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데뷔 9년 만에 '첫 승' 신고한 SK 와이번스 투수 김태훈(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프로 데뷔 9년 만에 '첫 승' 신고한 SK 와이번스 투수 김태훈(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엠스플뉴스]

SK 와이번스 투수 김태훈이 프로 데뷔 9년 만에 첫 승을 따냈다. 5월 26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전에 선발 등판한 김태훈은 5.1이닝 5피안타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대망의 프로 첫 승을 기록했다.

고교 시절 '퍼펙트 게임'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김태훈. 그 때문인지 KBO리그 첫 승도 남달랐다.

그간 김태훈의 야구 인생은 험난했다. 팔꿈치 뼛조각 수술과 상무(국군체육부대) 입대 이후 다른 부대 전출까지 그의 야구 인생은 험난 그 자체였다. 당시 김태훈은 야구 글러브를 손에서 완전히 놓으려 했다.

그때였다. 수많은 이의 조언과 도움이 김태훈의 생각을 바꿔놨다. 다시 마운드에 선 김태훈은 포기 대신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김태훈의 첫 승리가 감격스러운 이유다.

27일 SK 더그아웃에 낯익은 이들이 나타났다. LG 안방마님 정상호와 임훈이 번갈아가며 김태훈을 찾은 것. 상대 팀이라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김태훈의 첫 승이 내심 반가운 눈치였다. 정상호와 임훈은 과거 SK 시절 김태훈과 한솥밥을 먹은 이들이다.

정상호는 "운만 따랐다면 통산 20승도 족히 했을 투수다. 2년 전만 해도 속구 구속이 140km/h 후반대였다. 내가 가장 아깝다고 생각하는 투수가 바로 김태훈이었다"고 말했다.

이번엔 LG 외야수 임훈이 김태훈에게 덕담을 들려줬다. 임훈은 "어제 던진 공 좋더라. 투심 패스트볼이야"라며 운을 뗐다. 김태훈도 "맞다. 눈 대중으로 배운 구종"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잠시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하던 임훈은 김태훈에게 '축하의 눈짓'을 보낸 뒤, 원정팀 더그아웃으로 사라졌다. 선배들의 짓궂은 장난도 싫은 내색 없이 반갑게 받아준 김태훈이었다. '멘탈왕'이란 별명은 괜히 부쳐진 별명이 아니었다.

‘데뷔 9년 만에 첫 승’ 김태훈, "더그아웃에서 떨려 죽는 줄 알았다."


돌아온 '퍼펙트피처' SK 김태훈(사진=SK)
돌아온 '퍼펙트피처' SK 김태훈(사진=SK)

프로 데뷔 9년 만의 첫 승이다. 참 오래 걸렸다.

(쑥스럽게 웃으며) 그날(5월 26일) 문자만 400통 넘게 왔다.

마운드에서 내려간 뒤, 더그아웃에서 조마조마했을 듯싶다.

프로 와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더그아웃에 앉아 있으니 마냥 신기하고, 가슴이 졸여졌다. 한편으론 긴장도 되고. 그때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트레이 힐만 SK 감독이 칭찬을 많이 하던데.

조금 전에도 워밍업하고 있는데 옆에 오셔서 ‘첫 승 정말 축하한다’며 격려해 주셨다. 항상 힘을 불어 넣어주신다.

27일 경기 전, 힐만 감독은 전날 ‘승리 투수’ 김태훈 칭찬에 여념이 없었다. “확실히 좋아졌다. 몇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효율적인 투구로 실점하지 않았다.”

김태훈에게 당부도 잊지 않았다. 힐만 감독은 "오래가기 위해선 꾸준함이 필요하다. 일정한 딜리버리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게 추후 김태훈의 야구 인생을 뒤바꿔 놓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사실 이날도 갑작스러운 선발 등판이었다.

그렇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외국인 투수 스캇 다이아몬드를 대신해 마운드에 올랐다. 최소 한 경기, 많으면 두 경기 정도 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공 하나의 의미’가 남달랐을 듯싶다.

정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공을 던졌다. 솔직히 만족스럽진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다 잘 던졌다고 말해줘서 자신감이 생겼다. 다행히 감독님도 선발 기회를 더 주겠다고 공언하신 상황이었다. ‘점점 더 좋아지겠지’라고 마음먹으니 1승이란 선물도 받게 됐다(웃음).

팀이 롯데 자이언츠에 3연전을 모두 내준 상황이었다. 심적으로 부담도 컸을 텐데.

(나지막이) 이전까진 1군에서 승도 없고, 자신감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날(26일)만큼은 느낌이 달랐다. 팀이 연패에 빠진 상황이었다. 오히려 내겐 책임감이 샘솟았다.

실제 투구에서도 평소 ‘없던 힘’이 샘솟았나.

오히려 정반대였다. 속구 구속이 평소 수준에도 한참 못 미쳤다. 전광판을 몇 번 봤는데 속구 최고 구속이 143km/h 정도였다. 대부분 130km/h 후반에 머물렀다. 위기감이 몰려왔지만, 변화구에 더 집중했다. 변화구 위주로 카운트를 잡고, 타자들이 변화구에 익숙해지면 속구로 타이밍을 흔들었다. 타이밍 싸움이 주요했던 경기였다.

던지는 구종도 고교 시절과 조금 달라졌다. 과거엔 빠른 공 위주의 로케이션을 가져갔다면, 최근엔 체인지업이나 느린 슬라이더가 눈에 띄었다.

그렇다. 최근에 체인지업을 장착했다. 예전엔 내가 가진 변화구 계열이 모두 빠른 구종이었다. 빠른 공을 던졌을 때 100이 소모된다면 변화구만 던져도 90이상 소모된 셈이다. 자연스레 효율적인 투구로 이어지지 못했다. 지금은 체인지업과 느린 슬라이더를 섞어 던진다. 느린 공이 생기니 수 싸움도 수월해지고, 체력 안배도 가능해졌다.

‘만년 유망주’ 김태훈 일깨운 한 마디, “급하게 달려들지 마라”

(좌로부터)함께 훈련하는 제춘모 퓨처스 투수코치와 김태훈(사진=SK)
(좌로부터)함께 훈련하는 제춘모 퓨처스 투수코치와 김태훈(사진=SK)

어찌 됐건 첫 승에 성공했다. 마음은 한결 편할 듯싶다.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다. 첫 승을 거둔 날도 마운드에서 불안감이 컸다. 이전 3경기에서 모두 ‘4이닝’을 던진 상황이었다. 그날도 5회가 되니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 이제 곧 바뀌겠구나’하는 생각에 더그아웃을 자꾸 훔쳐봤다(웃음). 1아웃 잡고 한 번 보고, 2아웃 잡고 또 한 번 보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4층 관중석을 한 번 쳐다봤다. 그 후엔 마음이 한결 놓였다.

4층 관중석에 숨겨둔 여자친구라도 있었나보다(웃음).

(머릴 긁적이며) 특별한 의미는 아니었다. 그냥 선배들이 집중 안 될 때 전광판이나 먼 곳을 한번 쳐다보라고 했다. 그러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더라.

실제로 도움이 됐나.

투수들은 타이밍이 안 좋으면 투구 패턴이 빨라진다. 먼 곳을 한 번 쳐다봄으로써 한 템포 쉬어 가잔 의미다. 보통 투수코치님이 마운드에 올라오는 이유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럴 수 없이 나 혼자 풀어나가야 할 때 자주 쓰는 방법이다.

고교 시절엔 ‘퍼펙트게임’의 주인공이었다. 명성 때문인지 SK 입단 당시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후 지독하게 불운이 찾아왔다.

예전엔 아무 생각 없이 야구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젠 연차도 쌓이고, 아직 1군에서 자릴 잡지 못한 것도 부끄럽단 생각이 들었다. 2년 전부터 야구가 정말 절실해졌다. 숙소 입소도 자처할 정도였다. 교육리그에도 다녀왔다. 열심히 하니 주변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셨다. 한 단계 성숙할 수 있었던 이유다.

‘야구’란 스포츠가 지긋지긋했을 듯싶다.

'정말 야구를 그만 둘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몇 번이나 휴대전화를 붙잡고,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제춘모 퓨처스 투수코치가 옆에서 정신이 들게 해주셨다.

그게 어떤 식이었나.

제 코치님은 좋은 애긴 거의 안 해주신다. 오히려 정말 따끔한 말들을 자주 해주셨다. 그게 오히려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나 자신에게 큰 자극제가 됐다. 때론 오기가 생기게 했다. 나머진 부분은 일급비밀이라 노코멘트하겠다(웃음).

프로 입단 이후엔 불운이 뒤따랐다.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과 입대 문제도 순탄치 않았다.

제대하고 (윤)길현이 형이 조언을 자주 해주셨다. 길현이 형도 나와 비슷하게 입대 후 몸이 좋지 않았다. 당시 길현이 형이 해준 말이 있다. '무엇보다 내가 네 마음을 잘 안다. 나도 그래 왔기 때문이다. 너무 급하게 하지 마라. 탈 날 수 있다'. 워낙 철이 없었다. 길현이 형 말이 무슨 뜻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도 제 욕심 때문에 아파도 참고, 공을 던졌다. 덕분에 부상이 끊이지 않았다. 그제야 길현이 형 말이 문득 떠오르더라. 그 말 한마디에 깨달은 게 너무 많았다.

부상 완치 후에도 퓨처스팀에 계속 머물렀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공을 던져도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몸도 너무 건강했다. 그간 끊이지 않는 부상 때문에 힘들었다면 최근엔 건강한 몸으로 1군 마운드에 설 수 없단 게 너무 힘들었다. 정말 다행히도 그 순간 1군에서 호출이 왔다.

김태훈의 소망, "마흔 살 넘어서도 야구하고 싶습니다"

2009년 데뷔 당시 김태훈(사진=SK)
2009년 데뷔 당시 김태훈(사진=SK)

그러고 보니 본인에겐 고마운 이가 참 많다.

너무 도움만 받아서 걱정이다. 어떻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올 시즌 시작할 때도 사실 (윤)희상이 형이 아니었다면 비활동 기간을 날려버렸을지도 모른다. 고민하고 있을 때 형이 손을 내밀어주셨다. 함께 훈련하며 선발투수로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을 모조리 전수 받았다(웃음).

인터뷰를 해보니 성격이 참 좋은 듯싶다.

(사뭇 진지하게) 사실 난 진지한 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장난기 많은 사람으로 본다. 내가 눈치가 빨라서 분위기가 안 좋으면 형들 비위를 잘 맞춘다(웃음).

요즘 야구가 참 재미있을 듯싶다.

그렇다. 이렇게 재미있는 야구를 '왜 좀 더 잘하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다. 요즘 팀 분위기도 좋고, 코칭스태프의 도움도 많이 받고 있다. 특히 1군에서 공을 던질 수 있단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

고교 시절 '퍼펙트 피쳐'란 영광은 없다. 이젠 SK 5선발 혹은 불펜으로서 궂은 일을 담당해야 한다.

어린 시절엔 '내가 안 던지면 아무도 없어'란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SK에 나보다 못하는 투수는 없다. 다 잘하는 선수들이다. 이 안에서 많이 배우고, 좋은 게 있으면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들어가고자 한다. 팀 동료들과 힘을 합쳐 SK 가을야구 진출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어떤 자리든 상관없다.

남들보다 빨리 오지 못했다. 대신 더 오래가야 하지 않겠나.

물론이다. 내 꿈도 바로 그것이다. 40살이 넘어서도 마운드에 오르고 싶다. 한화 이글스 박정진 선배가 내 롤모델이다. 40살이 넘었을 때까지 야구하시는 게 정말 부럽다. 나도 오래 야구하고 싶다. '20승', '퍼펙트게임'은 생각지도 않는다. 언제든 팀을 위해 오랫동안 마운드에 설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