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8일 KBO 야구회관에서 열린 상벌위원회에서 상벌위원들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2017년 3월 28일 KBO 야구회관에서 열린 상벌위원회에서 상벌위원들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KBO(한국야구위원회) 상벌위원이 최근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비위 심판’ 최규순과의 돈 거래 사실 때문이다. 이 상벌위원은 3월 28일 ‘두산-최규순 돈 거래 사건’을 다룬 상벌위에 참석했던 인사인 것으로 밝혀졌다.

‘비위 심판’ 최규순과 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 넥센 히어로즈, 삼성 라이온즈 구단 관계자 간 돈거래가 사실로 드러나자, KBO가 상벌위원회 개최를 예고하고 나섰다.

KBO는 "구단-심판 간 돈거래는 명백한 규약 위반“이라며 ”조만간 상벌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KBO의 ‘상벌위 개최’ 예고에 야구계는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최규순 사건이 지금처럼 엄청난 ‘게이트’로 커진 책임에서 상벌위 역시 자유롭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 야구인은 “안타깝지만, 지금의 상벌위는 최규순 사건을 다룰 위치가 아닌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 상벌위원의 증언 “‘이 일이 알려지면 야구계에 큰일이 난다. 우리만 알자’는 식으로 회의 분위기가 흘렀다.”

‘최규순 게이트’ 논란의 중심에 선 최규순 전 심판(사진=엠스플뉴스)
‘최규순 게이트’ 논란의 중심에 선 최규순 전 심판(사진=엠스플뉴스)

KBO는 3월 28일 상벌위를 열어 ‘최규순 전 심판과 돈거래를 자진 신고한 두산, 최 전 심판과 돈 거래를 신고했다가 철회한 넥센’에 대해 논의했다.

당시 상벌위원들은 KBO로부터 구단별 자체조사 결과가 담긴 공문과 KBO 조사위원회의 면담 자료 등을 건네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KBO 관계자는 “상벌위원들에게 충분한 자료를 제공했다”고 강조했다. 엠스플뉴스 취재진이 이 문서와 자료들을 입수했을 때 사안의 심각성이 높아 보였다.

물론 상벌위원 간 해당 문서와 자료를 바라보는 시각과 심각성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해당 돈거래는 KBO 규약 제155조(리그 관계자들끼리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는 행위 금지)의 명백한 위반이자, 제148조(경기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하는 행위 금지) 위반으로도 볼 수 있는 위중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상벌위는 최규순 사건과 관련해 제대로 된 처분을 하지 않았다. 금전 거래를 자진 신고한 두산 김승영 당시 대표이사에게 ‘엄중 경고’, 넥센 이장석 전 대표이사에겐 ‘사실관계 불명확으로 심의 보류’ 처분을 내렸을 뿐이었다.

KBO는 이 같은 상벌위 회의 내용을 전혀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그냥 묻어버렸다. 야구계가 “‘최규순 사건’을 야구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던 마지막 골든 타임을 놓쳤다”고 아쉬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벌위가 열릴 당시, 일부 상벌위원은 심판과 구단의 금전거래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내놨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 상벌위원은 ‘엠스플뉴스’와의 통화에서 “밖에서 보면 당연히 이해관계가 얽힐 수 있다는 생각은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구단에 엄중 경고가 들어가야 하지 않냐는 얘길 분명히 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다른 상벌위원은 “그렇게 주장할 회의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이 상벌위원은 “‘이 일이 알려지면 야구계에 큰일이 난다. 우리만 알자’는 식으로 회의 분위기를 주도한 이가 있었다”며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당시 최규순 사건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지 못한 건 사실”이라고 아쉬워했다.

현 상벌위가 ‘최규순 사건’을 다시 다루는 게 과연 온당하느냐는 의문의 이유는 또 있다. 상벌위원 가운데 한 위원이 과거 최규순에게 돈을 준 적이 있는 인사이기 때문이다. 최규순의 실체와 돈 거래 방식을 누구보다 직접적으로 경험했던 인사가, 역설적이게도 ‘최규순 사건’ 상벌위에 참석했던 것이다.

‘최규순 사건’을 다룬 3월 28일 KBO 상벌위에 참석했던 상벌위원. 최규순과의 금전 거래 사실이 밝혀지며 최근 검찰 소환 조사 받아

상벌위원들이 말한 ‘최규순 사건’ 관련 상벌위원회(사진=엠스플뉴스)
상벌위원들이 말한 ‘최규순 사건’ 관련 상벌위원회(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는 최근 법조계 관계자로부터 ‘저명한 야구계 인사 A씨가 최규순 사건 관련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는 제보를 받았다. 일명 ‘최규순 리스트’에 야구인 수십 명의 이름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야구계 인사가 참고인 조사를 받은 것 자체는 놀랄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A씨가 현직 KBO 상벌위원회 소속이며, ‘최규순 사건’이 유야무야 덮힌 3월 28일 상벌위에 참석한 위원이라는 점이었다. 당시 상벌위엔 상벌 위원장인 최원현 법무법인 KCL 대표변호사, 민훈기 SPOTV 해설위원, 강준호 서울대 교수,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등이 참석했다. 이종범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이날 상벌위엔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물론 A 씨는 구단 관계자나 현장 지도자와는 경우가 다르다. 최규순에게 돈을 줘서 직접적인 이익을 취할 만한 자리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 검찰 조사에서도 ‘최규순과 개인적으로 알아 사정이 어렵다고 해 돈을 빌려줬을 뿐이다. 빌려준 돈도 되돌려 받았다’고 해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전적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야구인을 사심 없이 도와줬다면, 그 자체는 결코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A 씨가 상벌위원 신분으로 최규순 사건을 다룬 상벌위에 참석했다는 점이다. 이미 최규순과 돈거래 경험이 있는 A 씨는 최규순이 어떤 사람이고, 왜 KBO 심판직에서 물러나야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 심판과 구단의 금전 거래가 얼마나 심각한 스캔들이 될 수 있는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상벌위원은 상벌위에서 ‘최규순 사건’을 다룰 때 자신과 최규순의 돈 거래 사실은 고사하고,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야구계의 한 인사는 “최규순과 돈 거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상벌위에 참석했는데 어떻게 상벌위가 ‘최규순 사건’을 명명백백 밝혀 공개할 수 있었겠느냐”며 “최소한 상벌위에서 이 사안을 다룰 때 KBO 측에 ‘난 이 사안을 다루기 힘들다’고 양해를 구한 뒤 자릴 떴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야구계 “KBO 상벌위원회 인적 구성을 다시 해야한다.”

3월 28일 상벌위원회가 개최된 KBO 야구회관(사진=엠스플뉴스)
3월 28일 상벌위원회가 개최된 KBO 야구회관(사진=엠스플뉴스)

그간 야구계에선 KBO 상벌위원회의 인적 구성에 문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KBO나 구단, 선수, 심판원과 친분이 있고 이해관계가 겹치는 인사로 구성돼 상벌위 기능이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지기 힘들다는 지적이었다.

지금까지 KBO 상벌위는 주로 변호사와 방송사 해설위원, 교수와 언론인을 대상으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야구 해설위원은 대부분 선수 출신으로, 언제든 현장에 돌아갈 수 있는 인사들이다. 현장 감독, 선수, 심판원과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다.

변호사 역시 대부분 KBO 고문변호사를 지낸 인사들로 선발돼 KBO와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단 지적이 나왔다.

언론인 출신의 상벌위원은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언론인의 직업윤리와 상벌위원의 의무가 서로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인은 어떤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보도’할 의무가 있다.

반면 상벌위원은 상벌위 내에서 생긴 일에 대해 외부에 알리지 않을 의무를 갖는다. 이번처럼 상벌위의 ‘은폐’ 의혹이 생기면 언론인의 의무와 상벌위원의 의무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최규순 사건을 두고 상벌위원 개인을 비판하기에 앞서, 이런 딜레마가 생길 수밖에 없는 인사들로 상벌위를 구성한 KBO가 더 큰 비판을 받아야 할 이유다.

야구계에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상벌위 구성을 대대적으로 일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야구계와 KBO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다 엄정한 ‘상벌’을 내릴 수 있는 인사들로 상벌위를 꾸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엠스플뉴스는 상벌위원 A 씨와 관련한 질의를 위해 KBO에 연락을 취했지만, 모든 부서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A 씨는 공식적으로 여전히 KBO 상벌위원이다. 향후 상벌위가 개최되면 참석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상태다.

+ 취재 후 : A 씨의 추가 반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근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사실이 있다. 2012년 새벽 1시쯤에 급히 최규순 전 심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교통 사고 났다. 돈 좀 빌려달라’고 했다. 이후 돈은 돌려받았다.

최 심판이 매수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라고 보는데. 물론 구단 관계자가 그랬다면 할 말은 없지만. 야구계가 너무 힘들다.“

엠스플뉴스 탐사보도팀

박동희, 배지헌, 김원익, 전수은, 강윤기, 김근한, 이동섭 기자

one2@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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