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순 전 심판이 돈을 요구한 구단은 확인된 곳만 5구단, 횟수는 8차례에 이른다(그래픽=엠스플뉴스).
최규순 전 심판이 돈을 요구한 구단은 확인된 곳만 5구단, 횟수는 8차례에 이른다(그래픽=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덮는 게 능사는 아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도 답은 아니다. 지금 야구계에 필요한 건 프로야구가 바로 설 수 있도록 그간 누적돼온 적폐들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런 시도조자 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프로야구가 홍역을 앓는 것이다. 엠스플뉴스가 단독 입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최규순 사건'의 내부를 살펴봤다.

‘비리 심판’ 최규순의 금품 요구는 때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핑계도 교통사고 합의금부터 폭력 시비 합의금, 심지어는 부모님 치료비까지 다양했다. 엠스플뉴스가 최근 입수한 KBO 내부 문건에 따르면, 최규순은 총 5개 구단 전·현직 임원에게 8차례 이상 돈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엠스플뉴스는 지난해 8월 1일 이 문제를 최초 보도([탐사보도] '상습 도박' 심판, 구단에 돈 받고 승부조작 했나)한 뒤 ‘최규순 사건’을 장장 10개월에 걸쳐 탐사취재해 왔다. 5일엔 최규순이 돈을 요구한 구단이 두산과 넥센 포함 총 5개 구단에 이른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6일 기준 최규순과 금전거래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한 구단은 두산 베어스 한 팀 뿐이다. 넥센 히어로즈는 처음엔 두 차례 금전거래 사실을 자진 신고했다가, 약 6개월 뒤 자체 조사 후 ‘입금한 사실이 없음’을 KBO에 재통보했다.

KBO는 3월 28일 열린 상벌위원회에서 두산에는 ‘엄중경고’를 내렸고, 넥센은 ‘사실관계 불명확으로 심의 보류’ 처분했다. 그 외 구단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엠스플뉴스의 취재 결과 최규순은 두산, 넥센 외 다른 구단에도 금품을 요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구단엔 두 차례 이상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KBO는 그간 축소·은폐한 다른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런 사실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KBO, 8월 6일 10개 구단 상대 공문 발송

5개 구단 '금전 거래 제안받은 적 있다' 회신, 두산은 자진 신고

KBO가 2016년 8월 6일 10개 구단 상대로 보낸 공문(사진=엠스플뉴스).
KBO가 2016년 8월 6일 10개 구단 상대로 보낸 공문(사진=엠스플뉴스).

2016년 8월 1일, 엠스플뉴스 단독 보도로 최규순과 구단의 금전거래 사건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KBO는 8월 6일 KBO리그 10개 구단에 ‘각 구단 전·현직 임직원 포함 심판과의 금전 거래 조사결과’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KBO의 공문에 6개 구단은 10일에, 4개 구단은 11일에 답신을 보냈다. 이 가운데 1개 구단은 12일에 한 차례 다시 회신했다. 그리고 10개 구단 가운데 총 5개 구단이 ‘최규순으로부터 금품을 요구받은 사실이 있다’고 KBO에 보고했다.

이 가운데 요구를 받고, 실제로 돈을 줬다고 인정한 구단은 두산뿐이었다. 두산은 10일 김승영 당시 대표이사 명의로 보낸 회신에서 ‘경위서’를 통해 최규순과 대표이사 간의 금전거래 사실을 인정했다. 여기에 당시 최규순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까지 첨부했다.

넥센은 11일 회신에선 ‘자체 조사한 바, 현재까지는 당 구단의 전 현직 임직원과 심판 간의 금전거래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빠른 시일 내에 추가적인 조사를 하여 위와 같은 금전거래가 발견되는 경우, 지체없이 통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하루 뒤인 12일 다시 보낸 공문에서 ‘자체 조사한 바 당 구단의 전, 현직 임직원과 심판간의 금전거래가 파악되어 통보해 드립니다’라고 금전 거래 사실을 시인했다. 이에 올해 2월 28일, KBO 최영국 조사위원과 정금조 클린베이스볼 센터장이 넥센 구단 회의실을 방문해 조사를 벌였다.

이 자리에서 넥센은 ‘최규순에게 돈을 보내라고 한 사실은 있지만, 실제로 금전거래가 이뤄지진 않았다’고 해명했다. KBO는 이장석 대표이사와 넥센 구단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면담 조사를 벌인 뒤, 상벌위에서 ‘사실관계 불명확으로 심의 보류’ 판정을 내렸다.

"합의금 필요하니 300만원만..." 최규순의 레퍼토리

최규순 전 심판위원. 사진 제공처는 기사의 내용과 관계없음(사진=삼성).
최규순 전 심판위원. 사진 제공처는 기사의 내용과 관계없음(사진=삼성).

최규순은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 NC 다이노스에도 비슷한 수법으로 금품을 요구했다. 금품을 요구한 시기와 상대는 제각각이나, 수법은 대동소이했다. 합의금을 핑계로 ‘300만원’을 보내달라고 하는 게 최규순의 레퍼토리였다.

LG 트윈스는 지난해 8월 10일 KBO에 ‘최규순이 2011년 두 차례 금품을 요구한 바 있으나, 거절했다’는 요지의 공문을 보냈다.

첫 번째 요구는 2011년 6월 경. 최규순은 당시 LG 단장에게 ‘일반인과 시비가 붙어 합의가 필요하니 300만원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LG는 KBO에 보낸 답신에서 ‘당시 프로축구계가 승부조작 건이 이슈가 된 시기라 개인간의 금전거래도 남들의 오해를 살 수 있다라고 하여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요구는 불과 한 달 뒤인 2011년 7월에 있었다. 이때 최규순은 당시 LG 사장에게 동일한 내용으로 300만원 차용을 요구했다. 이에 LG 사장은 앞서 6월에 금품 요구를 단장과 이야기하라‘고 답변했다. 6월에 거절했던 인사는 이 요구도 거절했다. 두 차례 제의를 받았지만 두 번 모두 거절했단 게 LG의 답변이었다.

한편 한화 이글스는 2012년에 최규순의 금전 거래 제안을 받았다고 답변했다. 한화는 8월 11일 KBO에 보낸 답변에서 ‘2012년도(정확한 날짜 미정) 최규순 심판이 부모님 교통사고 치료비 명목으로 당시 고위 인사에게 300만원을 급하게 빌려달라고 요청을 했으나 거절했다’고 밝혔다. 최규순은 구단에 돈을 받아내기 위해 부모님까지 동원했지만, 한화의 설명에 따르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최규순은 갓 창단해 1군에 진입한 NC 상대로도 돈을 요구했다. NC가 8월 10일 KBO에 보낸 답변에 따르면, 최규순은 NC의 1군 진입 첫해인 2013년 10월경 NC 고위 관계자에 연락을 취했다.

당시 NC 관계자는 미국 애리조나에 있었고, 최규순은 국제전화를 걸어와 ‘교통사고가 있어 합의를 해야 한다’며 금품을 요구했다.

이에 NC 관계자는 ‘현재 미국 교육리그에 참가하기 위해 해외에 있다’고 답변했고, 그러자 최규순은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후 별도로 추가 전화나 접촉을 한 적이 전혀 없다’는 NC의 설명이다.

SK, 삼성, 롯데, kt, KIA "금전 거래 사실 없다" 회신

최규순의 현역 심판 시절 모습. 사진 제공처는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사진=엠스플뉴스).
최규순의 현역 심판 시절 모습. 사진 제공처는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사진=엠스플뉴스).

나머지 5개 구단(SK, 삼성, 롯데, kt, KIA)는 ‘금전 거래 사실이 없다’고 회신했다. 삼성 라이온즈는 2016년 8월 10일 보낸 공문에서 ‘리그 관계자 간 금전거래 여부: 금전거래 없음’이라고 간단하게 답변했다.

KIA 타이거즈도 10일자 공문을 통해 ‘당 구단의 전 현직 임직원과 심판 간의 금전 거래 여부에 대한 자체 조사를 실시한 결과 확인된 사실이 없음을 통보한다’고 회신했다.

롯데 자이언츠는 10일 공문을 통해 ‘당 구단은 전 현직 임직원과 심판위원 간의 금전거래에 관한 사례가 없음을 통보한다’고 답변을 보냈다. 2014년 창단한 kt 위즈는 10일자 공문에서 ‘당 구단의 전 현직 임직원과 KBO 심판 간의 금전 거래 여부를 내부 조사한 결과 해당 사항 없음을 회신드린다’고 답했다. 최규순은 2014년 1월에 KBO 심판직에서 물러났다.

SK 와이번스는 좀 더 분명한 의미의 회신을 보냈다. SK는 8월 10일자 공문을 통해 ‘당 구단은 전 현직 임직원 모두 리그 관계자 간 부적절한 행위가 일체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회신했다. 금전이 실제 오갔는지를 떠나 ‘부적절한 행위’ 자체가 전혀 없다고 강조한 것이다.

다만 ‘최규순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고 답한 5개 구단 모두 최규순에게 금전 거래 요구를 받은 사실이 있는지에 대해선 따로 명기하지 않았다.

KBO는 최규순과 두산의 금전 거래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폭로되기 전까지 철저히 숨겼다. 특히나 두산 김승영 전 대표이사가 2016년 8월 11일 KBO에 ‘최규순이 돈을 빌려달라고 해 300만 원을 빌려줬다’는 경위서를 썼음에도 KBO는 무슨 영문인지 2017년 3월 28일 KBO 상벌위가 열리기 전까지 이를 묻은 것으로 확인됐다.

만약 이때 KBO가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였다면 지금처럼 ‘심판-구단 돈거래 사태’는 눈덩이처럼 커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무려 5개 구단이 금전 거래 요구를 받았다고 보고했지만, KBO는 ‘거절했다’는 구단 측 증언만 믿고 조사를 끝냈다. KBO 조사위원의 방문 조사는 두산과 넥센 두 구단을 상대로만 이뤄졌다. 그나마 두산의 금전거래 사실도 공개하지 않고, 감추려다 언론 보도가 터진 뒤에야 마지못해 공개했다.

은폐와 회피로 일관하는 KBO의 행태에 결국 문화체육관광부가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문체부는 6일 프로야구심판 금전수수 및 사업 입찰비리 의혹과 관련, ‘KBO에 대한 검찰고발과 회계감사를 전격 실시한다’고 밝혔다.

여러 사실에 비춰볼 때 “KBO가 이 사건을 축소 또는 은폐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게 문체부의 입장이다. 이에 문체부는 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의뢰를 결정했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엠스플뉴스는 두산 외 최규순에 금품을 준 구단 관련 증거를 상당부분 확보한 상태로, 빠른 시일 내에 법률적 검토를 거쳐 실명 보도할 예정이다.

엠스플뉴스 탐사취재팀

박동희, 배지헌, 김원익, 전수은, 김근한, 강윤기, 손보련, 이동섭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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