패 기간 결과가 나빴기 때문에 쉽게 웃을 수 없었다. 외부에서 팀을 지켜보시는 분들의 눈에 봤을 때 우리의 밝은 모습이 긍정적으로 비치지 않을 께 뻔하니까. 그래서 후배들에게 "조금 더 집중해서 묵묵하게 경기에 임하자"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프로 23년차 이승엽도 힘든 ‘즐김’

이승엽(사진=엠스플뉴스)
이승엽(사진=엠스플뉴스)

최악의 시즌을 두고 외부 평가나 반응이 냉혹할 정도다.

연패 기간, 언론이나 팬들 사이에서 ‘이러다 100패를 하는 게 아니냐’라는 말도 나온 것으로 안다.

그런 시선을 견디며 야구를 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프로야구선수가 가장 힘든 게 뭔지 아나?

글쎄.

중계 카메라와 관중, 다른 선수들의 시선이 뚫어져라 자길 지켜보는 와중에도 자신의 감정을 철저하게 숨겨야 할 때다. 사실 굉장히 힘들다. 정말 나쁠 땐 너무 위축되지도 않아야 하고, 정말 좋을 때도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프로 생활을 해보니 감정 컨트롤 하는 게 가장 쉽지 않은 일이더라.

이승엽 같은 베테랑도 그게 쉽지 않나.

(눈을 크게 뜨면서) 그렇다. 사실 올해도 참 느끼는 게 많다. 프로 생활을 하면서 다른 선수들에 비해선 감정을 잘 조절한 편이라고 자부해왔다. 그런데 올 시즌 이런 안 좋은 시기를 겪다 보니 ‘내가 감정을 잘 조절하는 선수가 아니었구나’하는 걸 깨닫게 됐다.

프로 23년차 선수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 더 마음에 와닿는 것 같다.

그래서 야구가 재밌는 것 같다.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겠지만, 야구는 하면 할수록 더 어렵고, 공부가 되고, 인생을 느끼게 된다. 좋았을 때보다 안 좋았을 때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게 야구다. 올 시즌 여러모로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

음.

야구가 잘 될 땐 생각 없이 해도 된다. 하지만, 좋지 않을 땐 생각에 자꾸 더 빠져든다. 그러다 공황상태에 빠질 때도 있고. 선수 각자의 성향에 따라 생각이 많은 선수와 적은 선수의 차이가 크게 갈린다.

이승엽은 어느 쪽인가.

후자지(웃음). 난 생각이 많은 편이다. 고민도 많이 하고, 연습도 더 많이 하는 편이다. 스트레스도 말할 필요 없이 많고(웃음).

‘즐기면서 하자’. 말처럼 쉽지 않은 듯싶다.

맞는 말이다. 요즘은 벤치보다 라커룸에서 내가 할 일이 더 많다. '선수들을 질책하거나 강하게 압박하면 팀 분위기가 더 침체될 수 있겠구나' 싶어 선수들끼리 있을 땐 최대한 격려해준다. 분위기를 밝게 만들기 위해 정말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엄한 선배’는 내 성격상 못한다. 기운을 북돋워 주고, 독려해주는 선배가 내게 더 맞는다.

훈련 자세와 사생활도 늘 모범이 되는 당신이다. ‘이승엽처럼 하면 그만큼은 못 돼도 반은 따라간다’는 게 많은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모범이라고 표현하면 낯간지럽다. 어떻게 보면 모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엔 그 모든 행동은 나를 위한 것이다. 최우선으로 날 위해 행동하는 것들이 타인들에겐 그렇게 비추어질 순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난 20대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이다. 그래서 다른 이들보다 더 일찍 나와서 조금 더 훈련한다는 생각을 한다.


‘철저한 사생활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란 걸 선수들 역시 느꼈으면 좋겠다. ‘이승엽 루틴’을 선수들에게 권하고 싶진 않나.

내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또 같이 해봤을 때 본인에게 맞는다면 권하겠다. 하지만 아니라면 그건 또 다른 문제다. 프로기 때문에 각자 몸에 맞는 선택은 스스로 해야 한다.

이승엽은 술, 담배를 하지 않고 라면·탄산음료 등도 잘 먹지 않는다. 선수 생활 동안 멀리했던 것들 가운데 음식만큼은 최근 몇 년간 조금 편안하게 먹고 있지만 생활만큼은 한결같다.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귀가해 잠들고, 아침 일찍 일어나 누구보다 더 먼저 경기장에 온다. 한 번 더 배트를 휘두르고 준비 운동을 한다.

모범 하니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5월 4일 허벅지 통증으로 시즌 첫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된 이후 그날 9회 2-17로 뒤지고 있는 상황 대타로 나왔다. 승부가 완전히 기운 시점에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당신이 나온다는 게 몹시 의아했다. 이후 기사를 통해 ‘무기력하게 지는 것이 싫어서’ 자청했다는 걸 알게 됐다.

팀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선수단 일원으로 그 ‘어려움을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선수단에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건가.

(손사래를 치며) 아! 그건 아니다. (몹시 부끄러워하며) 그런 의미까진 아니었다. 민망하다.

당신은 경기 외적인 시간에도 훈련과 휴식만 하질 않나. 가끔 야구장 밖의 ‘인간 이승엽’의 사생활이 궁금하다.

특별한 건 없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따로 다른 운동을 한다. 그것 외엔 취미 생활이 없다. 아니면 구장에 일찍 나와서 사우나를 하는 정도? 일찍 와서 웨이트 트레이닝하고 사우나 하고 쉬고 그 정도다.


이승엽 “팀으로서 자랑스러운 건 타점·득점, 개인적으로 홈런”

이승엽(사진=엠스플뉴스)
이승엽(사진=엠스플뉴스)

올 시즌 통산 최다득점·최다루타 기록을 경신했다. 이로써 최다홈런·최다타점까지 타격 전반 굵직한 기록을 거의 독식하게 됐다. 거기다 450홈런까지 쳤다. 기록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난 개인이기에 앞서 삼성 라이온즈의 선수다. 개인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팀 성적이 좋지 않다면 그건 의미가 없다. 450홈런을 비롯해 많은 기록을 세웠지만, 팀이 없다면 그 기록들은 소용이 없다. 팀이 좋아지려면 개인이 좋아져야 하고, 개인이 좋아지려면 또 팀이 그 뒤를 받쳐야 한다. 기록을 신경 쓰기보단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삼성에 기여하겠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기록은 뭔가.

득점이나 타점은 팀원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한 기록이다. 그래서 팀과 같이 만든 기록이다. 팀원으로 봤을 땐 득점과 타점이 가장 자랑스럽다. 반면 홈런은 정말 개인적인 영역이니까. 더 기분이 좋고 자부심이 느껴지는 건 홈런이다. 순수하게 내 능력으로만 만들어낸 것이기에 조금 더 애착이 간다.

450홈런은 통산 2위인 양준혁(351홈런)과 차이가 매우 큰 압도적인 1위다. 거기다 현역 타자 가운데 200홈런을 넘긴 이도 5명뿐이다. 그들의 나이 등을 고려했을 때 당신의 기록을 뛰어넘을 타자가 보이지 않는다. 450홈런은 불멸의 기록이 될 가능성도 매우 크다.

최정(SK, 30)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통산 238홈런이란 이야기를 들은 이후) 30개씩 7~8년 정도면 가능한데, 노려볼 순 있을 것 같다.

어떤 믿음에서 나온 말인가.

최정이 지난해 40홈런을 기록하지 않았나. 40개씩 2시즌 정도를 치고 나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를 것이라고 본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홈런은 한 번 올라오면 좀처럼 어느 수준 이하론 내려가지 않는다. 200홈런 이상을 친 타자 가운데 최정이 가장 어리니까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박병호(미네소타)가 미국에 가지 않았더라면’이란 생각도 해본다.

박병호?

박병호가 해냈던 2시즌 연속 50홈런(2014~2015년)이란 건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 만약 (박) 병호가 한국에서 40개씩 5년을 쳤으면 200홈런이 아닌가. 병호도 한 200개 정도 친 것으로 안다(210개). 병호가 없기에 최정이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삼성이 더 좋아질 것’이란 기대가 많다. 하지만 반등을 위한 현실적인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맞다. 나 역시 기대가 크다. 동시에 어려운 상황인 것도 맞다. 현실적으로 지금 우승이나 가을야구를 목표라고 당장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매 경기 최선을 다해서 더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나태한 경기는 절대 안 된다. 승패를 떠나 지켜보는 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경기를 만들어야 한다.

최하위인 상황이기에 순위 상승도 절실하다.

(단호하게) 더 내려갈 곳이 없다. 그러니까 반대로 한 계단씩 올라가서 다음 목표를 노리면 된다. 9위가 되면 다시 8위, 그다음은 다시 7위. 그런 식으로 매번 더 높은 순위를 향해 우리가 그 숫자를 조금씩 바꿔가야 한다. ‘넘어 보자, 뒤집어 보자’란 생각으로 덤비면 결과는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아직 100경기(95경기) 정도 남았다.

순위 경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말인가.

선수들은 포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겠다. 미래는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시즌이 끝났을 때 우리 선수들 모두가 ‘정말 최선을 다했다’라고 만족할 수 있게, 그렇게 뛸 것이라고 믿는다.

이승엽은 늙지 않았다. 다만 나이가 더 들었을 뿐이다.


1997년 까까머리 고졸신인이었던 때도,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6년 제 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이승엽은 이승엽이었다. 56홈런으로 아시아를 호령하던 그때도, 일본에서 정상에 올랐을 때도, 삼성의 왕조를 견인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는 이승엽이었다.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이승엽은 변하지 않았고, 가장 이승엽다운 마무리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이승엽이라는 전설의 시대에 살며 그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다.

이승엽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사진=삼성)
이승엽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사진=삼성)


김원익 기자 one2@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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