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야구장이 시끄러우면, 롯데 선수들은 집중도 잘 되고 힘이 난다(사진=엠스플뉴스).
사직야구장이 시끄러우면, 롯데 선수들은 집중도 잘 되고 힘이 난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 2000년대 후반, '노 피어'를 앞세워 부산 팬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던 롯데. 올 시즌 후반기 롯데의 모습에서 '노 피어' 시절의 모습이 보인다. 여기에 강한 불펜과 수비력으로 보다 '업그레이드'된 야구를 선보이고 있다. 올 시즌 롯데가 '노 피어' 시절과 같으면서 다른 점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2000년대 후반, 제리 로이스터 감독 시절 롯데 야구는 뜨거웠다. ‘노 피어(No Fear)’ 정신으로 무장한 롯데는 공격적이고 화끈한 야구로 획일적인 프로야구 판도에 신선한 자극을 안겼다.

타자들은 어떤 카운트에서도 자신 있게 자기 스윙을 했다. 투수들은 스트라이크존을 공격적으로 공략했다. 이대호를 중심으로 한 타선의 화끈한 공격력에, 긴 이닝을 버티는 선발투수를 앞세운 롯데의 팀 컬러는 독특했다.

그 시절 롯데 야구는 매력적이었다. 롯데 팬이 아니라도, 보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매력이 넘쳤다. 절대 완벽하진 않았다. 어딘가 허점도 많았다. 불펜이 허약해 경기 후반만 되면 심장 떨리는 극장을 연출했다. 중요한 상황에 황당한 수비로 위기를 맞이하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그때 롯데는 실수하면 좋은 플레이로 만회하고, 7점 주면 8점 내서 이긴다는 패기가 있었다. 그런 롯데 야구를 부산 팬들은 사랑했다. 롯데 경기엔 매일 2만 명 이상의 구름 관중이 몰렸다. 사직야구장은 늘 ‘너무 시끄러워서’ 선수들의 아드레날린을 들끓게 했다.

'노 피어' 야구의 업그레이드, 2017 롯데

사직 수비 요정이 된 번즈(사진=롯데).
사직 수비 요정이 된 번즈(사진=롯데).

올 시즌, 후반기부터 다시 사직 야구장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롯데의 무서운 상승세가 야구장을 다시 뜨겁게 달구는 중이다. 최근 사직에서 열린 주말 4경기가 모두 2만 관중을 넘겼다. 8월 이후 홈 평균관중도 16,325명으로 두산(17,388)에 이은 2위다. 만원 관중이 가득 찬 9월 2일 경기 때, ‘노 피어’ 멤버였던 정보명 코치는 “이런 장관은 처음 본다”며 경탄하기도 했다.

‘노 피어’ 시절의 멤버가 다시 뭉쳤다. 돌아온 이대호와 군에서 전역한 전준우, 손아섭과 강민호가 이끄는 타선에 불이 붙었다. 화끈하고 공격적인 타격을 펼치는 롯데는 8월 이후 리그에서 가장 많은 득점(182)을 올리며 활활 타오르고 있다. 베테랑 이닝이터 송승준, 돌아온 포크볼러 조정훈이 가세한 마운드도 안정적이다. 롯데는 후반기 리그에서 두 번째로 적은 실점(167)을 기록 중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시절 노 피어 야구와 다른 점도 보인다. ‘노 피어’ 시절 롯데는 강팀이지만, 허점도 많은 팀이었다. 허약한 불펜 탓에 접전에 약했고, 수비에서도 군데군데 구멍이 많았다. 큰 그림은 시원하게 잘 그렸지만, 디테일을 따지고 들면 아쉬운 구석이 많았다.

지금의 롯데는 다르다. 탄탄한 마운드를 바탕으로 안정감 있는 야구를 펼친다. 리그에서 유일하게 ‘5인 로테이션’을 시즌 내내 가동한 팀이 롯데다. ‘5선발’ 김원중조차 매 경기 퀄리티 스타트로 믿음직한 투구를 펼친다.

노 피어 시절 홈 팬들에게 두려움을 안겼던 불펜도 이제는 롯데의 강점이 됐다. 손승락을 중심으로 박진형, 배장호가 버티는 불펜은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다. 후반기 불펜 평균자책 3.97로 리그 3위. 경기 후반 리드를 잡은 경기에서 역전패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후반기 6회말까지 앞선 경기에서 롯데는 20승 1패 승률 0.952(3위)를 기록하고 있다.

로이스터 감독 시절, 양승호 감독 시절, 그리고 올 시즌 롯데의 지표 변화(통계=스탯티즈).
로이스터 감독 시절, 양승호 감독 시절, 그리고 올 시즌 롯데의 지표 변화(통계=스탯티즈).

구멍투성이였던 수비력도 탄탄해졌다. 외국인 내야수 앤디 번즈 등 선수 구성 변화로 내야에 짜임새와 안정감을 더했다. 번즈는 매 경기 기막힌 호수비로 팀 승리에 공헌하는 중이다. 조원우 감독은 “승부처에서 수비 하나가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올 시즌 롯데의 인플레이 타구를 아웃으로 잡은 비율을 측정하는 DER 수치는 0.676으로 LG와 NC에 이어 3위, 수비율도 0.984로 리그 전체 1위다. 실책은 적게 하면서 아웃도 가장 많이 잡아내는, 가장 이상적인 수비를 펼치고 있는 팀이 롯데다.

"롯데 역사상 가장 균형 잡힌 전력이다"

한때 익숙했던 문구, 다시 익숙해질 문구(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한때 익숙했던 문구, 다시 익숙해질 문구(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노 피어’ 시절 롯데의 무기와는 거리가 멀었던 도루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팀 도루 84개로 삼성(86개)에 이은 리그 2위. 후반기 팀 도루는 35개로 리그 전체 1위다. 전반기 다소 저조했던 도루성공률은 후반기 들어 76%로 크게 향상됐다. 손아섭(24도루), 나경민(19도루) 등 수준급 주자들이 경기 후반 허를 찌르는 도루로 결정적 찬스를 만들어 낸다.

2년 차 시즌을 맞이한 조원우 감독의 리더십도 날로 안정감을 더하고 있다. 조 감독은 합리적이고 원칙 있는 선수단 운영을 한다. 흔히 ‘명장병’이란 비판을 사는 무리한 작전이나 ‘꼼수’는 찾아보기 어렵다. 시즌 초반 쏟아지는 외부의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고, 긴 안목으로 시즌을 운영했다.

최효석 부산 MBC 해설위원은 “과거의 롯데는 상위권 성적을 낼 때도 약점이 뚜렷했다. 그러나 올 시즌, 최근의 롯데는 이렇다 할 약점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선발진은 물론 불펜과 수비까지, 전력 면에서 큰 약점이 보이지 않는 팀이 됐다. 롯데를 오랫동안 봐 왔지만, 지금만큼 균형 잡힌 전력을 구축한 게 언제였던가 싶다.” 최 위원의 지적이다.

‘노 피어’ 시절 롯데는 화끈하고 매력적인 야구를 펼쳤지만, ‘약점이 많아 우승까지는 어렵다’는 냉정한 평가를 받곤 했다. 올 시즌, 확 달라진 롯데 야구는 노 피어 시절의 화끈한 매력에 안정감까지 더했다. 이렇다 할 구멍을 찾기 힘들 만큼, 짜임새 있는 전력을 구축했다. 시즌 승률도 0.552로 어느새 구단 역사상 최고 승률(0.563, 2011년)에 근접했다. 어쩌면, 올 시즌이야말로 롯데가 '큰일'을 내는 시즌이 될지도 모른다.

배지헌 기자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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