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의 아이콘으로 변신한 힐만 감독(사진=SK).
의리의 아이콘으로 변신한 힐만 감독(사진=SK).

[엠스플뉴스]

| 스포테인먼트 10주년을 맞아 SK 와이번스는 특별한 기념행사를 마련했다. 이날 응원단상에선 트레이 힐만 감독이 파격 퍼포먼스를 선보여 큰 화제가 됐다. ‘팬티 퍼포먼스’로 스포테인먼트 시대를 활짝 연 주역 이만수 전 감독의 눈에 힐만의 퍼포먼스와 SK의 지난 10년은 어떤 모습일까. 엠스플뉴스가 ‘행복 전도사’ 이 전 감독의 생각을 들어 봤다.

“제 퍼포먼스는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갔던 것 같아요. 원래 선구자는 욕을 먹는 법이잖습니까. (웃음) 이제는 힐만 감독의 퍼포먼스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더군요. 지켜보면서 뭐랄까,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만수 전 감독은 SK 와이번스가 자랑하는 ‘스포테인먼트’ 시대를 활짝 연 주역이다.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스포테인먼트’는 마케팅 업계에서 쓰이긴 했지만 대중에겐 생소한 용어였다. 이 캐치프레이즈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SK 야구의 상징이 된 계기가 바로 이만수 전 감독의 ‘퍼포먼스’였다.

이 전 감독은 코치 시절인 2007년, 인천 문학야구장(현 SK 행복드림구장)이 매진되면 팬티만 입고 운동장을 돌겠다는 파격 공약을 내걸었다. 그리고 실제 만원이 되자, 5월 26일 자신의 공약을 실천해 큰 화제가 됐다. 이후로도 SK는 팬을 위해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쳤고, ‘스포테인먼트’는 SK의 팀컬러로 자리를 잡았다.

스포테인먼트 시대가 열린 지 어느덧 10년. SK는 27일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서 스포테인먼트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다. 이날 SK는 다채로운 이벤트를 선보였다. 경기 전엔 세계최대 규모의 전광판인 ‘빅보드’를 통해 이만수 전 감독의 팬티 퍼포먼스 영상을 상영했다. 5회말 클리닝 타임에는 토미존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인 에이스 김광현이 응원단상에 올라 팬들에게 깜짝 선물을 선사했다.

경기 종료 후에는 응원단과 함께하는 불꽃 축제가 열렸고, 트레이 힐만 감독과 최정 등 선수들이 분장하고 단상에 올라 연안부두 노래를 부르는 깜짝 이벤트까지 펼쳤다. 특히 힐만 감독은 배우 ‘김보성’ 분장을 하고 나와 ‘높은 싱크로율’과 과장된 액션으로 관중들의 큰 웃음을 선사했다.

“파격 퍼포먼스, 힐만 감독이기에 가능했다”

스포테인먼트의 선구자, 이만수의 눈에 이날 힐만 감독의 퍼포먼스와 SK의 10주년 행사는 어떻게 비쳤을까. 이 전 감독은 28일 엠스플뉴스와 통화에서 “아주 기쁜 마음으로 지켜봤다”며 흡족함을 감추지 않았다.

우선 이 전 감독은 힐만 감독의 팬서비스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힐만 감독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미국과 일본 야구 경험이 있는 힐만이기에, 선수들과 함께 재미난 분장을 한다는 발상을 쉽게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마케팅팀이 좋은 이벤트를 기획해도 막상 현장에서 호응해 주지 않으면 실제 구현하기 쉽지 않다. 이 감독도 “스포테인먼트는 구단과 현장의 마음이 맞아야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힐만 감독은 마음의 문을 많이 연 분이라, 구단에서도 스포테인먼트를 하기가 더 수월한 면이 있을 겁니다. 미국 야구 문화에 익숙한 분이니까요.”

실제 힐만 감독은 구단 마케팅팀의 행사 계획을 전해 듣고는, 자신이 갖고 있던 가발과 우스꽝스러운 의상을 가져와 ‘이건 어떠냐’고 제안하는 등 적극성을 보였다. 구단이 제안한 여러 분장 중에서도 무난한 것을 제쳐두고 김보성 분장을 골랐다. 팬을 위해서라면 ‘망가지길’ 두려워하지 않는 힐만 감독이다.

응원 단상에 선 힐만 감독과 선수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응원 단상에 선 힐만 감독과 선수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이 전 감독은 10년 사이 야구계를 둘러싼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걸 실감한다고 했다. “과거에는 많이 배타적이었잖아요. ‘야, 저거 저래도 되나’ 하는 시선도 많았구요. 저 같은 경우엔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사람들도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10년이 지나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됐습니다. 긍정적인 현상입니다.”

이 전 감독은 10주년을 맞은 SK의 스포테인먼트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했다. “남들이 하지 않을 때, SK는 야구장에서 스포테인먼트를 실천했습니다. 잠깐 하다가 만 게 아니라 꾸준히 10년을 했고, 이제는 스포테인먼트가 널리 알려지고 다른 스포츠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하게 됐잖아요. 한때 함께 했던 사람으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이 전 감독의 말이다.

“이기는 게 전부가 아니다, 팬이 없으면 야구도 없다”

스포테인먼트의 시작(사진=SK).
스포테인먼트의 시작(사진=SK).

“사실 SK가 지금 순위표에서 1, 2등을 다투고 있는 팀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꾸준히 팬서비스 이벤트를 하고, 감독이 퍼포먼스를 한다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이 전 감독은 스포테인먼트 정착을 위해 성적 중심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기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팬이 없으면 야구가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아직도 야구계 일각에선 성적에 따라 팬서비스를 하고 안 하고가 정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성적이 나쁘면 구단 스스로 마케팅 활동에 소극적이 되는 경향도 있다. 또 기껏 마케팅 활동을 해도 일부 팬에게 ‘이런 거 할 시간에 성적이나 신경 써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아직도 프로야구가 성적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는 게 아쉽고 마음이 아프죠. 그래도 이제 10년이 지난 만큼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봅니다.” 이 전 감독의 말이다. “구단들도 이제 성적에 구애받지 않고 좀 더 적극적으로 스포테인먼트 활동을 전개했으면 합니다.”

문경 글로벌선진학교 선수들과 이만수 전 감독(사진=이만수 홈페이지).
문경 글로벌선진학교 선수들과 이만수 전 감독(사진=이만수 홈페이지).

이 전 감독은 힐만 감독의 퍼포먼스는 물론 감독으로서 보여주는 역량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전 감독은 “아직 직접 만나보지 못했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제삼자로서 볼 때, SK 선수들이 자유롭고 활기차게 야구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속된 말로 선수들을 ‘쪼는’ 스타일이 아니잖아요. 지더라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선수들이 즐겁게 야구하고 있는 것 같아 보기가 좋습니다. 아마 SK 선수들은 행복할 거에요. 팬들도 그럴 거구요.” 이 전 감독의 말이다.

이 전 감독은 언제나 ‘행복 전도사’였다. 홈런을 치고 오만 세레머니를 하던 스타 플레이어 시절부터, 팬티 퍼포먼스를 선보인 코치와 감독 시절까지 항상 정력적이고 즐겁게 야구장을 누볐다.

그라운드를 떠난 지금도 이 전 감독은 각종 방송과 강연 활동, 야구 재능기부를 하며 현역 시절보다 더 바쁘게 보내는 중이다. ‘선구자’ 이만수는 여전히 일상에서 ‘스포테인먼트’를 실천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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