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가 전직 심판 최규순 기사를 내려달라고 포털에 요구한 사실이 확인됐다(사진=엠스플뉴스).
KBO가 전직 심판 최규순 기사를 내려달라고 포털에 요구한 사실이 확인됐다(사진=엠스플뉴스).

‘구단-심판 돈거래’로 검찰 조사가 예정된 최규순 전 KBO 심판. KBO는 여전히 “최 전 심판 사건은 한 개인의 일탈에 불과하다"며 “최규순 사건을 은폐·축소할 의도가 없었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만약 최규순 사건이 개인의 일탈이고, 이 문제를 처음부터 축소·은폐할 의도가 없었다면 왜 KBO는 모 포털 사이트에 전활 걸어 “최규순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청한 것일까.

엠스플뉴스는 최근 KBO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이로부터 “KBO 홍보팀 관계자가 한 포털사이트에 전활 걸어 ‘최규순 기사를 야구면에서 내려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의 제보를 받았다.

이 제보자는 “KBO 요청을 모 포털사이트에서 순순히 받아들였는지 확인해야 하나, 전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최규순 기사가 포털 이용자들이 잘 볼 수 있는 기사면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재배치됐다”고 기억했다.

제보자의 증언 “KBO 홍보팀 관계자가 모 포털사이트에 전화 걸어 ‘최규순 기사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KBO가 모 포털사이트에 전화를 걸어 특정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논란이 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KBO가 모 포털사이트에 전화를 걸어 특정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청한 사실 역시 확인됐다(사진=엠스플뉴스).

제보자는 ‘최규순 기사’와 관련해 KBO 홍보팀 관계자가 모 포털사이트에 전화 건 시점을 “정확히 2016년 8월 6일 오후”라고 밝혔다.

“그때 모 언론사에서 KBO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기사를 썼다. ‘KBO가 상습도박으로 문제가 된 전직 심판의 부적절한 행위와 관련해 조사에 나선다’는 기사였다. 기사에 나온 ‘전직 심판’이 최규순이었다. KBO가 그간 침묵했던 최규순 사건과 관련해 보도자료를 통해 처음으로 입장을 밝힌 것이라, 꽤 폭발력 있는 기사였다. 하지만, KBO는 이를 숨기는 데만 급급했다.”

해당 기사가 모 포털사이트 스포츠면 야구 페이지에 처음으로 노출된 시간은 오후 4시 2분이었다. 이 포털사이트는 기사가 노출된 시간과 최종 수정된 시간을 따로 표시해두는데 ‘기사 입력 시간’과 기사 노출 시간엔 거의 차이가 없다.

해당 기사는 이 포털사이트 기준 7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리며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댓글은 ‘비위심판 문제에 미온적 반응을 보여온 KBO를 비판’하거나 ‘이참에 심판문제를 제대로 조사하자’는 성토 일색이었다.

특히나 많은 이가 KBO가 이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강한 의심을 하고 있었다. 3,500개가 넘는 ‘좋아요’ 공감을 받은 댓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댓글의 내용은 ‘이 기사 하나 띄우는 게 이렇게 오래 걸렸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KBO 홍보팀 관계자가 모 포털사이트에 전화를 한 건 사실일까. 만약 사실이라면 왜 KBO가 기사를 작성한 해당 언론사 대신 포털사이트에 전화한 것일까.

문체부 조사와 엠스플뉴스 재보도에 마지못해 ‘조만간 비위심판건을 조사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던 KBO

KBO 보도자료(사진=엠스플뉴스)
KBO 보도자료(사진=엠스플뉴스)

“KBO 홍보팀이 포털사이트에 전활 걸어 기사 관련 협조를 구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말이 기사협조지, 대부분은 KBO 비판 기사를 ‘메인에서 내려달라, 안 보이는 곳으로 재배치해달라’는 요구들이다. 이날도 KBO 홍보팀 관계자가 모 포털사이트에 전활 걸어 ‘협조’를 부탁했다. 하지만, 이때도 말이 협조지 ‘볼 사람은 다 봤으니, 기사 좀 안 보이는 곳으로 재배치해달라’는 요구였다.” 제보자의 증언이다.

엠스플뉴스는 이미 이와 같은 내용의 증언을 지난해 8월 다른 제보자에게서 확보한 바 있었다. 엠스플뉴스가 확보한 물적 증거와 내용은 비슷했다. KBO 홍보팀이 모 포털사이트에 전활 걸어 ‘기사를 메인에서 내려달라고 요청했다’는 증언이었다. 이 요청의 발단은 2016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 8월 1일 엠스플뉴스는 탐사보도를 통해 ['상습 도박' 심판, 구단에 돈 받고 승부조작 했나]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도박심판' 10년간 계좌로 검은돈 받았다]의 후속 기사를 보도했다.

당시 KBO는 엠스플뉴스 탐사보도가 나간 뒤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를 지시하자 마지못해 움직였고, 엠스플뉴스가 재보도를 결정하자 5일 엠스플뉴스에 “조만간 비위심판건을 조사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내겠다”고 알려왔다.

그리고 6일 ‘최근 언론을 통해 논란이 되고 있는 전직 심판의 부적절한 행위와 관련하여 철저한 진상조사를 실시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보도자료 배포 시점이 문제였다. KBO의 '진상 조사 약속'이 미덥지 못하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게 KBO가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뿌린 시간은 정확히 6일 토요일 오후 4시였다. 이날 프로야구 경기는 오후 6시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다. 경기가 시작하면 경기 관련 뉴스가 쏟아지기에 KBO 보도자료는 ‘경기 관련 기사’로 덮어질 게 분명했다.

한 구단의 홍보팀장은 “구단에서 보도자료를 낼 때 가장 신경 쓰는 게 배포 시간”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부정적 내용의 보도자료를 낼 땐 특히 ‘언제 내느냐’가 관건이다. 가능한 한 가장 적은 언론사가 보도자료를 기사화하고, 가장 적은 야구팬이 그 기사를 보도록 하는 게 목표다. 그런 목표를 세웠다면 토요일, 경기 시작을 앞두고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게 베스트다. 왜냐? 토요일엔 대부분의 언론사가 쉬고, 경기 시작 전에 보도자료를 내면 바로 경기 기사로 묻히기 때문이다.”

덧붙여 이 홍보팀장은 해당 기사를 쓴 언론사 대신 포털사이트에 연락을 취하는 것에 대해 "언론사는 기사 수정이나 삭제와 관련해 대단히 보수적 입장이다. 만약 그 요구를 수행했을 경우 언론사 공신력을 잃거나 '가짜뉴스'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요즘 스포츠팬들은 언론사 홈페이지나 신문, 방송이 아닌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읽는다. 포털사이트가 배열한 기사 위주로 읽기에 포털사이트 화면에서 찾기 어려운 기사는 거의 읽지 않는다. 이런 점을 고려해 우리도 해당 기사를 쓴 언론사보단 포털사이트에 연락을 취해 '기사를 안 보이는 곳에 배치해달라'고 요구하곤 했다"고 털어놨다.

포털사이트 에디터의 증언 “협회, 구단 전화가 자주 왔다. '볼 사람 다 봤으니 기사 좀 메인화면에서 내려달라'는 요구가 대부분. 윗선으로 전화 올 경우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확률 높아"

포털사이트 전, 현직 기사 에디터들은 “협회, 구단으로부터 수시로 기사 관련 전화가 걸려온다“고 말한다(사진=엠스플뉴스)
포털사이트 전, 현직 기사 에디터들은 “협회, 구단으로부터 수시로 기사 관련 전화가 걸려온다“고 말한다(사진=엠스플뉴스)

포털사이트에서 스포츠 기사 편집을 담당했던 S 씨는 엠스플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D 포털의 경우, 협회나 구단이 ‘기사를 PC, 모바일 메인 화면에서 내려달라’ ‘기사를 이용자들이 잘 볼 수 없는 곳으로 배치해달라’는 요구를 거의 하지 않는다. 요구해봤자 들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포털사이트는 내 경험상 사정이 좀 다르다. 내가 있던 포털에선 협회, 구단으로부터 전화가 자주 왔다. 윗선으로도 오고, 내게 직접 걸려올 때도 있었다. 윗선으로 연락하면 협회, 구단 요구가 관철되는 경우가 많았다. 연락 받고 요구 사항을 즉시 처리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티가 나니 30분에서 길면 2시간 후에 기사를 메인 스포츠면에서 내리곤 했다."

엠스플뉴스는 KBO의 ‘기사 재배치 요구’와 관련해 모 포털사이트의 입장을 듣고자 이 포털사이트의 스포츠 부문 관계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대답을 피한 채 “회사 홍보팀을 통해 질의해달라”고 요청하며 전화를 끊었다.

일전에도 엠스플뉴스는 해당 포털사이트 스포츠 부문의 총책임자인 임원급 인사에게 연락을 취한 바 있다. 이 포털사이트의 스포츠 기사 편집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답변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때도 이 임원급 인사는 “회사 홍보팀에 질의를 해달라. 홍보팀을 통해 입장을 전하겠다”는 말을 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엠스플뉴스는 4월 10일 이 포털사이트 홍보팀에 질의서를 보냈으나, 7월 26일이 되도록 아직 답변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편 취재가 시작하자 모 포털사이트에 전화를 건 당사자로 지목된 KBO 홍보팀 관계자는 “난 모 포털사이트에 ‘최규순 보도자료’와 관련해 전화를 건 사실이 일절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덧붙여 “만약 기사화할 경우 KBO 차원에서 법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KBO를 비롯한 각 스포츠협회, 구단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언론 기사에 대해 해당 언론사에 연락하는 대신 포털사이트에 연락을 취해 ‘포털사이트 화면에서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구하는 건 그간 스포츠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자 심지어 '관행'처럼 인식돼 왔다. 이를 포털 이용자들만 모를 뿐이었다.

KBO가 포털사이트에 연락을 취해 '최규순 관련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구한 게 사실이라면 KBO의 '최규순 사건 축소·은폐 논란'은 더 복잡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엠스플뉴스 탐사취재팀

박동희, 배지헌, 김원익, 전수은, 강윤기, 김근한, 이동섭 기자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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