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최초의 3,000안타에 도전 중인 영원한 '미스터 LG' 박용택(사진=조문기 작가)
KBO리그 최초의 3,000안타에 도전 중인 영원한 '미스터 LG' 박용택(사진=조문기 작가)

[엠스플뉴스]

"LG에서 뛰지 않았으면 더 편하게,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LG 박용택'은 없었을 것. 그래서 생각하기 싫은 가정이다."

‘뜬공 혁명’에 반문하는 박용택 “난 발사각도 10도 타자”

“3,000안타 목표는 나 스스로에게 하는 채찍질”

“내 야구 인생의 끝은 반드시 LG 우승이어야만 한다.”

고유한 삶의 향기를 내는 이에겐 유려한 멋과 진한 깊이가 느껴진다.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그 매력은 의식하지 않아도 느껴지게 마련이다. LG 트윈스 야수 박용택이 '딱' 그런 이다.

구장 밖에서 박용택은 패션 감각이 뛰어난 '매력남'에 ‘딸 바보’인 보통의 가장이다. 그러나 구장 안에선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베테랑 야구선수다.

동시에 박용택은 KBO리그의 '준비된 레전드'다. 양준혁(전 삼성)이 보유한 통산 최다안타 기록(2,318안타)을 뛰어넘을 가장 유력한 후보이자 3,000안타와 '1만 타석'이란 전인미답의 경지에 도전장을 내민 선수이기 때문이다.

‘미스터 LG’ 박용택의 일관된 소원은 하나였다. 바로 ‘LG 유니폼을 입고 슈퍼스타가 돼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이었다. 이제 꿈의 절반은 이뤘다. 남은 꿈은 LG의 한국시리즈 우승뿐이다. LG 우승을 누구보다 염원하는 박용택을 ‘엠스플뉴스’가 만났다.

철저한 몸 관리, ‘꾸준함의 상징’ 박용택이 말하는 나만의 비결

박용택은 1,000타점, 1,000득점, 2,000안타, 300도루 등 각종 대기록을 모두 달성한 '현역 레전드'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박용택은 1,000타점, 1,000득점, 2,000안타, 300도루 등 각종 대기록을 모두 달성한 '현역 레전드'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2,123안타로 통산 최다안타 2위에 올라 있다. 올 시즌엔 1,000타점 고지까지 넘어섰다(6월 19일 기준 1,007타점). 역대 프로야구 타자 가운데 1,000타점 이상을 넘긴 이는 단 13명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나 현역 선수 가운데 1,000타점 돌파자는 이승엽(삼성), 이호준(NC), 박용택뿐이다. 그런 대기록을 세웠는데 조금 조명이 덜 되는 것 같아 아쉽다는 팬이 많다.

더 조명이 안 돼도 괜찮다(웃음). 농담이 아니라 진짜 전혀 감흥이 없다. 그냥 ‘야구를 참 오래 했구나’하는 생각과 ‘나중에 프로라는 이름이 부끄럽진 않겠구나’하는 느낌 정도가 들 뿐이다.

2002년 프로 무대를 처음 밟은 이후 꾸준히 활약해 1,000타점, 1,000득점, 2,000안타 등 대기록을 세웠다. '야구를 참 오래했구나'하는 생각 이상을 해도 될 거 같다.

새삼스레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든다. 정말 건강한 몸을 주셨기에 이렇게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해 여러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 다음으론 여러 상황을 잘 이겨내고 쭈욱 건강했던 내 몸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본인 말처럼 다소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몸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으로 안다.

(고갤 끄덕이며) 그렇다. 그게 선수 생활의 첫 번째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야구선수 생활을 하면 할수록,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든다. 그런데 요즘엔 나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몸을 챙기는 선수가 많아졌다. 무척 바람직한 현상이다(웃음).

자신만의 몸 관리법,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특이한 건 없다. 다만 컨디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안 한다. 어릴 적엔 술을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하고, 잘 마신다(웃음). 그러나 최근 몇년전부턴 시즌 도중엔 거의 안 마시게 됐다. 일요일 밤에 반주로 한두 잔 정도? 그 외엔 가능하면 아예 마시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걸 참으면서 산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야구가 잘 안 된다고 훈련을 많이 하거나 기술적인 부분에서 답을 찾거나 하지 않는다. 그보단 전체적으로 내 몸의 바이오리듬이나 컨디션, 심리적인 상태를 회복시켜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생활 전체를 통제해 야구에 적합한 상태를 맞춰나가는 거다.

경기력에 방해가 될까 싶어 경기 전, 많은 걸 조심하는 것으로 안다.

보통 경기 전 훈련 끝나고 경기 시작 전까지 하는 일이 5분 단위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경기 전 인터뷰도 부득이한 사정이 아니면 길게 잘 하질 않는다. 혹시 시간이 소요돼 경기 전 루틴을 빠뜨릴까 봐서다. 오늘같이 미리 일찍 나와서 하는 인터뷰는 별 지장이 없다.

경기 전 루틴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 그게 뭘지 궁금하다.

30분 정도 '쪽잠'을 자는 거다. 피로 회복에 상당히 좋다. 꼭 지키려 애쓴다. 선수 생활을 길게 하다 보니 어떻게 해야 가장 좋은 건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거 같다.

'긍정의 힘'으로 여전히 진화 중인 박용택

얼마 있으면 그도 마흔이다. 그러나 박용택은 여전히 야구 학습에 매달린다(사진=조문기 작가)
얼마 있으면 그도 마흔이다. 그러나 박용택은 여전히 야구 학습에 매달린다(사진=조문기 작가)

지금껏 LG 한팀에서만 뛰며 소속팀의 암흑기와 개인적인 부침을 모두 경험했다. 그런 박용택만의 특별한 ‘멘탈 관리법’을 듣고 싶다.

정신적인 부분을 잘 관리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몸이 피곤해도 긍정적이고, 밝은 상태를 유지하면 피로감을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불안하고, 쫓기고, 결과만 의식하면 아무리 육체적인 준비가 잘 돼 있어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늘 긍정적인 생각만 하면서 부정적인 생각들은 빨리 지우는 편이다.

시즌 전 엠스플뉴스와의 미국 애리조나 캠프 인터뷰에서 "과거에 난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매우 예민했던 선수였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박용택 같은 처음부터 야구 잘했던 선수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솔직히 의아했다.

과거엔 나 자신에게 전혀 만족하지 못했다. 문제를 만드는 수준이 아니라 문제가 2개면, 3개, 4개, 5개를 더 만드는 유형이었다. 맞다. 매우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난 그냥 애구나’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웃음).

그랬던 박용택이 지금은 후배들에게 가장 든든한 멘토다.

야구가 잘 안 되는 후배들을 보면 "자신의 문제점들을 써서 객관적으로 보라"고 조언해준다.

자신의 문제점들을 써서 객관적으로 보라?

첫 번째론 기술적인 문제점이 뭔지를 쓰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신체적이나 체력적으로 무엇이 떨어졌는지 확인하는 거다. 세 번째는 외부요인이나 제3자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떠올려보는 거다. 마지막 네 번째론 무슨 환경적인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는 거다. 거기서 어떤 결론이 나왔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펴 보면 대부분의 해결책이 나온다. 거기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부분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결국엔 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본다.

합리적인 문제 해결 방식 같다. ‘예민함’이란 문제를 극복한 과정도 그러했나.

최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것들을 피하려 노력했다. 음식, 상황, 관계 등 모든 걸 포함해서다. 예를 들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경기 전엔 대화를 하지 않거나 일부러 피하는 등의 방법을 썼다(웃음). 음식도 가려서 먹고, 좋지 않은 건 하지 않았다. 기분 좋은 생각만 하고, 긍정적인 것들만 떠올리는 식이었다. 의식적으로 하지 않다 보면 저절로 부정적인 걸 소거하는 게 조금씩 익숙해진다.

'마인드 컨트롤'이 그래서 중요한 거 같다.

최근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했다. "시험 볼 때 못 푸는 문제가 나오면 계속 잡고 있어? 그냥 넘기잖아"라고 말이다.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야구 인생에서 그런 문제들을 몇 가지 발견했었다. 계속 노력하니까 그 가운데 몇 개는 풀리더라. 하지만, 남은 몇 개는 ‘지금 내가 해결할 순 없지만 언젠가는 되겠지’란 긍정적인 생각으로 그냥 지나쳐 갔다. 난 그게 '경험이 주는 삶의 지혜'라고 본다.

득도한 사람 같다. 그래서일까. 요즘 보면 매사에 여유가 느껴진다.

지금이 아무리 '100세 인생 시대'라고 하지만, 득도하면 할아버지 아닌가(웃음). 아직 내 실제 나이는 마흔도 안 됐다. 물론 야구선수로는 부정하고 싶어도 60, 70세는 된 거 같다. 그 정도면 인생에서처럼 야구에서도 지혜가 생겨도 많이 생길 나이가 아닌가 싶다(웃음).

이젠 따라 걷고 싶은 선배가 된 박용택, 과거엔 그도 흔들리는 청춘이었다.

20대 시절의 박용택(사진=LG)
20대 시절의 박용택(사진=LG)

LG 젊은 선수들이 그러더라. "박용택 선배의 조언은 금과옥조처럼 가슴속에 새긴다"고. 어느 선수는 "박용택 선배는 명언 제조기"라고 하고. 그 가운데 채은성에게 들려준 ‘자신감은 가진다고 마음먹을 때 생기는 게 아니라, 준비에서 나온다’라는 조언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거 민망하네(웃음). 예전엔 나도 그런 선수가 아니었다. 요즘 내가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조언 전부가 내 머릿속에서 온전하게 나온 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글이나 명사들의 말에서 영감을 얻은 게 많다. 채은성에게 해준 조언은 박찬호 선배가 했던 인터뷰에서 본 얘기로 기억난다. 이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확실히 정의하지 못한 이야기였는데 그 말을 본 순간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평범한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무게감이 달라진다. 박용택, 박찬호 같은 선배는 행동과 실력에서 말의 무게가 커지는 법이다.

(고갤 끄덕이며) 말이 전부가 아니란 걸 요즘 들어 정말 많이 느낀다. 우리 주위에서 보면 흔히 "자신 있게 해!"라는 말 자주 하지 않나.

그렇다.

하지만, 절대로 그 말만이 전부가 아니다. 자신감은 내가 좋은 과정을 밟아 얻은 결과가 좋을 때 자연스럽게 몸에 배 나오는 거다. (갑자기 화제를 바꾸며) 투수가 갑자기 흔들릴 때 포수가 마운드에 올라가 대화를 나누는 경우를 자주 봤을 거다. 그때 둘이서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한 적 없나?

당연히 있다. 경기 끝난 후 투수나 포수들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 바로 "마운드에서 무슨 대화를 나눴냐"는 거다.

(씩 웃으며) 그럴 줄 알았다. 나도 항상 포수와 투수가 어떤 대화를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 포수들에게 물어본 적 있다. 그러면 십중팔구 "'자신감 있게 던져'는 말을 했다"고 한다. 자, 여기서 드는 또 하나의 의문이 있다.

?

바로 ‘어떻게’란 거다. "어떻게 자신감 있게 던져?'라는 의문이다. 투수들한테 물어보면 "정확한 답을 모르겠다"고 한다. 야구하면서 ‘어떻게’의 답이 늘 궁금했다.

지금은 ‘어떻게’에 대한 답을 찾았나.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감에 대해서 만큼은 얻은 결론이 있다. ‘내가 준비 한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두려워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하는 것’이 바로 자신감이라는 거다.

박용택도 실패가 두려울 때가 있나.

물론이다. 세상에 실패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나? 야구선수의 일생은 성공보다 더 많은 실패와 마주쳐야 하는 삶이다. 수많은 과정을 거쳐 단련된 프로선수라도 실패와 마주치는 건 절대 쉽진 않은 일이다. 빨리 잊는다는 건 그래서 야구선수, 특히나 수천 번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에겐 더더욱 중요한 일이다.

지금껏 선수로 뛰면서 성공에 대한 압박감에 힘들었던 적은 없나.

난 지금껏 항상 기대감을 불러오고, 팬이 정말 많은 LG의 일원으로 살았다. 부담감이 왜 없었겠나. 정신적인 부분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관련 서적도 읽고, 강의 영상을 찾아보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선수 생활을 마치고 나서도 그 분야의 학문을 계속 공부해보고 싶다.

우문일 수 있겠다. 박용택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뭔가.

타석에선 없다. 있다면 아내와 우리 딸? 특히 11살 난 우리 딸(박솔비) 앞에선 절대 강해지지 못하겠더라(웃음). 내가 어려워하는 투수는 음, 비밀로 하겠다(웃음).

박용택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별명은 ‘팬덕택’

박용택이 2016년 안타 1개당 3만원씩을 적립해 도운 소이증 환우들과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늘 팬들을 떠올리는 박용택은 각종 기부 활동과 후원에도 앞장서고 있다(사진=LG)
박용택이 2016년 안타 1개당 3만원씩을 적립해 도운 소이증 환우들과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늘 팬들을 떠올리는 박용택은 각종 기부 활동과 후원에도 앞장서고 있다(사진=LG)

‘OO택’으로 끝나는 수많은 별명이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은 뭔가.

아마 수백 번은 말한 것 같은데 ‘팬덕택’이다(‘팬들 덕분입니다’라는 의미).

어째서인가.

내 별명은 시리즈가 무척 많다(웃음). 그중에서 ‘팬덕택’을 들었을 때만큼의 충격은 없다. ‘와! 이런 기상천외한 작명가님들’이란 생각이 들면서 ‘이거 진짜 좋다’란 느낌이 확 왔다(웃음). 정말 절묘했다. 그리고 뭔가 뿌듯한 감동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런 자부심과 별개로 팬들의 여론은 ‘용암택’과 ‘찬물택’을 오가기도 한다.

(멋쩍게) 하하하.

그런 팬들의 반응은 신경 쓰는 편인가.

사람이니까 당연히 신경 쓰인다. 어쩔 수 없이 댓글을 보게 되니까. 그래서 시즌 도중엔 프로야구 기사를 가능하면 안 보려고 한다.

야구선수는 이동시간이 참 길다. 그때 많은 선수가 야구 기사를 읽는다. 그럼 다른 선수가 야구 기사를 읽을 때 주로 뭘 하나.

난 모바일 게임 같은 것도 안 한다. 그래서 사실 할 게 많지 않다. 쇼핑을 좋아하는 편이라, 가끔 ‘해외 직구 사이트(직거래 구매 사이트)’을 들어가긴 하는데(웃음). 그것도 잠깐이다. 메이저리그 기사나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잘하는 선수들 영상을 찾아보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야구 외적인 시간에도 또 야구 생각하는 게 즐겁나.

그러게 말이다. 그게 난 재밌더라(웃음).

‘뜬공 혁명’에 반문하는 박용택 “난 발사각도 10도 타자”

박용택은 국내 타격 이론가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이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박용택은 국내 타격 이론가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이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요즘 메이저리그의 타격이론은 프랑스 대혁명을 방불케 한다. 급격한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스탯캐스트’ 같은 최첨단 시스템을 통해 정확한 타구속도와 발사각도 등이 공개되며 이전엔 볼 수 없던 갖가지 데이터가 나온 덕분이기도 하다. 이런 데이터들에 따르면 타구 속도가 빠르고, 최적의 발사 각도를 유지할 때 장타 생산이 많이 된다.

이 때문에 전통적으로 강조됐던 '공을 강하게 내려찍는' 다운스윙(Down swing)이나 '공과 배트의 궤적을 일치시키는' 레벨스윙(Level swing) 등은 '시대에 뒤떨어진 스윙'이란 취급을 받고 있다. 비효율적인 스윙의 대명사였던 어퍼스윙(Upper swing)이 되레 각광받고, 땅볼을 지양하고 뜬공을 추구하는 흐름이 대세가 되면서 ‘뜬공 혁명’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발사 각도가 높아야만 장타와 인플레이 타구가 늘어난다'는 건 미국야구계에선 이제 정설처럼 돼버렸다. 메이저리그의 평균 타구 발사각도 또한 2015년 10.5도, 2016년 11.5도, 2017년엔 12도로 꾸준히 오르고 있다. 하지만, 박용택은 이런 이론에 의문을 제기한다. "KBO리그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많은 타격이론가가 박용택의 스윙 메커니즘을 칭찬한다.

그런가?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진화의 과정이자 생존을 위한 전략이었을 뿐이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하고 싶다.

뭔가?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유행하는 타구 속도, 발사 각도, 그리고 장타의 상관관계에 대해 들어봤나.

물론이다. 메이저리그에선 최근 5할 이상의 타율과 1.500 이상 장타율을 기록한 타구들의 조합을 뜻하는 ‘배럴(Barrel)’이란 통계가 나왔다. 이 통계에 따르면 시속 158km, 발사 각도 26~30도를 충족하는 타구가 가장 이상적인 생산력을 보여준다. 요컨대, ‘장타 생산을 위해선 빠른 타구 속도와 일정한 발사 각도가 보장돼야 한다’는 이론으로 알고 있다.

그 이론으로 보면 타구 속도가 시속 160km 정도일 때 올려치는 스윙을 하면 가장 이상적인 타구가 나온다. 하지만 타구 속도가 평균 시속 145km 정도로 떨어졌을 때 같은 각도를 유지하면 OPS가 현저히 떨어진다. 그 정도 속도에서 가장 이상적인 각도는 10도 내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타구 속도가 160km 정도 나오는 타자는 채 2%(1.9%)도 안 된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다.

확실히 같은 통계를 단순 적용하기엔 미국과 한국야구는 현실적인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발사 각도에 대한 눈높이, 스윙에 대한 개념을 다시 수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통계상으로 우리나라는 시속 145km의 타구 속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 타자가 10% 내외로 많지 않다. 메이저리그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 속도에서 가장 이상적인 각도는 10도 내외라는 통계가 나와 있다. 그렇기에 나 역시 발사 각도 10도인 스윙을 하는 것이다.

10도 스윙?

잠실구장을 홈으로 쓴다고 가정할 때 타구 속도를 시속 160km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퍼스윙을 해도 된다. 하지만, 그게 아닌 경우라면 오히려 각도를 낮추는 게 좋은 결과를 낸다는 걸 경험적으로 느꼈다. 지금은 통계적으로도 나온 결론이다. 올려치는 발사 각도 25도 정도의 스윙으로 쳤을 때 잠실구장 펜스 앞에서 잡히는 타구가 많다는 걸 보면서, 난 어느덧 발사각도 10도 내외를 유지하는 타자가 됐다.

개인적으로 홈런 욕심은 없나. 홈런을 16개 추가하면 KBO리그 최초의 '200홈런-300도루' 기록자가 된다.

홈런 욕심은 전혀 없다. 장타를 많이 치는 것보다 확률적으로 내가 팀에 보탬이 되려면 ‘최대한 많이 출루하는 게 우선’이다.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장타가 나오지 않아 고심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디면.

반대로 내가 못하기 때문에 팀 후배들에겐 오히려 ‘공을 띄우라’라는 얘길 많이 한다. 타구 속도나 스윙 메커니즘적으로도 그게 가능한 타자가 몇 명 보이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걸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다.

박용택 “3,000안타 목표는 나 스스로에게 하는 채찍질”

박용택은 3,000안타를 목표로 오늘도 어제와 같은 질량의 땀을 흘린다(사진=조문기 작가)
박용택은 3,000안타를 목표로 오늘도 어제와 같은 질량의 땀을 흘린다(사진=조문기 작가)

그렇다면 박용택 스윙의 핵심은 무엇인가.

공을 치는 면적이 넓다는 게 최대 장점이 아닐까 싶다.

면적이 넓다?

‘타이밍이 늦거나 빨라도 어떻게든 공을 맞힐 수 있고, 대처할 방법이 많다’라고 설명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래선지 '박용택은 타구 방향이나 타구 속도가 천차만별'이란 평이 많다.

보통 유형이 정해진 타자들은 공이 어느 코스로 오느냐에 따라 타구 방향도 비슷하게 결정된다. 하지만 난 똑같은 상황이라도 칠 때마다 다른 방법으로 치기 때문에 결과가 잘 예측되지 않는 편이다.

올 시즌 초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진 영향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리그 경향이 타고-투저였을 때나 투고-타저였을 때나 변함없이 꾸준히 타율 3할을 유지하고 있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란 생각이다.

올 시즌을 타율 3할로 마치면 KBO리그 역대 3번째 '9년 연속 타율 3할'이란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러면 정말 뿌듯할 것 같다. '역대 최고의 교타자'로 불리는 양준혁, 장성호 선배와 함께 이름이 올라가는 것 아닌가. 어릴 땐 타율 3할을 한번 쳐보고 싶어서 그렇게 애를 썼는데(웃음). 어느새 9년 연속 도전이라니...(아련한 표정으로) 감회가 남다르다.

양준혁이 기록한 2,318안타가 ‘불멸의 기록’으로 불린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 많은 야구인은 "박용택이 양준혁의 기록을 깰 게 분명하다"고 말하고 있다.

5년 전부터 통산 최다안타 기록을 의식했다. ‘몸 관리만 잘하면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진심으로 양준혁 선배와 함께 이름이 거론되는 것만으로 영광이다. ‘양신’ 아니신가. 하하하.

(일동 폭소)

기록을 달성하면 이제 ‘택신’으로 불려야 하는 것 아닌가.

(손사래를 치면서) 아니다.

또 다른 목표인 3,000안타를 해낸다면 충분히 그런 말을 들을만 하다.

글쎄? 사실 그건 일부러 언급한 목표고.

일부러?

남이 들었으면 해서 했던 말이었다. 일종의 선언이었다. 동시에 나 자신에게 건넨 다짐이기도 했고. 대기록을 달성했거나, 어느 시점이 되면 목표의식이 떨어지는 이들을 적지 않게 봤다. 긴장감이 떨어지거나 야구에 대한 재미가 없어지지 않기 위해서, 나에게 ‘정신 차리라’고 했던 얘기다. ‘끝이 아니다’라고 스스로 주입하는 것일 수도 있었고.

KBO리그에서도 통산 3,000안타와 1만 타석을 기록한 타자를 꼭 보고 싶은 게 많은 야구팬의 바람이다.

나도 그런 선수가 1명쯤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웃음). 몸 관리가 첫 번째지만, 한국에선 나이 들고서 야구를 오래 하려면 여러 가지를 잘해야 한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야구 인생의 끝은 반드시 LG 우승이어야만 한다.”

박용택의 꿈은 일관된 꿈은 하나다. LG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다(사진=조문기 작가)
박용택의 꿈은 일관된 꿈은 하나다. LG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다(사진=조문기 작가)

'꾸준하다'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동시에 ‘2인자’라는 느낌도 있다.

2인자만 되도 훌륭하죠(웃음). 그렇게만 생각해주셔도 감사할 따름이다. 만약 내가 계속 우승하는 팀에 있었다면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팀 승리를 많이 견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난 '2인자'라는 평가조차 과분하다는 생각이다.

너무 냉정한 자기비판 아닌가.

(진지한 표정으로) 아니다. ‘많이 이기는 팀의 뛰어난 선수’가 최고 선수다. 약팀에서 뛴 개인 성적이 좋은 선수는 훗날엔 평가를 받을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지금 올스타전 투표 현황을 보라. LG 선수들 득표수가 좋지 않다는 것에 대해 우리 선수단 전체가 반성해야 한다.

조금 다른 생각이다. 박용택이 전성기일 때 LG가 강팀이었다면, 박용택이 다른 왕조를 이룬 팀에서 뛰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물론 그랬다면 더 편하게,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순 있었을 거다. 기록도 더 좋았을지 모른다. 솔직히 나 또한 정신적으로 정말 힘겨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내가 다른 팀에서 더 편하게, 더 좋은 평가를 받으며, 더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게 뛰었다면 'LG 박용택'으로 기억되지 않았을 것이다.

기회 될 때마다 "LG 한국시리즈 우승이 인생 최대 소망"이라고 말해왔다.

한 팀에서 20년 뛰었는데 우승하지 못하고 은퇴한다면 얼마나 속상하고 아쉽겠나. 특히 LG 팬들께서 얼마나 낙심하시겠나.

말이 나와 하는 소리다. LG 우승만큼이나 늘 하는 이야기가 팬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립서비스가 아니다. 사실이니까 그렇다. 팬들은 고마운 분들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프로야구 선수가 마찬가지일 거다. 한 팀에 오래 있다 보니 이제 내 주변인 가운데서도 나보다 더 LG를 사랑하는 이가 많아졌다. 팬들을 보면서도 ‘진짜 이렇게 LG가 좋을까?’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한편으론 감탄하기도 한다. 그런 분들을 보면 ‘정말 LG가 우승해서 함께 기쁨을 나누자'란 다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시즌 전 "LG 리빌딩은 올 시즌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는데.

(진지한 표정으로) ‘리빌딩이 다 됐다’라고 착각해선 절대 안 된다. 지금도 과정이다. 겨우 삽을 뜬 정도라고 봐야 한다. 2015년부터 리빌딩이 시작돼 10명 정도의 젊은 선수가 스타트를 끊었다. 그렇다면 이젠 한 명 정도는 독보적으로 치고 나와야 한다. 하지만, 지금 LG는 한 명의 젊은 선수가 앞서가다 뒤처지고, 다른 선수가 다시 앞서가는 식이다. 확실히 두각을 보이는 선수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 팀은 지금 성장하는 시기이고, 여전히 리빌딩 과정에 있다고 봐야 한다.

머릿속에 그리는 종착지가 있나.

물론이다.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LG 우승 견인과 함께 대기록도 세우고 은퇴한 선수’로 끝맺어야 해피엔딩이 아닐까 싶다. '고군분투'나 '비운의 주인공'은 재미 없다(웃음). 그래서 박용택의 야구 인생이나 드라마는 반드시 LG의 우승으로 끝나야 한다.

박용택은 인터뷰 내내 큰 소리로 밝게 웃었다. 지나온 야구 인생을 얘기할 땐 감정이 풍부해졌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으며 팬들의 사랑을 말할 땐 뭉클해했다. 그리고 야구 이론을 말할 땐 한없이 진지했다.

지금껏 프로야구엔 많은 슈퍼스타가 뛰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큰 사랑과 존경을 받는 '박용택' 같은 슈퍼스타는 많지 않았다. 우린 먼 훗날, 탁월한 성적과 그보다 탁월한 인성 그리고 그보다 더 탁월한 팀 사랑과 그보다 몇 배는 더 탁월한 야구 학습에 열중하는 선수를 이렇게 부를 것이다.

바로 '제2의 박용택'이라고.

김원익 기자 one2@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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