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홈런을 달성한 김하성(사진=엠스플뉴스).
20홈런을 달성한 김하성(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 22살 김하성은 22살까지 강정호와 같은 위치에 올라섰다. 어떤 면에서는 이미 강정호를 능가했다. 김하성에게는 '평화왕자'가 아닌, 새로운 별명이 필요하다.

“지금 김하성 정도면, 그 나이대 강정호보다 훨씬 더 잘 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8월 12일 고척스카이돔에서 만난 넥센 히어로즈 장정석 감독이 ‘김하성과 같은 나이대 강정호를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 한 대답이다. 장 감독은 “강정호는 처음으로 잘한 선수는 아니었다. 처음엔 2군에 머물다 기회를 받고 차근차근 성장했다. 출발을 놓고 보면, 김하성이 더 잘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정호는 전 넥센 선수이고, 김하성은 지금 넥센에서 뛰는 선수다. 지금 데리고 있는 선수 쪽으로 팔이 굽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실제 ‘22세’ 김하성의 활약이, 같은 나이까지 전임자 강정호가 보여준 활약을 훨씬 뒤어 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김하성은 11일 고척 두산전에서 시즌 20호 홈런을 날렸다. 이날 3타점을 추가해 개인 한 시즌 최다인 86타점도 기록했다. 13일 현재까지 시즌 타율은 0.299로 3할에 가깝고, 장타율 0.530에 OPS는 0.905나 된다. 추가한 승리 확률을 나타내는 WPA는 2.24로 KIA 김선빈(1.92)을 제치고 리그 유격수 1위다.

현재 페이스를 시즌 끝까지 유지할 경우, 김하성은 26홈런 114타점으로 시즌을 마치게 된다. KBO리그 역사상 한 시즌 25홈런 이상-100타점 이상을 동시에 달성한 유격수는 2014년 넥센 강정호(40홈런-117타점)가 유일하다. 강정호와 일대일 비교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또 한 시즌 25홈런 이상을 때린 유격수도 강정호(2012년 25홈런, 2014년 40홈런)와 이종범(1996년 25홈런, 1997년 30홈런), 장종훈(1990년 28홈런), 틸슨 브리또(2002년 25홈런)까지 네 명 뿐이다. 하나같이 유격수로는 역대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한 선수들이다.

'후임' 김하성, '전임' 강정호를 뛰어넘다

김하성은 이미 리그 최고 수준의 유격수다(사진=엠스플뉴스).
김하성은 이미 리그 최고 수준의 유격수다(사진=엠스플뉴스).

특히 주목할 점은 '전임자' 강정호와 김하성의 22살까지 기록이다. 강정호는 22살 시즌인 2009년 133경기에 출전해 23홈런 81타점을 기록했다. 김하성은 140경기 26홈런 114타점 페이스다. 리그 환경은 2009년이 올해보다 더 심한 타고투저 리그였다. 경기수 차이를 감안해도 올해의 22살 김하성이 더 뛰어난 시즌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22살까지 쌓은 기록은 오히려 김하성이 강정호를 압도한다. 13일 현재까지 김하성은 4시즌 통산 61홈런 250타점을 기록했다. 강정호는 22살까지 31홈런 129타점에 그쳤다. 22살 시즌까지 강정호의 두 배에 가까운 홈런과 타점을 쌓아 올리고 있는 김하성이다.

22세 시즌까지 통산 홈런 5걸(통계=스탯티즈).
22세 시즌까지 통산 홈런 5걸(통계=스탯티즈).

강정호 뿐만 아니라 KBO리그 역대 선수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61홈런은 메이저리거 김현수가 22살까지 쳐낸 61홈런과 같은 갯수다. 역대 KBO리그에서 22살까지 이보다 많은 홈런을 친 선수는 이승엽(92개) 김태균(81개) 장종훈(66개) 셋 뿐이다. 만약 김하성이 현 페이스대로 6개 홈런을 추가하면, 22살 시즌까지 67홈런을 기록하게 된다. 장종훈을 제치고 22살 유격수 통산 최다 홈런을 기록하게 되는 셈이다.

김하성은 타점도 13일 현재까지 통산 250타점을 쌓아 올렸다. 이보다 많은 타점 올린 선수는 이승엽(365점), 김현수(314점), 김태균(289점), 홍현우(264점) 네 명 뿐이다. 장종훈도 이만큼 많은 타점을 올리진 못했다. 역대 유격수 가운데 22살 시즌까지 최다 타점을 올리고 있는 김하성이다.

22세 시즌까지 WAR 역대 상위 7인(통계=스탯티즈).
22세 시즌까지 WAR 역대 상위 7인(통계=스탯티즈).

김하성의 ‘역대급’ 페이스는 대체선수 대비 기여승수(WAR)로도 드러난다. 김하성은 13일까지 통산 WAR 12.4승으로 역대 7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김하성 앞에는 김현수(20.8승), 이승엽(19.9승), 홍현우(18.3승), 정종훈(16.2승), 김태균(16.1승), 정수근(14.9승) 등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이름의 나열이다.

특히 유격수 가운데 이보다 많은 WAR을 쌓은 선수는 빙그레 장종훈(16.2승) 하나 뿐이다. 김하성의 전임자인 강정호는 22살 시즌까지 누적 WAR은 6승에 그쳤다. LG 오지환도 22세 시즌까지 WAR은 6.5승에 불과했다.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김하성보다 22세까지 WAR이 높은 유일한 유격수 장종훈은 1991년 23세 시즌부터 지명타자-1루수로 포지션을 옮겼다. 반면 김하성은 체격과 플레이 스타일상 유격수로 롱런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고려하면, 김하성은 KBO리그 역대 그 어느 유격수보다도 빠른 초반 스퍼트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평화왕자는 이제 그만, 김하성에겐 새 별명이 필요하다

이제 김하성을 평화왕자라고 불러선 안 된다(사진=엠스플뉴스).
이제 김하성을 평화왕자라고 불러선 안 된다(사진=엠스플뉴스).

고무적인 건 김하성이 데뷔 초반 성공에 도취하지 않고 매년 발전을 거듭하는 선수란 점이다. 김하성은 풀타임 첫해인 2015년 19홈런-22도루로 아깝게 20-20클럽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2016시즌 20홈런-28도루로 기어이 20-20을 달성했다. 올해는 장타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일찌감치 홈런 20개를 채웠다.

2015시즌 김하성은 타석당 삼진 19.8%로 삼진율이 다소 높았다. 지난해 김하성은 이 수치를 13.4%까지 떨어뜨렸다. 그리고 올해는 타석당 삼진을 10.1%까지 끌어내렸다. 특히 4번 타자일 때 타석당 삼진은 8.8%로, 리그 4번타자 출전 선수 가운데 삼진율이 10% 이하인 선수는 김하성이 유일하다.

볼넷 비율은 지난해(10%)와 올해(9.9%)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삼진율은 좋아지고, 그러면서도 홈런 비율은 3.34%에서 4.51%로 크게 향상됐다. 홈런과 삼진은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홈런이 늘면 삼진도 늘게 마련이다. 하지만 김하성의 기록은 반대로 가고 있다. 해가 갈수록 완성도 높은 타자로 진화한다는 증거다.

장정석 감독도 김하성의 발전하는 모습을 칭찬했다. 장 감독은 “지금도 물론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발전해야 한다”며 “홈런 20개에서 30개로 늘릴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만한 능력이 되는 선수”라고 추켜세웠다.

특히 장 감독은 김하성이 지닌 남다른 ‘기질’을 주목했다. “스타성도 갖고 있고, 중요한 때 집중력이 좋아 해결하는 능력이 있다.” 김하성은 4번 타순에서 타율 0.328 장타율 0.619 14홈런 52타점으로, 다른 타순에서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4번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모습이다.

김하성도 “4번 타자가 특별히 부담되진 않는다. 사실 내가 4번에 어울리는 유형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4번 타순에서 치면서 홈런이 많아진 것 같다. 앞타자들이 투수를 흔들어주니까, 실투 덕분에 장타가 나오는 것 같다. 4번을 맡으면서 노림수와 경험도 생겼다”며 4번 타순의 장점을 설명했다.

김하성은 선배 강정호와 비교에는 손사래를 치며 “아직 난 정호형과 비교가 안 된다”고 겸손을 보였다. “나는 계속 성장해야 하는 선수다. 정호형과 비교하기는 이르다. 정호형은 워낙 잘하는 선수였고 최고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 공백을 메우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담을 갖지 않으려 했다.” 김하성의 말이다.

김하성이 어떻게 생각하든, 객관적인 기록은 22세 김하성이 이미 22세까지 강정호를 뛰어넘었다고 알려준다. 강정호가 막 프로 1군 무대에서 활약을 시작한 22세 시즌, 이미 김하성은 세 시즌째 1군에서 활약하며 리그 최고 유격수로 올라섰다.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과, 강정호에게 부족했던 한 가지 요소를 생각한다면, 김하성은 강정호를 능가하는 ‘슈퍼 유격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얼마 전까지 김하성은 ‘평화왕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강정호의 별명 ‘평화왕’에서 따온 이 별명엔, 강정호의 후임이지만 아직 강정호보다는 못하단 의미가 은연 중에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제 22세 김하성이 22세 강정호를 넘어선 지금, 김하성에겐 새로운 별명이 필요하다. 리그 역사를 새로 써나가는 유격수에 어울리는, 멋진 별명 말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