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전 SK 감독이 화순초 야구부 아이들을 안아주는 장면(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이만수 전 SK 감독이 화순초 야구부 아이들을 안아주는 장면(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엠스플뉴스]

이 기사는 2017년 8월 8일 게재된 [엠스플 기획] '폭력 감독은 어떻게 다시 야구부 감독이 됐나' 다음 이야기입니다. 엠스플뉴스는 야구계의 곪은 상처를 파헤침과 동시에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입니다.

전국을 돌며 야구 재능기부에 힘쓰는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은 엠스플뉴스가 8월 8일 보도한 ‘폭력 감독은 어떻게 다시 야구부 감독이 됐나’를 읽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화순초 야구부 아이들이 전임 감독의 폭력과 폭언에 시달렸을 걸 생각하니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얼굴을 들기조차 창피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이 전 감독의 말이다.

이 전 감독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 야구인이 또 있었다. ‘한국인 타자’론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던 최희섭 해설위원이다. 최 위원은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화순초에서 가슴 아픈 일이 벌어졌었다는 사실을 엠스플뉴스 기사를 통해 알았다”며 “아이들이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많은 야구인이 기사를 접하고서 엠스플뉴스에 전활 걸어와 “‘감독’이란 사람이 초교생 아이들을 어떻게 이렇듯 무자비하게 폭행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참담한 심정’이란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침통해 했다.

많은 야구인과 비교해 이 전 감독, 최 위원이 다른 게 있다면 두 이는 ‘침통하다’는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두 이는 바쁜 시간을 쪼개 화순초로 동시에 달려갔다. 화순초 아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주기 위해서였다.

재능기부에 앞장 선 이만수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재능기부에 앞장 선 이만수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최희섭 해설위원은 화순초 방문을 위해 서울에서 예정된 메이저리그 중계 방송 일정을 조정했다.

“계속 아이들이 걸렸어요. 물론 제가 찾아간다고 특별히 나아질 게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말로만 ‘아쉽다.’ ‘안타깝다’하는 것보단 직접 아이들을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최 위원의 말이다.

이 전 감독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인천에서 출발해 화순초를 향해 갔다. 화순초에서 최 위원은 배트를 손에 쥐고 직접 펑고를 때렸다.

“현역 선수 은퇴 후 처음으로 배트를 휘둘러 봤습니다. 처음엔 어색하더라고요(웃음).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야죠.” 최 위원의 입가에 지문처럼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평화를 되찾은 화순초 야구부, 상처를 치유하다

(사진 왼쪽부터) 신해수 화순초 야구부 감독,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 최희섭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사진 왼쪽부터) 신해수 화순초 야구부 감독,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 최희섭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전임 감독의 폭력으로 화순초 야구부 아이들은 공포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지난해 7월 1일 신해수 새 감독이 화순초 야구부를 맡으며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2006 신인 드래프트’ 2차 4순위로 한화 이글스에 지명받은 신 감독은 2006년 유원상(LG 트윈스), 류현진(LA 다저스), 정범모(한화) 등과 함께 한화 유니폼을 입은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다.

입단 당시 큰 기대를 모았지만, 입단 직후 수술대에 오르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면서 일찍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현역 은퇴 뒤엔 광주 충장중학교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하며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사실 초교 감독은 중, 고교 감독들보다 할 일이 많다. 아이들에게 야구의 기본기를 알려줘야 하는 만큼 세심하고, 정확한 지도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이해력과 집중력이 중, 고교생에 미치지 못하기에 몇 번이고 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하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신 감독은 그걸 알면서도 지난해 화순초 야구부 감독직에 도전했다.

“전 화순에서 초, 중, 고를 나온 ‘화순 토박이’에요. 화순초 80회 졸업생이기도 합니다. 모교가 여러 좋지 않은 소문에 휩싸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교를 살려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다행히 감독이 돼 모교를 살릴 기회는 주어졌는데…힘든 게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신 감독의 얘기다.

두 레전드 야구인의 지도를 받으면 환한 표정을 짓는 화순초 야구부 학생선수(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두 레전드 야구인의 지도를 받으면 환한 표정을 짓는 화순초 야구부 학생선수(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가장 힘든 일’은 학생선수 수급이었다.

지난해 화순초 야구부원은 총 13명이었다. 이 가운데 졸업을 앞둔 6학년생이 7명이나 됐다. 7명의 아이가 졸업하면 6명으로 야구부를 운영해야할 판이었다. 신 감독이 광주에 내려가 신입 야구부원 모집에 매달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정말 힘들었어요. 아마 모교에 대한 애착이 없었다면 제가 먼저 (감독직을) 관뒀을지 모릅니다. 그럴 때 화순 군수님을 비롯해 교장 선생님께서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셨어요. 덕분에 빠르게 야구부를 정상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2017년 화순초 야구부원은 총 23명으로 늘었다. 6학년이 7명으로 가장 많고, 5학년 5명, 4학년 7명, 3학년 4명, 1학년 1명으로 학생선수들의 학년 분포도가 넓어졌다.

“신입 야구부원들이 늘어나니까 확실히 팀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그 전까지 학부모님들도 단합이 안 되고, 아이들도 ‘따로 논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제가 제일 강조한 게 부모님들끼리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거였어요. 부모님들 사이가 좋아야 아이들도 서로 의지하며 친하게 지내거든요. ‘우린 한 팀’이라는 걸 늘 강조했습니다.” 신 감독의 말이다.

새롭게 태어난 화순초 야구부는 올해 큰 ‘사고’를 쳤다. 4월 3일부터 5일까지 3일간 열린 제46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전남 대표 선발전에서 3전 전승을 거두며 11년 만에 전남 대표로 선발되는 기쁨을 맛본 것이다.

일부 학부모 사이에서 “아이들을 때리는 건 문제이나, 투구 교정을 잘해주고, 팀 성적을 잘 내는 감독”이란 소릴 들었던 전임 감독도 해내지 못했던 쾌거였다.

화순초에 찾아온 두 레전드 야구인과 레전드를 반긴 아이들

손바닥이 까지도록 열정적으로 펑고를 친 최희섭 위원(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손바닥이 까지도록 열정적으로 펑고를 친 최희섭 위원(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이 전 감독, 최 위원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는 아이들의 훈련을 지켜보던 화순초 학부모들은 이렇게 말했다.

“두 레전드 야구인이 찾아오시니까 정말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 눈에 보여요.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우리들도 아이들이 전부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아요.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야구하는 걸 말리지 않는 이유는 하나에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도 지금은 우리 아이들이 야구를 좋아하니 그 좋아하는 야구를 계속 하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해가 저물자 신해수 감독은 훈련을 ‘칼’같이 종료했다. 아이들은 두 레전드 야구인들과 함께 훈련을 더하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신 감독은 단호했다.

“대회가 있을 땐 저녁 8시 30분까지, 대회가 없으면 저녁 7시에 훈련을 종료해요. 평소 3시간 정도만 훈련합니다. 훈련 시간이 길어봤자 집중도 못 하고, 효과가 전혀 없어요. 힘들게 훈련하면 아이들이 금방 야구에 질릴 수도 있고요. 아이들이 최대한 재밌게 야구를 대하도록 저부터 노력하고 있습니다.”

못내 아쉬운 듯 발길을 돌리는 아이들을 보던 최희섭 위원이 아이들을 한 두명씩 안아주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입을 모아 “다음에 또 와주세요”하고 부탁하며 최 위원의 넓은 품에 안겼다.

“기사를 보고서 걱정을 많이했어요. 다행히 아이들을 직접 보니 표정이 밝아서 기뻤습니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라, 저도 발걸음이 안 떨어지네요. 다만, 오랜만에 방망이를 잡아선지 보세요. 손이 다 까졌네요(웃음).” 최 위원이 허털웃음을 지으며 물집이 터진 양 손바닥을 내보였다.

아이들에겐 매보단 포옹이 필요하다

이만수 전 감독이 화순초 포수 학생선수를 지도하는 장면(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이만수 전 감독이 화순초 포수 학생선수를 지도하는 장면(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흐뭇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만수 전 감독은 후배 최 위원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올해로 제가 야구 재능기부에 나선지 3년째가 됩니다. 이젠 많은 후배가 재능기부에 동참해주고 있어요.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47년간 야구를 통해 받은 사랑을 야구로 돌려준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박찬호, 최희섭 등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들이 이렇게 한걸음에 달려와 동참해주고 있어요. 이런 훌륭한 후배 야구인들이 있어 대한민국 야구의 미래가 밝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전 감독은 이어 마음 속에 담아뒀던 고백을 들려줬다.

“최근 아마추어 야구부 지도자들이 아이들을 때린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야구인 이만수’도 잘못된 사람인지 몰라요. 저부터 인성이 제대로 되지 못해 후배 야구인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결과입니다. 힘든 일을 겪었을 화순초 야구부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께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앞으로도 저부터 반성하고, 저부터 노력하겠습니다.”

전임 감독의 폭압에서 벗어난 화순초 야구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학교 야구부’로 거듭나고 있다. 미소짓는 아이들의 얼굴 속에서 '폭력' 대신 '포옹'이 필요하다는 걸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 취재 후

1박 2일 일정으로 화순초에 방문한 이만수 전 감독은 다음날 아이들을 A팀과 B팀으로 나눠 연습경기를 치르도록 했다. A팀을 이끈 신해수 감독과 B팀을 지도한 이만수 전 감독은 ‘아이스크림 내기’ 경기를 펼쳤다. 결과는 10-9 한 점 차 짜릿한 A팀의 승리. 이 전 감독은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며 즐거워했다.

강윤기 기자 stylekoo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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