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불펜진의 중심축인 이현승(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두산 불펜진의 중심축인 이현승(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

올 시즌 두산 베어스 투수 이현승은 마당쇠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궂은일을 도맡은 이현승의 헌신으로 두산의 반등이 이뤄졌다. 이현승은 감독이 인정한 필승조다. 다만, 이현승은 젊은 투수들의 분발을 더 강조했다. 자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이현승의 당부였다.

짧은 스포츠머리와 거뭇거뭇 난 수염, 그리고 검게 그은 피부. 두산 베어스 투수 이현승의 얼굴이었다. 언뜻 보면 거친 야생(野生)의 기운이 느껴졌다. 물론 그런 의미가 담긴 신호는 아니었다. 그저 야구가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서 나온 의식(儀式)과도 같았다.
머리와 피부는 당장 어찌할 수 없는 부위다. 다만, 꽤 길러진 이현승의 수염은 인터뷰 뒤 곧바로 잘릴 운명이었다. 5월 들어 팀 상승세와 더불어 이현승의 활약도 빛났기 때문이다. 이현승의 5월 성적은 11경기 등판 1승 1패 2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 1.50이다. “야구가 잘 풀리니 수염을 깔끔하게 바로 밀겠다”라는 이현승의 한마디엔 한껏 여유가 느껴졌다.
이현승은 3년째 팀의 주축 불펜으로 활약 중이다. 특히 올 시즌엔 궂은일을 도맡은 이현승이다. 이현승의 등판 시점은 정해져 있지 않다. 가장 중요한 상황이라면 이현승은 이닝과 아웃 카운트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마운드에 오른다. 올 시즌 6회(2타자)-7회(25타자)-8회(23타자)-9회(40타자)-10회(15타자)-11회(7타자)에서 상대한 타자 숫자만 봐도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두산 김태형 감독도 이현승의 노고(勞苦)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만큼 신뢰가 있기에 김 감독은 이현승 카드를 폭넓게 활용한다. 김 감독은 “이현승을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시점에 올리고 있다. 베테랑 투수로서 경험이 많기에 이런 기용이 가능하다. 필승조 역할을 정말 잘 맡아주고 있다. 앞으로도 이현승을 이렇게 활용할 계획”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불펜 투수의 운명은 때때론 가혹하다. 한순간 실수로 팀의 승리가 날아가는 스트레스는 상상 그 이상이다. 이현승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올 시즌엔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다. 못된 마음을 먹는 게 이현승의 비결이다. 동시에 이현승은 팀의 젊은 불펜 투수들이 자신을 뛰어넘길 당부했다. 보이지 않는 선의의 경쟁은 곧 강팀이 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이현승의 책임감 “누구든지 궂은일을 해야 한다.”

이현승은 이닝과 아웃 카운트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마운드에 오른다(사진=두산)
이현승은 이닝과 아웃 카운트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마운드에 오른다(사진=두산)

수염을 꽤 길렀다. 어떤 의미가 숨은 건가(웃음).
하하.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다. 수염은 곧바로 자를 거다. 시즌 초반에 잘 안 풀려서 머리를 짧게 잘랐다. 그러다가 수염도 길러봤다. 다시 공이 좋아졌으니 깔끔하게 하고 다니겠다.
4월 성적(11경기 1승 1패 3세이브 평균자책 2.63 WHIP 1.54)보다 5월 성적(11경기 1승 1패 2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 1.50 WHIP 1.00)이 더 좋다.
첫째로 지금까지 부상이 없다. 둘째로 부상이 없으니 자신감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계속 기회를 받으면서 던지니 경기 운영이 점점 편해진다. 내가 자신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막을 거로 확신하고 던진다. 아 또 내가 마음을 못되게 먹은 것도 있다.
마음을 못되게?
마운드에 올라간 뒤에 나도 최대한 위기를 넘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막고 싶다고 다 일이 술술 풀리는 건 아니지 않나. 블론 세이브도 할 수 있는 게 야구다. 그런 안 좋은 결과에 대해 크게 신경 안 쓴다는 얘기다. 물론 나도 못 막았을 땐 가슴 아프다. 그리고 선발 투수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한다. 그래도 최대한 즐기면서 편안하게 던지려고 한다.
결국, 야구는 멘탈 싸움인 것 같다.
참 어렵다. 두산 불펜이 욕먹는 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잘하면 욕먹을 일 없는데(웃음). 팽팽한 접전에서 무너지면 나도 그렇고 팬들도 속상하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정말 힘들다.
음.
(짧은 한숨을 내쉬며)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도 지치기 마련이다. 부담감도 더 쌓인다. 그래서 조금만 더 못된 생각을 하자고 다짐했다. ‘내가 못 던져도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냥 내일 잘 던지면 된다’라고 마음속으로 되뇐다.
마음뿐만 아니라 체력적으로도 힘들지 않나. 마당쇠처럼 궂은일을 도맡고 있다.
(고갤 내저으며) 힘들지 않다. 그게 내가 하는 역할이다. (강한 어조로) 누구든지 궂은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독님께서 믿어주시면서 기회를 얻고 있다. 만루든 1, 2루든 어떤 상황에서라도 최대한 잘 막고자 한다. 조금씩 좋아지는 느낌이 든다.
이현승이 말하는 이용찬과의 ‘더블 스토퍼’

이현승(왼쪽)과 이용찬(오른쪽)이 더블 스토퍼 체제를 구축했다(사진=두산)
이현승(왼쪽)과 이용찬(오른쪽)이 더블 스토퍼 체제를 구축했다(사진=두산)

올 시즌 등판 시점이 불규칙한 건 사실이다. 이용찬과 함께 ‘더블 스토퍼’ 체제를 형성했다. 고정된 마무리 역할은 아닌데.
사실 마무리 투수라는 역할은 부담이 정말 큰 자리다. 지난해 나도 정말 부담감을 많이 가졌다. 2시간 50분을 이기고 있다가도 단 5분 동안 나 때문에 뒤집어질 수 있다. 그런데 올 시즌엔 정말 달라진 점이 있다.
?
내 뒤에 누가 있다는 게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나도 사람인지라 컨디션이 안 좋을 때도 있다. 그때 내 뒤엔 (이)용찬이가 있다. 반대로 용찬이가 안 좋을 땐 내가 뒤에 있다. 그 차이가 크다. 그래서 서로 부담감이 덜한 것 같다.
그래도 마무리에 대한 애착이 있지 않나.
(빙긋 웃으며) 당연히 마무리라는 자리는 정말 매력적이다. 2년 전 마무리로 전환한 나는 전화위복처럼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이바지했다. 내가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했다. 그런 건 평생 가는 거다. 하지만, 지난해엔 마무리의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솔직히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나갔다. 지켜보는 모든 사람이 불안감을 느꼈다.
1년 만에 상황이 뒤바뀌었다. 야구란 게 참 어렵다.
(짧은 침묵 뒤) 정말 야구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그날그날 좋다고 느낀 걸 반복하다가도 그게 진짜 맞는 건지 헷갈린다. 또 생각해보고 맞으면 더 노력하지만, 변수가 많기에 알면 알수록 야구가 참 힘들다. 아직도 난 야구를 배우고 있다.
불펜 투수로서의 고뇌가 느껴진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팀 불펜 투수들을 봐도 안타깝다. 5월 18일 넥센 히어로즈와 한화 이글스 간의 경기를 봤다. 9회 초 넥센 이보근이 블론 세이브로 역전을 허용했다. 그런데 9회 말 한화 정우람이 끝내기 만루 홈런을 맞고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다. 같은 불펜 종사자로서 마음이 아프더라. 그렇게 되면 한동안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144경기 동안 그런 스트레스를 버텨야 한다.
답답한 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그럴 땐 야구가 아닌 나만의 취미 생활을 잠깐 한다. 음악·영화·게임 등의 다양한 취미를 찾아서 스트레스를 푼다. 그러면 다음 날 야구장에 나왔을 때 기분이 좋다.
인터넷 댓글은 보는 편인가.
야구 선수라면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물론 한 번쯤 댓글을 볼 때가 있다. ‘어떻게 이런 댓글을 달지’하면서 감탄한다. ‘만루 변태’라던가 ‘세이브를 당했다’라는 표현 말이다(웃음). 잘 던져도 욕먹고, 못 던져도 욕먹는 것 같다. 웬만하면 안 보려고 한다. SNS는 이제 다 지웠다(웃음).
보이지 않는 경쟁이 필요한 두산 불펜

이현승은 젊은 투수들이 더 분발하길 원했다(사진=두산)
이현승은 젊은 투수들이 더 분발하길 원했다(사진=두산)

김태형 감독은 인터뷰 중이던 이현승 앞에 멈춘 뒤 “우리 팀 필승조가 없는 게 아니다. 네가 필승조다”라며 웃음 지었다.
감독이 인정한 필승조가 됐다(웃음).
(손사래를 치면서) 아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내가 언제부터 마무리를 했다고 이렇게 자리 잡았겠나. 패전조만 10년 넘게 하라는 법도 없다. 선수는 갑자기 어떻게 변하고 발전할지 모른다. 팀 후배들에게도 ‘언제까지 그 자리에만 있으려고 하나. 어차피 네 돈을 버는 거다. 자기가 노력한 만큼 성공한다’라고 강조한다. 그만큼 나도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려고 한다.
두산의 젊은 불펜진도 분발이 필요할 것 같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잘하는 것보단 젊은 투수들이 더 잘하는 게 팀 입장에선 좋다. 언제까지나 베테랑 투수만 잘할 순 없다. 빨리 젊은 투수들의 기량이 올라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린 투수들이 잘하면 뿌듯하고 보기 좋지만, 못 던지면 마음이 아프다. (단호하게) 내 자릴 뺏을 수 있어야 강팀이 된다.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어야 한다. 우리 팀 불펜은 그게 약간 부족하다.
말처럼 쉽지 않은 과제다.
NC 다이노스를 보면 원종현·김진성·임창민이라는 확실한 젊은 필승조가 있지 않나. 투수 3명이 3이닝을 그냥 끝내버린다. 베테랑 투수만 있는 필승조는 분명히 아쉬운 면이 있다. 길게 보면 좋은 게 아니다. 상황이 힘들면 짧게 이닝을 끊어서라도 조금씩 도와가면서 발전해야 한다.
이현승이라는 존재가 젊은 투수들에게 큰 힘이 되겠다.
사실 자기가 알아서 깨달아야 한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웃음). 실연도 겪어보고, 실망도 해봐야 깨닫는 게 인생 아니겠나.
최근 3위(26승 1무 20패)까지 치고 올라가면서 팀 분위기가 정말 좋아졌다.
4월에 투·타가 전체적으로 와르르 무너진 경향이 있었다. 다행히 5월 들어선 그런 게 많이 줄었다. 나 혼자 잘한다고 좋은 건 아니다. 불펜에선 같이 협동해서 막아야 한다. 벤치에서 믿어주시는 만큼 최대한 보답하겠다. 다치지 않고 웃으면서 즐겁게 공을 던지고 싶다. 단 한 점이라도 실점을 꼭 줄이겠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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