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 경기-2천 안타'에 성공한 이진영(사진=kt)
'2천 경기-2천 안타'에 성공한 이진영(사진=kt)

[엠스플뉴스]

| 6월 16일 kt 위즈 외야수 이진영이 '2천 경기-2천 안타'에 성공했다. KBO리그 통산 5번째 대기록 달성이었다. 특히나 2천 안타는 KBO리그에서 10명, 2천 경기 출전은 9명만이 달성한 기록이라, 더 의미가 깊었다.

쉽지 않은 길이었다. 늘 경쟁의 맨 앞자리에 섰고, 한국야구를 끌어가는 역할을 맡았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국민 우익수'다.

젊은 시절 이진영은 '외야의 지배자'였다. 그가 생각지도 못한 거리를 달려와 멋진 다이빙캐치로 타구를 잡아내는 장면을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6월 21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기자는 '외야의 지배자'에서 이젠 '현역 레전드'가 된 이진영을 만났다. 16일 '2천 경기-2천 안타'를 달성하며 대기록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든 까닭인지 이진영은 한결 편안하게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이진영은 기자와의 인터뷰 내내 여유를 잃지 않았다. 타격에 관한 질문엔 단호하게, 야구 인생을 묻는 말엔 과감하게 답했다. 무엇보다 막내 구단 kt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프로 데뷔 19년차 '현역 레전드' 이진영과의 풀 인터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진영 “2천 경기 출전-2천 안타 달성은 내 야구 인생의 또 다른 시작”

'2천 경기-2천 안타' 달성 후 한화 이글스 정근우와 인사 나누는 이진영(사진=kt)
'2천 경기-2천 안타' 달성 후 한화 이글스 정근우와 인사 나누는 이진영(사진=kt)

‘2천 경기 출전-2천 안타’에 성공했다. KBO리그에선 통산 5번째 기록이다.

(담담한 표정으로) 모든 팬에게 감사드린다. 늘 지켜봐 주신 덕분이다.

대기록을 달성한 날 4안타를 쳤다. 그 가운데 2루타를 3개나 기록하며 ‘한 경기 최다 2루타’ 기록마저 갈아치울 기세였다. 한마디로 타석에서 뭔가 되는 날이었다.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웃음). 그저 2천 번째 경기 출전에서 꼭 2천 안타를 기록하고 싶었다. 김진욱 감독님의 배려로 두 기록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다. 그간 많은 팬이 기록 달성을 응원해 주셨다. 그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기록 욕심 없기'로 소문난 선수 아니었나.

그렇다. 원래 기록은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현역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 아예 개인 기록을 챙기지 않았다. 선수가 개인 기록에 집착하다 보면 팀엔 마이너스일 경우가 많다.

하지만, ‘2천 경기-2천 안타’만큼은 직접 챙겼다고 들었다.

(쑥스럽게 웃으며) 2천 안타 달성은 나 자신에게 정말 칭찬해주고 싶은 기록이다. 이 기록은 내 야구 인생이 끝난 후에도 큰 자랑거리가 될 것 같다.

그 정도로 큰 의미인가.

야구를 시작한 뒤로 2천 경기, 2천 안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비가 있었다. 그런 고비를 모두 이겨내고 이룬 기록이라 더 특별하다. 그렇다고 이 기록이 내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뜻하는 건 아니다. 내 야구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은퇴하는 순간까지 앞선 선배들의 기록을 따라잡는데 힘쓰겠다.

6월 16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대기록을 달성한 날. 공교롭게 이 경기에선 또 다른 대기록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화 외국인 타자 윌린 로사리오가 4연타석 홈런을 기록했고, 배영수가 2천 이닝을 달성했다. 예상했던 시나리오는 아니었을 듯싶다(웃음).

야구가 그래서 참 재밌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니까. 당연히 좋은 기록을 세웠을 때,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좋겠지만(웃음). 그날 주인공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이진영의 이중생활, ‘아빠’ 그리고 ‘국민 우익수’


이젠 kt의 중심이 된 '국민 우익수' 이진영(사진=kt)
이젠 kt의 중심이 된 '국민 우익수' 이진영(사진=kt)

대기록을 작성한 날, 가족이 구장에서 이 장면을 지켜봤다.

그렇다. 가족이 내겐 가장 큰 힘이다. 그날 가족이 구장에 있었다. 다만, 경기가 너무 늦게 끝나 아이들이 모두 잠들어 있었다(웃음).

아이들이 아빠의 대기록을 축하해주던가.

아직 아이들이 어려 야구를 잘 모른다. 큰딸은 아빠가 기록을 세웠다고 하니 마냥 좋아하더라(웃음).

‘야구 선수 아빠’. 상상만 해도 멋져 보인다.

(흐뭇하게 웃으며) 보통 아빠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야구 선수를 아빠로 두면 아이들만 고생한다. 물론 내가 잘하면 아이들에겐 나쁠 게 없다. 아주 가끔이지만, 그런 게 신경 쓰이기도 한다.

지금은 한 가정의 ‘가장’이지만, 한땐 한국 야구를 대표했던 ‘국민 우익수’였다. 이진영의 야구인생은 언제나 야구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국민 우익수라, 참 오랜만에 듣는 말이다(웃음). 솔직히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말이다.

'국민 우익수'란 별명을 듣기 시작한 건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부터였다.

당시 26살이었다.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고,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뛴다는 것만으로 내겐 큰 영광이었던 시절이었다. 제1회 WBC에선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열심히 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당시 얻게 된 '국민 우익수'란 별명이 내 야구 인생을 180도 바꿔놨다.

국민 우익수가 이진영 야구 인생을 완전히 바꿔놨다는 말인데.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국민 우익수’란 이름에 금이 갈까 봐 더 열심히 했다. 어떻게 하면 '야구를 좀 더 잘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많았다. 요즘도 수비수로 경기에 나서면 팬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플레이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kt맨 이진영, "kt 발전 위해 온 힘 다할 것"

팀 내 최고 선임 선수가 된 '베테랑 타자' 이진영(사진=엠스플뉴스)
팀 내 최고 선임 선수가 된 '베테랑 타자' 이진영(사진=엠스플뉴스)

kt 팀 내 최고 선임이다. 혼자만 생각할 순 없는 위치다. 한편으론 젊은 선수들과 치열한 주전 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고.

내 야구 인생은 언제나 ‘경쟁’이었다. 신인 때부터 지금까지 늘 그랬다. 다행히 운 좋게 늘 이겨왔다. 아직 경쟁이 끝난 게 아니다. 지금은 kt 후배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있다면?

요즘은 예전처럼 긴장하거나 부담을 느끼기보단 기분이 정말 좋다는 것이다.

기분이 좋다?

요즘 후배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내 노하우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내가 몰랐던 걸 후배들로부터 배우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그게 kt에서의 내 역할이다. 요즘은 후배들이 성장하는 걸 보는 재미로 산다(웃음). 팀 성적이 좋지 않아 걱정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즐겁고, 재미있게 야구하자고 후배들에게 이야기한다.

야구나 인생이나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도 있게 마련 아닌가.

물론이다. 가끔 후배들의 ‘자신감 없는 표정’과 ‘주눅 든 뒷모습’을 볼 때면 선배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실패가 있어야 성공도 있는 법임을 알았으면 한다. 후배들이 실패 속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런 변화와 노력 때문인지 kt의 시즌 출발이 나쁘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야구는 한 명만 잘해선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이기면 모두가 잘해서 이기는 것이고, 지면 모두가 못 했기 때문에 지는 것이다. 그게 야구라고 생각한다. 올 시즌은 시즌 초반 잘 나가다가 중반부터 기세가 꺾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 시즌이 많이 남아있다. 다시 시작한단 마음으로 남은 경기 최선을 다하면 팀 순위도 오를 거다.

우여곡절 끝에 kt 유니폼을 계속 입게 됐다. 야구사 속으로 사라진 쌍방울 레이더스의 마지막 신인 선수이자 지금은 막내 구단 kt의 최고 선임으로서 하루하루 감회가 남다를 듯싶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내가 kt로 오게 된 건 어쩌면 운명일지 모른다. 내 마지막 현역 생활도 이곳에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kt가 더 발전하고, 강팀으로 성장하는 데 온 힘을 다할 생각이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후배들이 더 성장해 kt를 강팀으로 만든 장면을 꼭 보고 싶다. 거기에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베테랑' 이진영이 2017시즌 살아남는 방법

'국민 우익수' 이진영은 지금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국민 우익수' 이진영은 지금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타석 자세가 예전과 비교해 훨씬 간결해졌다.

여태껏 장타보다 정확도를 선호했다. 타석에 서면 어떻게든 살아나가자는 게 내 타격 스타일이다.

베테랑 이진영이 프로 19년째를 살아가는 방법인가.

매 순간 더 좋아지기 위해 노력한다. 타격도 마찬가지다. 더 좋은 방법을 찾고 있지만, 그게 쉽지 않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 메이저리그에 가 있지 않을까 싶다(웃음). 시즌 초반엔 달라진 스트라이크 존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젊은 시절 이진영과 지금의 이진영, 어떤 점이 달라졌나고 보나.

생각의 차이다. 젊은 시절엔 가진 '재능'만 믿고 덤벼들었다. 쌍방울 시절부터 엄청난 훈련량을 바탕으로, 야구에만 매달렸다. 그게 내 젊은 시절의 야구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단순하게 야구를 했다는 것이다. 그땐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스트레칭이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지금 같은 과학적인 훈련법을 알았다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큰 부상 한 번 당하지 않고 지금까지 왔다.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덕분이 아닐까 싶다.

(손사래를 치며) 큰 부상은 없었지만, 잔 부상이 많았다. 팬들에게 '유리몸'이란 소릴 들었으니(웃음).

'유리몸'이란 소릴 들을 때마다 어떤 감정이 들었나.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위축되거나 대충 플레이하지 않으려고 더 노력했다.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프로 야구 선수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부상은 언제 어디서든 찾아온다. 타석에 서 있는데 150km/h짜리 광속구가 날아와 골절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고. 특히나.

특히나?

부상이 무서워 내 플레이를 하지 못한다면 그건 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19년간 최선을 다했다. 수비 시 다이빙캐치 하나, 슬라이딩할 때 한걸음이 승부를 뒤바꿀 수 있단 생각으로 달려들었다. 승부는 언제나 생각치 못한 순간에 갈리는 것이니까.

이진영 "프로 데뷔 이후 단 한 순간도 편한 날이 없었다."

이진영의 배트는 아직 식지 않았다(사진=엠스플뉴스)
이진영의 배트는 아직 식지 않았다(사진=엠스플뉴스)

지난 시즌 종료 후, kt와의 FA(자유계약선수) 협상 과정에서 다소 진통을 겪었다.

다 지난 일이다.


재계약을 환영하는 팬이 많았던 만큼 협상 과정을 두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팬도 없지 않았다.

못했을 비난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팬은 잘하면 잘하는 만큼, 못하면 못하는 만큼 사랑과 질책을 동시에 보내는 분들이다. 날 비판하는 분들에 대해 기분 나빠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그분들의사랑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베테랑이 왜 베테랑이겠나. 그만큼 팬들과 오랜 시간 함께 해왔단 증거 아니겠나. 팬으로서 좋아하던 선수가 갑자기 못하면 더 아쉽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 은퇴한 '적토마' 이병규와 친한 사이인 것으로 안다. 은퇴를 향해 걸어가는 지금. 먼저 은퇴한 이병규가 은퇴와 관련해 어떤 조언을 들려주지 않았을까 싶은데.

막상 사석에서 만나면 야구 이야기는 피한다. 야구 이야기하면 사실 서로 스트레스다(웃음). 자주는 아니지만, (이)병규 형이 가끔 뼈있는 말을 하곤 한다.

어떤 말인가.

"야구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라. 그라운드를 내려오면 아무것도 없다. 순간 순간에 감사하라"고.

정말 오랫동안 야구선수로 살았다. 지금까지 거쳤던 수많은 경쟁은 이진영에겐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프로 데뷔 이후론 단 한 순간도 편했던 적이 없다. 신인 땐 선배들과, 어느 정도 경력이 찼을 땐 또다시 후배들과, 현역 생활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은 어린 선수들과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게 프로 야구 선수의 숙명인 걸. 조금만 방심해도 날 대체할 선수들이 내 자리를 넘보는 게 야구다. 내 경우엔 그런 경쟁에 집중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야구를 계속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결과, KBO사의 한 페이지에 '이진영'이란 이름을 올리게 됐다.


누군가 야구선수 이진영을 '참 열심히 했던 선수'라고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내 바람이 그게 전부다.

요즘 타석에 서면 무슨 생각이 드나.

2천 경기, 2천 안타 이후엔 머릿 속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젠 천천히 앞선 기록들을 쫓아갈 계획이다. 물론 그 전에 팀을 이길 수 있게 만드는 게 내 목표다. 올 시즌 남은 기간 동안 팀 동료들과 함께 달라진 kt를 보여주고 싶은 게 내 최우선 목표다.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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