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김재호의 호수비 퍼레이드가 눈부시다(사진=두산)
돌아온 김재호의 호수비 퍼레이드가 눈부시다(사진=두산)

[엠스플뉴스]

허리 통증이란 불청객 때문에 2017년 봄은 김재호에겐 고난의 시간이 됐다. 그래도 몸 상태 회복을 위한 2주의 휴식 기간은 김재호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재충전하고 돌아온 김재호는 호수비 퍼레이드로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주장이란 부담을 던 김재호가 남은 시즌 어떤 활약을 펼칠지 주목된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겨우내 준비했던 생명의 씨앗이 싹트는 광경이 펼쳐진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비시즌 내내 열심히 준비한 자신의 야구를 선보이기 시작하는 계절이 바로 봄이다. 가을에 달콤한 열매를 맺기 위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켤 시기다.
그렇다고 봄이 누구에게나 따스한 계절은 아니다. 두산 베어스 내야수 김재호에게 2017년 봄은 그리 순탄치 않은 나날이었다. 2017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 주장과 소속팀의 주장을 동시에 맡은 시기였지만, 2017 WBC 1라운드 조기 탈락과 올 시즌 초 팀의 부진은 김재호의 어깨를 점점 무겁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김재호 개인의 몸 상태도 의욕만큼 올라오지 못했다. 국제 대회 참여로 시즌 준비가 완벽하지 않았던 데다 허리 통증이 김재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몸의 중심축인 허리가 나빠지자 공격과 수비에 모두 영향을 미쳤다. 내야수라면 피할 수 없는 ‘직업병’과도 같았다.
김재호는 “시즌 초엔 서 있는 것 자체도 정말 힘들었다. 발목이 안 좋아지면서 허리까지 영향을 미쳤다. 한 마디로 신체 균형이 깨졌다. 수비할 때 허리를 굽혔다 폈다 반복을 하지 않나. 허리가 불편하니 자연스럽게 경기 집중력이 떨어졌다”며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실제로 그랬다. 김재호는 시즌 초부터 들쭉날쭉한 타격감을 이어갔다. 4월(타율 0.243)을 지나 5월(타율 0.377)에서 반등한 김재호는 6월(타율 0.250)부터 다시 하락세를 탔다. 김재호는 6월 중순부터 보름 정도 허리 통증으로 선발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전반기 동안 주장으로서 팀에 대한 책임감으로 버티고 뛴 김재호였다.
김재호의 장점인 수비력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사실 김재호는 시즌 초 허리 통증으로 팀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날이 많았다. 김재호는 전반기에만 8개의 실책을 기록했다. 지난해 김재호의 총 실책 개수(10개)를 고려하면 수비마저도 속절없이 흔들린 셈이었다.
쉼표 찍은 김재호, 잊었던 열정을 되찾다

열정을 되찾은 김재호는 선발 복귀 첫날 경기 MVP로 맹활약했다(사진=엠스플뉴스)
열정을 되찾은 김재호는 선발 복귀 첫날 경기 MVP로 맹활약했다(사진=엠스플뉴스)

결국, 허리 통증에서 회복할 시간이 김재호에게 꼭 필요했다. 김재호는 7월 30일 1군에서 말소된 뒤 보름 정도의 휴식 시간을 보냈다. 이 시간은 김재호의 야구를 다시 되돌아본 시간이기도 했다. 어쩌면 김재호 자신에게 꼭 필요했던 여유였다.
그저 앞만 바라보고 달린 시기였다. 2013시즌(91경기 출전)부터 두산 주전 유격수로 자리 잡은 김재호는 2014시즌(122경기 출전)·2015시즌(133경기 출전)·2016시즌(137경기 출전)을 거치면서 쉼 없이 달려왔다. 2015 WBSC 프리미어12와 2017 WBC 대표팀에도 발탁된 김재호는 비시즌에도 국가를 위해 뛰었다.
“솔직히 나는 회복 기간이 다른 의미로 좋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국제 대회에도 참여하면서 쉬지 않고 달려왔다. 내 몸 상태를 다시 재정비하는 동시에 ‘내 야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잠시 잊고 있던 열정이 생기게 된 계기도 됐다. ‘야구가 쉬운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더 들더라. 야구를 더 파고드는 노력이 필요하단 걸 느꼈다.” 김재호의 말이다.
다행히 팀 후배인 내야수 류지혁이 김재호의 빈자리를 훌륭하게 메웠다. 류지혁은 김재호가 7월 30일 말소된 다음부터 8월 15일 복귀하기 전까지 13경기 출전 타율 0.327 2홈런 10타점 16득점으로 날카로운 타격감을 선보였다. 자신의 공백을 잘 메운 류지혁의 활약은 김재호에게 새로운 자극이 됐다. 또 2군 선수들과 함께한 훈련은 과거 팀 선배였던 손시헌과 경쟁한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김재호는 “내가 없는 상황에서 팀이 어려움을 겪었다면 마음이 더 불편했을 거다. (류)지혁이가 나 대신 잘해줬기에 진심으로 기뻤다. 이 말은 ‘언론 플레이’가 아니다(웃음). 지혁이의 활약은 나에게도 큰 자극이 됐다. 또 2군 선수들이 훈련하는 걸 보니 옛날 생각도 나더라. 그 열정이 와 닿았다. ‘야구가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고갤 끄덕였다.
이렇게 김재호의 칭찬을 한껏 받은 류지혁은 오히려 겸손하게 고갤 숙였다. 류지혁은 “항상 (김)재호 형한테 배우려는 마음가짐으로 대화하고 같이 수비 연습을 한다. 그간 팀에 폐를 끼칠까 봐 너무 걱정했다. 재호 형은 여전히 내 마음속 주전이고 정말 존경하는 선배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며 김재호를 향한 존경심을 내비쳤다. 최근 류지혁은 3루수로 선발 출전하면서 ‘우상’인 김재호와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살아있음을 보여준 김재호 “포기하긴 아직 이르다.”

선두 KIA와의 중요했던 경기에서 결승 솔로 홈런을 때린 김재호(사진=엠스플뉴스)
선두 KIA와의 중요했던 경기에서 결승 솔로 홈런을 때린 김재호(사진=엠스플뉴스)

남은 시즌 동안 김재호의 부담이 다소 덜어진 요소가 있다. 바로 주장 자리를 외야수 김재환에게 넘긴 것. 김재환은 김재호가 1군에서 없는 사이 임시 주장을 훌륭히 소화했다고 평가받았다. 몸 상태가 완전치 않은 김재호 대신 김재환이 시즌 마지막까지 주장 자리를 소화하기로 했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김)재호가 2년 동안 주장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김)재환이가 주장을 계속 하고, 재호와 (오)재원이가 그 뒤를 받쳐주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며 시즌 중 주장 변경의 의미를 설명했다.
주장 자리를 넘긴 김재호는 8월 18일 잠실 KIA 타이거즈전부터 선발 유격수로 복귀했다. 이날 김재호는 결승 솔로 홈런과 연이은 호수비로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20일 수원 kt 위즈전에서도 김재호는 감각적인 포구와 송구를 쉬지 않고 선보였다. ‘유격수 수비는 역시 김재호’라는 팬들의 찬사가 나올 만했다.
무엇보다 김재호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뛰었다. 김재호는 “시즌 초 팬분들이 많이 하신 얘기가 ‘김재호가 예전 같지 않다’였다. 그 소리가 자극됐다. 내가 돌아간다면 시즌 초와 다른 경기력을 보여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경기에 더 집중하고, 호수비를 하고자 노력했다”며 이를 악물었다.
이제 올 시즌 KBO리그는 막판 순위 싸움에 돌입했다. 두산은 8월 21일 기준 64승 2무 46패로 2위에 오른 상태다. 시즌 32경기를 남긴 가운데 1위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 차는 5.5경기 차다. 팀 센터 라인의 중심인 김재호가 복귀하면서 최근 상승세에 더 탄력이 붙은 두산이다. 김재호도 팀의 선두 싸움에 꼭 이바지하겠단 각오다.
김재호는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시즌 막판 순위 경쟁을 위해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드려야 한다. 남은 시즌 동안 후배들에겐 좋은 조언을 해주면서 동시에 내 야구도 성장할 수 있도록 한 발짝이라도 더 뛰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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