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가 줄어드는 시대, 여전히 달리고 또 달리는 박해민(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도루가 줄어드는 시대, 여전히 달리고 또 달리는 박해민(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 '타고투저' 흐름 속에 도루가 줄어든 2017 프로야구.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 외야수 박해민은 여전히 베이스에 나가면 끊임없이 도루를 시도한다. 박해민이 생각하는 도루의 의미는 무엇인지, 시즌 초반 부진에서 벗어난 비결을 들어봤다.

‘대도’가 사라진 시대다. 리그 전체적인 타고투저’ 흐름 속에, 뛰는 야구가 점차 모습을 감추는 중이다. 홈런과 무더기 안타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실패의 위험이 큰 도루는 효율적이지 않단 생각이 힘을 얻고 있다. 체력 저하와 부상의 위험도 선수들이 점점 도루를 기피하는 이유다.

대도 실종은 기록으로도 드러난다. 리그 도루 시도율이 크게 줄었다. 2014년 8.3%, 2015년 8.1%에서 지난해 7.2%로 떨어지더니 올해는 5.8%까지 내려앉았다. 도루성공률도 65.1%로 2000년대 이후 세 번째로 낮다. 팀마다 흔하던 20도루 선수가 이제는 희귀하다. 이대로라면 시즌 끝났을 때 20도루 이상 선수 없는 팀이 6개 팀에 달할 전망이다.

삼성 라이온즈 박해민은 대도가 사라진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선수다. 박해민은 여전히 달리고 또 달린다. 리그에서 유일하게 20% 이상의 도루 시도율(21.8%)을 기록 중이다(규정타석 기준). 26일까지 28도루로 4년 연속 30도루도 눈앞이다. 페이스만 끝까지 유지하면 3년 연속 40도루 이상도 가능하다. 독보적이다.

박해민은 자신에게조차 이젠 도루가 쉽지 않은 일이 됐다고 인정한다. 26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만난 박해민은 “많은 투수가 투구 습관을 고쳤고, 포수들도 빨라졌다. 그래서 도루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아무래도 이젠 제가 나가면 다들 도루에 대해 준비를 하잖아요. 상대가 대비하니까, 가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도루가 줄어드는 리그 흐름도 정확히 읽었다. “요즘 시대가 장타가 많이 나오는 시대잖아요. 대부분 팀이 도루 시도를 줄이고 있거든요. 도루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어요. 이제는 ‘도루가 꼭 그렇게 필요한가?’ 하는 의구심을 다들 갖는 것 같아요.” 박해민의 생각이다.

하지만 리그 흐름에는 아랑곳없이 박해민과 삼성은 여전히 뛰는 야구를 하고 있다. 삼성은 26일까지 팀 도루 66개로 이 부문 1위다. 도루 시도율도 6.8%로 리그에서 세 번째로 높다. 도루성공률도 71.7%로 두산(73.5%) 다음으로 좋다. 많은 도루와 높은 성공률을 동시에 달성한 몇 안 되는 구단이다.

“아무래도 우리 팀 거포들이 많이 빠져나갔잖아요. 그래서 김한수 감독님도 좀 더 빠른 야구를 하자고 강조하세요.” 박해민의 말이다. “꼭 도루만 하라는 건 아니에요. 짧은 안타에도 2루까지 갈 수 있으면 시도하는, 한 베이스를 더 가는 러닝을 하자는 얘기죠. 저도 거기에 맞춰서 많이 뛰려 하고 있어요.”

시대를 거슬러 부지런히 달린 결과, 박해민은 통산 176도루로 KBO리그 역대 최다도루 25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역대 최다도루 30위 이내 선수 가운데 10년 차 미만인 선수는 박해민과 김상수(9년 차, 202도루) 둘 뿐이다.

"2016년 4월을 생각하며 부진에서 벗어났다"

리그 최고의 대도 박해민(사진=엠스플뉴스).
리그 최고의 대도 박해민(사진=엠스플뉴스).

도루를 많이 하려면 필요조건이 있다. 1루는 훔칠 수 없는 법이다. 베이스에 자주 나가야 도루도 자주 할 수 있다. 박해민이 매년 많은 도루를 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타석에서도 꾸준히 좋은 기량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풀타임 첫해인 2014년 타율 0.297에 출루율 0.381을 기록한 박해민은 이후 매년 3할 가까운 타율에 3할 중반대 출루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올 시즌엔 출발이 좋지 않았다. 개막 첫 한 달간 타율 0.267에 출루율 0.316에 그쳤고, 5월에도 타율 0.267에 출루율 0.287의 부진한 성적을 올렸다. 삼성도 개막 첫 40경기에서 9승 1무 29패로 최악의 출발을 한 터라, 톱타자 박해민의 부진이 더욱 도드라졌다.

“제가 좀 못하더라도 팀 성적이 괜찮았다면 좋을 텐데, 같이 안 되니까 스트레스가 있었죠.” 박해민이 말했다. “계속 1번 타자로 나가긴 하는데, 제가 출루를 못 해서 팀 득점이 안 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가지로 힘든 4, 5월을 보냈습니다.”

타격이 맘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박해민은 지난해 4월의 기억을 떠올렸다. 지난해 4월 한 달간 박해민은 타율 0.167에 출루율 0.205로 극심한 침체를 겪었다. “항상 잘 안 될 때면 작년 4월을 생각합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안 좋았는데,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니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합니다.” 박해민의 말이다.

“작년 4월에 한창 부진할 때, 당시 타격코치였던 김한수 감독님이 ‘이 경험이 진짜 많은 공부가 될 거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제 생각에도 당시 경험이 올 시즌 초반 안 좋을 때 빨리 치고 올라오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박해민의 말이다.

지난해 4월 1할대 부진을 딛고, 박해민은 5월 타율 0.382로 반등을 이뤘다. 올 시즌도 6월 이후 타율 0.310에 출루율 0.372로 서서히 ‘에버리지’를 찾아가는 중이다.

박해민은 김종훈 타격코치의 조언이 부진 탈출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딱히 변화를 준 부분은 없어요. ‘갖다 맞히려고 하지 말고 강하게 때리라’는 김종훈 코치님의 조언을 따랐습니다.” 박해민의 말이다. “테이블세터치고 삼진이 많다는 지적을 하도 받아서, 저도 모르게 맞히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치님께서 ‘삼진을 당해도 괜찮다. 2스트라이크에서 삼진 피하려고 갖다 맞히지 말아라’고 강조하셔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해민은 2015년 타석당 삼진 20.7%로 ‘슬러거’만큼이나 자주 삼진을 당하는 타자였다. 하지만 지난해 이 비율을 13.6%로 낮춘 데 이어, 올해는 12.1%까지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 2스트라이크 이후 커트 비율도 83.8%로 데뷔 이후 가장 좋고, 2스트라이크에서 선구 비율도 37.7%로 데뷔 이래 최고다.

톱타자지만 주자 있는 상황에서 성적도 좋다. 올 시즌 득점권 타율 0.324로 중심타자인 다린 러프(0.341)와 구자욱(0.337) 다음으로 좋은 기록을 내고 있다. “주자가 있을 땐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치려는 편이에요. 예전엔 득점 찬스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올해는 김헌곤 형을 비롯해 득점 찬스에 강한 선수들에게 조언을 구했어요.”

김헌곤은 올 시즌 득점권 타율 0.391로 삼성 팀 내 가장 득점권 기록이 좋은 선수다. “헌곤이 형에게 ‘어떤 마음으로 찬스 때 타석에 나서는지’를 많이 물어보고 배웠어요. 그 덕분인지 올해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박해민의 말이다.

박해민이 시대를 거슬러 달리는 이유

박해민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만능 선수로 성장했다(사진=엠스플뉴스).
박해민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만능 선수로 성장했다(사진=엠스플뉴스).

한양대를 졸업하고 2012년 삼성 육성선수로 입단할 당시, 박해민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프로에서 잘할 자신이 있었어요. 맹목적인 자신감이었죠. 하지만 2군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그 자신감이 무너졌어요. 대학 때 나름 잘해서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프로엔 저보다 재능 넘치는 선수가 많더라구요. 난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해민의 말이다.

박해민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해답을 찾았다. “방망이만 잘 쳐선 안 되겠더라구요. 수비나 주루 등에서 제가 먹고 살길을 찾으려 했죠. 어떻게 하면 제 장점을 살릴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러다 보니 수비와 주루 같은 플레이가 답이라고 생각했죠. 관심을 두고 노력을 기울이다 보니 주루와 번트, 수비를 잘할 수 있게 됐습니다.” 가진 건 컨택트 능력과 빠른 발 뿐이던 박해민이 만능선수로 성장한 비결이다.

특히 박해민의 외야 수비는 다른 구단 감독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뛰어나다.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거의 동시에 타구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달린다. 박해민은 “외야 타구판단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면서도 “그냥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고 말할 순 없다. 1군에 올라온 뒤 수비 쪽으로 많이 노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타자마다 타구의 궤적이나 방향이 모두 다릅니다. 어떤 타자가 어느 방향으로 타구가 많이 가는지, 타구의 특성은 어떤지를 미리 머릿속에 넣어두고 수비 위치를 잡습니다.” 박해민의 말이다. “계속 연습하다 보니 경험도 생기고, 자신감이 쌓이고 과감한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됐어요. 그 덕분에 호수비도 자주 나오는 것 같습니다.”

육성 선수였던 박해민을 리그 최고 리드오프이자 외야수로 키운 건 더 좋은 선수가 되려는 항상심이었다. 박해민은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며 “선수라면 매년, 매일매일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날마다 발전하고 싶고, 더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마찬가지일 겁니다.”

26일 현재 삼성의 순위는 8위. 사실상 포스트시즌 진출이 어려워진 상황이지만, 박해민은 이대로 무기력하게 시즌을 마감할 생각은 전혀 없다. “주위에서 ‘이제 삼성 왕조는 끝났다’는 시선도 있단 걸 잘 압니다. 남은 시즌 팀이 살아나는 모습과 함께, 밝은 전망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내년 시즌에는 더 좋은 팀이 될 거라는 기대가 드는, 그런 야구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프로야구 선수가 된 뒤 스트레스를 받는 날도 많지만, 여전히 박해민은 그라운드에서 치고 달리며 ‘재미’를 찾는다고 했다. “많은 관중 앞에서 뛸 수 있고, 제 꿈을 이뤘잖아요. 야구장에 있다는 것만으로 즐겁습니다.” 박해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박해민은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를 걱정하기보단, 운동장에서 달리는 매 순간에 충실하려고 한다. “미래까지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들도 수두룩하잖아요. 오늘 경기, 내일 경기, 내년 시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하자는 생각뿐입니다. 아직 제가 먼 미래까지 생각할 여유가 있는 선수는 아닌 것 같아요.”

박해민은 타석에 나서기도 전에 홈을 밟을 생각부터 하는 선수가 아니다. 자신이 3루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며 사는 부류와도 거리가 멀다. 그는 먼저 1루를 밟고, 온 힘을 다해 2루와 3루를 밟아야 홈인이라는 결실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대도가 사라진 시대 흐름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박해민이 달리고 또 달리는 이유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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