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자책 1위를 기록하고 있는 kt 위즈 라이언 피어밴드(사진=엠스플뉴스)
평균자책 1위를 기록하고 있는 kt 위즈 라이언 피어밴드(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kt 위즈 라이언 피어밴드, 평균자책 2.87로 부문 리그 1위. 타고‧투저 역행하며 리그 최고 투수 된 비결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노력하는 피어밴드, 가족을 위해 던진다!

올 시즌 KBO리그는 다시 타고‧투저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8월 20일 기준 타율 3할을 넘은 타자가 29명이나 된다. 이러다 팀타율 3할 팀이 무더기로 나올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투수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리그 평균자책이 4.93에 달한다. 규정이닝을 소화한 투수 가운데 평균자책이 3점대 이하인 투수가 단 11명뿐이다.

그리고 단 1명의 투수만 ‘타자의 시대’에 저항하며 평균자책 2점대를 기록하고 있다. 바로 kt위즈의 외국인 투수 라이언 피어밴드다.

피어밴드는 21경기에 등판해 7승 8패/평균자책 2.87/135이닝/110탈삼진을 기록하며 리그에서 가장 돋보이는 성적을 내고 있다. 피어밴드는 평균자책 1위에 올라 있고,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 이하)도 17회로 공동 4위다. 득점지원(3.93점)이 리그 최하위 수준이라 승리가 적을 뿐 완벽한 피어밴드는 완벽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김진욱 kt 감독 “호투 비결? 피어밴드는 그냥 좋은 투수다.”

11경기 무승에도 피어밴드는 흔들리지 않는 투구를 이어가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11경기 무승에도 피어밴드는 흔들리지 않는 투구를 이어가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피어밴드는 타자들의 도움을 받지 못해 승리는 적지만 굉장히 가치가 높은 투수다. 다른 언급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정말 좋은 투수다.”

평소 달변인 김진욱 kt 감독은 피어밴드의 얘기를 할 땐 표현이 더 풍부해진다. 칭찬에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다. 김 감독이 피어밴드를 극찬하는덴 다 이유가 있다.

“투수가 계속 승리를 하지 못 하면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이기 마련이다. 실제 투구에서도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피어밴드는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기 공을 던진다. ‘심판 콜’이 의아해 내가 어필하러 나가려 해도 오히려 본인이 만류한다. 그만큼 마음을 다스릴 줄 안다. 분명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내색하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멘탈이 강한 투수다.”

김 감독은 ‘에이스’ 피어밴드의 프로다운 자세에도 높은 점수를 줬다.

실제 피어밴드는 최근 10경기 가운데 7번의 QS를 기록하고도 승리가 없다. 되레 5패만을 당했다. 마지막 승리가 6월 3일 롯데전(6이닝 무실점)으로 평균자책 1위 투수가 두 달을 훌쩍 넘어 석 달이 다 돼 가도록(79일째) 승리가 없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피어밴드는 흔들리기는커녕 더 단단해지고 있다. 그냥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다. 피어밴드는 최근 6경기 연속으로 2실점 이하의 성적을 기록했고, 5경기서 6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1점의 득점지원도 받지 못한 경기도 있었지만 시련 속에서도 당당하고 꿋꿋했다.

김 감독은 피어밴드의 위력적이고 효과적인 투구에도 높은 점수를 줬다.

“피어밴드가 평균자책점 1위인 동시에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도 1.14(2위)로 좋고 이닝(135, 12위)도 많이 소화하고 있다. WHIP이 낮다는 건 그만큼 출루를 적게 허용하면서 효과적으로 좋은 투구를 했다는 뜻이다. 이닝 당 주자 허용이 적어 투구수를 줄일 수 있고, 야수진의 피로도 덜 수 있다.”

“여러모로 팀에 큰 보탬이 되는 투수다. 투수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보여주고 있는 투수다. 참 고맙고 대견하다. 인간적으로도 피어밴드가 등판할 땐 승리를 기원하고 있다. 올 시즌 다승왕은 못 돼도 평균자책 타이틀은 꼭 거머쥐었으면 좋겠다.” 김 감독의 애정은 피어밴드를 향한 솔직한 말 곳곳에 가득 묻어났다.


kt 정명원‧가득염 코치가 말하는 피어밴드

피어밴드는 이제 '좋은 동료'가 됐다(사진=엠스플뉴스)
피어밴드는 이제 '좋은 동료'가 됐다(사진=엠스플뉴스)

정명원 kt 투수코치도 피어밴드가 좋은 투수라는 덴 이견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마운드에서 수싸움을 할 줄 안다. 굉장히 영리한 투수다. 구사할 수 있는 구종이 많다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생각한 걸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좋은 제구력을 가지고 있다. 그게 피어밴드의 최고의 장점이다.” 정 코치의 말이다.

피어밴드는 2015년 넥센 히어로즈에 입단해 한국 땅을 밟았다. 입단 첫 해 13승 11패 평균자책 4.67, 2016년 7승 13패 평균자책 4.45의 무난한 성적을 기록한 피어밴드는 넥센과 계약하지 못했다. 그리고 가까스로 kt의 부름을 받아 올 시즌 환골탈태했다.

특히 스프링캠프에서 연마한 너클볼을 주무기로 꺼내 들어 완전히 다른 유형의 투수로 변신한 것도 놀라운 점이다. 보통 너클볼은 실전에서 사용할 정도 숙련도를 끌어올리려면 긴 시간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정 코치가 피어밴드를 인정하는 건 ‘투수로서 능력’이 첫 번째다. 하지만 정 코치 역시 피어밴드가 보여준 ‘끝없는 노력’에 깊이 감복했다.

“피어밴드가 효율적인 투구를 할 줄 아는 건 그만큼 전력분석을 철저히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 타자에 대해서 굉장히 연구와 공부를 많이 한다. 정말 노력을 많이 하는 성실한 투수다.” 정 코치는 피어밴드의 학구열에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kt 관계자는 “번역 어플을 이용해 자신에 대한 한국 기사를 자주 검색해 본다. 또 상대할 팀의 동향에 대해서도 기사로 확인할 정도로 꼼꼼하다”고 덧붙였다.

가득염 kt 불펜코치도 피어밴드에 관해 묻자 먼저 칭찬부터 늘어놨다.

“과거 넥센 시절 피어밴드가 등판하는 날 지켜본 적이 있나. 넥센 코치들에게 듣기론 등판 전은 물론 경기 중에도 굉장히 예민했다고 한다. 많은 투수가 그런 경향이 있지만, 특히 피어밴드는 더 날카로운 면이 있었는데 우리 팀에 오고 나서 그런 부분도 굉장히 좋아졌다. 좋은 동료가 됐다는 뜻이다. 숫제 이젠 젊은 투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조언을 할 정도다. 완전히 한국야구의 문화에 녹아들었다.”

피어밴드의 투수로서 능력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가 코치다. 가 코치는 “피어밴드의 최대 강점은 전략적이고 영리한 투구다. 흔히 말하는 ‘버리는 투구’가 단 하나도 없는 투수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투구를 낭비하지 않는 것’이 가 코치가 보는 피어밴드 투구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보겠다. 피어밴드도 물론 마음 먹은 대로 제구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3구를 연속으로 스트라이크존에서 벗어나는 공을 던져도 그게 4구째를 위한 포석일 때가 많다. 모두 ‘이유가 있는 투구’를 한다. 투구 이면에 보이는 생각을 발견하면 가끔 나도 감탄할 때가 있다. 피어밴드는 150km/h 강속구를 던지지 못해도 훌륭한 투수다.” 가 코치의 말이다.

‘든든한 가장’ 피어밴드, 가족은 그를 일어서게 하는 힘

라이언 피어밴드의 가족은 그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다(사진=엠스플뉴스)
라이언 피어밴드의 가족은 그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다(사진=엠스플뉴스)

정명원 코치는 피어밴드가 두려움 없는 투구를 하는 또 다른 비결로 ‘가족’을 꼽았다.

“피어밴드는 가장이다. 곁에서 지켜보면 참 가족 생각을 많이 한다. 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더라. 피어밴드는 내가 본 외국인 선수 중에서도 특히 더 가정적인 선수다. KBO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너클볼을 연마한 것도 ‘가족을 위해서’라고 할 정도다.”

“그를 지켜주는 가족이, 어깨에 놓인 가장이라는 책임감이 피어밴드를 강해지게 만드는 것 같다.” 정 코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피어밴드는 고교시절 만난 두 살 연상의 아내 세라 피어밴드 슬하 아들 트레이(8), 딸 시에나(6)를 두고 있다.

피어밴드는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 가득 미소부터 지었다. 피어밴드는 “내가 야구를 하는 힘의 가장 큰 원천은 가족이다. 가족들이 날 여기까지 오게 했고, 지탱하고 있다”고 했다.

피어밴드는 2003년 시애틀 매리너스에 3라운드(전체 86순위)에 지명돼 2006년 빅리그에 승격됐다. 하지만 빅리그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트리플 A에서만 머물다 2012년 방출됐다. 하지만 피어밴드는 포기하지 않았고 독립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2013년 다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kt 관계자는 “피어밴드가 2012년 은퇴를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그런 피어밴드의 마음을 잡아준 게 현재 아내다. 그래선지 피어밴드는 항상 가족이 먼저다. 참 화목해 보이는 가족”이라고 귀띔했다.

피어밴드는 올 시즌 가족들과 함께 하는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자 정중히 고사했다. “가족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싶다”는 게 피어밴드의 말이었다.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피어밴드의 등판일 수원 홈경기엔 아내 세라 피어밴드를 비롯한 가족들이 열렬히 응원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평범한 투수였던 피어밴드가 ‘특급 투수’가 될 수 있었던 건 이처럼 소중한 이들을 떠올리며 변화를 택했기 때문이다.

피어밴드는 ‘KBO리그에서 살아남는 법’을 조언해달란 ‘엠스플뉴스’에 이런 말을 들려줬다.

“한국의 ‘야구’는 미국에서 하던 ‘Baseball(베이스볼)’과는 완전히 달라요. 미국에서 어떻게 야구를 했는지는 잊어버려야 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야 해요. 제가 너클볼을 장착한 것처럼요.”

피어밴드는 더스틴 니퍼트(두산)나 앤디 밴헤켄(넥센) 같이 성공한 ‘한국형 외국인 선수’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올 시즌 ‘피어밴드’란 영화의 예고편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

김원익 기자 one2@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