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5회 이전에 물러나지 않는다(사진=엠스플뉴스).
이제는 5회 이전에 물러나지 않는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 NC 다이노스 선발진이 달라졌다. 후반기 시작과 함께 6경기 연속 선발투수가 5이닝을 채웠고, 승리투수가 됐다. 선발 안정을 이룬 NC는 8경기차였던 1위 KIA와 격차를 단숨에 4경기까지 좁혔다.

NC 다이노스가 ‘선발 야구’를 한다? 전반기 NC 경기를 눈여겨본 사람에게는 강한울이 홈런을 치거나, 이대호가 도루를 하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얘기일지 모른다.

실제 전반기 NC의 가장 큰 약점은 선발진이었다. 전반기 NC 선발투수의 경기당 평균 이닝은 4.57이닝으로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적었다. 한화 이글스도, kt 위즈 선발도 NC 선발진보단 마운드에서 긴 시간을 버텼다.

에이스 에릭 해커와 제프 맨쉽이 평균 5이닝 이상 버텨주긴 했지만, 내국인 선발투수들은 좀체 5회를 채우지 못했다. 심지어 최금강은 평균 3.69이닝, 이형범은 3.17이닝으로 4이닝 채우기도 버거웠다. 전반기 막판엔 맨쉽은 팔꿈치 통증으로, 해커는 목 통증으로 전열에서 이탈해 선발진의 기둥이 사라졌다.

선발이 오래 못 버티니 조기 강판은 일상이었다. 전반기 NC는 84경기 가운데 37경기에서 선발투수가 5회가 끝나기 전에 물러났다. 조기강판률은 0.440에 달했다. 선발이 일찍 물러난 경기에서 NC는 10승 27패라는 우울한 성적을 기록했다.

선발이 믿음을 주지 못하니 퀵후크도 많았다. 전반기 NC의 퀵후크는 29차례로 10개 팀 중 가장 많았다. NC 선발이 퀵후크될 확률은 0.345나 됐다. 선발을 퀵후크한 경기에서 17승 12패로 나쁘지 않은 승률을 기록했지만, 그만큼 불펜 투수들의 노동시간은 OECD 기준을 초과해 늘어만 갔다.

팀 승리에서 선발투수가 차지하는 비중도 적었다. 전반기 NC가 올린 승수는 48승. 이 가운데 선발투수가 거둔 승수는 31승으로 2/3도 되지 않았다. 대신 구원승이 17승에 달했다. 5회가 끝날 시점에 불펜투수가 마운드에 있는 확률이 워낙 높다 보니 생긴 결과다.

허약한 선발진과 대조적으로 NC는 막강한 불펜을 자랑한다. 이민호-원종현-김진성-임창민 등 ‘다른 팀 가면 마무리급’ 투수가 줄줄이 대기한다. 승리조 외에도 윤수호, 강윤구, 임정호 등 좋은 구위를 자랑하는 투수가 즐비하다.

하지만 144경기 시대엔 불펜야구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지난 시즌 우승을 차지한 두산 베어스도, 올 시즌 1위를 질주하는 KIA 타이거즈도 불펜보다는 선발진이 강한 팀이다. 선발진이 무너진 NC는 전반기를 KIA에 8게임차 뒤진 2위로 마감했다. KBO리그 역사상 2위팀이 전반기 1위와 8게임 이상 차이를 후반기에 뒤집은 사례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사실상 1위 싸움은 요단강을 건너 간 것처럼 보였다.

6경기 연속 선발 5이닝+, 6연속 선발승… NC 선발진의 변신

전반기, 너무도 익숙했던 장면(사진=엠스플뉴스).
전반기, 너무도 익숙했던 장면(사진=엠스플뉴스).

전반기 NC의 성적표는 뒤집어 생각해볼 여지도 있다. 전반기 NC는 선발 조기강판 경기에서 형편없는 승률을 기록했다. 반면 선발이 5회 이상 버틴 경기에선 38승 8패로 압도적인 승률을 올렸다.

또 전반기 NC는 5회까지 앞선 경기 승률 0.923을 기록했다. 역시 리그 1위다. 6회까지 앞선 경기도 0.951로 1위였다. 만약 선발투수가 5회까지만 버텨 준다면, 선발투수의 기본적인 임무만 완수해 준다면 NC는 훨씬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팀이란 얘기다.

후반기 시작과 함께 마침내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NC의 선발야구가 ‘실화’가 됐다. 이재학이 첫 테이프를 잘 끊었다. 후반기 첫 선발투수로 나선 이재학은 18일 청주 한화 이글스 전에 등판해 5이닝을 3실점으로 잘 막고 승리투수가 됐다. 2회 3실점해 잠시 조기강판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나머지 이닝을 잘 버텨 승리투수가 됐다. 김경문 감독도 주중 첫 경기와 후반기 첫 경기에서 조기 교체 대신 선발을 믿고 놔두는 쪽을 택했다. 그 판단이 적중했다.

이어 19일엔 부상에서 복귀한 맨쉽이 5이닝 3실점 투구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맨쉽은 팔꿈치 통증 여파로 구속이 다소 떨어진 상태에서도, 노련한 투구로 대량 실점을 피해갔다. NC는 경기 후반 한화의 홈런포 파상공세를 뿌리치고 13-9로 이겼다.

그리고 20일엔 '와일드씽' 장현식이 등판해 6이닝 2실점, 올 시즌 개인 2호 퀄리티 스타트를 작성했다. 전반기 150km/h 가까운 광속구를 타자가 도저히 칠 수 없는 곳을 향해 던지던 투구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스트라이크존을 향해 자신있게 자기 공을 뿌렸다. 불안했던 제구가 안정되면서 조금씩 선발투수로 자리를 잡아가는 장현식이다.

21일 SK 와이번스전 선발 에릭 해커는 다소 위태위태했다. 그다지 좋지 않은 컨디션에도 5회를 3실점으로 잘 마쳤지만, 6회에도 마운드에 올라왔다가 4타자 연속 안타를 맞고 추가 2실점했다. 최종 성적 5.1이닝 13피안타 5실점. 하지만 13안타로 10득점한 타선 지원과 불펜의 힘으로 끝까지 승리를 놓지 않았다.

22일엔 좌완 구창모가 오랜만에 마운드에 섰다. 7월 11일 KIA전 이후 열흘 휴식을 받은 구창모는 이날 SK 상대로 5이닝 4피안타 1볼넷 6탈삼진 무실점. 최고의 호투를 펼쳤다. 5회까지 투구수 79개로, 전반기 약점이던 투구수 관리에도 성공했다. 시즌 초반 난조를 극복하고, 이미 6월부터 선발투수로 안착한 구창모다. 코칭스태프도 추가 휴식일을 부여하는 등 스무살 투수의 어깨를 세삼하게 관리하고 있다. 후반기에도 좋은 투구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23일. SK에 강점이 있는 이재학이 등판해 5.1이닝을 1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후반기 시작과 함께 2연승하며 시즌 5승째. 5월 20일에야 시즌 첫 승을 올린 이재학이 뒤늦게 승수 쓸어담기에 나선 모습이다. 4년 연속 10승 투수 다운 저력이다. 전반기까지만 해도 절대 불가능해 보였던 ‘5년 연속 10승’이 이젠 조금씩 눈 앞에 보인다.

전반기에 너무나 자주 볼 수 있던 장면(사진=엠스플뉴스).
전반기에 너무나 자주 볼 수 있던 장면(사진=엠스플뉴스).

이재학-맨쉽-장현식-해커-구창모-이재학. 후반기 NC의 6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투수들이다. 6경기 연속 선발투수가 5이닝 이상을 던졌고, 6경기 연속 선발투수가 승리를 거뒀다. 아팠던 외국인 투수들은 돌아왔고, 불안했던 내국인 선발진이 안정을 찾았다. 전반기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 ‘실화’가 됐다.

NC 선발진의 안정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이번주 NC는 리그 하위권 팀인 삼성 라이온즈와 kt 위즈를 상대한다. 후반기 첫 선발 이재학 카드가 적중한 덕분에, NC는 이번주 하위권 팀 상대로 맨쉽을 두 차례 선발 기용할 수 있게 됐다. 외국인 에이스 듀오는 아무리 컨디션이 안 좋은 날도 5이닝은 채우는 투수들이다. 이재학도 이젠 완연히 제 페이스를 찾았다. 구창모-장현식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성장했다. 후반기 NC 선발진의 선전을 예상하는 이유다.

선발투수진이 안정을 찾은 NC는 후반기 시작과 함께 6연승, 1위 KIA와 승차를 4게임까지 좁혔다. 리그 최강 불펜에 스크럭스-박석민이 합체한 타선, 여기다 약점이던 선발투수진까지 안정되어 더 강한 추진력을 얻은 NC다. 싱겁게 끝난 줄만 알았던 1위 싸움도 NC 선발 안정과 함께 다시 재밌어졌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