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석 아래 떨어져 있는 담배 꽁초들. 사직구장엔 흡연석이 따로 설치돼 있으나 일부 관중은 주변 관중을 아랑곳하지 않고 좌석에서 담배를 피운다.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일부 몰지각한 관중의 낮은 관전 의식과 함께 롯데 구단의 안전 불감증 때문이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관중석 아래 떨어져 있는 담배 꽁초들. 사직구장엔 흡연석이 따로 설치돼 있으나 일부 관중은 주변 관중을 아랑곳하지 않고 좌석에서 담배를 피운다.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일부 몰지각한 관중의 낮은 관전 의식과 함께 롯데 구단의 안전 불감증 때문이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엠스플뉴스=사직]

팀 상승세와 반대로 가는 롯데 프런트의 안전 불감증. 주말마다 2만 명이 넘게 찾는 부산 팬들의 안전은 누가 보장할까. 사직구장의 열악한 안전 실태를 엠스플뉴스가 현장 취재했다.

6월 2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LG 트윈스의 경기. 이날 양 팀의 승부는 역전과 재역전을 거듭하다 자정이 넘어서야 끝났다. 이날 경기 시간은 총 5시간 38분. KBO리그 역대 6번째 ‘무박 2일’ 경기였다.

경기는 롯데의 11대 10 대역전승으로 끝났다. 최근의 팀 상승세를 이어가려는 롯데 선수들의 분전에 부산 팬들은 아낌없는 응원으로 함께 했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온 힘을 다하고 있을 무렵. 관중석에선 선수들의 노력에 반하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사라진 안전 요원, 그들은 어디에 있었나.

텅 빈 구장 출입 게이트(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텅 빈 구장 출입 게이트(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은 9회 시작과 함께 벌어졌다. 내야 상단석 주변에 있던 안전요원들이 9회가 시작하자 모두 사라진 것이었다. 안전요원들이 사라지자 그 주변은 순간 전쟁터로 변했다.

한 관중은 술에 잔뜩 취해 관중들이 이동하는 통로 한복판에서 ‘춤판’을 벌였고, 또 한 관중은 만취한 상태에서 파울볼을 잡으려고 내야 상단석 부근을 이리저리 맴돌았다. 이 관중은 파울볼을 잡지 못할 시엔 알아듣지 못할 욕설을 내뱉었는데,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구장 기물을 상대로 화풀이를 했다.

특히나 이들은 여러 명이 무리를 이루고 앉아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주변엔 앉아있던 가족 단위 관중이나 어린 야구팬들은 이들의 소란에 자릴 옮겨야만 했다.

통로를 가득 메운 취객들을 피해 자리를 이동하는 가족 단위 관중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통로를 가득 메운 취객들을 피해 자리를 이동하는 가족 단위 관중(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현장 주변에서 만난 구장 안전요원은 “9회가 되면 내야 상단석에 있던 안전요원들이 원정팀 선수들 통로쪽으로 이동한다. 이유는 사인과 사진 촬영을 요구하는 팬들 사이에서 선수들의 안전한 퇴장을 돕기 위해서”라며 "경기가 끝났는데 굳이 안전요원들이 관중석에 있을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이날 경기는 연장 12회까지 진행됐다. 9회 이후에도 경기가 계속 진행됐다는 뜻이다. 경기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안전요원들이 선수들의 퇴장을 돕기 위해 9회 시작과 함께 근무지를 이동했다는 건 그래서 납득하기 어려운 발언이었다.

한 술 더 떠 '원정팀 선수들의 이동을 돕기 위해 관중석에서 벗어났다던' 안전요원들은 이후 그 어디에서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안전요원들이 모두 빠져나간 관중석은 취객들의 활극 무대가 돼버렸다.

롯데 안전요원 관리 담당자는 “노동법에 따라 비정규직 안전 요원들은 오후 10시 30분 이전 퇴근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아마 안전요원들 퇴근과 기타 지역 인원 배치에 혼선이 생긴 것 같다”며 “구장 내 안전요원은 관중수를 고려해 배치한다. 경기 중 관중수가 줄면 안전인원 배정을 다시 할 수 있다. 오늘(27일) 경기 역시 연장에 들어가면서 관중수가 줄었다. 그래서 추가 인원을 배치하지 않은 것”이라고 답변했다.

구장 안전에 불안감을 느낀 한 관객은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구장 안전에 불안감을 느낀 한 관객은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그러니까 한마디로 '안전요원들은 원정팀 선수들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관중석을 벗어나간 게 아니라 퇴근을 하려고 관중석을 빠져나온 것'이었다.

수도권 구단의 보안 담당자는 "경기가 연장에 들어가면 관중수는 줄어들지 모르나, 구장 내 위험도는 훨씬 커진다. 실제로 구장 내 안전 사고 가운데 상당수가 모두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연장전에 발생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안전요원을 늘리거나 줄인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경기는 뒤로 갈수록 격해지게 마련이다. 신경 써야 할 일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경기 후반부로 갈수록 안전인원을 늘리면 늘렸지, 줄인다? 내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이날 경기가 접전 양상을 띠자 관중석 분위기도 과열됐다. 홈팀과 원정팀 팬들은 서로 욕설을 주고받았고, 폭력 사태로 이어질 뻔한 상황 역시 목격됐다. 그런데도 안전요원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지방 구단의 보안 담당자 역시 "안전요원 재배치는 '연장전'이 기준이 아니다. 보통 구단 보안 담당자가 판단하는 안전요원 배치 기준은 '경기의 중요성'이다. 그래서 대개 구단은 처음부터 '이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혹시 과열 양상을 띨 만한 경기가 아닌지'를 판단해 안전요원수를 조정한다"며 "구장 안전요원은 각자 맡은 위치에서만 업무 협력이 이뤄진다. 혹시나 모를 상황을 신속하게 대비하기 위함”이란 말로 롯데의 설명에 고갤 갸웃했다.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는 사직구장. '안전 불감증의 사각지대'

사직구장 내에 붙은 금연 구역 안내문(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사직구장 내에 붙은 금연 구역 안내문(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직구장 곳곳엔 ‘야구장 전체가 금연구역으로 전 구역 흡연을 금지합니다’란 문구가 붙어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벌어진 내야 상단석 바닥엔 담배 꽁초가 수북했다. 술에 취한 관중이 계속해서 관중석에서 담배를 피웠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기가 진행 중인데도 담배를 피우는 관중이 여기저기서 목격됐다.

관중석 흡연은 간접흡연과 교육적 측면에서 주변 관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다. 특히나 담배 꽁초가 대형 화재의 주요 원인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도 사직구장 관중석에선 흡연이 아무렇지 않게 이뤄지고 있었다.

관중석 아래 떨어져 있는 담배 꽁초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관중석 아래 떨어져 있는 담배 꽁초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만취는 더 큰 문제였다. 잔뜩 취한 한 관중은 통로를 지나가던 어린아이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등 위험천만한 상황을 연출했다. 원정팀 응원단에게도 거친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같은 추태에도 구장 내 안전을 책임지는 있는 롯데 마케팅 담당자는 “홍보팀과 이야기하라”며 짜증스런 반응을 보였다. 재차 이 상황에 관해 묻자 “구체적인 상황은 나도 모른다. 좀 더 알아보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이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입장권 약관엔 ‘경기 및 타인에게 방해가 되는 행위(음주소란 및 폭력 행위, 욕설, 투척행위, 애완동물 동반, 현수막 내붙임, 상업적 행위 등)을 할 경우 퇴장 또는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명기돼 있다.

또한, KBO(한국야구위원회)는 'SAFE 캠페인'에 따라 1인당 1ℓ, 1병 이하로 주류 반입을 제한하고 있다. 구장에서 판매하는 주류 역시 1인당 4잔으로 제한한다. 7회 말 종료 이후엔 아예 술 판매가 불가하다.

하지만, 허술한 검사와 소홀한 안전 관리는 이를 휴짓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직구장에선 여전히 음주소란과 투척 행위, 생수통을 이용한 소주 반입이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

가을 야구를 노리는 롯데에 꼭 필요한 것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야구장은 가족이 함께 웃을 수 있는 곳이여야 한다(사진=엠스플뉴스)
야구장은 가족이 함께 웃을 수 있는 곳이여야 한다(사진=엠스플뉴스)

27일 사직구장 내야 상단석에 위치해 있던 안전요원은 고작 4명. 전문 안전요원은 없었고, 아르바이트를 위해 나온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겐 어떤 상황을 제지할 힘도, 권한도 없었다.

한 안전요원은 내야 상단석에서 벌어지는 각종 추태를 1회서부터 지켜봤지만, 단 한 번도 이를 제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늘 벌어지는 일' 쯤으로 보는 듯했다.

그렇다고 구단이 적극적으로 대처에 나선 것도 아니었다. 되레 롯데 마케팅 관계자는 “지금 이 시간에 전화해서 뭐하자 것이냐”며 언성을 높였다. 통화가 연결된 시간은 아직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인 시점이었다.

부산팬들은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롯데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자리를 지켰다. 야구사랑이 각별한 부산 팬들이다. 그들의 엄청난 성원을 받으며 프로야구 최고 인기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롯데다. 이젠 그에 걸맞는 안전 의식으로 소중한 팬들을 사고로 부터 지켜내야 한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부산팬들은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롯데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자리를 지켰다. 야구사랑이 각별한 부산 팬들이다. 그들의 엄청난 성원을 받으며 프로야구 최고 인기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롯데다. 이젠 그에 걸맞는 안전 의식으로 소중한 팬들을 사고로 부터 지켜내야 한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어린 시절부터 롯데를 좋아했다는 한 남성 팬은 “어릴 때부터 롯데 팬이었다. 사직구장과 집이 가까워 자주 찾다 보니 자연스레 팬이 됐다. 하지만, 요즘에도 사직구장에 오면 다른 구장보다 취객이 많고, 소란을 피우는 이가 많은 것 같아 실망스럽다. 아이와 함께 구장을 자주 찾는 편이었는데 최근엔 꺼려질 때가 많다. 그래선지 최근엔 부산보다 마산에 가서 야구를 자주 보는 편"이라며 "롯데 구단은 지금의 사직구장 분위기를 '풍류'나 '사직구장 특유의 문화' 정도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15일 사직구장에선 치어리더 성추행 사건이 벌어졌다. 한 40대 회사원이 공연을 마치고 이동하던 치어리더의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며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 관중은 경찰에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롯데 관계자는 “안전요원이 옆에 있었지만, 막을 수 없었던 사건”이라며 관중 성추행이 불가항력적이고도, 우발적인 사건이었음을 수 차례 반복해 강조했다. 심지어는 구장 내 안전 사고를 '천재지변'으로 표현하는 구단 직원도 있었다.

부정하고 싶지만, 이것이 바로 한국 최고 인기구단임을 자처하는 롯데의 현실이다.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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