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의 미래이자 KBO리그의 미래 최원태(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넥센의 미래이자 KBO리그의 미래 최원태(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 넥센 히어로즈 최원태는 넥센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프랜차이즈 출신 영건 선발 투수다. 최원태의 고속 성장이 넥센 구단 역사와 KBO리그에 갖는 의미를 살펴봤다.

넥센 히어로즈는 창단 이래 매년 야수와 불펜투수 육성에서 놀라운 성과를 내 온 팀이다. 드래프트와 트레이드로 재능 있는 야수를 발굴해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집을 불리고, 힘을 키웠다.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타선을 구축했다. 또 손승락, 조상우, 한현희 등 강속구 불펜투수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최근엔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성공도 거뒀다.

하지만 유독 넥센이 성과를 못 낸 분야가 있으니 바로 선발투수 육성이다. 그간 넥센은 젊은 내국인 선발투수를 키우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매년 신인드래프트 때마다 상위 지명권을 투수에 사용했다. 잠재력 있는 투수에겐 1군 등판 기회도 꾸준히 부여했다. 하지만 좀처럼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 못했다.

지금은 군복무 중인 문성현, 올해 초 NC로 트레이드한 강윤구는 ‘차세대 에이스’란 기대가 실망으로 끝난 대표적인 예다. 어린 나이에+무시무시한 구위를 자랑하지만+제구력이 불안한 투수를 1군 선발로 키워보려던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약점인 제구는 아무리 많은 경험을 쌓아도 나아지지 않았다. 장점이던 구위는 해가 갈수록 무뎌졌다. 나쁜 경험의 반복은 좋지 않은 습관이 몸에 배는 결과로 이어졌다.

오히려 넥센 내국인 선발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선수는, 볼 스피드는 떨어져도 제구력이 뛰어난 ‘중고신인’ 신재영이었다. 신재영은 2016년 15승으로 넥센 프랜차이즈 내국인 투수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을 달성했다.

오랜 시행착오를 거친 넥센의 노력은 마침내 올 시즌 답을 얻었다. 스무 살 영건 최원태가 보여주고 있는 환상적인 피칭이 바로 그 답이다.

최원태, 시행착오 끝에 넥센이 찾은 답

최원태는 투심과 함께 새로운 투수로 거듭났다(사진=넥센).
최원태는 투심과 함께 새로운 투수로 거듭났다(사진=넥센).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최원태는 넥센이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처럼 보였다. 140km/h 중후반대 포심 패스트볼과 다양한 구종을 앞세워 ‘정통파 투수’를 표방했지만, 나올 때마다 무더기 안타와 소나기 실점을 허용했다. 시즌 성적도 17경기 2승 3패 평균자책 7.23으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올 시즌부터 투심 패스트볼을 던지면서 최원태는 지난해완 전혀 다른 투수가 됐다. 장점으로 여겼던 포심 패스트볼은 과감하게 레퍼토리에서 제외했다. 힘 있는 투심 패스트볼로 많은 땅볼 아웃을 잡아내는 투수로 변신했다. 투심을 던지면서 타자와 빠른 카운트에 승부하게 됐고, 더욱 많은 이닝을 소화하게 됐다. 긴 이닝을 적은 투구 수로 버티는 효율적인 투수로 거듭났다.

5월과 6월 사이 잠시 고비도 있었지만, 금세 극복하고 제 자릴 찾았다. 단 한 번도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일 없이, 시즌 내내 꾸준하게 로테이션을 소화했다. 최원태는 올 시즌 넥센 선발진에서 20경기 이상 선발 등판한 유일한 투수다. 최원태는 "체력적인 문제는 전혀 없다. 선발 등판을 준비하며 루틴을 유지하는 데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8월 13일 한화 이글스 전에서는 7이닝 1실점 호투로 시즌 10승도 달성했다. 6월 8일 SK전부터 8월 19일 NC전까지 내리 7연승 행진이다. 같은 기간 최원태를 제외하고 패전이 없는 투수는 10승 무패를 거둔 KIA 양현종뿐이다.

경기를 거듭하며 진화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시즌 초반 최원태의 투심 의존도는 절대적이었다. 전체 투구의 60% 이상을 투심으로 던졌고, 변화구 중에는 체인지업의 비중이 컸다. 구위가 좋은 날은 무더기 땅볼 아웃을 잡아내며 호투했지만, 투심이 다소 무딘 날에는 난타를 당하는 문제가 드러났다.

후반기부터 최원태는 슬라이더 비중을 대폭 끌어 올렸다. 10승을 챙긴 13일 한화전과 11승을 거둔 19일 NC전에선 슬라이더 비중이 20% 이상에 달했다. 레퍼토리가 다양해지면서, 탈삼진 비율도 부쩍 높아졌다. 13일 한화전에선 7이닝 동안 6개 삼진을, 19일 NC전에서는 6.1이닝 동안 9개 삼진을 솎아냈다.

특히 19일 NC전에서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초구와 결정구로 자주 구사해 많은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다. 투심을 앞세운 공격적 피칭과는 전혀 다른 패턴에 NC 타자들은 6회까지 무득점으로 끌려갔다.

경기 후 최원태는 "포수 주효상의 리드대로 던졌다. 호흡이 잘 맞았다"며 포수에게 공을 돌렸다. 이날 최원태의 9개 탈삼진은 데뷔 이후 개인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이다. 땅볼 아웃을 잡는 능력에, 이제는 탈삼진 능력까지 장착한 최원태다.

최원태는 넥센의 새로운 피칭 철학을 가장 잘 구현하는 투수이기도 하다. 이 철학은 가장 자신 있는 공 위주로, 공격적으로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하고, 빠른 카운트에서 승부해 볼넷을 적게 내주는 게 핵심이다.

실제 최원태는 볼넷을 거의 내주지 않고, 2구-3구 이내 빠른 카운트에 인플레이 타구로 아웃을 잡는다. 19일까지 최원태의 9이닝당 볼넷은 1.97개로 리그 전체 최소 9위에 해당한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진화하는 최원태(사진=넥센).
경기를 거듭할수록 진화하는 최원태(사진=넥센).

지금의 페이스를 시즌 끝까지 유지한다면, 최원태는 넥센 구단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투수로 남게 된다. 19일까지 최원태의 승수는 11승. 넥센 프랜차이즈 사상 한 시즌 최다승을 거둔 내국인 투수는 2016년 신재영(15승)이며 그 뒤로는 2009년 이현승(13승), 2008년 장원삼(12승), 2008년 마일영(11승)이 있다. 최근 7연승 기세를 계속 유지한다면, 넥센 내국인 투수 한 시즌 최다승도 노려볼 만하다.

또한 최원태는 넥센 프랜차이즈 사상 최고의 스무 살 이하 투수이기도 하다. 창단 이래 넥센 20세 이하 투수 가운데 최원태보다 많은 승리와 이닝, 탈삼진을 기록한 투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굳이 찾는다면 넥센의 전신 격인 현대 유니콘스 시절 김수경(1998년, 19세) 정도가 유일하다.

리그 전체를 놓고 봐도 최원태만한 스무 살 이하 투수는 드물다. 현재 페이스라면 최원태는 시즌 28차례 선발 등판을 소화하게 된다. 2000년대 이후 스무 살 이하 투수가 이보다 많은 선발등판을 소화한 예는 2001년 SK 이승호(33), 2007년 한화 류현진(30), 2002년 KIA 김진우와 2000년 삼성 김진웅(29)까지 네 명뿐이다.

2000년 이후 20세 이하 투수 다승 순위(통계=스탯티즈).
2000년 이후 20세 이하 투수 다승 순위(통계=스탯티즈).

11승은 2000년대 이후 스무 살 이하 투수 한 시즌 8위에 해당한다. 2000년대 이후 이 부문 최고는 2006년 한화 류현진이 거둔 18승이다.

최원태의 9이닝당 탈삼진(7.35개)도 2000년대 이후 스무 살 이하 투수 중에는 8위에 해당하는 좋은 기록이다. 역시 이 부문 톱은 2006년 한화 류현진으로, 그해 류현진은 9이닝당 9.10개의 삼진을 잡았다.

더 놀라운 건 볼넷 관련 기록이다. 최원태의 9이닝당 볼넷은 1.97개로, 이는 2000년대 이후 스무 살 이하 투수 중에는 최소 2위에 해당한다. 이 부문 최소는 2011년 한화 안승민의 1.94개다. 삼진/볼넷 비율 역시 3.72로 2000년대 이후 스무 살 이하 투수 중에 2위인데, 1위는 2006년 3.92를 기록한 한화 류현진이다.

많은 기록을 써 나가고 있는 최원태지만 개인 승수나 기록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최원태는 19일 경기 후 '특별히 신경 쓰는 기록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 없다"며 "가장 바라는 건 팀의 승리다. 내가 이기지 못해도 팀이 꼭 이겼으면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개인보다 팀 승리를 우선하는 자세는 에이스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이처럼 올 시즌의 최원태는 넥센 구단 역사는 물론 KBO리그 전체에서도 손꼽을 만큼 뛰어난 스무 살 시즌을 보내고 있다. 최근 KBO리그에선 젊은 우완 선발투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최원태의 고속 성장은 넥센은 물론, 프로야구의 미래를 책임질 든든한 우완투수가 자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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