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 시도가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도루 시도가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 2017시즌 KBO리그 도루 시도와 희생번트 숫자는 36년 리그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이다. 왜 도루와 희생번트가 줄어든 것일까. 스몰볼 작전의 퇴조는 세밀한 야구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할까? 엠스플뉴스가 자세히 들여다 봤다.

2017시즌은 먼 훗날 KBO리그 역사에 어떤 이미지로 기억될까. 스트라이크존 확대도 막지 못한 극심한 타고투저와 매 경기 논란을 부르는 비디오 판독, 5회를 버티지 못하는 선발투수들과 9회를 못 버티는 마무리투수의 행렬은 올 시즌 프로야구의 극단적이고 혼란스런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런 경향들만큼 화제가 되진 않지만, 한편에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변화의 물결이 있다. 바로 전통적인 의미에서 ‘스몰볼’의 퇴조 현상이다. 스몰볼은 ‘1점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야구로 정의할 수 있다. 도루, 희생번트 등 ‘1점’을 얻기 위한 전략을 선호하는 게 스몰볼의 특징이다.

올 시즌 KBO리그는 역사상 가장 적은 도루 시도와 희생번트를 기록하고 있다. 도루와 번트는 전통적인 스몰볼을 대표하는 작전으로 통한다. 세이버메트릭스 커뮤니티의 반대와 비웃음에도 현장에서는 애용되곤 했던 작전들이, 이제는 주류에서 밀려나 외면당하는 현상이다.

줄어드는 도루 시도, 뛰는 게 ‘모험’이다

도루가 갈수록 어려워진다(사진=엠스플뉴스).
도루가 갈수록 어려워진다(사진=엠스플뉴스).

먼저 리그 도루 숫자를 살펴보자. 12일 현재까지 리그에서 나온 도루 성공 횟수는 총 606회. 이는 역대 최소 도루 시즌인 1983년(500회)과 1984년(522회) 다음으로 적은 숫자다. 144경기로 환산하면 총 리그 도루 수는 839개까지 늘어나지만, 이조차도 최근 10년 가운데 가장 적은 도루 숫자에 속한다.

도루 숫자만 줄어든 게 아니다. 도루 시도 자체가 줄었다. 올 시즌 각 팀별 경기당 도루 시도는 0.87회로 경기당 1회 꼴이 되지 않는다. 경기당 도루 시도가 1회 미만을 기록한 건 올해가 KBO리그 사상 처음이다. 경기당 도루 성공 횟수도 팀당 0.57개로 종전 최저 기록인 2004년(0.64개)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제 주자들은 도루 기회가 있어도 아예 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주자 1루 상황 등 ‘도루기회’를 기준으로 실제 도루 시도 비율을 측정한 ‘도루시도율’은 해마다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2014년 8.3%였던 도루시도율은 2015년 8.1%에서 지난해 7.2%를 거쳐 올해는 5.8%까지 내려앉았다. 5.8%는 LG 중심타자 양석환의 올 시즌 도루시도율(6.4%)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양석환은 통산 도루 12개, 실패 12개를 기록한 선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올 시즌은 KBO리그 사상 ‘100도루’ 팀이 한 팀도 나오지 않은 최초의 시즌이 될 가능성이 크다. 12일까지 리그 최다 도루 팀은 73개를 기록 중인 NC 다이노스. 144경기로 환산하면 NC는 올 시즌을 팀 도루 99개로 끝마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역사상 최초의 세 자릿수 도루팀 없는 시즌이 된다.

역대 도루시도 최저 시즌 Top 10. 2017년은 역대 가장 도루 시도가 적은 시즌이다(통계=스탯티즈).
역대 도루시도 최저 시즌 Top 10. 2017년은 역대 가장 도루 시도가 적은 시즌이다(통계=스탯티즈).

단순히 타고투저 때문이라고 볼 일은 아니다. 타고투저가 극심했던 1999년에도 8개팀 가운데 5개 팀이 세 자릿수 도루를 달성했던 KBO리그다. 당시엔 팀당 경기수도 132경기로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 그에 못지 않게 타고투저가 심했던 2001년에도 8팀 중 4팀이, 2002년에도 3개 팀이 세 자릿수 팀 도루를 기록했다.

한국야구는 한 때 ‘발야구’로 황금기를 누렸다. 빠른 주자들을 앞세워 상대 내야를 휘젓는 야구로 팬들의 마음을 야구장으로 돌렸고, 국제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당시 한국야구의 발야구가 어찌나 강한 인상을 남겼는지, 뛰는 야구는 한국야구에서 하나의 ‘당위’가 됐다. 뛰는 야구는 잘하는 야구, 좋은 야구로 여겨지곤 했다.

그래서일까. 해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각 팀 감독들은 하나같이 ‘올해는 뛰는 야구로 승부한다’고 선언하곤 했다. 적은 팀 도루 숫자는‘전략’의 차이가 아닌 ‘전력’의 문제로 여겨졌다. 시즌 초반 넥센 장정석 감독이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에 하나는 “왜 넥센은 올 시즌 도루 시도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넥센은 지난 시즌 팀 도루 1위 구단이었다. 올해는 팀 도루 57개(6위)로 뛰는 야구를 자제하고 있다.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더 이상 한국야구에서 도루는 ‘당연히’ 해야만 하는 당위가 아니다. 지금의 프로야구에서 도루는 인기있는 전략과는 거리가 멀다.

NC는 올 시즌 '확실한' 상황에만 뛰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NC는 올 시즌 '확실한' 상황에만 뛰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한류스타처럼 한때 전성기를 누렸던 도루의 인기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선 ‘부상위험’을 거론한다. 도루 시도에 따르는 체력 소모와 부상 위험성이 워낙 커서 리그 전체적으로 도루 시도가 줄어든다는 지적이다. 최근 kt 이대형과 SK 한동민이 도루 시도를 하다 부상으로 시즌 아웃 되면서 이런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이런 시각에 대해 SK 정수성 주루코치는 “도루 뿐만 아니라 주루플레이 자체가 원래부터 부상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라며 “부상 때문에 도루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설득력이 없다”는 생각을 밝혔다. 도루는 원래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플레이다. 실패의 위험과 부상의 위험이 상존한다. 위험이 따르더라도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 선수들은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시도하게 되어 있다. 도루 뿐만 아니라 모든 플레이가 다 마찬가지다.

도루 시도가 줄어든 진짜 이유는 도루의 가치가 예전같지 않기 때문이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도루를 할 만한 동기가 사라진 것이다. 도루는 성공할 경우 아웃카운트 소모 없이 주자를 득점권으로 보낼 수 있는 플레이다. 딱 ‘1점’이 필요할 때 그 1점을 내는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2014년부터 시작된 극심한 타고투저는 이런 ‘1점 내기’ 전략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1회부터 빅이닝이 속출하고, 5~6점차도 한 이닝에 뒤집어지곤 하는 타자들의 시대에 1점을 내기 위한 전략은 빛을 잃는다. 이제는 하위타선에서도 수시로 홈런이 펑펑 터진다. 마운드의 투수보다 대기하는 타자가 훨씬 강하고, 언제든 장타가 나올 수 있다면 굳이 도루로 주자를 득점권에 보내는 수고를 할 이유가 없다.

도루를 시도해도 실패 확률이 높다는 것도 문제다. 올 시즌 리그 도루 성공률은 66.2%로 2000년대 이후로는 2003년(62.7%), 2004년(63.5%), 2002년(65.7%), 2016년(65.9%)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다. 투수들의 슬라이드 스텝은 빨라지고, 포수의 송구 정확성은 좋아지는게 요즘 야구 추세다. 도루를 잘 하는 주자에겐 견제와 피치아웃 등 다양한 방해 공작을 펼친다. 발 빠른 선수도 좀처럼 도루를 시도하기 어렵다. 도루 1위 박해민의 도루시도율은 올해 22.8%로 데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 중이다.

이런 환경 속에 도루라는 모험을 하려면 성공에 대한 ‘강한 확신’이 필요하다. NC 김경문 감독은 “예전엔 선수들에게 조금의 틈만 있으면 도루를 지시했는데, 요즘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발로 먹고 선수라면 도루를 하는 게 맞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는 완전한 ‘노마크’ 상황이 아닌 이상 굳이 도루를 할 필요가 없다.”

확실한 성공이 보장될 때만 도루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실제 NC는 팀 도루 73개로 리그 1위, 도루성공률 72.3%로 두산(73.7%)에 이은 2위다. 전문 대주자 이재율은 8번 도루를 시도해 모두 성공했고(100%), 이상호도 13번 시도 중 11번을 성공해 84.6%의 성공률을 기록 중이다.

그외 이종욱의 성공률도 87.5%에 달하고, 박민우-재비어 스크럭스-윤병호-손시헌-지석훈-김종호는 도루 숫자는 많지 않지만 성공률은 100%다. 적어도 NC 주자들은 도루가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만 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희생번트가 사라지는 이유

번트 연습을 하는 넥센 이정후(사진=엠스플뉴스).
번트 연습을 하는 넥센 이정후(사진=엠스플뉴스).

도루와 함께 희생번트도 올 시즌 들어 역대 KBO리그 최저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미 지난 시즌부터 조짐이 보였다. 지난해 경기당 팀 평균 희생번트는 0.45개로 프로 원년인 1982년과 함께 역대 가장 적은 수준이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줄었다. 경기당 평균 0.41개로 KBO리그 36년 역사상 가장 희생번트가 적게 나오는 중이다.

특히 리그 최소팀(14개) 넥센 히어로즈는 이 추세라면 19개 희생번트로 시즌을 마치게 된다. 이는 역대 희생번트 최소팀인 2009년 두산과 1987년 삼성(26개)보다도 적은 숫자다. 올해 전까지 한 시즌 희생번트 20개 이하를 기록한 팀은 단 한 팀도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희생번트 최다팀인 한화는 89개로 시즌을 마칠 페이스인데, 이는 2012년 리그에서 가장 희생번트가 적은 팀이었던 LG(87개)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처럼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희생번트는 가장 인기없는 작전 가운데 하나가 됐다.

역대 경기당 희생번트 최소 시즌 Top 10. 2017년 경기당 희생번트가 가장 적다(통계=스탯티즈).
역대 경기당 희생번트 최소 시즌 Top 10. 2017년 경기당 희생번트가 가장 적다(통계=스탯티즈).

투수들이 리그를 지배하던 시절엔, 희생번트가 제한적인 찬스를 득점으로 연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타고투저 경향이 리그를 지배하면서 번트는 상대에게 아웃카운트 하나를 그냥 헌납하는 행위가 됐다. 페어 지역으로 타구를 보내기만 해도 3할 2푼 6리(12일 현재 리그 BABIP)의 확률로 안타를 만들 수 있는데, 굳이 성공 확률도 낮은(올 시즌 번트성공률 61%) 번트로 아웃 하나를 희생할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리그 전체적으로 젊은 감독이 많아졌다(사진=엠스플뉴스).
리그 전체적으로 젊은 감독이 많아졌다(사진=엠스플뉴스).

진보적 야구 이론에 익숙한 젊은 감독이 늘어난 것도 번트가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다. 세이버메트릭스와 야구 이론의 발달로 최근 젊은 지도자와 선수들 중에는 과거 세대와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야구를 보는 이가 많다. 장정석 감독이 이끄는 넥센 히어로즈가 대표적인 예다. 장 감독은 희생번트를 대지 않는 이유로 “우리 타선이 워낙 좋아서 번트가 필요하지 않다. 아웃카운트 하나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야구는 양팀이 공평하게 아웃카운트 27개를 갖고 하는 경기다. 아웃카운트가 줄어들면 그만큼 공격할 기회가 줄어들고, 득점을 올릴 가능성도 줄어든다. 한 이닝을 놓고 봐도 노아웃과 1아웃, 2아웃은 득점 기대 수치(Run Expectancy Matrix)가 천양지차다. 특히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남은 아웃카운트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장정석 감독과 넥센은 이 원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장 감독 말대로 “타석에 있는 우리팀 타자가 상대 투수에 비해 많이 약할 때”가 아닌 이상, 희생번트는 득점과 팀 승리에 해가 되는 작전일 수 있다.

넥센의 도루 시도가 예년보다 줄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반적으로 도루는 성공률 75% 이상이어야 팀에 도움이 된다. 매년 수치가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무사 1루에서 도루가 성공해 무사 2루가 됐을 때 기대득점의 상승분은 0.2점 안팎이다. 반면 도루 실패로 아웃되어 1사 주자 없는 상황이 되면 기대 득점은 무사 1루 상황의 1/3 수준으로 떨어진다. 성공으로 얻는 것보다 실패해서 잃는 게 몇 배는 크단 얘기다.

지난 시즌 넥센의 팀 도루는 154개로 리그 최다였지만, 성공률은 65%에 불과했다. 평균대비 도루득점기여(RAA 도루)는 -4.37로 리그 도루 9위팀 SK(-6.32)와 LG(-4.43) 다음으로 나빴다. 많은 도루가 팀에 도움이 되기보단 해를 끼치는 면이 많았다.

반면 올해 넥센의 팀 도루는 57개로 리그 6위에 불과하지만, RAA 도루는 2.28로 리그에서 네 번째로 좋다. 무작정 많이 뛰고 보는 LG가 -5.28으로 리그에서 가장 도루 때문에 큰 손해를 보는 것과 좋은 비교가 된다.

스몰볼은 퇴조, 세밀한 야구는 전성시대

희생번트를 대는 LG 채은성(사진=엠스플뉴스).
희생번트를 대는 LG 채은성(사진=엠스플뉴스).

이처럼 도루와 희생번트 등 한때 한국야구를 특징짓던 작전들은 점차 뒷전으로 밀려나는 추세다. 그러나 이는 ‘스몰볼식 작전’의 퇴조일 뿐이다. 일부 올드스쿨 지도자가 개탄하듯 한국야구의 ‘세밀함’이 떨어지고, 리그 전체 수준이 하향 평준화되는 현상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지금의 KBO리그는 그 어느 때보다 촘촘한 분석과 연구를 바탕으로 밀도 높은 야구를 펼치고 있다. 단지 도루나 희생번트 같은 가시적인 기록으로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도루 숫자가 줄어드는 현상은 한국야구가 허술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각 팀이 그만큼 치밀하게 도루에 대비하고 분석하기 때문이다. SK 정수성 코치는 “이제는 거의 모든 배터리가 도루에 철저하게 대비한다. 수비측에서 워낙 도루를 철저히 방어하기 때문에, 갈수록 주자들이 마음놓고 뛰기 어려워진다.”고 밝혔다.

“포수의 어깨가 다소 약하면 투수가 슬라이드 스텝이나 투구 템포, 견제로 주자 도루를 억제한다. 투수의 퀵모션이 느리면 포수가 빠르고 강한 송구로 커버한다. 배터리의 견제 능력이 떨어지면, 벤치에서 주자 성향을 분석해서 필요할 때 견제나 피치아웃 사인을 낸다.” 정 코치의 설명이다.

마찬가지로 희생번트가 줄어든 건, 희생번트가 점수를 내고 팀을 승리로 이끄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는 분석이 낳은 결과다. 희생번트는 줄었을지 모르나, 대신 아웃카운트 소모 없이 주자를 한 베이스 더 보내기 위한 다양한 전략과 기술이 등장했다. 스몰볼의 퇴조가 곧 야구의 세밀함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세밀한 야구'는 오히려 바로 지금이 전성기다. 2017년, 한국야구는 그 어느 때보다 세밀하고, 촘촘하다.

통계출처=스탯티즈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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