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 김명신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사진=엠스플뉴스).
두산 베어스 김명신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 타자의 빠른 직선타구를 맞는 것, 투수들에게는 생각하기 싫은 악몽이다. 그 부위가 얼굴이라면 그야말로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KBO리그엔 이런 경험을 하고도 불굴의 의지로 다시 마운드에 돌아온 선수들이 있다. 그들의 얘기에 엠스플뉴스가 귀를 기울였다.

삼성의 홈구장 라이온즈파크에선 여름이면 ‘호러쇼’를 펼친다. 경기장 곳곳에 ‘유령의 집’ 장식을 하고, 좀비와 귀신으로 분장한 댄스팀이 시구와 공연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자극적인 분장도 이보다 더 삼성 더그아웃을 소름과 식은땀으로 흥건하게 하진 못할 것이다. 바로 타자가 친 공이 투수를 향해 날아가는 순간이다.

올 시즌 삼성은 투수 쪽 직선타에 두 번 울었다. 3월 24일 잠실에서 열린 시범경기 두산 베어스 전에선 외국인 투수 앤서니 레나도가 류지혁의 타구에 오른 팔뚝을 맞고 교체됐다. 레나도는 두 달 뒤인 5월 24일이 돼서야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었다. 레나도가 다친 부위는 오른 팔뚝이 아니었다. 타구를 피하려다 허벅지 안쪽 가래톳을 다쳤다. 복귀 이후 5경기에서 레나도는 1승에 평균자책 5.56만을 기록하고 있다.

4월 19일엔 FA(자유계약선수) 영입한 우규민이 희생자가 됐다. 이번에도 상대 팀은 두산 베어스. 닉 에반스가 친 공이우규민의 오른 어깨를 강타했고, 우규민은 다음날(20일)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우규민은 열흘 뒤인 30일에 다시 1군 마운드에 올랐다. SK 상대로 4이닝 7실점, 다음 등판인 5월 7일 NC전에서도 4이닝 6실점을 기록했다.

레나도는 올 시즌 연봉 105만 달러를, 우규민은 7억 원을 받는다. 주력 선발투수 두 명을 직선타로 잃은 삼성은 시즌 첫 40경기에서 9승 2무 29패 승률 0.237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만약 투수 쪽을 향해 날아든 타구 두 개가 아니었다면, 올 시즌 삼성의 운명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지독하게 운 나쁜 사나이들

최상덕 코치(우측)가 현역 시절 SK 김성욱과 포즈를 취했다(사진=SK).
최상덕 코치(우측)가 현역 시절 SK 김성욱과 포즈를 취했다(사진=SK).

하지만 삼성이 입은 피해는 다음 사례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가벼운’ 편에 속한다. 투수 쪽을 향한 직선타가 말 그대로 ‘끔찍한’ 결과로 이어진 사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실화’ 몇 가지를 살펴보자.

-SK 와이번스 최상덕 투수코치는 태평양 돌핀스 시절인 1995년 6월 25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날 최 코치는 한화 이글스 장종훈의 타구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았다. “볼카운트가 0-2였습니다. 바깥쪽으로 하나 뺀다고 던진 게 높은 실투가 됐는데, 정통으로 맞아 제게 날아왔죠. 공을 던진 뒤 정신을 차려보니 공이 어느새 (손을 내밀며) 여기까지 와 있더군요.” 최 코치의 말이다.

“그 찰나의 순간에 든 생각은 ‘잡아야겠다’가 아닌 ‘피하자’였습니다. 고개를 반사적으로 휙 돌렸는데, 천만다행으로 입을 맞고 지나갔어요. 쓰러졌다가 눈을 떠 보니까, 제 눈앞에 빨간 것과 하얀 게 보이더군요. 빨간 건 제 피였고, 하얀 건 처음에는 뭔지 잘 몰랐는데, 입안에서 혀를 움직여 본 뒤에 그제야 이빨이 사라진 걸 알았죠. 그래요. 앞니 네 개가 박살 났습니다.”

최 코치가 새 치아와 함께 마운드에 다시 선 건 그해 가을. 하필 복귀전 상대 팀은 한화 이글스였다. “공에 맞은 해 복귀전을 치르긴 했지만, 다음 해 바로 트레이드되어 해태로 팀을 옮겼습니다. 트레이드 이후엔 팔 부상으로 재활 기간을 보냈구요. 공백기가 길어지다 보니, 타구에 맞은 후유증을 자연스레 털어버릴 수 있었죠.” 최 코치의 말이다.

끔찍한 사고 이후에도 김원형 코치의 '귀공자풍' 외모는 여전하다(사진=엠스플뉴스).
끔찍한 사고 이후에도 김원형 코치의 '귀공자풍' 외모는 여전하다(사진=엠스플뉴스).

-다음 타자, 아니 투수는 김원형 롯데 자이언츠 수석코치. 김 코치는 1999년 7월 11일 대전 한화 전에서 2회말 장종훈의 직선타에 얼굴을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맞다, 이번에도 타구를 날린 선수는 장종훈이었다. 바로 응급실로 향한 김 코치는 왼쪽 광대뼈에 금이 가고 코뼈가 내려앉는 중상을 입었다.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김 코치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맞는 순간,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요. 그냥 이대로 죽는 건가 싶었습니다.” 아마 경기장에서 그 순간을 지켜본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만약 요즘처럼 출구속도를 측정한다면, 분명 170km/h 가까운 스피드로 리그 최상위권에 올랐을 홈런왕 장종훈의 타구이니까.

“상처가 완전히 아물기까지 거의 1년이 걸렸습니다. 몸무게는 10kg 가까이 빠졌고, 기껏 만든 근육도 다 빠졌죠. 원래의 몸을 찾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타구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데는 거의 3년 이상 걸렸구요.” 김 코치가 말했다. “그 경기를 찍은 영상이 있지만, 절대 안 볼 겁니다.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이니까요.”

-정민철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최상덕, 김원형 코치의 불행을 한화 더그아웃에서 목격했다. “둘 다 제 눈앞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정말 끔찍했어요.”

얼굴은 아니지만, 정 위원도 직선타에 맞고 오랜 기간 병원 신세를 진 경험이 있다. “전 급소에 공을 맞았습니다. 신인 시절이었죠. 타구가 저를 향해 날아오는데, 마운드와 타석 사이 중간쯤에 있는 공을 본 기억이 마지막입니다. 그 이후엔 기절해서 생각이 나질 않네요.” 정 위원의 말이다. “정신을 차려 보니, 우리 구단 지정병원 간호사들이 절 내려보고 있더군요. 공에 맞은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김광삼 코치는 현재 LG 재활코치로 일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박동희 기자).
김광삼 코치는 현재 LG 재활코치로 일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박동희 기자).

-그래도 김원형, 최상덕 코치와 정민철 위원은 다시 경기장에 돌아왔고,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회복한 예에 속한다. 김광삼 LG 트윈스 육성군 재활코치는 2군 경기에서 타구에 머리를 맞았고, 이후 다시는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2016년 8월 28일, 퓨처스리그 삼성전에서 벌어진 일이다. 4회 1아웃까지 무실점 호투를 펼친 김 코치는 2.2이닝만 더 실점 없이 막으면 퓨처스 평균자책 1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벼락같은 타구가 머리로 날아왔다.

“공을 던졌는데 갑자기 귀에서 ‘퍽’하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순간 앞이 깜깜하더라고요. 전 제가 쓰러진 줄도 몰랐어요. 저도 모르게 ‘공 어딨어, 공 어딨어’ 외쳤다고 하더라고요.” 김 코치가 ‘엠스플뉴스’ 기자와 인터뷰에서 밝힌 사연이다.

병원 검진 결과는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 병원에선 후유장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마운드에 다시 서는 게 문제가 아니라, 건강한 일상생활을 걱정해야 할 만큼 심각한 부상이었다. 결국 김 코치는 그날 경기를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현재는 LG 재활코치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다.

투수 직선타의 가장 최신 버전, 김명신(사진=엠스플뉴스).
투수 직선타의 가장 최신 버전, 김명신(사진=엠스플뉴스).

-가장 최근의 사례는 두산 베어스 신인 우완투수 김명신이다. 4월 25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 전. 이날 데뷔 이후 두 번째 선발 등판 기회를 얻은 김명신은 1-0의 리드를 안고 1회말 마운드에 올랐다. 초반 투구 내용은 불안했다. 1번 이정후부터 4번 윤석민까지 네 타자 연속 안타를 맞고 1-1 동점을 내줬다.

5번 허정협의 좌익수 희생플라이로 2실점. 하지만 채태인을 좌익수 뜬공으로 처리해 1회 종료까지 아웃 하나만을 남겨뒀다. 여기서 사고가 터졌다. 7번 김민성에 던진 2구째가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직선타로 되돌아왔다. 피할 겨를도 없었다. 김명신의 얼굴을 강타한 공은 데굴데굴 굴러 1루수 쪽으로 향했다.

관중석 여기저기서 외마디 신음이 들렸다. 어떤 사람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마운드 곳곳에 핏방울이 튀었다. 타자주자 김민성조차 1루를 잊고 마운드 쪽으로 향할 정도였다.

곧바로 팀 트레이너가 뛰쳐나와 응급조치했고, 구급차가 경기장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자기 발로 일어나 움직인 김명신은 응급차에 탑승 뒤 구로 고대병원으로 이송됐다. CT 촬영 결과는 얼굴 좌측 광대 부분 세 군데 골절. 곧바로 수술할 수 없을 정도로 부기가 심했다.

투수 직선타, 오랜 후유증 남긴다

번개 같은 수비 동작으로 유명한 NC 에릭 해커. 물론 해커처럼 빠르게 수비 동작으로 전환할 수 있는 투수는 많지 않다(사진=엠스플뉴스).
번개 같은 수비 동작으로 유명한 NC 에릭 해커. 물론 해커처럼 빠르게 수비 동작으로 전환할 수 있는 투수는 많지 않다(사진=엠스플뉴스).

직선타에 얼굴을 얻어맞는 건 야구에서 나올 수 있는 최악의 경험이다. 투수와 타자를 모두 경험한 NC 다이노스 나성범은 “투수쪽 직선타가 타자 몸에 맞는 공보다 훨씬 무섭다”고 말한다. “투수는 보호장비도 없고 피할 수도 없잖아요. 훨씬 무섭죠.”

LG 헨리 소사가 던지는 160km/h짜리 공을, 포수 자리에서 아무 보호 장비 없이 얼굴로 받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후유증이 남는 건 당연한 일이다.

최상덕 투수코치는 “아마 제 과거 영상을 보면, 제가 공을 던진 뒤 바로 점프를 뛸 때가 있을 것”이라 했다. “공을 던진 직후에 ‘실투다’ 싶으면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수비부터 하려다 보니 나온 동작이죠. 다른 후유증이라면… 제 이후로 누군가 타구에 맞으면 제 이름이 함께 거론된다는 게 있겠네요. 프로야구에서 얼굴에 타구를 맞은 선수는 제가 처음이니까요.” 최 코치가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부가 된 앞니를 환히 드러내며 웃었다.

김원형 수석코치는 끔찍한 사고 이후 투구폼을 바꿨다. “와인드업으로 공을 못 던지겠더라구요. 전력으로 공을 던질 수도 없었습니다. 던진 뒤 바로 수비동작을 취하는데 신경을 집중해야 했으니까요. 전력투구를 할 수 없었고, 자연히 구위도 떨어졌죠. 바깥쪽 공을 던지다 그 일을 당했기 때문에, 바깥쪽 패스트볼 던지는 게 두려웠습니다.” 김 코치의 말이다.

얼굴에 공을 맞은 건 아니지만, 정민철 위원도 적잖은 후유증을 겪었다고 말한다. “그해 마운드에 돌아오긴 했지만, 구위는 예전만 못했습니다. 공을 던지자마자 바로 수비할 생각부터 했으니까요. 팔로스루를 끝까지 할 수 없었죠. 생각을 안 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게 쉽지가 않더군요.”

멀리 메이저리그에선 1990년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투수로 활약한 마크 윌슨이 대표적인 예다. ‘ESPN’에 따르면 윌슨은 사고 이전까지만 해도 150km/h대 강속구를 자랑하는 유망주 투수였다. 하지만 1994년 4월 4일 스프링캠프 경기에서 직선타에 입을 얻어맞은 뒤 모든 게 달라졌다.

근력이 떨어져 패스트볼 구속도 130km/h대로 내려앉았고, 투구동작을 완벽하게 끝마칠 수가 없어서 커브 구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타구가 투수 쪽으로 날아올 땐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결국, 윌슨은 1996년 팀에서 방출된 뒤 바로 은퇴했다. “제 악몽은 항상 야구공에 이빨을 맞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그 악몽이 현실이 됐죠.” 윌슨이 ‘ ESPN’에 전한 말이다.

투수의 직선타 악몽, 막을 방법 없나

삼성 레나도는 아직 영입 이전 기대한 구위를 찾지 못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삼성 레나도는 아직 영입 이전 기대한 구위를 찾지 못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투수 쪽 직선타의 악몽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이론적으로 투수는 일단 공을 던지고 나면, 타구가 어디로 날아올지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정면으로 날아오는 타구를 조금이나마 줄일 방법은 있다. 바깥쪽 투구보다는 타자 몸쪽 공을 던지는 게 방법이다.

김상엽 NC C팀 투수코치는 “투수가 몸쪽 공을 던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지적한다. “인코너 공을 던지면, 타자들이 마음껏 달려들지 못합니다. 몸쪽으로 붙이면, 투수 쪽 강한 타구가 좀처럼 날아오지 않습니다. 반면 바깥쪽 공을 던지면 내 쪽을 향해 타구가 날아올 가능성이 커지죠. 특히 슬라이더 같은 구종을 바깥으로 던졌다가 정타가 되면 대부분 투수 쪽으로 돌아옵니다.” 김 코치의 말이다.

정민철 위원도 같은 생각이다. 정 위원은 “바깥쪽으로 던지는 변화구가 투수 쪽 강한 타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나도 공을 맞은 그해엔 바깥쪽 공은 좀처럼 던지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원형 코치도 “바깥쪽 공이 투수 쪽으로 날아올 확률이 높다”며 “한동안 바깥으로 던지는 게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최상덕 투수코치도 “바깥쪽 실투가 화근이 됐다”며 “좋은 공을 던지는 게 방법”이라 했다. 최 코치는 ‘사고’ 후 복귀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복귀전 상대 팀도 한화였습니다. 포수는 김동기 선배였어요. 그런데 김 선배가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몸쪽 사인만 내더라구요. 속으로 ‘왜 몸쪽 공만 요구하지? 내가 맞았으니까 너희들도 한번 맞아봐라, 이런 뜻인가?’ 생각했죠. 나중에야 알았죠. 몸쪽 공을 던져야 직선타를 줄일 수 있단 걸 알고서 그렇게 사인을 냈다는 걸.”

다른 하나는 안정적인 투구 밸런스로 공을 던지고, 던진 뒤에는 빠르게 수비 동작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kt 위즈 김진욱 감독은 “투구 이후 중심이 무너지면 타구에 맞기가 쉽다”며 “왼 다리를 고정하고 수비자세를 만드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NC 지연규 불펜코치는 “현역 시절 한 번도 타구에 맞아본 적이 없다”며 “던지고 나면 바로 수비로 전환하는 투구폼 덕분이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문제는 투수가 모든 공을 던질 때마다 일관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점이다. 두산 김명신도 깔끔한 투구동작으로 이름난 선수지만, 사고 당시엔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은 탓에 날아오는 타구를 막지도 피하지도 못했다. 또 최근에는 공을 강하게 던지려는 투수가 많다 보니, 투구 후에 몸의 중심이 완전히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투구폼을 바꾸기는 쉽지 않잖아요.” 지연규 코치의 말이다. “강속구가 장점인 투수가 직선타를 안 맞으려고 투구폼을 바꾼다?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NC는 투구폼 수정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았다. “우리 팀 투수들은 말랑말랑한 공으로 수비 연습을 합니다.” 지 코치의 말이다. “공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차원도 있고, 타구에 빠르게 반응하는 훈련의 의미도 있죠.”

지 코치는 야구계 일각에서 거론되는 투수의 ‘헤드기어’ 착용에는 부정적인 견해다. “투수가 머리에 뭔가를 쓰고 투구하긴 쉽지 않을 겁니다. 투수는 투구할 때 머리가 움직이잖아요. 모자 외에 무게가 더해지면, 공을 던지는 데 어려움이 생길 것 같아요. 모자에 패드를 부착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투수들은 예민하잖아요. 거추장스럽게 여길 거에요.” 지 코치의 생각이다.

최상덕 코치도 “습관이 되면 모를까, 이미 오랫동안 활동한 선수들은 거부감을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을 밝혔다. 프로 레벨보다는 퓨처스리그, 아마추어 레벨에서 도입해 단계별로 적용하는 게 그나마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법이란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야구인은 조금 다른 견해를 밝혔다. “프로야구 36년 역사상 직선타에 얼굴을 맞은 투수는 다 합쳐서 4명뿐입니다. 확률적으로 거의 가능성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투수가 공에 맞는 건 끔찍한 일이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거의 발생하지 않는 상황을 대비하려고 모든 투수에게 보호장비를 씌운다는 건 넌센스죠. 현실화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분명한 건, 타구에 맞은 투수들 대부분은 끔찍한 경험을 극복했고 다시 마운드에 섰다는 점이다. 최상덕 코치는 사고 이후에도 14년간 프로에서 활약하며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그는 직선타에 맞은 경험을 이야기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 보였다. 김원형 코치 역시 사고 이후 11년간 마운드에서 던졌고, 마흔을 넘긴 지금도 귀공자풍 외모를 자랑한다.

두산 김명신도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중이다. 6월 11일 처음으로 30구의 불펜 피칭을 소화했고, 빠르게 페이스를 끌어 올려 이젠 전력 투구를 할 수 있는 단계가 됐다. 두산은 김명신이 이르면 올스타전 이전에 마운드에 돌아올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김명신도 한동안 바깥쪽 공을 꺼리거나, 타구가 날아오면 흠칫 놀라는 후유증을 겪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제 모습을 찾을 것이며, 다시 예전처럼 깔끔한 투구폼과 완벽한 제구로 ‘제2의 유희관’다운 피칭을 선보일 것이다.

공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는 경험을 하고도 다시 공 앞에 설 수 있다는 것. 이게 야구 선수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점이며, 그들의 용기와 강인함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것만으로도 야구 선수들은 수만 관중의 환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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